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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feStyle 유인경의 Happy Talk

mission:사소한 일에 목숨 걸고 사소한 기쁨 쟁취하라!

입력 2008.02.18 10:36:00

mission:사소한 일에 목숨 걸고 사소한 기쁨 쟁취하라!

송인헌, 추억이 있는 정물 연작, 2007


지난해 63세의 나이로 MBC 연기대상 라디오 신인상을 수상한 조영남씨의 요즘 취미는 단추 사러 다니기라고 한다. 그저 단추를 사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단추가게를 이곳저곳 구경하는 것도 포함돼 있어 그렇게 표현했다.
얼마 전부터 “단추 사러 가야 해” “동대문시장에 가는 길이야” 등의 말을 자주 해서 난 그저 셔츠나 재킷 등의 단추가 떨어져도 달아줄 마누라가 없어서 자급자족하는 줄만 알았다. 인터넷 쇼핑몰에서 독신 남성이나 홀아비들이 구입하는 최고 인기품목이 단추라는 기사도 읽었던지라 ‘아무리 돈 많고 유명하면 뭐하나, 단추 달아줄 사람도 없고…’라며 은근히 동정하기도 했다. 그런데 이유가 뭐건 조영남씨는 요즘 단추삼매경에 폭 빠져 있다.
“단추 종류가 얼마나 다양한지 알아? 동대문시장에 단추가게가 얼마나 많은지 알아? 어느 때는 한 가게에서 한 시간씩 구경할 때도 있다니까. 크기, 색깔, 모양, 소재에 따라 단추의 세계는 엄청나게 다채롭지. 이 가게, 저 가게 돌아다니다가 내 마음에 꼭 드는 단추를 발견했을 때의 기쁨은 이루 말로 표현하기 힘들 정도야. 또 단추 하나만 바꿔 달아도 촌스런 ‘삽다리 패션’이 세련된 파리 패션으로 변한다니까. 단돈 몇 천원으로 이런 기쁨과 재미를 어디서 찾겠어?”

작은 단추 하나에서 발견하는 삶의 재미
새끼손톱보다 더 작은 크기의 단추 하나에 그토록 열광하는 모습은 도저히 60대 중반이라고는 믿을 수 없다. 예전에도 그는 우리들이 유치하다, 저속하다고 비웃는 화투를 갖고 여기저기 붙이기도 하고 그림으로도 그리더니 화투 그림 하나만으로 자신의 스타일을 확보해 전시회도 열고 해외 평론가들에게도 호평을 받았다. 만일 그가 정통 기법으로 화가의 길에 입문했다면 오늘날의 찬란한 영광을 얻었을까. 아주 사소한 일상의 물건에서 영감을 얻어 남들이 비웃건 욕을 하건 화투로 자신의 미술세계를 확립했다.
생각해보면 그런 사소함에서 커다란 성공이 시작되고, 사소한 즐거움과 재미가 행복의 기초가 된다. 청소기로 집 안을 쓸다가 ‘걸레질까지 되는 청소기가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사소한 고민이 스팀청소기의 개발로 이어져 대박을 터뜨린 한경희씨가 그 예다. 아파트에서 우아하게 잘 차려입고 냄새 나는 음식물이 담긴 쓰레기봉투를 들고 나오는 사모님들을 보면서 아이디어를 얻어 음식물찌꺼기 처리기를 만든 이도 주부다.
그래서 2008년, 올해 소박하지만 아주 야심 가득한 내 계획은 ‘사소한 일에 목숨 걸고 사소한 재미를 발견하는 것’이다.
사소한 일이란, 누군가의 안부가 궁금하거나 해결해야 할 일이 생각날 때 전화하고 문자메시지라도 보내는 것이다. 그래야 인간관계가 돈독해지고 구설수에 휘말리거나 엉뚱한 오해를 받지 않는다. 얼마 전 예전엔 자주 만나다가 요즘은 서로 바빠 소식을 전하지 못하는 한 친구가 전화를 했다. 내가 바빠서 전화를 받지 못했는데 그 사이에 남긴 음성메시지를 듣다가 깜짝 놀랐다. 그 친구는 너무나 비장한 목소리로 이런 말을 남겼다.

