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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OPLE

멋진 중년

드라마 ‘아현동 마님’에서 따뜻한 아버지로 인기~ 김병기

글·김수정 기자 / 사진·조영철 기자|| ■ 장소협찬·TORCH

2008. 02. 22

MBC 일일드라마 ‘아현동 마님’에서 엄격하면서도 애틋한 부정을 가진 아버지 ‘백제라’ 역으로 사랑받고 있는 탤런트 김병기. 악역부터 선량한 아버지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연기 색깔을 보여온 그의 39년 연기인생과 가족이야기를 들었다.

드라마 ‘아현동 마님’에서 따뜻한 아버지로 인기~ 김병기

MBC 일일드라마 ‘아현동 마님’은 열두 살 차이의 연상녀·연하남 커플 백시향과 부길라의 사랑 얘기로 인기를 모으는 드라마다. 그 속에는 두 사람의 사랑을 반대하다가 감싸 안아주는 가족의 이야기가 녹아들어 있는데, 극중 시향의 아버지인 백제라 역을 맡은 김병기(60)는 엄격하면서도 따뜻한 마음을 가진 모습으로 사랑받고 있다.
“오랫동안 봐서 그런지 진짜 내 딸 같고 사위 같아요. 극중 세 딸들이 제 말을 안 듣고 속 썩이는 장면이 있으면 ‘아, 이놈들이 이렇게 내 속을 썩여?’ 하는 생각이 들죠(웃음). 시향이와 길라가 결혼한 지금은 정말 든든하고 곰살궂은 사위를 얻은 것 같아 기분 좋아요.”
그러면서도 그는 요즘 39년 배우인생에서 가장 어려운 연기를 하고 있다고 말했다. 뇌졸중으로 쓰러져 말과 행동이 불편한 백제라를 연기하는 게 쉽지 않기 때문. 그는 “연기가 자칫 과장되거나 부족해 실제 뇌졸중을 앓고 있는 사람들에게 마음의 상처를 주지는 않을지 늘 조심스럽다”고 말했다.
“처음 임성한 작가가 ‘연기하기 힘들 텐데 어떡하죠?’라고 말할 때는 큰 걱정을 하지 않았어요. 대본을 읽은 뒤에야 쉽지 않다는 걸 깨달았죠. 어유… 어떻게 연기해야 할지 고민 많이 했어요. 그러다가 젊은 시절 하숙집 주인아저씨가 뇌졸중을 앓고 있던 기억을 떠올리면서 최대한 사실감 있게 그리려고 애썼고, 길거리에서 팔다리가 불편하신 분들이나 말을 할 때 한쪽 방향으로 입이 치우치는 분들을 보면서 연구했죠. 다행스럽게도 시청자들이 제 연기에 대한 문제제기를 하지 않아 고맙게 생각합니다.”
그는 임성한 작가와 인연이 깊다. 2002년 방영된 ‘인어아가씨’를 시작으로 ‘왕꽃선녀님’‘아현동 마님’ 등 임 작가의 주요 작품에 잇달아 출연하고 있는 것.
“임 작가는 부끄러움이 많아서 촬영장에 잘 나오지 않아요. 이따금씩 전화통화를 하면서 작품에 대한 의논을 하죠. 처음에는 파격적인 소재를 다루기에 ‘어떻게 생긴 분일까?’ 궁금해했는데, 막상 만나 보니 꼭 순진한 시골 아가씨 같더라고요(웃음). ‘아현동 마님’ 촬영에 앞서 임 작가를 다시 만났을 때 ‘임 작가, 우린 아무래도 전생이 인연이 있나봐’ 했더니 말없이 웃기만 하더군요. 저를 믿고 지지해주는 작가가 있다는 사실에 마음이 든든합니다.”

