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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기사

아이와 함께 보는 명화 ①

목욕 뒤

놀이처럼 즐겁고 생기 넘치는 누드화

2008. 08. 04

목욕 뒤

르누아르, 목욕 뒤, 1888, 캔버스에 유채, 64.8×54cm, 개인 소장


인상파의 대가 르누아르는 평생 그림을 하나의 놀이처럼 대했습니다. 그가 젊은 시절 샤를 글레르 선생님에게 그림을 배울 때 그런 태도 때문에 혼이 난 적이 있습니다. 선생님은 예술이 심각하고 엄숙한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자신에게 배우는 제자가 예술을 가벼운 놀이처럼 생각하니 매우 못마땅했던 거지요.
하지만 예술을 꼭 심각하게 대해야만 하는 것은 아닙니다. 르누아르의 한 친구는 르누아르의 입장을 옹호하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르누아르는 무한히 즐겁기 때문에 그림을 그렸습니다. 그는 그림을 그려 세상을 구원한다든지 나라를 돕는다든지 하는 생각을 하지 않았습니다. 보는 사람을 즐겁게 하는 것만으로도 그림은 충분히 의미 있고 가치가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예술의 세계는 자유와 열정의 세계라고 불립니다. 누구나 따라야 하는 절대적인 법칙이나 규칙을 인정하지 않습니다. 예술가는 어디에도 얽매이지 않고 자유롭게 자신의 생각과 느낌을 표현합니다. 그러다 보면 마치 아주 재미있는 놀이를 하는 것처럼 비치고, 이럴 때 훌륭한 작품이 나타납니다. 그런 점에서 르누아르는 자신의 선생님보다 예술의 본질을 더 잘 알고 있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목욕 뒤’라는 작품은 르누아르가 서양미술사에서 매우 중요한 누드화가임을 잘 보여주는 걸작 가운데 하나입니다. 단순한 구성과 구도를 지닌 이 작품에서 우리는 르누아르 특유의 놀이정신을 생생히 목격할 수 있지요. 살갗을 표현한 붓질은 어루만지듯 다감합니다. 꽃을 표현한 붓질은 생동하는 자연의 힘을 느끼게 합니다.
그것들은 서로 어우러지기도 하고 경쟁을 하기도 합니다. 터치와 색, 형태, 구성이 무척이나 잘 어우러져 노는 그림입니다. 이렇게 스스로 즐김으로써 르누아르는 위대한 예술적 성취를 이뤘고 많은 사람을 진정으로 즐겁게 했습니다.

한 가지 더~ 따지고 보면 사람살이의 모든 게 다 놀이에서 나왔습니다. 네덜란드의 문화인류학자 하위징아는 제사나 의식, 풍습, 문화가 다 놀이에서 나왔다고 했습니다. 놀이를 좋아하는 것은 인간의 천성이라는 거지요. 그래서 놀이하는 인간이라는 의미로 사람을 ‘호모 루덴스’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르누아르(1841~1919) 재단사의 아들로 태어난 르누아르는 가난하고 어려운 환경에서 자랐습니다. 그러나 평생 매사에 긍정적으로 살아 그가 그린 그림은 모두 밝고 화사합니다. 아름다운 여인과 꽃, 과일을 즐겨 그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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