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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eleb 작가의 고백

중증 우울증 체험 담은 소설집 펴낸 작가 차현숙

글·김수정 기자 / 사진·성종윤‘프리랜서’

입력 2008.06.23 11:14:00

작가 차현숙이 자신의 체험을 담은 소설집 ‘자유로에서 길을 잃다’를 펴냈다. 그가 재혼가정에서 자란 불우한 어린시절과 부모 죽음 후 6년간 이어진 우울증을 극복하기까지의 과정을 담담하게 들려줬다.
중증 우울증 체험 담은 소설집 펴낸 작가 차현숙

‘나비, 봄을 만나다’‘오후 3시 어디에도 행복은 없다’ 등의 작품에서 가족의 해체, 비관적인 일상을 그려온 작가 차현숙(45)이 6년 만에 새 소설집 ‘자유로에서 길을 잃다’를 내놓았다. 차씨는 ‘자유로…’에서 “우울증이 찾아오면 세상의 문이 닫힌다. 사람들은 등을 돌리고 지옥의 문이 활짝 열린다”며 전보다 깊어진 슬픔을 드러냈다. 그는 “6년 전, 부모의 장례를 치른 뒤 극심한 우울증을 앓았다”며 소설 뒷머리에 “양쪽 손목을 커트 칼로 그어댄 그날, 그 밤의 고독은 평생 잊을 수 없다”는 고백을 털어놓기도 했다.
차씨를 만난 건 고(故) 박경리 선생의 안장식이 끝난 5월 중순. 차씨는 박 선생의 죽음이 여전히 믿기지 않는 듯 힘겨워했고, 슬퍼했다. 좀처럼 눈물이 마를 것 같지 않다고도 했다.
“선생님은 제게 엄마 같은 존재였어요. 엄마보다도 더 아끼고 사랑했죠. 죄의식과 사람들과의 불화, 자살충동을 이기지 못하고 강원도 원주 토지문학관으로 갔을 때 선생님은 안쓰러워하면서도 제 병에 대해 일절 묻지 않으셨어요. 그저 ‘슬픔을 문학으로 극복하라’는 말씀만 해주셨어요. 그 말이 지금껏 굉장히 큰 위로와 의지가 돼요. 사실 선생님을 떠나보내면서 6년 전 엄마를 떠나보낼 때보다 더 많은 눈물을 흘렸어요. 엄마 장례식 때 오기로 참고 감추던 눈물이 선생님에 대한 그리움을 빌려 쏟아진 것 같아요.”
차씨는 ‘엄마’를 슬픔과 원망, 연민이 뒤섞인 존재라고 표현했다. 그의 이런 생각은 불우한 어린 시절로부터 시작된다. 차씨와 그의 남동생은 재혼가정에서 태어났다. 그의 어머니는 전남편에게서 딸 셋과 아들 하나, 아버지는 전처에게서 딸 하나를 두고 있었다.
“재혼가정 아이들이라고 해서 모두 불우한 건 아니에요. 하지만 부모님의 앞선 관계가 법적으로 깔끔하게 정리되지 않은 상태에서 저와 동생이 태어났다는 게 문제죠. 말해주시지 않았지만 저는 이미 어린 시절부터 비밀스러운 가족 분위기를 감지했고, 그로 인해 좋은 성격을 갖지 못했어요. 뭔가에 쫓기듯 늘 불안했고, 알 수 없는 열등감에 휩싸였죠.”

