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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기사

유인경의 Happy Talk

결혼-정성과 인내로 피우는 꽃

2008. 06. 16

결혼-정성과 인내로 피우는 꽃

강희순, 꽃-바람 연작, 복합 재료, 각각 27.3×22cm, 2008


5월엔 친지의 결혼식이 유난히 많았다. 아름다운 5월처럼 화사하고 행복한 미소를 짓는 신랑신부를 보며 백년해로하기를 바라면서도 과연 그게 축복일지 의심스러웠다. 워낙 이혼이 흔한 세상인데다 고통이나 참는 법을 모르는 젊은이들에게 무조건 참고 살라거나 애정이 식어도 슬쩍슬쩍 곁눈질해가며 적당히 살라고 충고하기 힘들기 때문이다. 앞으로 대부분 1백 세는 너끈하게 산다는데 한 남자 혹은 한 여자와만 하염없이 70~80여 년 동안 계속 살아야 하는 것이 과연 행복일까. 하지만 이사 한 번 가는 것도 귀찮은데 배우자를 자주 바꾸는 건 또 얼마나 몸과 마음이 지치는 일일까. 그래서 다들 사랑은 식어도 정으로 또는 안쓰러워 계속 살아가는 것 같다.
나는 22년 동안 합법적인(?) 결혼생활을 유지하고 있지만 그 비결을 설명하기는 힘들다. 하지만 이혼하지 않는 이유는 수십 가지 들 수 있다. 우리 부부의 공동작품인 딸아이 때문에, 둘 다 게으른 성격이라 이혼신고하러 가기 귀찮아서, 가뜩이나 없는 재산을 나누면 더 가난해질까봐, 내가 운전을 못하니까 남편이 운전하는 차를 타고 나들이 가거나 장을 보기 위해, 아직도 여전한 이혼녀에 대한 편견에 시달리기 싫어서, 내게 잘해주는 동서와 조카 등 시집 식구와의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등…. 이렇게 늘어놓다 보니 이혼을 못해서 결혼생활을 지지부진 유지하는 것 같아 서글프긴 하다. 그런데 백년해로하는 부부들의 비결은 뭘까.

행복한 결혼 생활의 비결은 상대의 모습 그대로를 인정하고 사랑하는 것
며칠 전 저녁식사 모임에서 한 선배가 약속시간에 조금 늦었다. 고모님이 몸이 아프셔서 만나보고 오느라 늦었다면서 자기 고모의 이야기를 들려줬다.
“우리 고모님이 올해 83세예요. 젊을 땐 정말 대단하셨죠. 당시로선 드물게 명문 여대를 나오시고 얼굴도 고와서 남자들에게 인기가 많았답니다. 서울대를 나온 엘리트 청년, 의사, 부잣집 아들 등이 다 청혼을 했지만 정작 고모님이 정한 신랑감은 자신이 근무하던 회사 공장에서 일하는 청년이었어요. 가난한데다 고등학교만 나왔고 체구도 자그마해서 도무지 내세울 게 없는 사람이었죠. 다만 공장 일을 하면서도 클래식 음악을 좋아하고 항상 책을 읽는 모범청년이라는 평을 들었나봅니다. 우리 할아버지를 비롯해 모든 식구들이 맹렬히 반대했지만 고모는 뜻을 굽히지 않았고 결국 결혼해서 지금까지 50여 년을 행복하게 삽니다.
고모가 데이트할 때 어린 나를 많이 데리고 다닌 기억이 나요. 그때 두 분이 서로를 바라보는 눈빛이나 지금의 눈빛이 거의 달라지지 않았어요. 그리고 적어도 내 기억으로는 고모 댁에 놀러갔을 때나 친척 모임에서 두 분이 다투는 모습도 본 적이 없어요. 항상 서로 높임말을 쓰고 남 앞에서 상대방을 자랑하고요. 고모 음식솜씨가 최고다, 고모부가 이거 만들어줬다는 식이죠.
고모 부부는 아들 내외, 손자와 함께 3대가 27평 아파트에 사는데 어찌나 정갈하고 편안한 느낌을 주는지 전혀 좁다는 생각이 들지 않아요. 고모부가 취미로 키우는 화초가 그 어떤 고급 인테리어보다 멋지게 보이고, 그릇 하나 숟가락 하나가 다 반들반들 윤이 나거든요. 무엇보다 그 가정을 아름답게 보이게 하는 것은 가족들의 화목한 표정인 것 같아요. 어떤 고급 빌라나 부잣집에 가서도 느껴보지 못한 사랑이 흐르거든요.

