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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eleb 절망 속 행복 찾기

최선자 드라마틱 인생 고백

‘아현동 마님’의 부잣집 할머니로 열연 중인~

글·김유림 기자 / 사진·조영철 기자 || ■ 장소협찬·포토카페

입력 2008.02.21 18:15:00

MBC 일일드라마 ‘아현동 마님’에서 개성 있는 연기로 주목받는 중견 탤런트 최선자. 젊은 시절 남편을 떠나보내고 홀로 두 딸을 키운 그가 힘든 시간을 보내며 터득한 인생의 지혜를 들려주었다.
최선자 드라마틱 인생 고백

직장인들이 빠른 걸음으로 빌딩 숲을 지나치는 오전 9시, 서울 여의도 한 카페에서 만난 중견 탤런트 최선자(67)는 고희를 바라보는 나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로 젊어 보였다. 그는 자리에 앉자마자 “커피 향이 정말 좋다”며 눈을 가늘게 뜨고 미소를 지었다.
이날 그가 아침부터 여의도를 찾은 이유는 조찬예배에 참석하기 위해서였다. 현재 한 교회의 전도사로 활동 중인 그는 바쁜 촬영 스케줄 속에서도 자신을 찾는 곳이라면 어디든 달려가 힘겨웠던 인생담, 그리고 고통을 극복해낼 수 있었던 힘에 대해 털어놓는다고 한다.
“아직 제게 주어진 일이 있고 그로 인해 날마다 좋은 사람들과 만날 수 있으니 이보다 더 행복할 순 없죠. 사실 드라마 촬영 때문에 지난주에도 이틀이나 밤을 새웠는데 도통 피곤함을 모르겠어요. 매사에 감사하고 긍정적으로 생각하면 힘들 게 없죠(웃음).”

폐가 굳는 불치병 얻어 오랜 세월 투병생활해야 했던 남편
세상을 통달한 듯한 그의 인생관은 20년 전 작고한 남편 구석봉씨로 인해 얻게 된 것이다. 그의 남편은 동아방송 당선작가 출신으로 시·소설·드라마 극본·평론 분야에서 맹렬하게 활동하던 작가였는데 결혼 15년 만에 불치병에 걸리면서 그의 인생 또한 180도 달라졌다고 한다. 9년 동안 남편의 병 수발을 들면서 고통이 무엇인지를 뼈저리게 느꼈다는 그는 “남편이 아플 때 세상만사를 다 보았고 인간이 얼마나 나약한 존재인지를 깨달았다”고 말한다.
“남편은 건장한 체격에 미남이었어요. 어려서부터 부잣집 도련님으로 자라 세상 어려운 줄 모르고 살았죠. 작가로서의 자부심은 또 얼마나 강한지, 세상 모든 사람을 자신의 발아래 놓으려고 했던 남자죠. 그렇게 자신만만했던 남편이 어느 날 감기몸살을 심하게 앓는가 했더니, 그 길로 다시는 일어나지 못하게 됐어요. 폐가 굳어가는 병이었는데 아무리 검사를 해도 원인을 몰라 엑스레이를 찍어 미국으로 보내기도 했지만 끝내 병명을 밝혀낼 수 없었죠.”
당시 그의 나이 마흔하나. 그는 남편이 병실에 누워 있는 기간이 길어지자 경제적인 어려움에 봉착했다고 한다. 몇 년간은 모아둔 재산으로 병원비를 충당할 수 있었지만 해가 거듭될수록 빚이 태산같이 쌓이기 시작한 것. 결국 그는 생계를 위한 연기를 시작할 수밖에 없었다. 가세가 기울자 두 딸도 누가 먼저랄 것 없이 그를 도왔다고 한다.
“그때까지 최고 대접만 받고 자란 아이들이 아빠가 산소호흡기에 의존한 채 반 식물인간으로 살자 자연스럽게 효녀로 변하더라고요. 제가 밤낮없이 일 때문에 밖에 나가 있으면 아이들이 양동이에 물을 받아다 아빠의 머리를 직접 감겨주기도 했죠. 자기네들 용돈을 모아 사탕도 사오고, 겨울이 되면 가장 먼저 아빠에게 군고구마를 사다주기도 했어요. 어느 날은 남편이 갑자기 위독한 증세를 보이자 두 딸이 서슴없이 남편의 양팔에 주사를 놓더라고요. 제가 없는 동안 집에 왕진 오던 의사선생님이 아이들한테 응급처치를 가르쳐 주셨다는데 능숙하게 주사바늘을 꽂는 아이들을 지켜보면서 억장이 무너져내렸죠.”
남편은 88년 세상을 뜨기까지 입원과 퇴원을 반복했다고 한다. 산소호흡기에 전적으로 의존해야 했기에 퇴원해서는 정전 사태를 우려해 방 한가득 산소통을 쌓아놓고 살았다고. 정전이 되면 그때마다 부리나케 산소통으로 호흡기를 깔아 끼워야 했는데, 당시 산소통의 가격도 만만치 않았다고 한다. 하지만 경제적인 어려움보다 그를 더 힘들게 만들었던 건 하루아침에 태도가 돌변한 지인들이었다고.

