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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FE STYLE

미국 명문대 입시 성공기 3

브라운대 합격한 서상아

낮은 SAT 점수를 개성 있는 에세이·과외활동으로 만회하고~

기획·송화선 기자 / 글·오진영‘자유기고가’ / 사진·성종윤‘프리랜서’

2008. 03. 12

미국 브라운대에 합격한 서상아양은 중학교 시절 뒤늦게 영어공부를 시작해 입시준비에 많은 어려움을 겪었다. 하지만 다양한 과외활동과 개성적인 에세이로 부족한 부분을 극복하고 합격의 영광을 안은 그를 만났다.

브라운대 합격한 서상아

미국 아이비리그에 속하는 명문 브라운대 수시 전형에 합격한 서상아양(19)은 우리나라에서 초·중·고교를 졸업한 순수 국내파다. 경북 포항에서 자란 그가 미국 대학 진학을 생각한 건 중학교 1학년 때. 가족들과 해외여행을 갔다가 넓고 새로운 세상의 매력에 빠졌기 때문이라고 한다.
“하지만 처음 치른 토익 점수가 440점(만점 990점)이었을 만큼 아무 준비가 안 돼 있는 상태였어요. 중2 때부터 유학생 출신 선생님께 영어과외를 받았고, 매일 엄청난 양의 단어를 외웠죠.”
듣기 실력을 기르기 위해 일주일 동안 같은 영어 테이프를 반복해 들은 뒤 주말마다 시험을 치렀다고 한다. 이런 노력의 결과로 토익 성적은 1년 만에 890점으로 껑충 뛰었다.
“그 뒤엔 본격적으로 유학을 준비했죠. 미국 명문대 입학을 준비할 때 가장 중요한 건 자신이 원하는 학교를 선택하고, 그 학교에 어울리는 학생이 되는 거라고 생각해요. 미국 아이비리그 대학들은 학교마다 자율적인 기준에 따라 학생을 선발하니까요. SAT 점수, 고교 성적, 에세이, 인터뷰 등을 반영하는 비율이 다 다르죠. 전 일찌감치 브라운대로 진로를 정하고, 그에 맞게 준비하려 노력했어요.”
상아양이 브라운대를 지망한 건 그 대학 특유의 학문적이면서도 자유로운 학풍이 좋았기 때문. 어릴 때부터 의사 아버지, 전직 물리교사 어머니와 함께 여행을 다니며 “지금 내가 사는 곳보다 넓고 자유로운 세상에 대한 동경을 키웠다”는 그에게 브라운대는 전 세계 우수한 학생들이 모여 자유롭게 토론하고 공부하는 꿈의 공간이었다고 한다. 중학교 졸업 뒤 11대 1의 경쟁률을 뚫고 한국외대부속외고에 합격하면서 그는 꿈을 향해 한 발짝 더 다가갈 수 있었다.

브라운대 합격한 서상아

대학 졸업 뒤 로스쿨에 진학해 국제변호사가 되고 싶다는 서상아양.


“솔직히 중학교 때 포항에서는 ‘공부 좀 하는 아이’로 알려진 편이었어요(웃음). 시 대표로 전국 경시대회에 출전한 적도 있고요. 그런데 막상 고등학교에 가보니 다른 친구들 실력이 너무 뛰어나서 정신을 차릴 수가 없는 거예요. 특히 영어는 도저히 따라잡을 수 없을 것만 같았죠.”
상아양은 고등학교 입학 뒤 첫 영어시간을 아직도 선명히 기억한다. 교재가 셰익스피어의 소네트였는데, 자신이 제대로 해석조차 못해 쩔쩔매는 동안 다른 학생들은 자유롭게 발표하고 토론까지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 수업 이후 상아양은 큰 충격을 받았고, 더 열심히 공부하게 됐다고 한다.
“그다음부터는 영어수업 전에 단어를 다 찾아서 미리 공부해놓고, 모르는 부분은 잘하는 친구들에게 물어봤어요. 저희 학교에는 여럿이 함께 토론하며 교재를 해석하는 스터디그룹이 많은데, 거기서 활동한 것도 큰 도움이 됐죠.”

