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에게 영어 단어를 외우게 하지 마세요. 억지로 외운 단어는 다 잊어버립니다. 꿈이 영문학자가 아니면, 문법 공부도 시킬 필요 없어요.”
단어 암기나 문법 공부를 안 해도 영어를 잘할 수 있다고 주장하는 정섭씨(41). 다섯 살 터울의 두 남매를 둔 평범한 직장인이던 그가 ‘영어교육법 전도사’가 된 건 큰 딸의 영어 숙제를 도와주다가 ‘비장의 교육법’을 깨쳤기 때문이다. 큰딸 혜린이가 초등학교 5학년이던 3년 전, 정씨는 아이의 영어 숙제를 도와주다가 “이렇게 영어를 가르쳐서는 안 된다”는 깨달음을 얻었다고 한다.
“아이가 꽤 유명한 영어학원을 다녔는데, 매일 학원에 다녀오면 숙제를 하느라 쩔쩔맸어요. 아내는 ‘영어가 재미없다’는 아이를 다그쳐 공부시키느라 골머리를 앓았고요. 그 모습을 보면서 제가 ‘혜린이 영어공부는 내가 맡겠다’고 선언했죠.”
그런데 막상 아이의 영어학원 숙제를 도와주려고 살펴보다 그는 ‘이게 초등학교 영어 맞나?’ 싶을 정도로 어려운 내용에 깜짝 놀랐다고 한다. 단어, 영작, 듣기, 통문장 외우기(독해)에 문법까지 교재만 다섯 권이었고, 매일 내주는 숙제는 정씨가 대신 해줘도 밤 12시 전에 끝내기 어려울 만큼 많은 양이었다고.
“이걸 어떻게 아이가 다 하냐고 학원에 전화했더니, 그렇게 잔뜩 내줘야 엄마들이 좋아한다는 거예요. 이래서야 아이가 영어를 배우기도 전에 질리겠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정씨는 특히 학원에서 하루 30개씩 단어를 외우도록 시키는 게 아이에게 보통 스트레스가 아니라는 점을 알게 됐다고 한다. 집에서 열심히 외우고 가도 학원에 가면 잊기 일쑤라 영어에 대한 자신감까지 잃는 것 같았다고.
“어떻게 하면 좋을까 하며 좀 알아보니 교육부에서 초등학생이 필수적으로 외워야 할 영어 단어 8백 개를 지정해놓았더라고요. 그걸 기본으로 해서 주요 단어의 어근을 정리하고, 아이에게 어근을 바탕으로 단어를 암기하는 법을 설명해줬어요. 예를 들어 ‘port(항구)’라는 단어를 기본으로 airport(공항), porter(항구에서 일하는 사람=짐꾼), import(in+port=항구로 들어오니까 수입), export(ex+port=항구 밖으로 나가니까 수출) 이렇게 단어를 외우게 한 거죠.”
“어근 정리법으로 단어 암기하고, 반복적인 읽기 연습으로 말문 트이게 하세요”
혜린이는 이 방법으로 한결 재미있게 단어를 외우기 시작하며 영어 실력이 부쩍 늘었다고 한다. 정씨는 이 경험을 토대로 ‘아빠, 영단어 원리가 보여요’라는 책을 펴냈고, 마침 그 무렵 그가 다니던 회사가 문을 닫자 아예 영어교육법을 제대로 완성하기로 마음먹었다. 다른 회사에 취업하는 대신 지금껏 출판된 영어교육 서적을 찾아 읽은 것. 그중 두 권의 책이 정씨의 마음을 사로잡았다고 한다.
“‘정철 영어’로 유명한 정철 선생님과 한국외국어대 통·번역대학원의 최정화 교수님이 쓴 책이었어요. 우리나라에서 내로라하는 영어 전문가인 이 두 분이 하시는 말씀이 똑같습니다. 영어는 말이니까 눈으로 읽지 말고 매일 큰 소리로 읽으라는 거였죠. 이 방법이 정말 효과가 있나 검증해보려고 아이를 가르치기 전 제가 먼저 실험을 해봤습니다.”