최선자 드라마틱 인생 고백

남편을 떠나보내면서 가치 있는 인생이 무엇인지를 새삼 깨달았다는 최선자는 행복은 모든 것에 감사하는 마음에서 시작된다고 말한다.


“남편이 잘나갈 때는 밤낮없이 어울려 다니면서 밥 먹고, 술 마시고 하던 사람들이 더 이상 희망이 안 보이자 발길을 끊더라고요. 그때 처음으로 ‘한순간에 허물어지는 게 인간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죠. 그리고 아무리 대단한 사람이면 뭐해요. 병원에서 보면 누구나 하루아침에 다 죽어나가던걸요. 인생이 그렇게 허무한 거더라고요.”
하지만 그는 어느 순간 사람들에 대한 원망을 떨쳐낼 수 있었다고 한다. 종교의 힘으로 인생의 새 빛을 찾은 것. 남편이 생사의 갈림길에 놓여 있을 때 그의 사정을 전해들은 동료 연예인들이 교회 목사와 함께 병실을 찾아오면서 처음으로 믿음을 갖기 시작한 그는 남편을 위해 기도하는 사람들에게 그동안의 서러움과 애환을 한순간에 쏟아냈다고 한다. 그는 “당시에는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심정”이었다며 “죽어가는 남편을 위해 밤낮없이 병실을 떠나지 않고 기도해주는 사람들을 보며 깊은 감동을 받았다”고 말했다.
“남편은 평생 1원 한 장 교회에 헌납해본 적이 없는 사람이었어요. 대부분의 인간들처럼 자신의 열정과 쾌락을 채우는 데 급급했던 사람이죠. 그런데 그런 남편을 위해 금식하면서 기도해주는 전도사님, 목사님을 보면서 난생처음 온전한 사랑이 무엇인지를 깨달았어요.”
그의 눈에는 남편 역시 새로운 사람으로 다시 태어난 듯 보였다고 한다. 교회라면 펄쩍 뛰고 다니지도 못하게 하던 남편이 어느 순간 “엑스레이를 찍으면 내 병을 찍는 것이 아니라 나의 죄를 찍는 것 같다. 몸무게가 아닌 내 죄의 무게를 다는 것 같다”고 말하며 회개의 눈물을 흘렸다는 것. 남편의 변화된 모습을 보면서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던 그는 ‘비록 남편이 세상을 떠나더라도 슬퍼하지 않고 잘 견뎌낼 수 있을 것 같다’는 확신이 들었다고 한다. 결국 그의 남편은 많은 사람들의 기도 속에서 편안하게 생을 마감할 수 있었는데, 그는 “내 남편만큼 복 받은 사람이 또 있겠냐”며 빙그레 미소를 지었다.
남편을 통해 어떻게 사는 것이 의미 있는 인생인지를 비로소 깨닫게 된 그는 남편이 남겨놓은 숙제들도 전혀 두렵지 않았다고 한다. 혼자 힘으로 두 딸을 무용가와 미술가로 키워냈고, 산더미 같던 빚도 오랜 시간에 걸쳐 조금씩 갚아나갔다고. 현재 큰딸은 결혼해 미국 시애틀에 살고 있으며 둘째 딸은 경기도 일산에서 그와 함께 살고 있다. 그는 남편을 떠나보낸 후 세상 모든 것으로부터 자유로워졌다고 한다.
“돈과 명예, 나이, 모든 것을 초월해서 살려고 해요. 돈깨나 있다고, 높은 직책에 앉아 있다고 거드름 피우는 사람들을 보면 한심하고 안타까운 생각이 들죠. 제 눈에는 시장에서 파는 천원짜리 옷도 백화점에서 파는 옷 못지않게 아름다워 보여요. 집 근처 마트에서 파는 우동 한 그릇을 먹을 때도 무한한 감사함을 느끼죠. 또 나이 먹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전혀 없어요. 나이 때문에 못 하는 건 아무것도 없다고 생각하거든요. 하루하루를 기쁘게 살다 보니 저는 오늘 당장 죽어도 여한이 없어요(웃음).”

