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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PACE KOREA

한국 최초 우주인 이소연

“남다른 성장과정 & 12일 우주 생활 생생 체험”

글·김민지‘동아일보 출판국 기자’ / 사진·동아일보 사진DB파트, 한국항공우주연구원, ‘나는 대한민국 우주인이다’(동아사이언스) 제공

2008. 05. 19

한국 최초 우주인 이소연

“이제까지 지켜봐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잘 돌아왔어요. 우주에서 있었던 일은 모두 다 멋진 경험이었습니다.”
한국 최초 우주인 이소연씨(30)의 지구 귀환 소감은 짧지만 인상적이었다. 지난 4월8일 우주로 떠나 12일간의 임무를 마치고 돌아온 그는 다소 지친 듯 보였지만 얼굴 가득 환한 미소를 지었다.
카자흐스탄 오르스크 지역에 착륙하며 다시 지구에 발을 디딘 이씨는 일단 러시아로 이동해 모스크바 근교 가가린 우주인훈련센터에서 정밀 의학검진을 받은 뒤 4월 말쯤 귀국할 예정. 이후에는 과학기술 홍보대사 자격으로 우리나라에 우주에 대해 알리고, 한국항공우주연구원 선임연구원 신분으로 유인 우주 프로그램에 관한 연구활동을 펼치게 된다. 그는 “한국에 돌아가면 우주에서의 소중한 경험을 알리고 실험 결과를 공유하기 위해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말했다.
“우주선 공간은 좁았지만, 날 수 있었다는 사실 등 모든 것이 환상적이었어요. 지금 제가 날 수 없다는 것이 혼란스러울 정도로요(웃음).”

우주 멀미로 고생하고, 화장실 문제로 힘들었지만 지구 바라보며 힘내
이씨는 국제우주정거장(ISS) 즈베즈다 모듈에서 9박10일간 머무르며 18가지 과학실험과 우주만찬·우주강연 등으로 바쁜 일과를 보냈다. 이씨가 생활하던 즈베즈다는 길이 13.1m, 최대지름 4.3m 규모의 원통형 주거시설. 러시아어로 ‘별’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별이라는 예쁜 이름과 달리 ISS에서의 생활은 극기훈련에 가깝다고 이씨는 회상했다. 그는 “무중력 상태에서 둥둥 떠다니는 ISS의 내부는 위아래가 따로 없다”며 “그냥 다니다가도 모서리 같은 곳에 부딪혀 다치기도 한다. 그래서 잘 때는 벽에 벨트로 고정한 개인 침낭에 들어가 잠을 자야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것보다 어려웠던 것은 우주에서는 낮과 밤을 구분하기 어려워 잠을 청하기 쉽지 않다는 점이었죠. ISS는 90분마다 지구를 한 바퀴씩 돌기 때문에 24시간 동안 해가 뜨고 지는 광경을 16번이나 볼 수 있었어요. 이렇게 자주 ‘밤낮’이 바뀌니 신체리듬이 깨져 ‘우주인은 무조건 8시간은 자야 한다’는 규정도 있었죠.”
지구에서 350km 떨어진 우주공간 ‘별’에 사는 이씨의 생활은 지구에서 늘 하는 평범한 일상까지도 모두 과학실험 대상이 됐다.
“무중력 공간이기 때문에 이 닦으려고 칫솔에 물을 묻히면 동그란 물방울이 돼 떠다녔어요. 그게 당연하다는 것을 알면서도 신기하더라고요. 돌아와서 들으니 지구에서 본 사람들도 물방울이 떠다니는 실험이 가장 흥미로웠대요. 특히 제가 공중에 떠다니는 물방울을 손 안 대고 먹는 게 신기했다네요(웃음). 전 물방울 속에 공기방울을 만들어 무궁화꽃을 넣었을 때가 가장 재미있었어요. 물방울 안의 꽃이 정말 예뻐서 저도 모르게 ‘무궁화 노래’를 흥얼거렸죠.”
그는 또 무중력 상태에서 얼굴 변화를 알기 위해 매일 6장의 ‘셀카’를 찍는 실험도 진행했다. 무중력 상태에서는 상체 쪽으로 피가 쏠려 얼굴이 붓고 안구가 다소 돌출되는 현상인 ‘우주 안면부종’이 생기기 때문.
“사진을 찍어 비교해보니까 지상에 있을 때보다 얼굴이 많이 부었더라고요. 팔, 다리는 많이 가늘어졌고요. 그런 변화 때문에 두통도 있었어요.”

한국 최초 우주인 이소연

<b>1</b> 러시아 전문의학위원회의 중력가속도 테스트를 받고 있는 이소연씨. <b>2</b> 이씨와 고산씨가 우주복 이론 수업 후 기념촬영을 했다. <b>3</b> 전함 위에 만든 큰 수조에서 해양 생존 훈련을 받고 있는 이씨. <b>4</b> 우주에서 할 실험장치를 미리 점검하고 있는 이씨. <b>5</b> 국제우주정거장(ISS)에서 피겨요정 김연아와 화상대화하는 이씨.