39년간 다양한 연기하면서 연기 폭 넓혀
드라마 ‘아현동 마님’에서 따뜻한 아버지로 인기~ 김병기

‘주몽’ 촬영으로 한창 바쁠 때인 지난 2006년, 일찌감치 ‘아현동 마님’에 캐스팅됐다는 그는 “10여 년 전부터는 잠깐의 짬도 없이 브라운관을 누빈 것 같다”고 말했다. 당초 “쉰 살이 넘으면 젊은 배우들에게 자리를 물려주고 떠나자”는 계획을 갖고 있었는데 그 계획을 떠올릴 새도 없이 바쁘게 지냈다고.
“오히려 젊은 시절에는 배역을 두고 PD들과 의견이 잘 맞지 않아 3~4개월씩 쉬기도 했는데 요즘은 쉴 새가 없네요. 지난해 말 MBC 연기대상에서 중견배우 부문 황금연기상을 수상하면서 ‘제2의 전성기를 맞았다’는 말을 듣기도 하는데 39년 동안 한길을 걸은 결과가 아닌가 싶습니다.”
대학 3학년 때인 69년, KBS 공채 탤런트로 데뷔한 그는 초등학생 시절 학예회 준비를 하면서 처음 배우의 꿈을 키웠다고 한다. “연기를 잘한다”는 선생님의 한마디에 진로를 결정한 뒤 의사가 되라는 부모의 말을 따르지 않았다고. 중학생 시절에는 청소년 관람 불가 영화를 포함, 총 3백여 편의 영화를 보면서 학업도 뒷전으로 미뤘다고 한다. 그의 부모는 그가 서라벌예고 합격통지서를 받아왔을 때 “절대 학비를 줄 수 없다”며 강하게 반대했다고.
“아버지께 호되게 맞았지만 합격통지서를 손에서 놓지 않았어요. 결국 입학금 마감일에 장롱에 있던 어머니 패물을 훔쳐 달아나 ‘입학금을 주지 않으면 패물을 팔아 학비를 내겠다’며 부모님을 협박했어요(웃음). 마감시간이 거의 다 돼서야 부모님 허락을 겨우 받아내 입학금을 낼 수 있었죠. 그날 이후로 부모님은 저의 가장 큰 지원군이 돼주셨습니다.”
하지만 이렇듯 뜻을 잘 굽히지 않는 그의 성격은 연기하는 데 많은 지장을 주기도 했다. 신인시절에도 출연 제의가 들어오면 “대본을 읽고 결정하겠다”고 말해 PD들로부터 건방지다는 소리를 들은 것. 그로 인해 점차 출연 기회를 잃어 쉬는 기간이 길어졌다고 한다.
연기자 김병기의 존재를 세상에 알릴 기회를 준 작품은 지난 82년 방송된 반공드라마 ‘지금 평양에선’. 이 드라마에서 그는 주인공인 김정일 역을 맡아 4년간 출연했다.
“김정일 역이 처음 들어왔을 때는 ‘절대 안 한다’고 했어요. 데뷔 이래 줄곧 선한 역을 했는데 오랜만에 출연하는 작품에서 시청자에게 나쁜 인상을 심어줄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거든요. 그런데 집사람이 ‘하늘이 주신 기회인지도 모른다’며 용기를 줬고, 출연을 결정한 후에는 김정일처럼 보이기 위해 말투와 행동을 연구했어요. 다행스럽게도 시청자들의 반응이 좋아 차기작이 잇따라 들어왔죠. 하지만 한동안은 김정일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해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어요. 다른 작품의 대사 연습을 하다가도 ‘어, 이건 김정일 톤인데…’ 하는 생각이 들어 자괴감에 빠졌죠.”
하지만 그가 힘들어할 때마다 가족들은 “아빠 연기가 최고”라며 격려해줬다고. 그는 “이후 선한 캐릭터와 악한 캐릭터를 적절하게 번갈아가면서 맡았는데 시청자들은 ‘모래시계’ ‘명성황후’ 등에서 보여준 ‘날이 선’ 연기에 관심을 더 보이더라”며 웃었다.
김병기는 연기에 대한 남다른 철칙을 갖고 있다. “항상 긴장을 하되 그것이 경직이 아닌 집중력이 되게 하라”는 연기관을 잊지 않는 것. 그는 촬영 도중에는 절대 외부에 나가지 않는데, 햇볕을 쐬면 이전의 감정 연기가 흩어지는 것 같기 때문이라고 한다.

“아내에게 팔베개해주는 남편, 아이들과 이모티콘 문자 주고받는 아빠예요”
드라마 ‘아현동 마님’에서 따뜻한 아버지로 인기~ 김병기

김병기는 아흔 살까지 연기하는 것이 꿈이라고 말했다.


