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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영 천재’ 박태환 아버지 박인호씨 인터뷰

“끝없는 노력과 성실함으로 정상에 오른 내 아들…”

글·송화선 기자 / 사진·동아일보 사진DB파트

입력 2008.09.18 16:19:00

2008 베이징올림픽이 낳은 최고의 스타는 ‘수영 천재’ 박태환이다. 한국인으로는 최초로 올림픽 수영 부문에서 금메달을 따낸 그의 아버지 박인호씨는 “아들이 두 손을 번쩍 들며 환호하는 순간 심장이 터지는 것 같았다”고 말했다. 박씨에게 박태환의 남다른 어린 시절과 힘겨운 훈련과정, 앞으로의 꿈에 대해 들었다.
‘수영 천재’ 박태환 아버지 박인호씨 인터뷰

정말 짜릿했다. 박태환(19)이 세계 유수의 선수들을 제치고 베이징올림픽 남자 수영 자유형 400m 금메달을 확정짓는 순간 온 국민이 환호했고, 아시아가 놀랐다. 박태환이 힘차게 헤엄치는 모습을 중국 베이징올림픽 수영경기장 워터큐브에서 지켜본 아버지 박인호씨(56)는 “태환이가 1등으로 치고 나오던 순간부터 정신이 아찔했다. 지금껏 태환이 경기를 거의 다 따라다니며 봤지만 이번처럼 흥분한 적은 처음”이라고 말했다.
“시상식 때까지 누가 2·3위를 했는지 전혀 몰랐어요. 평소에는 수영장 전체를 보면서 다른 선수들의 레이스를 분석하곤 하는데, 이번엔 태환이밖에 안 보이더라고요. 그 아이가 양손을 들고 환호하는 순간 얼마나 가슴이 뛰던지, 정말 자랑스럽고 뿌듯했습니다.”
박씨가 더 기뻤던 건 이제 아들이 양 어깨에 짊어지고 있던 무거운 부담을 벗어던지고 좀 더 자유롭게 수영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마음 때문이었다고 한다. 올림픽을 앞두고 언론에서 연일 ‘금메달 유력’, ‘연습 중 세계기록 돌파’ 등의 기사를 쏟아낼 때마다, 그와 아내는 아들이 힘들까봐 잠을 이루지 못할 만큼 부담을 느꼈다고. 자유형 400m 경기를 앞두고는 박씨의 두 눈에 실핏줄이 터지고, 안면 근육이 마비될 정도였다.
“4년 전 태환이가 아테네올림픽에 출전했다가 너무 긴장하는 바람에 수영장에 일찍 뛰어들어 실격당한 적이 있잖아요. 그 생각이 나 더 불안했던 것 같아요. 그런데 태환이는 그새 많이 컸더군요. 정신적으로 힘들어하기는 했지만, 끝까지 자기 페이스를 잃지 않았어요.”
경기 전날 박태환은 응원을 위해 베이징에 머물고 있던 박씨 숙소에 찾아와 “내일 수영장에 와서 즐겁게 게임을 보라”며 인사를 하고 갔다고 간다. 시합이 끝난 뒤 만났을 때는 장난스레 웃으며 “아빠, 나 어땠어?”라고 말했다고. 세계 최고가 됐다는 자부심이나 거만함 없이 칭찬을 기다리는 어린아이처럼 순수하고 밝은 모습의 아들을 보며 박씨는 경기 전 한없이 긴장하고, 금메달을 땄을 때 벅차게 감격스러워한 자신의 모습이 문득 쑥스럽게 느껴졌다고 털어놓았다.
“이제는 저 놈이 나보다 더 어른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메달이나 주위 반응에 연연하지 않고 최선을 다한 뒤 마음껏 즐기는 방법을 벌써 터득한 것 같았거든요. 태환이 말처럼 즐기면 될걸, 나는 왜 그걸 못해서 혼자 그렇게 힘들어했을까 싶어 웃음이 났어요(웃음). 태환이 키가 저보다 커진 지 꽤 됐는데, 이젠 몸뿐 아니라 마음까지 다 큰 것 같아요.”
박씨는 “부모로서 아무것도 해준 게 없는데 스스로 이 자리까지 온 것이 대견하면서도 한편으로는 미안하다”고 했다.
‘수영 천재’ 박태환 아버지 박인호씨 인터뷰