그러나 이씨는 얼굴이 붓는 아픔보다도 ‘우주 멀미’와 ‘화장실 문제’가 더 힘들었다고 한다.
“훈련기간 중에도 유독 멀미에 민감했어요. 바다 위에서 진행되는 소유스 귀환모듈 탈출 훈련을 받을 때는 약간의 파도에도 심하게 멀미했고요. 그래도 우주에서 멀미를 할 때는 아름다운 지구의 모습을 바라볼 수 있어 절로 힘이 나더라고요.”
많은 사람이 우주생활 중 궁금해했던 화장실 문제도 쉽지 않았다고 한다. ISS 안 화장실을 이용할 때는 발판에 발과 허벅지를 끈으로 고정한 뒤 볼일을 봐야 했기 때문. 서서 일을 보면 진공청소기처럼 생긴 기구가 배설물을 100% 흡입했다고 한다. 이씨는 “사람이 살아가는 데 배설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우주에서 비로소 깨닫게 됐다”며 활짝 웃었다.
이씨는 우주선에서 보낸 열흘 가운데 가장 기억에 남는 날로 4월12일, ‘우주인의 날’을 꼽았다. 우주인의 날은 1961년 러시아 우주인 유리 가가린을 실은 ‘보스토크 1호’가 108분 동안 지구 궤도를 도는 비행을 무사히 마치고 카자흐스탄 초원에 도착한 것을 기념하는 날. 이 날 이씨를 포함해 소유스호에 타고 있던 6명의 우주인은 ISS 식당에 모여 이씨가 싸온 ‘한국 음식’을 놓고 파티를 즐겼다고 한다.
“라면·김치·고추장의 인기가 아주 좋았어요. 외국 우주인 친구들 말이 김치와 고추장이 맵긴 해도 입맛을 돋워준대요(웃음).”
이씨는 ISS에서 체류하는 동안 이명박 대통령, 피겨 요정 김연아, 어머니 정금순씨, 그 외 일반인들과 네 차례 화상 교신도 했다. 그중 가장 인상적이었던 것은 강원도 양양군에 사는 세 자매와의 대화였다고 한다.
“그 아이들이 우주인을 꿈꾼다고 해서 좋은 말을 들려주고 싶었어요. 제가 러시아 우주인한테 받은 초콜릿 겉봉에 ‘꿈의 리스트를 만들어라(List your dream)’라는 말이 있었는데, 세 자매에게 바로 그 말을 해줬죠. 꿈의 리스트를 만들어 그 꿈이 이루어지는 것을 확인하라고요. 더불어 그 꿈이 다 이뤄진 뒤에도 삶이 끝나는 건 아니라고 말하기도 했죠. 그것은 제 자신에게 하는 말과 같았어요. 우주인이 되고 싶은 꿈을 이뤘지만 이제 이 꿈을 넘어선 더 큰 꿈을 꿔야 하니까요.”
그는 우주로 떠나기 전 한 영국 기자가 어떤 우주인이 될 거냐고 물었을 때 그는 “이웃집 여자(woman next door)처럼 편안한 느낌의 우주인이 되고 싶다”고 답한 적이 있다. 이씨는 우주공간에서 많은 사람과 교신하고 자신의 일상을 보여주며 정말 ‘이웃에 사는 우주인’이 된 것 같았다고 말했다.
“정말 멋진 말을 많이 하고 싶었는데 잘 안되더라고요. 막상 올라와보니까 저 역시 광활한 우주세계를 바라보며 감탄하는 평범한 한 사람일 뿐이었어요. 지구를 바라보면 정말 파랗고 평화롭다는 생각밖에 안 들었어요. 지구 안에서 아등바등거리며 힘들게 살아왔던 생활이 뉘우쳐졌죠. 이제 우주에서 얻은 깨달음을 바탕으로 사람들을 도우며 살고 싶어요.”

긍정적인 성격과 다양한 활동이 우주인의 꿈 이루게 만들어
한국 최초 우주인 이소연

이씨(가운데)의 고교 시절 모습이 담긴 광주과학고 졸업앨범 사진. 이씨가 우주로 나가기 전 어머니 정금순씨와 인사를 나누는 모습. 빡빡한 훈련 스케줄 속에서도 이씨는 다른 나라 우주인들과 함께 송편을 빚어 먹는 등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위에서부터 차례로)


