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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편소설 ‘스타일’로 1억원 고료 세계문학상 받은 작가 백영옥

글·김수정 기자 / 사진·조영철 기자

입력 2008.05.23 15:11:00

패션잡지 에디터 출신으로 일간지에 트렌드 칼럼을 기고하는 작가 백영옥이 첫 장편소설 ‘스타일’로 제4회 세계문학상을 수상했다. “고시원에 사는 사람뿐 아니라 호텔 스위트룸에 사는 사람에게도 고독과 비애가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다”는 그를 만났다.
장편소설 ‘스타일’로 1억원 고료 세계문학상 받은 작가 백영옥

보통 166센티미터에 56킬로그램의 여자는 비만해 보이지는 않는다. 하지만 중요한 건 56킬로그램은 결코 날씬해 보이지도 않는다는 사실이다. 피트니스 클럽에서 ‘온 스타일’ 채널을 보며 사이클 바퀴를 돌리거나, 스텝퍼 위에서 절대로 내려오지 않는 여자들, 특히 러닝 머신 위에서 생수를 마시며 비지땀을 흘리는 여자들은 절대로 뚱뚱하지 않다. 그들은 비만 극복을 위해 피트니스 클럽에 오는 게 아니다. 그들의 목적은 하나다.
지금보다 조금 더 마르기.
한마디로 말라비틀어지기이다. -‘스타일’ 중에서

제4회 세계문학상 심사위원들은 젊은 세대들이 열망하는 다이어트·패션·음식 등에 관한 이야기를 거침없이 쏟아낸 응모작 ‘스타일’을 보며 감탄했다고 한다. 이 시대의 감수성을 너무나도 ‘쿨하게’ 표현했기 때문.
백영옥씨(34)는 2006년 단편 ‘고양이 샨티’로 문학동네 신인상을 받으며 등단한 이후 한 일간지에 문화칼럼 ‘트렌드샷’을 3년째 연재하며 많은 독자 팬을 거느리고 있는 젊은 작가. 지난해에는 네티즌의 말장난을 모티프로 한 단편 ‘이게 다 노무현 때문이다’와 칼럼을 엮은 산문집 ‘마놀로 블라닉 신고 산책하기’를 발표해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1억원의 상금을 받는 날인 지난 4월 중순 그를 만났다. 수상 소감부터 묻자 그는 “거액의 상금을 받아 기쁘지만 그보다 작가로서의 존재를 알렸다는 게 더 행복하다. 이 소설을 읽고 ‘가볍다, 깊이가 없다’고 생각하는 독자도 있겠지만 이 세상에는 각양각색의 사람이 산다는 점을 알리고 싶었다”고 대답했다.
“한국 문단에는 고시원생, 백수 같은 ‘88만원 세대(88만~119만원의 임금을 받는 비정규직 노동자. 세대 간의 불균형으로 인한 오늘날의 불안한 현실을 상징)’에 대한 소설이 많은 반면 20~30대의 잘나가는 커리어우먼의 삶을 그린 소설은 드물어요. 저는 이 작품을 통해 고시원에 사는 사람뿐 아니라 호텔 스위트룸에 사는 사람에게도 고독과 비애가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어요.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좋은 교육과 혜택을 받고 자란 상류 계층의 사람도 괴로움과 외로움을 느끼며 살 테니까요.”
그는 어릴 때부터 ‘독서광’이었다고 한다. 교과서에 수록된 작품뿐 아니라 하이틴로맨스, SF, 추리물, 순정만화까지 닥치는 대로 읽어 단순한 ‘문학소녀’라고 부르기가 힘들 정도였다고.
“도서관에서 책을 읽는 게 유일한 낙이었어요. 많게는 하루에 20~30권을 먹어치우듯이 읽었으니까요. 그러던 어느 날 하이틴로맨스 소설을 읽다가 ‘내가 이보다 더 재미있게 쓸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막연하게나마 작가의 꿈을 갖고 있던 터라 별다른 고민 없이 소설을 썼죠. 그게 중학교 3학년 때 일이에요. 부끄럽지만 엄연한 제 첫 소설이죠. 그런데 친구들에게 그 소설이 얼마나 인기가 있었는지 서로 빌려가 읽겠다고 해 노트가 찢어질 정도였어요. 나중에는 이어질 내용을 기다리지 못해 얘기해달라고 조르는 팬도 생겼고요. 점심시간이면 친구들을 불러 모아놓고 이야기를 지어냈는데, 그 끝을 알 수 없을 정도로 소재가 무궁무진했어요.”
고등학교를 졸업한 그는 “작가는 절대 안 된다”는 부모의 반대를 무릅쓰고 명지대 문예창작학과에 입학했다. 하지만 작가가 되는 일은 쉽지 않았다. 신춘문예에 번번이 낙방한 것.
“밤낮으로 습작했지만 등단은 멀게만 느껴졌어요. 작품을 응모한 신문사의 신춘문예에 낙방하면 속상한 마음에 굵은 글씨로 ‘신문사절’이라고 써 대문에 붙였죠. 그 일이 매년 계속되니까 나중에는 더 이상 구독할 신문이 없더라고요(웃음).”
대학 졸업 후 “밥벌이를 해야겠다”고 결심한 그는 “당장 작가가 되지 않더라도 글읽기, 글쓰기와 관련된 일을 한다면 기회가 올 것이다”라는 생각에 카피라이터, 인터넷 서점의 북 에디터 등으로 일했다고 한다.
“하루에 수십 권의 책을 읽고 서평을 쓰면서도 힘든 줄 몰랐어요. 책은 꼭 갓 구워낸 빵처럼 따뜻하고 바삭거렸거든요. 그러다가 우연한 기회에 한 잡지사의 프리랜서로 일을 시작했고 나중에는 ‘하퍼스바자’에 입사해 피처 에디터(패션·뷰티를 제외한 분야를 다루는 기자)로 일했죠. 그즈음 대학원에 들어가 낮에는 취재원과 부딪치면서 일하고 밤에는 원고지와 씨름했어요.”