세련된 외모와 남다른 패션 감각을 지닌 박태환은 부족할 것 없이 자란 듯 보이지만, 사실 넉넉지 않은 어린 시절을 보냈다고 한다. 지금도 그의 가족은 강남구 개포동의 53㎡짜리 전셋집에 산다. 박태환은 중학교 때 버스비를 아끼려 몇 km를 걸어 다녔고, 몇 백 원씩 받는 용돈을 모아 어머니 약을 사드린 적도 있다고 한다.
“강남이라고 다 부자만 사는 건 아닙니다. 태환이 어릴 때 제가 사업을 하던 게 잘못되면서 집이 좀 어려워졌어요. 그런데 태환이의 수영 클럽이 이쪽에 있어서 멀리 이사할 수가 없었죠. 차라리 다른 동네면 좀 나을 텐데, 넉넉한 친구들 사이에서 아이가 상처받지나 않을까 신경이 쓰였어요.”
박씨는 다행히 태환이가 구김살 없이 자라나 늘 고마웠다고 말했다. 그런데 박태환이 수영 선수로 성공한 뒤 한 인터뷰에서 “돈을 많이 벌면 아버지에게 집을 사드리고 싶다”고 얘기하는 것을 보고 비로소 마음속에 남모를 상처가 있었다는 걸 알게 됐다고.
사실 박태환의 신체조건은 세계 정상을 놓고 경쟁하는 다른 선수들과 비교할 때 뛰어나지 않은 편이다. 베이징올림픽에서 자유형 400m 금메달을 다툰 미국의 반더카이의 키는 193cm로 183cm인 박태환보다 10cm나 크고, 같은 아시아 선수로 은메달을 따낸 중국의 장린(189cm)도 6cm가 크다.박씨는 “태환이가 이기고야 말겠다는 승부욕과 피나는 연습으로 이런 한계를 극복한 걸로 알고 있다”며 “태환이는 어릴 때부터 아무리 고된 연습을 해도 힘들다는 얘기를 한 적이 없는 아이”라고 말했다.
“초등학교 때 수영장에 따라가 보면 연습하는 2시간 내내 경기에 나선 것처럼 최선을 다하는 거예요. 보던 제가 안쓰러워 ‘태환아, 기록 재는 30분 동안만 전력을 다해서 하고 그 외 시간에는 좀 편하게 해’라고 말할 정도였죠.”

“하루 15,000m씩 수영하며 구토할 만큼 고된 훈련에도 힘들다는 투정 한 번 부리지 않았어요”
박태환에 대한 각종 검사 결과에서도 그의 이런 모습은 잘 드러난다. 박태환은 지난해 1월 경원대 스포츠과학연구소에서 운동능력 측정 테스트를 받은 적이 있는데, 폐활량과 근력, 유연성 등이 뛰어났지만 놀라울 정도는 아니었다고 한다. 오히려 연구팀이 주목한 건 한계 상황이 왔을 때 그것을 뛰어넘는 ‘괴력’이었다. 근육의 피로도를 나타내는 젖산 농도가 높아질 때 보통 선수들은 이를 견디지 못하고 운동량을 줄이는데 박태환은 훨씬 더 많은 힘을 내 어려움을 극복하더라는 것. 전문가들은 박태환이 수영 레이스 막판에 놀라운 스퍼트를 발휘해 승부를 뒤집는 것도 이같은 의지력 덕분이라고 분석했다.
“적성검사 결과를 봐도 태환이의 운동 재능은 평범함을 약간 웃도는 수준이라고 해요. 대신 성취동기가 상당히 높다고 하더군요. 주위의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노력하면서 자신이 원래 갖고 있던 재능보다 더 많은 능력을 발휘하고 있다는 거죠.”
박태환은 베이징올림픽에 대비해 연습하면서 물의 저항을 최대한 줄여 기록 단축을 도와주는 반신 수영복 대신 짧은 반바지 수영복을 입었다고 한다. 물이 잘 빠지지 않게 해 수영을 힘들게 만드는 이른바 ‘저항 수영복’인데, 육상선수가 모래주머니를 달고 뛰는 것과 같은 효과를 낸다고. 박태환은 지난 2월 본격적인 훈련을 위해 태릉선수촌에 들어간 뒤 이 수영복을 입고 매일 15,000m씩 수영했다. 50m 풀장을 1백50번 왕복해야 하는 어마어마한 거리다.
그런 고된 훈련 끝에 세계 정상에 오른 박태환의 다음 목표는 세계신기록 작성. 박씨는 “태환이가 초등학교 때 내가 농담처럼 ‘이왕 선수생활을 시작했으니 한국신기록은 한 번 깨야하지 않겠냐’고 한 적이 있는데, 태환이는 아시아 신기록을 세우는 선수가 됐다. 얼마 전에는 ‘선수생활을 끝내기 전에 세계 신기록을 한 번 깨보고 싶다’고 하더라”고 전했다.
“그 말을 듣고 이번에 마이클 펠프스가 수영하는 걸 보니 ‘저런 저런’ 하는 소리가 절로 나왔어요. 저 선수 때문에 우리 태환이가 세계기록 깨는 게 더 힘들어지겠구나 싶어서요(웃음). 하지만 태환이가 결심한 이상 꼭 한 번은 세계기록을 깰 거라고 믿습니다. 지금껏 언제나 자신과의 싸움에서 이겨온 아이니까요. 그리고 태환이는 아직 열아홉 살 아닙니까.”



박태환의 수영 경기를 응원하고 있는 가족 모습. 왼쪽부터 어머니 유성미씨, 누나 박인미씨, 아버지 박인호씨.

여성동아 2008년 9월 537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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