어린 시절부터 ‘우주선을 탄 미모의 과학박사’가 되는 게 꿈이었던 이씨는 그 꿈을 이루기 위해 지금껏 열심히 달려왔다. 그의 태명은 샛별. 이씨의 어머니 정금순씨(57)는 “태어나기 전부터 별 이름으로 불려서 그런지 소연이는 일찍부터 우주에 관심이 많았다. 초등학교 때 미술시간이면 꼭 은하철도 999나 우주비행사, 우주에서 온 여자 박사 같은 우주와 관련된 것을 그려 상을 탔을 정도”라고 말했다.
광주과학고를 졸업하고 한국과학기술원(KAIST)에서 기계공학을 전공한 그는 2006년 우주인 선발 공고를 보고 어릴 적 꿈을 이루기 위해 도전했다고 한다. 그는 우주인 선발대회 당시, 한국항공우주연구원 관계자 앞에서 자신의 인생 슬로건을 ‘Crazy, Sexy, Cool’이라고 소개하면서 “무언가에 미쳐서 열심히 하는 것을 좋아하고, 여자로 태어났기 때문에 섹시함에 대해 욕심도 있다. 또, 어떤 일을 하더라도 주변 사람을 즐겁게 해주고 싶다”고 말했다.
1만8천대 1의 경쟁률을 뚫고 고산씨와 함께 우주인 후보로 뽑힌 이씨는 이때 이미 준비된 우주인이었다. 태권도 공인 3단에 조깅, 수영, 마라톤을 취미로 즐기는 그는 대학 재학시절 농구동아리 매니저를 했을 정도의 운동마니아. 우주인 선발 체력 테스트에서 여성 참가자들 중 팔굽혀펴기 최고 기록(36개)을 세웠을 만큼 남성 못지않은 체력을 갖고 있다. 그리고 디자인에 관심이 많아 화장품 회사에서 제품 품평, 용기 디자인 및 브랜드 이미지 관련 자문을 하는 스타일리스트로 활동한 적도 있다. 그는 “음악에도 관심이 많아 대학시절 밴드 보컬리스트로 활동했다”며 “이런 다양한 활동이 우주인의 꿈과 자질을 키우는 데 힘이 됐다”고 말했다.
예비우주인으로 선정돼 러시아에서 1년에 걸쳐 우주 훈련을 받고 있던 이씨는 발사를 한 달 앞둔 상태에서 갑자기 우주선 탑승자가 됐다. 그런데도 그가 혼란 없이 자신의 임무를 수행할 수 있었던 건 이처럼 다양한 활동을 통해 쌓은 자신감과 당당함 덕분이었다고.
“우주인이 됐을 때 갑작스럽게 통보된 새 임무에 놀랐지만 그런 상황에 대처하는 것 또한 우주인이 갖춰야 할 부분이라고 생각했어요. 언제나 제 목표는 탑승우주인이나 예비우주인이 아닌 ‘최고의 우주인’이 되는 것이었기 때문에 많은 사람의 지지와 응원을 생각하면서 새롭게 주어진 임무에 최선을 다하자고 다짐했죠.”
이씨는 한국에서나 러시아에서나 그를 만난 사람들에게 “배려심 깊고 친화력이 많은 사람”이란 평을 듣는다. 그는 예비우주인으로 선정된 뒤에도 우주인 후보들과 연락할 수 있는 ‘우주로245’ 카페에 글을 올리며 자신의 근황을 털어놓았다.
“우주인이 되겠다고 함께 준비해온 사람들과의 인연이 소중해 러시아에 있을 때도 항상 연락을 취했어요. 그들이 가장 힘든 훈련을 물었는데, 전 겨울철 지상 생존훈련을 꼽았죠. 2박 3일간 러시아 우주인들과 각각 팀을 이뤄 생존 싸움을 벌이며, 나무를 베 거처를 마련하고 비스킷으로 허기를 달래며 영하 15℃에 이르는 혹한과 맞섰죠. 그 때 고작 물 6ℓ와 이틀치 식량, 무전기, 신호탄만이 주어졌는데, 그 힘든 시기에 함께 우주인이 되기 위해 준비하던 소중한 사람들을 계속 떠올렸죠.”
그는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건 사람을 만나는 일이고, 내게 도움을 준 사람에게 고마움을 표시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라며 “러시아에서 훈련받는 동안 송편·콩국수 등 한국음식을 직접 마련해 외국 우주인 친구들과 나눠먹었던 일은 가장 소중한 추억이 됐다”고 말했다.
“러시아 가가린 우주센터에서 도움받은 분들에게 ‘소주’도 선물했어요. 알고 보니 ‘소주’가 러시아어로 ‘생명유지장치’의 약자더군요. 한국의 생명유지장치를 많이 선물해드린 거죠(웃음).”
지상으로 돌아왔지만 아직도 우주에서 내려다본 한반도가 눈앞에 아른거린다는 이소연씨. 그는 “우주에서 아름다운 한반도를 한눈에 바라볼 수 있어 행복했다”고 말했다.
“우주에서 체험한 멋진 경험을 많은 사람과 함께 나눌 수 있도록 노력하는 것이 앞으로의 제 임무라고 생각해요. 한 번 더 지켜봐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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