초등학생 딸에게 직접 영어를 가르치기 위해 각종 교육법을 연구한 정섭씨는 “가장 효과적인 영어공부법은 책을 반복해 소리내 읽는 것”이라고 말했다.
정씨는 정철씨가 제안한 방법대로 “10m 앞에 있는 사람에게 들릴 정도로 큰 목소리로 박자 맞춰 영어책 읽기”를 시작했다고 한다. 얼마나 열심히 큰 소리로 영어책을 읽었는지 목이 아파 날마다 1.5ℓ짜리 물 두 병씩을 비워야 했다고. 지루하지 않은 책을 골라야 한다는 말에 영어 성경을 읽기 시작했는데, 두 달을 그렇게 반복하고 나자 “영어가 이런 것이구나”라는 감각이 몸으로 느껴졌다고 한다.
“두 달이 지난 뒤 어느 날 교회 목사님이 영어 설교를 해달라고 하시더라고요. 과연 내가 쓸 수 있을까 미심쩍어하며 책상에 앉아 영어 문장을 쓰기 시작했는데, 놀랍게도 앉은 자리에서 A4 용지 10장이 채워지는 겁니다. 저도 모르는 새 제 안에 영어가 들어와 있었던 거예요.”
정씨는 “읽기 연습을 반복적으로 하면 말이 입에서 나오기 시작하고 듣기와 쓰기도 저절로 된다”며 “자기가 할 줄 아는 말을 못 알아듣는 사람은 없고, 입에서 나오는 말을 그대로 쓰면 그게 작문이 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자신의 영어교육법에 확신을 얻게 된 그는 혜린이가 초등학교 6학년이 됐을 때 학원을 그만두게 하고 직접 영어를 가르치기 시작했다고 한다. 그가 사용한 방법은 매일 중학교 영어 교과서를 읽도록 하는 것. 혜린이는 6학년 겨울방학 내내 중학교 1학년 교과서를 읽었고, 1학년이 된 지금은 2학년 교과서를 큰 소리로 읽고 있다고 한다. 문법 공부는 따로 하지 않는다고.
“제가 중학교 교과서를 분석해보니 영어를 말하고 쓰는 데 꼭 필요한 문법 10개 가운데 7개는 2학년 때 나오더라고요. 문법은 교과서 읽기를 통해 말하기가 된 후 문법에 대한 거부감 없이 쉽게 이해할 수 있을 때 천천히 가르칠 생각입니다.”
정씨에게 영어를 배운 뒤부터 혜린이는 영어에 자신감을 갖게 되고, 또래에 비해 정확한 발음으로 말하게 됐다고 한다. 회화·작문·독해 등을 따로 배우지 않지만, 영어로 일기를 쓰고 책을 읽는 데 아무 어려움이 없다고. 이런 경험을 바탕으로 영어교육에 자신을 갖게 된 정씨는 자신의 영어교육법을 책으로 펴내는 전업 작가가 됐고, 최근엔 전치사 암기 노하우를 소개한 ‘영어 잘하는 아이는 전치사부터 배운다’를 펴냈다.
정씨는 영어를 잘하기 위해 필요한 두 가지 요소로 ‘영어에 대한 열정’과 ‘큰 소리로 박자 맞춰 읽기’를 꼽았다.
“저는 평범한 회사원이었지만, 영어공부가 필요하다고 생각했을 때 최선을 다해 방법을 찾았어요. 그러다 ‘소리내 읽기’에 대한 책을 읽은 뒤엔 흥분해서 ‘큰 소리로 읽기만 하면 영어가 된다고? 그럼 한번 해보자’고 생각하고 열정적으로 읽기에 매달렸죠. 그 결과 지금은 영어 전문가가 됐고요. 아이들이 어릴 때부터 단어와 문법 공부에 질리면 ‘영어는 재미없는 것’이라는 생각을 갖게 되고, 영어에 대한 열정을 잃게 돼요.”
그래서 정씨의 영어교육법은 간단명료하다.
“큰 소리로 박자와 리듬에 맞춰 영어책을 읽게 하라. 매일 매일 꾸준히, 습관이 되어 몸에 밸 때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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