재혼가정에서 태어나 부모 증오하고 세상 원망하며 자라
그의 이런 혼란은 초등학교에 입학하면서 더 커졌다. 학기 초 ‘가정환경조사서’에 자신의 엄마가 아닌, 아버지의 전처 이름을 써야 했던 것. 차씨는 “인생의 첫 문서를 얼룩진 상태로 완성해야 하는 점을 인정할 수 없었다. 그때부터 ‘문서공포증’을 앓았고 가정사를 수치스러워했다”고 했다. 그는 소설 ‘메시지를 남겨주세요’에서 이 부분에 대해 “엄마와 아버지가 침묵으로 봉인한 비밀은 판도라의 상자처럼 열려졌고 우리는 깊은 정신적 외상을 받았다. 수치심과 도덕적 열등감이 우리들 내면에 깊숙이 뿌리를 내렸고 그 감정들은 무의식 속에서 분노로 자리 잡았다”고 서술했다.
“철학자 프로이트도 죽을 때까지 유년 시절의 트라우마(영구적인 정신장애)를 갖고 있었대요. 자기를 방어할 수 없는 나이에 겪은 일이기에 이겨낼 수 없는 거죠. 저는 삶에 대한 의욕이 없는 아이로 자랐어요. 가난 때문에 상업고등학교에 입학했지만 죽고 싶은 생각뿐이었기에 공부를 열심히 하지 않았고, 니체나 쇼펜하우어가 쓴 철학책만 붙들고 살았어요. 그 영향으로 동국대 철학과에 들어갔죠. 대학에 들어가서도 이 세상이 살 가치가 있는가 없는가, 혹 살아야 한다면 그 이유가 무엇인가 끊임없이 묻고 답했어요.”
하지만 졸업을 앞두고 아홉 살 연상의 남편을 만난 그는 새로운 삶을 꿈꾸게 됐다고 한다. 그러나 결혼 후 혼인신고를 하기 위해 호적을 떼면서 그는 또다시 혼란에 빠졌다고. 여전히 자신이 엄마의 딸로 올라와 있지 않았던 것이다.
“자식들의 삶은 아랑곳하지 않고 자신들의 사랑만 중요시하는 부모님이 정말 원망스러웠어요. ‘이 기록은 영원히 문서로 남아 내 아이들이 결혼할 때도, 내가 죽을 때도 문제가 될 것이다’라는 생각이 들었고, 그때부터 우울증을 앓게 됐어요. 아이를 낳고 단란한 가정을 꾸리면서도 마음 한구석 부모에 대한 원망과 슬픔을 간직했죠. 그래서 부모님과 거의 왕래를 끊고 지냈어요.”

중증 우울증 체험 담은 소설집 펴낸 작가 차현숙

중증 우울증을 딛고 소설집을 발표한 차현숙씨는 “절망과 우울에 빠진 사람들에게 힘이 되고 싶다”는 바람을 내비쳤다.


그는 자신의 상황에서 벗어나기 위해 노력했고, 우연한 계기로 남편이 다니는 회사 사보에 글을 연재하면서 슬픔을 글로 담았다고 한다. 이후 지난 94년 ‘소설과 사상’에 ‘또 다른 날의 시작’을 발표하며 문단에 데뷔한 뒤 ‘나비, 봄을 만나다’(97) ‘오후 3시 어디에도 행복은 없다’(2000) 등을 펴냈다. 하지만 치유하지 못한 상처 때문인지 그의 소설은 늘 어둡고, 등장인물의 아픔이 깊었다. ‘오후 3시…’에는 이혼한 엄마 아빠를 바라보는 열세 살짜리의 시선이 섬뜩하게 표현됐고, ‘나비, 봄을…’에서는 습관성 유산으로 다섯 차례나 아이를 잃은 여성을 “살아있는 시체”로 표현했다.
“글을 쓰면서도 좀처럼 불안한 심리가 사라지지 않더라고요. 오히려 글을 쓰면서 상처를 환기시켜야 했는데, 그 과정이 무척 고통스러웠어요. 그러던 어느 날, 아버지가 돌아가셨어요. 하루라도 빨리 돌아가시기를 바랐기 때문에 아버지의 죽음을 태연하게 받아들였죠.”
하지만 그로부터 20일 뒤 치매를 앓던 어머니가 돌아가시면서 부모에 대한 원망은 차츰 연민으로 변했다고 한다.
“말씀드리지 않았는데도 엄마는 아버지가 돌아가셨다는 사실을 알아챘나봐요. 죽어서까지 아버지를 따르려 했는지 갑작스레 식음을 전폐하셨거든요. 아버지 장례로 정신없던 저는 또다시 엄마 장례를 준비해야 했고, 그 과정에서 저보다 더 깊은 상처를 가진 사람이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어요.”
장례식 때 한자리에 모인 배다른 형제들은 어머니를 전남편 곁에 묻어야 한다, 지금의 남편 곁에 묻어야 한다 등 의견이 분분했다고 한다. 그 과정에서 그는 어머니에 대해 자신보다 더 큰 원망을 갖고 있는 형제들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었고, 결국 아버지 곁에 안치된 어머니를 보면서 “아버지의 조강지처, 즉 호적상의 어머니에게 엄마 대신 사죄하고 싶었다”고 한다.
“평생 아버지를 그리워했을 텐데 죽어서까지 엄마가 아버지 곁을 차지하니 큰어머니 가슴이 얼마나 아팠겠어요. 사실 어머니 장례 후 큰어머니를 몇 번이나 찾아뵙고자 고속버스표를 끊었는데 아직까지 용기를 못 냈어요.”