북 에디터, 패션지 기자로 일하면서 작가의 기반 다져
장편소설 ‘스타일’로 1억원 고료 세계문학상 받은 작가 백영옥

백영옥 작가는 “현실에 동떨어지지 않는 소설을 쓰면서 독자들과 소통하는 작가가 되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하지만 톱스타와 인터뷰하기 위해 반년 이상 영화사 홍보부와 매니저를 설득하고, 많게는 하루 4백여 통 가까이 전화통화를 하면서 조금씩 지쳐갔다고. 때마침 2006년 ‘문학동네’에 단편소설 ‘고양이 샨티’가 당선됐고 그는 글쓰기에 더 많은 시간을 투자하고 싶어 기자일을 그만뒀다고 한다.
그런데 이때의 경험으로 그는 큰 수확을 얻었다. 패션지 기자로 일한 경험을 살린 소설이 바로 자신의 첫 장편소설이자 세계문학상 수상작인 ‘스타일’인 것. ‘스타일’은 31세 8년 차 패션지 여기자를 주인공으로 패션잡지 제작자들의 일과 사랑을 펼친 작품. 정체를 알 수 없는 요리 칼럼니스트 ‘닥터레스토랑’과 인터뷰하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내용을 바탕으로, 까다로운 취재원과의 만남, ‘머스트 해브 아이템’ ‘잇 백’ 같은 일상과 전혀 상관없는 듯한 외국어를 쓰면서 드는 회의감, 바쁜 와중에도 꼭 해야 할 것 같은 연애 등이 담겨 있다.
“극중 주인공인 이서정은 저를 모델로 삼아 만든 인물이에요. 그래서 실제 제가 경험한 일을 가공해 에피소드로 활용했죠. 이를테면 스키니진을 입기 위해 다이어트 보조제를 먹고 기름방귀를 뀐 부분은 비만클리닉 취재를 위해 1주일간 약을 복용했던 기억을 더듬어 만들었어요. 원고 마감 직전 ‘베토벤’을 ‘베트맨’으로 써 벌어진 웃지 못할 사건도 제 경험담이고요.”
그는 17일 만에 ‘스타일’의 초고를 완성했다고 한다. 소설은 사람들이 북적이는 카페나 도서관은 물론이고 버스나 지하철 등 다양한 장소에서 집필됐는데, 이는 “특정한 장소에서만 써야 한다는 강박관념을 만들지 않기 위해서”였다고.
‘스타일’이라는 감각적인 제목만큼이나 책 앞면에 실린 그의 사진은 세련된 분위기가 난다. 그런데 뾰로통하면서도 도도한 표정이 잘 포착된 이 사진 옆에 조그맣게 적힌 ‘허성민’이라는 이름이 눈에 띄었다. “‘외롭다’는 말보단 ‘심심해’란 말을, ‘많이 보고 싶다’는 말보단 ‘아주 조금 보고 싶다’는 말을 좋아하는 H에게 나의 첫 소설을 보낸다”는 ‘작가의 말’이 떠올라 “이분이 혹시 H냐”고 묻자 그는 “그렇다. 포토그래퍼 출신인 일곱 살 연상의 남편”이라며 수줍게 미소 지었다.
“남편이 없었다면 진작 작가의 길을 포기했을지도 몰라요. 계속 신춘문예에 떨어지면서 ‘이 길이 내 길이 아닌가 보다’ 하고 우울해하면 ‘힘을 내라. 80세 이전에만 등단하면 되지 않겠냐’고 격려해줬거든요.”
그는 “나보다 더 자유분방한 사고방식을 가진 사람”이라고 남편을 소개했다. 그는 “갑작스레 사진을 공부하고 싶어 무작정 다니던 대학교를 그만두고 중앙대 사진학과에 들어갔는데, 시부모님은 남편이 그 대학 2학년이 될 때까지 예전 대학에 다니는 줄 아셨다더라”며 “유연한 생각을 가졌다고 자부하는 나도 그 앞에서는 ‘범생이’가 된다”고 덧붙였다.
4년 열애 끝에 지난 2002년 결혼한 두 사람에게는 아직 아이가 없다. 결혼할 때부터 서로가 아이를 원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그는 벌써 차기작을 구상하고 있다고 한다. 글쓰기에 앞서 이따금씩 아무 시내버스를 타고 종점까지 가보거나 3~4시간씩 쉬지 않고 걷기도 한다고.
“‘스타일’은 제 작가인생의 애피타이저에 불과해요. 앞으로도 다루고 싶은 글감이 참 많거든요. 유럽여행에서 만난 세계 각국 사람들의 사연, 돈에 자신의 모든 것을 거는 젊은이의 얘기도 쓰고 싶어요. ‘스타일’을 통해 ‘대중작가’라는 평판을 얻지 않겠냐고 우려하는 분들이 있지만 개의치 않아요. 한국 문단에도 일본의 나오키상(코미디나 로맨스 같은 대중지향적인 소설을 대상으로 주는 문학상) 같은 문학상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니까요. 앞으로도 저는 현실에 동떨어지지 않는 소설을 쓰면서 독자들과 소통하는 작가가 되고 싶어요.”
그와 헤어진 다음 날 ‘스타일’이 베스트셀러에 진입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가 앞으로도 재기발랄하고 생기 넘치는 작품으로 독자에게 즐거움을 주는 작가로 남길 바란다.

여성동아 2008년 5월 53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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