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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먼재단 설립해 나눔의 삶 실천하는 산악인 엄홍길

글·최숙영 기자 / 사진·지호영 기자, 마음의 숲 제공

입력 2008.08.22 11:30:00

지난해 세계 최초로 히말라야 16개 봉 등정에 성공한 산악인 엄홍길이 소외 어린이와 산악인 등을 돕기 위한 휴먼재단을 설립했다. 85년부터 히말라야 등반을 시작, 인생의 절반을 그곳에서 보낸 엄홍길을 만나 죽음을 무릅쓰고 산에 오르면서 얻은 깨달음과 봉사활동을 시작한 이유를 들었다.
휴먼재단 설립해 나눔의 삶 실천하는 산악인 엄홍길

가로수 길이 아름다운 서울 중구 정동 어귀에 위치한 건물의 4층 사무실 문을 열고 들어서자 파란색 티셔츠에 양복 바지를 입은 엄홍길(49)이 웃으며 반겨주었다. 어느덧 지천명을 바라보는 나이, 그의 머리카락에는 히말라야의 눈이 내려앉은 듯 하얀 빛이 물들어 있으며 얼굴에는 주름꽃이 피어 있었다.
지난 85년부터 히말라야에 도전하기 시작해 22년 만인 지난 2007년, 세계 최초로 16개 봉을 등정한 엄홍길은 산악계의 신화 같은 인물이다. 히말라야 등정에 38번 도전해 20번 성공한 그는 “그동안 엄청나게 많은 시련과 고통, 좌절과 눈물이 있었다”고 말했다.
“제게 산은 운명이었던 것 같아요. 경남 고성 바닷가 마을에서 태어났는데 세 살 때 부모님을 따라 서울 원도봉산 중턱으로 이사해 2000년까지 그곳에서 살았어요. 그러다 보니 어릴 적부터 산은 제게 놀이터와 다름없었죠. 계곡과 능선을 넘나들며 산을 오르고 나무 열매를 따 먹으며 학교에 다녔어요. 늘상 산을 오르고 내려오는 것만 하다 보니 다른 삶은 꿈꿀 겨를이 없었어요.”

“내게 산은 운명 같은 것, 늘상 산을 오르내리다 보니 다른 삶은 꿈꿀 겨를이 없었어요”
휴먼재단 설립해 나눔의 삶 실천하는 산악인 엄홍길

히말라야에는 8000m 이상의 주봉이 14개 있다. 엄홍길은 14개의 주봉과 2개의 위성봉인 얄룽캉과 로체샤르까지 포함해 16개의 봉우리에 올랐다. 어느 봉우리 하나 쉽게 올라간 것이 없지만 그에게 가장 많은 실패와 눈물을 안겨준 산은 바로 안나푸르나(8091m)라고 한다. 안나푸르나는 ‘풍요의 여신’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지만 산세가 험하고 기후도 나빠 산을 오를 때마다 온갖 우여곡절을 겪어야 했던 것. 그는 5번 도전 끝에 안나푸르나 등정에 성공했다.
“97년 3번째 안나푸르나 등정에 도전했을 때 5500m 지점에서 사랑하는 동료이자 가족 같던 셰르파(히말라야 등산대의 짐을 나르고 길을 안내하는 사람)를 잃었어요. 50m 간격을 두고 그 친구가 앞서 산을 오르고 있었는데 어느 순간 고개를 숙였다가 앞을 쳐다보니 모습이 보이지 않더군요. 정말 순식간이었어요. 크레바스(눈에 묻힌 계곡이나 빙하의 갈라진 틈)에 빠졌는데 구하려고 보니까 이미 목숨을 잃은 상태였어요. 크레바스에서 그 친구의 시신을 끌어내면서 안나푸르나의 신을 원망했죠.”
엄홍길은 이듬해 그 지옥 같은 산에 또 갔다. 친구를 잃었다는 어두운 기억과 죽음에 대한 공포로 두려움이 앞섰지만 포기할 수 없었다고 한다. 하지만 4번째 도전에서도 실패하고 말았다. 7600m까지 오른 지점에서 앞서 가던 셰르파가 얼음 경사면 아래로 미끄러지자 그는 순간적으로 셰르파를 살려야겠다는 생각에 로프를 잡았지만 로프가 발목을 감아 함께 굴러떨어졌다.
“굴러떨어지면서 이렇게 죽는구나 싶었는데 어느 순간 멈추더라고요. 다행히 목숨을 잃지는 않았지만 오른쪽 발목이 180도로 돌아가 엄지발가락이 있어야 할 자리에 뒤꿈치가 보이더군요. 셰르파가 다리를 맞추기 위해 제 발목을 잡고 힘껏 돌리니까 우두둑 소리가 나며 발목에 엄청난 통증이 느껴졌어요. 덜렁거리는 다리에 대나무로 부목을 만들어 대고 왼쪽 다리만 사용해서 베이스캠프까지 내려오는 데 꼬박 이틀이 걸렸어요.”