나도 나중에야 들었지만 고모는 처녀 시절에 위가 안 좋아 수술을 했나봅니다. 그래서 조건은 좋지만 성격이 강한 남자보다는 자신을 존중해주고 정서가 통하는 지금의 고모부를 선택했나봐요. 고모가 몸이 약하다는 걸 아는 고모부는 항상 집안일을 도와주셨고 고모가 무리하거나 스트레스 받을 일을 결코 하지 않았다고 해요. 또 고모 역시 자신이 남편보다 집안이나 학력이 좋지만 절대 잘난 척하거나 무시하지 않고 가정의 평화를 위해 헌신하셨고요.
얼마 전이 고모 생신이었는데 함께 모였던 어르신들이 다들 그러시더군요. 몸이 약한 고모가 팔순 넘도록 장수하는 건 모두 착하고 부드러운 남자인 고모부를 만난 덕분이라고요. 지금도 두 분은 효성스러운 아들 내외와 함께 세월을 초월한 듯한 노년을 함께 보내세요. 오늘도 고모님이 얼마 전부터 거동이 좀 불편해지셨다기에 찾아뵈었는데 고모부가 ‘괜찮아요. 괜찮아. 좋아질 거예요’라고 다정하게 말씀하시고 걷는 것부터 자리에 앉는 것까지 아기처럼 잘 돌봐주셔서 콧등이 시큰했습니다.”
그분의 말씀을 들으며 결혼에 대해 다시 생각해봤다. 누군가 말했듯 이 세상에 잘한 결혼은 없다. 오로지 잘되어가는 결혼과 그렇지 않은 결혼만 있다. 3캐럿 다이아몬드 반지를 받았다고 해서, 신랑감이 억대 연봉의 전문직이고 신부가 천하일색이라고해서 ‘잘한’ 결혼이라고 할 수는 없다. 그리고 잘되어가는 결혼은 혼자만의 노력과 사랑으로 가능한 것도 아니다. 꽃밭에 꽃을 키우듯 끝없는 관심과 정성, 그리고 인내가 필요하다. 서로 감성과 이상이 같아서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사랑하기 때문에 각자 다른 감성과 이성을 서로 존중해주면서 모나고 각진 성격들을 둥글게둥글게 만들어가는 과정이 결혼 아닐까.
전문가들은 상대를 이해하려고 하지 말고 그저 그대로 인정해주라고 한다. 배우자는 이해의 대상이 아니라 사랑의 대상이라는 것. “저 인간은 왜 남자가 쫀쫀하게 매일 잔소리만 늘어놓을까. 왜 조그만 일도 그냥 넘어가지 못할까.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가 안 돼”라며 이해하려 노력을 해봐야 결론이 나지 않는다고 한다. 그저 “저 남자는 그릇이 작고 잔소리하는 게 취미야. 나까지 덩달아 잔소리를 하면 온 집안이 시끄러워지니 내가 참자. 그 잔소리는 한쪽 귀로 듣고 한쪽 귀로 흘려야지”라고 나를 납득시키는 것이 편하다.

상대에게 화가 날 때 잠시 혼자만의 시간 갖기
미국에서 70년을 해로한 90대 노부부의 기사를 본 적이 있다. 그들은 평생을 함께한 비결을 화났을 때는 잠시 상대를 떠나 있는 거라고 했다. 한 사람이 상대에게 화가 났을 때, 그 자리에서 상대에게 화를 내거나 비난을 하는 대신에 잠시 옆방이건 화장실이건 자리를 피해 있다가 자신의 마음을 가다듬은 후 돌아왔다고 한다. 그럼 자신의 격한 감정도 누그러들고, 상대도 자신이 무얼 잘못했는지 생각할 여유를 가져 다시 얼굴을 맞댔을 때 싸우지 않을 수 있었다고 한다. 사실 부부에게 다툼이 생기는 건 엄청난 사건 때문이 아니다. 아주 사소한 일, 혹은 작은 오해 때문에 화를 내고 그게 눈덩이처럼 커져 때론 이혼에 이르게 된다.
어쩌면 우리 부부가 지금까지 무사히 버텨온 비결 역시 사랑이 깊어서가 아니라 서로 얼굴 마주 보고 화낼 시간이 없어서인 것 같다. 또 서로 건망증이 심해 왜 화가 났는지도 잘 기억나지 않아 화산 폭발이 일어나지 않았나보다. 때론 모자란 성품이 인생을 무사히 살아가는 데 도움이 되기도 한다.

결혼-정성과 인내로 피우는 꽃

유인경씨는…
경향신문사에서 선임 기자로 일하며 인터뷰 섹션을 맡아 흥미로운 사람들을 만나는 즐거움을 만끽하고 있다. 직장 여성에 관한 책을 준비 중인데 성공이나 행복을 위한 가이드북이 아니라 웃으며 타산지석으로 삼을 수 있는 실수담이나 실패담을 담을 예정이다. 그의 홈페이지 (www.soodasooda.com)에 가면 그가 쓴 칼럼과 기사를 읽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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