국내파 영어의 한계, 상투성 배제한 에세이로 뛰어 넘어
하지만 상아양의 SAT 점수는 2200점대 후반. 만점이 2400점이고, 2300점은 넘어야 ‘잘 봤다’는 얘기를 듣는 현실을 생각하면 그리 높은 점수는 아니라고 한다. 상아양은 부족한 부분을 자신의 장점을 살린 특별활동과 에세이로 보충했다.
“저는 초등학교 1학년 때부터 한국무용을 배웠어요. 중학교 때도 다른 학원은 거의 안 다니면서도 무용만은 계속했죠. 국제학생 문화교류 행사에 참가해 공연한 적도 있고요. 무용이 좋고 재밌었기 때문인데, 미국 대학 진학을 준비하다 보니 이렇게 한 분야를 꾸준히 해온 게 큰 도움이 되더군요. 미국 대학은 벼락치기식으로 특기교육을 받는 것보다 어릴 때부터 꾸준히 해온 취미에 더 높은 점수를 주거든요.”
상아양은 그 외에도 과학 동아리에 가입해 활동하고, 이주여성 인권운동단체의 봉사활동과 포럼 등에 참여했다고 한다. 상아양은 “예술·과학·여성 등 여러 분야의 경력을 쌓은 건 다양한 영역에 관심을 갖는 것이 개인의 개성과 자유를 강조하는 브라운대 학풍에 어울린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브라운대 입시를 준비하면서 그가 또 하나 신경 쓴 것은 에세이. 브라운대는 주제나 형식의 제한 없이 5백 단어 분량의 에세이를 쓰게 하는데, 그 짧은 글로 수많은 지원자 가운데 왜 자신을 뽑아야 하는지 설명해야 한다는 게 상아양에게는 가장 어렵게 느껴졌다고 한다.
“어떻게 하면 내 개성을 최대한 드러내 ‘이 사람이 브라운대에 어울리는 사람이구나’라는 평가를 끌어낼 수 있을까 고민했어요. 그러다가 제 하루 일상을 보여주는 글을 쓰기로 마음먹었죠. 경기도 용인의 학교 기숙사에서 생활하다 한 달에 한 번씩 포항 집에 다녀오는 풍경을 적은 거예요. 다시 학교로 돌아오는 날, 어머니와 대구까지 함께 오면서 입시준비와 전공 선택에 대한 고민을 털어놓았던 것, 대구부터 혼자 버스를 타고 올라올 때 머릿속을 스쳐가던 생각 등을 담았죠. 에세이의 마지막은 짐가방을 끌고 다시 기숙사에 들어와 어머니께 전화를 거는 것으로 마무리했고요.”
상아양은 자신이 어떤 봉사활동을 했는지, 앞으로 어떤 일을 하고 싶은지 등을 장황하게 설명하는 것보다 미래의 가능성을 찾기 위해 늘 고민하고 노력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 더 설득력 있을 것이라고 판단했다고 한다. 그리고 상투성을 배제한 개성적인 에세이로 브라운대 입시에서 좋은 성적을 얻었다.
브라운대는 2학년을 마친 뒤 전공을 선택한다. 상아양 역시 아직은 희망 전공을 결정하지 않은 상태. 학부시절 다양한 분야를 공부한 뒤 로스쿨에 진학해 변호사가 되고 싶다고 한다. 평소 과학과목을 좋아해 생명과학이나 IT산업 분야의 지적재산권을 다루는 변호사가 되고 싶기도 하고, 역사에 관심이 많은 편이라 문화유산을 둘러싼 국제 분쟁을 다루는 국제변호사가 되고 싶다는 생각도 있다고 한다.
“저는 어릴 때부터 한국무용을 배우고 부모님과 경주·부여 등 전국 곳곳의 유적지를 여행했기 때문에 우리 문화에 대해 생각할 기회가 많았어요. 미국에서 공부하더라도 우리 문화를 널리 알리는 데 앞장서고, 나중엔 한국에 돌아와 제가 배운 지식으로 우리나라에 도움이 되는 일을 하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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