휴먼재단 설립해 나눔의 삶 실천하는 산악인 엄홍길

베이스캠프에 도착한 그는 헬기로 수송돼 네팔 카트만두 병원에서 응급처치를 받았다. 현지 의사는 “이런 다리로 어떻게 산을 내려왔냐”면서 “기적”이라며 놀라워했다고 한다. 그는 한국으로 돌아와 다리에 쇠핀을 네 개나 심어넣는 대수술을 받았다. 당시 담당의사는 그에게 더 이상 산을 오를 수 없을 뿐만 아니라 뛰지도 못할 것이라고 했다고 한다.
“그때 자포자기했다면 지금쯤 폐인이 됐을 거예요. 병원에서 퇴원해 집에서 요양을 하는 동안 창밖으로 보이는 원도봉산을 바라 보면서 안나푸르나 등정에 다시 도전해야겠다고 결심했어요. 영영 걷지 못한다 해도 생명이 붙어 있는 한 사랑하는 친구가 묻힌 그 산에 오르는 것이 나의 도리라고 생각했거든요. 결국 다섯 번째 등정에서 성공해 함께 산을 오르다 운명을 달리한 동료 대원들의 이름을 부르며 그들의 사진을 정상에 묻고 왔습니다.”
그의 눈에 얼핏 눈물이 맺혔다. 97년 이순래씨(39)와 결혼해 딸 지은(12)과 아들 현식(10)을 두고 있는 엄홍길은 산을 오르다 죽을 고비를 맞을 때면 가장 먼저 가족의 얼굴이 떠오른다고 한다. 그는 등정하는 도중에 눈사태를 맞거나 크레바스에 빠져서 순간 정신을 잃을 때면 혼미한 상태에서 아이들에게 유언을 한다고 털어놓았다. ‘어린 너희들이 아빠 없이 세상을 살려면 힘들고 먼저 간 아빠를 원망도 하겠지만 성인이 되면 아빠의 죽음을 다시 생각하게 되고 이해하게 될 것이다. 부디 건강하게 잘 자라길 바란다…’고.
2000년 칸첸중가(8586m) 등정 때도 죽음의 고비는 어김없이 찾아왔다. 셰르파 한 명이 낙빙에 맞아 죽자 의기소침해진 다른 셰르파들이 더 이상 가지 않겠다고 해 고 박무택 대원과 둘이서 16시간 동안 아무것도 먹지 못한 채 산에 오르다 7300m 지점에서 밤을 맞게 된 것. 로프에 의지한 채 빙벽의 중간에 매달려 있던 두 사람은 설벽의 튀어나온 바위 턱에 엉덩이만 살짝 걸치고 앉아 동이 틀 때까지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밤이 그렇게 긴 줄 그때 처음 알았어요. 그대로 잠이 들면 얼어 죽는다는 것을 너무도 잘 알고 있기에 밤새 서로의 이름을 계속 불렀죠. 10시간 넘게 로프를 붙잡고 사투를 벌이는 사이 어느새 멀리 동이 터왔어요. 구름 사이로 햇살이 비치는데 ‘아, 살았구나’ 싶더군요. 탈진해서 손가락 하나 움직일 수 없었지만 태양의 기운을 받아 몸속으로 뜨거운 피가 도는 것 같았어요.”
그는 박무택 대원과 함께했던 등정 이야기를 하면서 또 눈시울을 붉혔다. 친형제 이상으로 가까웠던 박 대원과는 8000m급 이상 4개 봉우리를 함께 올랐는데 2004년 초모랑마(8848m)에서 내려오던 박 대원이 조난당해 줄에 매달린 채로 죽음을 맞았던 것. 이듬해 세계 최초로 휴먼원정대를 이끌고 박 대원의 시신을 수습하러 갔던 그는 산 정상 가까운 지점에서 박 대원의 시신을 발견하고 말할 수 없는 감정들이 북받쳐올랐다고 한다.
“믿을 수가 없었어요. 시신을 끌어안고 정말 많이 울었죠. 몸은 싸늘했지만 비교적 편안한 모습이었어요. 가족들이 보내는 편지를 품속에 넣어주고 묻은 뒤 돌무덤을 만들어주었죠.”


2007년 히말라야 16개 봉“지금까지 살아 있는 건 어려운 이웃 위해 봉사하며 살라는 히말라야 신들의 뜻”을 완등하고 돌아오면서 그는 히말라야의 신들이 세상의 가난하고 힘든 사람들을 위해 살라는 뜻에서 자신을 살려 돌려보내준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그래서 그는 지난 한 해 동안 장애인, 화상으로 고통 받는 어린이와 청소년들과 함께 산을 오르면서 그들에게 희망과 용기를 주기 위해 노력했다. 그들과의 산행은 쉽지 않았지만 정상에 올라 밝은 미소를 짓는 모습을 볼 때면 마치 맑은 날 히말라야의 설산을 보는 것처럼 아름답고 보람이 있었다고.
“제 인생의 반을 히말라야에서 보냈는데 이제는 산에서 죽음을 맞이한 후배 동료들의 가족들을 돕고 소년소녀 가장들, 장애인들, 소외계층에게 도전정신과 희망을 심어주려고 해요. 또한 청소년들과 함께 산행하면서 리더십과 동료애, 팀워크를 체험하게 해주고 싶고요. 휴먼재단을 설립한 이유도 그 때문이죠.”
그는 최근 히말라야 16좌를 오르는 동안 배우고 느꼈던 것들을 담아 ‘꿈을 향해 거침없이 도전하라’는 책을 펴냈다. 엄홍길은 지난 시간동안 히말라야의 8000m 고봉을 올랐듯이 이제는 자신 인생의 8000m 산을 오르려고 한다. 그리고 그 도전은 이미 시작됐다.


85년부터 히말라야 등반을 시작한 엄홍길은 2007년 세계 최초로 히말라야 16개 봉 등정에 성공했다.

여성동아 2008년 8월 536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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