힘들었던 지난날과 고통을 극복한 이후의 삶 담은 수필집 펴낼 계획
그는 남편에 대한 원망도 없다고 한다. 되돌아보면 그에게 남편은 실력 좋은 ‘개인교수’와도 같았다고. 그는 남편으로부터 세상 어느 누구도 알려주지 않은 지식과 사상, 문화의 힘을 배울 수 있었다고 말한다. 또한 그가 15년 넘게 기독교 극단 미리암 단장을 맡을 수 있었던 것도 남편의 어깨너머로 배운 추진력과 기획력 등이 뒷받침됐기에 가능했다고.
“옛날 시골집에 보면 벽장이 있잖아요. 아낙네들이 꿀단지며 고춧가루 등을 보물처럼 숨겨놓고 수시로 꺼내 먹죠. 제게 있어 남편은 언제든 원하는 것이 있으면 문을 열고 꺼내 먹을 수 있는 벽장과도 같은 존재였어요. 사실 제가 ‘여성동아’에 ‘옷깃을 여미며’라는 타이틀로 3년 동안 수필을 기고한 적이 있는데 그때도 남편은 글 한자 도와주지 않으면서 ‘거짓말로 쓰려니까 힘들지’ 하고 타박을 했어요. 그런데도 사람들은 ‘작가 남편을 둔 덕분에 글 솜씨가 있다’고 칭찬을 하더라고요(웃음).”
그는 미리암 단장으로 활동하며 해마다 뮤지컬 ‘지저스 지저스’를 무대에 올리고 있다. 다들 불가능할 것이라고 했던 해외공연도 매번 성황리에 마쳤는데 미국 LA를 시작으로 뉴욕·하와이·괌·시카고·샌프란시스코·시애틀 그리고 캐나다, 일본 도쿄 등을 순회하며 뜨거운 기립박수를 받았다. 그는 “바쁘게 사는 하루하루가 즐겁다”며 “내게 믿음이 없었다면 남편을 잃고 술 담배에 절어 지냈을지도 모른다”고 말했다.
TV에 자주 얼굴을 비치지 않았지만 꾸준히 뮤지컬 무대에 서온 그는 최근 드라마 ‘아현동 마님’에서 아들, 며느리에게 존경받는 부잣집 마나님 역을 맡아 노인들의 심정을 대변하며 또 다른 활력을 얻고 있다.
“자식들에게 당당한 할머니다 보니 저를 보고 대리만족을 느끼는 분이 많은 것 같아요. 며칠 전에는 교회에 갔더니 멋쟁이 할머니 한 분이 제 손을 꼭 잡고는 ‘요즘 ‘아현동 마님’이 제 애인이잖아요’ 하면서 반가워하시더라고요. 자신도 법관 아들을 두고 있지만 집에서는 그렇게 큰소리 못 치고 사는데, 드라마 보면서 부럽다는 생각이 많이 든다면서요.”
지난 2002년 남편의 유고시집 ‘백년 후에 부르고 싶은 노래’와 자신의 수필집 ‘이별 없이 무엇을 이루랴’를 출간한 그는 올해 두 번째 수필집을 완성하겠다는 목표를 가지고 있다. 몇 년 전 출판사로부터 이미 계약금까지 받았지만 매번 바쁘다는 핑계로 글쓰기를 미뤄왔는데 올해는 반드시 마무리짓고 싶다는 것. 책은 남편이 떠나기 전과 그 후로 내용을 나눠 쓸 계획이다.
“책의 1권은 믿음을 갖기 전의 인생을, 2권은 남편을 떠나보내고 완전히 달라진 제 삶을 기록할 예정이에요. 부족한 글이겠지만 많은 사람들에게 고통을 이겨내고 행복을 찾을 수 있는 방법을 알려주면 좋겠어요. 기쁨을 나누는 것만큼 의미 있는 삶이 없잖아요.”

여성동아 2008년 2월 530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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