“인경아, 나야. 왜 전화를 안 받는지 모르지만 네가 나한테 무슨 오해를 하는 것 같아. 어떤 오해를 하고, 왜 나한테 화가 났는지 모르지만 만나서 이야기를 하면 좋겠어. 내 가슴이 너무 답답해서 그래.”
도대체 무슨 일이 있고 어디서 무슨 말을 들어서 그러는지 당혹스러워 당장 전화했다.
“야, 일단 본론부터 간단히 말하자면 나 너한테 오해하는 거 없어. 네가 뭘 오해하는지는 모르겠다만 네 흉본 적도 없고, 돈 꾸고 안 갚은 것도 없는데 대체 왜 이런 말을 하는 거냐?”
“아, 그럼 다행이구. 사실 네 어머니 돌아가셨을 때 내가 못 가서 늘 걸렸는데 얼마 전 시아버지 상을 치른 미숙이가 그러더라. 나이 드니까 상가에 와주는 게 참 고맙더라고. 그러면서 미숙이가 나보고 왜 네 어머니 상가에 가지 않았냐고, 나중에 부의금이라도 줬냐고 묻기에 생각해보니 내가 경황이 없어 못 줬던 것 같아. 그 이후로 네가 나한테 연락도 뜸한 것 같고….”
하늘에 맹세코, 돌아가신 어머니를 걸고 난 그 친구가 조문을 오지 않은 것에 대해 아무런 서운함이 없었다. 부끄럽고 민망한 일이지만 와주신 분들도 일일이 기억을 못 한다. 나 역시 형편에 따라 못 가기도 하고, 깜빡 잊기도 하기 때문에 마음 상할 일도 없다. 주의 산만한 내가 안부 전화를 잘 걸지 못하고, 가끔 전화가 와도 건성으로 받아 그 친구가 ‘오해’를 한 듯하다. 그래서 이젠 무슨 일이 있으면 즉각 내 생각을 밝히고, 가능하면 안부 전화를 잘 해야겠다고 다짐한다.

우리 삶을 이루는 조촐한 행복에 감사하기
돼지 인형 모으기, 예쁜 카드 수집하기, 잡지에 실린 새로 생긴 식당 기사 스크랩하기, 언젠가 만들어 보겠다는 야심으로 요리책 모으기, 만화책 읽기 등 도저히 내 나이에 맞는 취미는 아니지만 내게 기쁨과 즐거움과 재미를 주는 일들도 계속할 생각이다.
그리고 식당에서 처음 주문해본 음식이 정말 맛있을 때, 보고 싶었던 이가 상냥한 목소리로 전화를 걸어주었을 때, 별 기대 없이 읽은 책이 감동적일 때, 선물 받은 향수의 향이 무척 근사할 때, 코미디 프로가 진짜 웃길 때, 내가 싸게 산 물건을 다른 곳에서 비싸게 파는 걸 확인했을 때, 양식 레스토랑에서 단골이라며 김치를 살짝 줄 때, 누가 다른 이에게 내 칭찬을 해줬을 때, 매일 짝짝이로 그리던 눈썹이 제대로 그려졌을 때, 택시 기사가 3천1백원 나온 요금을 3천원만 받을 때…. 이런 사소하고 조촐한 일상의 즐거움과 기쁨을 온몸을 바르르 떨며 온 마음 가득히 받아들여야겠다.
럭셔리한 모피 코트를 욕심내기보다 작은 단추 하나에서 재미와 기쁨을 발견하듯, 콩나물반찬 하나라도 매일 기쁘고 감격하며 먹어야지. 기뻐할 준비를 갖추고 나니 올해도 잘 살 수 있다는 자신감이 생긴다. 씨알의 기쁨을 바위가 어찌 알까.

mission:사소한 일에 목숨 걸고 사소한 기쁨 쟁취하라!

유인경씨는… 경향신문사에서 선임 기자로 일하며 인터뷰 섹션을 맡아 흥미로운 사람들을 만나는 즐거움을 만끽하고 있다. 직장 여성에 관한 책도 준비 중인데 성공이나 행복을 위한 가이드북이 아니라 웃으며 타산지석으로 삼을 수 있는 실수담이나 실패담을 담을 예정이다. 그의 홈페이지 (www.soodasooda.com)에 가면 그가 쓴 칼럼과 기사를 읽어볼 수 있다.





여성동아 2008년 2월 530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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