지난 6년 동안 죽음으로 기울어가던 생, 이제는 삶으로 옮겨와
그는 “상처와 고통의 근원이라고 여긴 부모를 떠나보내면 우울증이 사라질 줄 알았는데 예상과 달리 중증 우울증이 찾아왔다”고 했다. 어떤 언어로도 표현할 수 없는 이상한 불안과 공격성, 그리고 허무함을 느꼈다고.
“어느 순간 부모에 대한 미움이 연민으로 바뀌더라고요. 각자 배우자와 헤어지고 새로운 가정을 이루면서 얼마나 힘들었을까, 그런 선택을 할 수밖에 없었을 때 얼마나 괴로웠을까 생각하니 죄스러웠어요. 살아계실 때 자식들에게 미안하다는 말 한번 하지 않았지만 어쩌면 미안하다는 말조차 미안해 하지 못한 게 아닐까 싶어요.”
이후 그는 자신의 모습을 보는 일이 끔찍했다고 털어놓았다. 그는 “부모님이 돌아가셨다는 사실을 인식하는 게 고통스러워 꿈속으로 도피해버렸다. 말짱한 정신으로는 견딜 수 없어 수면제를 먹고 잤지만 부모에 대한 엄청난 죄의식이 나를 짓눌렀다”고 했다. 그는 이때의 기억을 “500정의 수면제 졸민과 공황장애에 쓰이는 자낙스 한 통을 집어 삼켰다. 나흘째 되던 날 나는 깨어났다. 깨어나니 내 침대가 있는 내 방이다. 내 육체는 죽었지만 영은 아직 내 방에 있나 보다 하면서 방문을 열었다” “나는 네 번째 자살을 시도했다. 눈썹을 정리하는 칼로 오른 손목을 그었다. 동맥이 나갔다. 한밤중에 용변을 보려고 화장실 문을 연 남편이 나를 발견했다. 스물다섯 바늘을 꿰매야 했다”라며 간접적으로 작품에 담았다.
“우울증이 깊어지면 자살충동이 저절로 일어나요. 어떤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고통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자유로워지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선택하는 거죠. 그런데 우울증을 앓으면서 저는 너무나 많은 사람에게 고통을 줬어요. 우울증은 전염성이 강해서 그 얘기를 말하면 듣는 사람도 온몸이 쑤시거든요. 가급적 아이 앞에서는 엄마의 역할을 다 했지만 친구들과 남편에게는 부담스러운 존재가 됐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를 헌신적으로 간병해준 남편에게 정말 고마워요.”
이런 불안정한 정신세계 속에서도 그는 틈틈이 단편소설을 발표했다. 차씨는 “그 작품들은 지옥에서 썼다고 해도 무방할 것이다. 어떤 사건이 현실의 세계에서 일어났는지, 아니면 꿈의 세계에서 일어났는지 지금도 가려내지 못한다”고 했다. 그러는 동안 우울증 치료도 적극적으로 받았다고 한다. 정기적으로 병원에 가 약물치료와 상담치료를 받으면서 ‘의사에게만 기대지 말고 내 병을 제대로 파악하자’는 생각이 들어 3년 전에는 심리상담 2급 자격증을 취득했다고. 그리고 제어할 수 없을 만큼 고통의 나락에 떨어지는 것을 막기 위해 얼마 전 종교를 가졌다고 한다. 그는 “죽음으로 기울어가던 6년간의 나의 생은 이제 삶으로 옮겨왔다”며 생의 의지를 밝혔다.
“지금도 항우울제를 먹어요. 우울증 치료를 받고 있다는 사실을 굳이 숨기고 싶지 않아요. 대부분의 우울증 환자들이 남들에게 알려질까 두려워하며 자신의 병을 인정하지 않는데, 우울증은 고혈압이나 당뇨 같은 신체질환과 비슷하다고 생각해요. 적극적으로 치료하면 병이 깊어지기 전에 완치할 수 있어요.”
“실제 체험이 스토리의 90%를 차지한다”고 솔직하게 밝힌 그는 “우울증에 걸린 사람들이 세상과 소통할 수 있도록 돕고 싶어 용기를 냈다”고 덧붙였다. 책 표지에 그려진 반 고흐의 ‘울고 있는 노인’ 역시 그가 직접 선택한 작품. 차씨는 “이 노인처럼 울고 있거나 절망에 빠진 사람들에게 말없이 손을 내밀어주고 싶다”며 엷은 미소를 지었다.

여성동아 2008년 6월 53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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