그는 얼마 전 백시향·부길라 커플의 결혼식 장면을 촬영하면서 눈시울을 붉혔다고 한다. 지난 2006년 결혼시킨 둘째 딸이 생각났기 때문이다.
“간혹 ‘드라마에서 시향이만 예뻐하던데 실제는 어떠냐’는 질문을 받아요. 아들 하나에 딸 셋을 두고 있는데 백제라처럼 대했다가는 난리가 날 거예요(웃음). 겉보기에는 근엄하고 고지식한 아버지일 것 같지만 실제로는 친구 같은 아빠예요. 드라마와 상황은 다르지만 신부입장 장면을 찍으면서 둘째 딸 시집보내던 생각이 났어요. 딸아이 손을 잡고 결혼식장에 들어서는데 사위를 얻어 기쁘면서도 한편으로는 서운한 마음이 들었거든요.”
국제회계사인 큰아들과 대기업에 다니는 둘째, 주부가 된 셋째, 유치원 원장인 막내 등 성실하고 바르게 자란 네 아이들은 그를 지탱해주는 힘이다. 그는 “나머지 세 아이들도 좋은 배우자를 만난다면 더 바랄 게 없다”고 말했다.
그는 가족간의 기본예절만 지킨다면 자녀들이 원하는 일을 할 수 있도록 아낌없이 지원하자는 교육방침을 갖고 있다고 한다. 또 “아이들과 이모티콘 문자를 주고받는 만년 신세대 아빠”이기도 하다고.
“한번은 분장실에서 막내 딸과 전화통화를 하다가 ‘응, 나도 사랑해, 쪽~’ 하고 끊었더니 주위 사람들이 깜짝 놀라더라고요. ‘선생님, 혹시 여자친구 있으세요?’ 하고 조심스레 묻는데 어찌나 웃음이 나던지…. 막내딸이 애교가 많은데 엊그제는 ‘아빠 추우니까 옷 따뜻하게 입어요’라는 메시지와 함께 오리털 점퍼를 표현하는 이모티콘을 보내왔어요. 그래서 저도 ‘고마워♡ 잘 자, 내 꿈 꿔^^’라는 답문을 보내줬죠.”
그는 평소 아이들과 장난치는 것을 좋아하고 애교가 많아 가족들 사이에서 ‘깜찍이’로 불린다고 한다. 아내와도 스스럼없이 사랑표현을 하는데, 그런 그의 모습을 본 김종학 PD가 “형은 이 시대 최고의 로맨티시스트야”라고 말했을 정도라고.
“아내를 볼 때마다 가슴이 설레요. 아내와 저녁약속이라도 있는 날엔 약속장소로 가면서 ‘지금쯤 기다리고 있겠지? 어떤 모습일까?’ 하고 기대를 하죠. 아내와 대화를 많이 하는 편인데, 보통 새벽 2~3시까지 얘기를 나눠요. 잠을 잘 때 집사람에게 팔베개를 해주는데 그 모습을 본 아이들이 ‘아빠, 아직도 그런 게 돼?’ 하고 물으면 ‘그래, 이 녀석아’ 하면서 보란 듯 키스를 해요. ‘너희들도 결혼하면 아빠 엄마처럼 살아라’라는 뜻으로 그런 건데 그 마음을 아는 건지 모르는 건지…(웃음).”
그는 휴일이면 가족들과 시간을 보내거나 동료 연예인들과 축구를 한다. ‘쟈칼’ 연예인 축구단을 창단하기도 한 그는 “예순이 된 지금도 젊은이 못지않은 체력을 갖고 있다”고 말한다. 20대 때부터 꾸준히 해온 복싱·승마·수상스키 등은 수준급 실력이라고. 촬영 중에도 틈틈이 제자리걷기를 하고, 귀가 시에는 10층 높이 아파트 계단을 오르면서 건강관리를 한다는 그는 “무엇이든 열심히 하는 마음가짐이 연기에도 좋은 영향을 끼친다”고 말했다.
“‘주몽’ 촬영할 때 강추위 속에서 온종일 말을 탔는데도 끄떡없었어요. 일주일에 5일 이상 촬영하는 요즘도 지치는 줄 모르겠고요. 건강이 허락한다면 매년 한 작품 이상 꾸준히 할 생각입니다.”
그의 꿈은 아흔 살까지 연기하는 것. “나이에 맞는 배역을 맡아 중년배우의 관록 있는 연기를 보여주는 게 소망”이라고 말했다.
“인생을 꽃에 비유한다면 일흔은 꽃봉오리, 여든은 개화, 아흔은 열매라고 생각해요. 그렇게 따지면 저는 올해 예순이니 겨우 인생의 싹을 틔웠을 뿐이에요. 카메라 앞에 서면 여전히 신인처럼 가슴이 부풀어오릅니다. 앞으로도 작품에서 없어서는 안 될 감초 연기를 선보이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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