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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불한당’으로 5년 만에 안방극장 복귀하는 홍경인

글·김수정 기자 / 사진·지호영 기자

입력 2008.01.22 18:10:00

한동안 브라운관에서 모습을 볼 수 없었던 홍경인이 SBS 새 수목드라마 ‘불한당’으로 5년 만에 안방극장에 복귀한다. 그 사이 군 입대와 제대, 사업과 뮤지컬 무대 도전 등 다양한 인생 경험을 한 그를 만나 그간의 생활과 새롭게 시작하는 각오에 대해 들었다.
드라마 ‘불한당’으로 5년 만에 안방극장 복귀하는 홍경인

세월이 흘렀어도 아역 출신 배우 홍경인(32)의 얼굴엔 여전히 앳된 모습이 남아 있었다. 지난 2003년 방송된 SBS 드라마 ‘대망’을 마지막으로 브라운관을 떠난 그는 1년여 전 군복무를 마친 뒤 연극과 뮤지컬 무대에 서왔다. 그를 다시 브라운관으로 불러들인 작품은 1월부터 방영되는 SBS 수목드라마 ‘불한당’. 이 작품에서 그는 동갑내기 탤런트 장혁의 친구 역을 맡았다.
“첫 촬영을 앞두고 얼마나 긴장되던지 새벽까지 잠을 이루지 못했어요. 하지만 막상 촬영이 시작되니까 고향에 온 것 같은 포근한 느낌이 들더라고요. 또 극중 친구로 나오는 혁이와 실제로도 절친해서 촬영장 분위기에 금세 적응했죠.”
평소 허물없이 지내는 친구 사이인 탤런트 장혁과는 같은 작품에 네 번째 함께 출연한다고 한다. 그래서 이젠 눈빛만 봐도 서로 어떤 연기를 원하는지 알 정도라고. 장혁은 평소 느릿느릿한 말투에 진지한 성격이지만 그 앞에서는 까불까불하고 농담 잘하는 개구쟁이로 변한다고 한다. 홍경인 역시 고민거리가 생기면 장혁에게 가장 먼저 털어놓는다고.

드라마 ‘불한당’으로 5년 만에 안방극장 복귀하는 홍경인

“혁이가 없었으면 이 드라마를 선택하지 않았을지도 몰라요. 그동안은 드라마보다 뮤지컬이나 연극 무대에 서는 게 더 좋았거든요. 하루에 10시간 이상 계속되는 춤·노래 연습에 지치면서도 오롯이 제 연기를 보러 온 관객 앞에서 연기한다는 점 때문에 힘이 났어요. 브라운관이나 스크린에 비해 다양한 캐릭터를 연기할 수 있는 점도 좋았고요.”
지난 2007년 봄, 제대한 뒤 첫 작품으로 뮤지컬 ‘해어화’를 선택한 것도 같은 이유에서였다고 한다. 주변 사람들은 “왜 아웃사이더처럼 구느냐. 영화·드라마로 복귀해 제대 후 달라진 모습을 보여줘야지” 하고 그를 말렸지만 “무대가 크든 작든 배역이 좋든 나쁘든 내가 즐거우면 그만”이라며 고집을 부렸다고 한다.
드라마 ‘불한당’은 불의의 사고로 남편을 잃고 홀로 살아가는 여자와 그 여자를 속이려는 사기꾼 사이의 로맨스를 그린 드라마. 홍경인은 사기꾼 장혁의 친구 김만두를 연기하는데 만두는 서른두 살의 나이에 뒤늦게 대학입시 준비를 하는 엉뚱한 인물이다.
“만두는 소심하고 이해력이 부족해 어렸을 때 왕따를 당한 아이예요. 그때 자신과 함께 있어준 유일한 친구 오준(장혁)이를 위해서라면 무슨 일이든 하죠. 드라마 초반에는 바보스러울 만큼 순박하지만 한순간 엄청난 사건에 휘말리면서 성격이 바뀌어버려요. 뭔가 고민할 거리가 있고 연기할 거리가 있는 인물이라는 게 마음에 듭니다.”
홍경인은 “올해로 데뷔한 지 20년 된 ‘중고참 배우’인데 연기 못한다는 말을 들으면 안 될 것 같아 대본을 철저히 분석하고 연기고민이 생길 때마다 감독님과 의논한다”고 말했다.
“아직도 부족한 점이 많다”며 자신을 낮췄지만 그는 연기력과 연기에 대한 열정만큼은 그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는 배우다. 지난 88년 12세 나이에 MBC 베스트극장 ‘강’으로 데뷔한 그는 “아무리 먼 곳도 부모 도움 없이 촬영장에 가던 독한 아이”로 자신을 기억하고 있다.
“연기하는 데 방해된다고 부모님을 촬영장 근처에도 못 오시게 했어요. 작품도 제가 스스로 선택하고 배역을 따내기 위해 전국 각지로 오디션을 보러 다녔죠(웃음).”
최고의 아역배우로 주가를 올리며 눈코 뜰 새 없이 바빴던 중학생 때는 담임선생님이 “3일만 더 빠지면 출석일수를 채우지 못해 유급”이라고 말하자 그 다음 날부터 매일 새벽 4시에 학교에 가 당직을 서고 있는 수위아저씨에게 “담임선생님께 왔다가 조퇴한 것이라고 전해달라”며 부탁한 뒤 6시까지 다시 촬영장에 가기도 했다고 한다.
학업과 연기를 병행하는 힘든 생활 속에서도 그는 지난 92년 출연한 영화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에서의 엄석대, 95년 작 ‘아름다운 청년 전태일’의 전태일 등으로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당시 그는 성인 못지않은 연기로 많은 영화상을 수상했는데 홍경인은 “어쩌면 그때가 내 연기인생 최고의 전성기가 아니었다 싶다”고 말했다.

고등학생 때 연기한 배역 명성 뛰어넘지 못해 오랜 방황
드라마 ‘불한당’으로 5년 만에 안방극장 복귀하는 홍경인

홍경인은 “포장마차 운영, 군 입대 등 많은 인생 경험으로 한층 성숙한 연기를 펼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화려한 경력 이면으로 말 못할 고민도 많았다고 한다. 시간이 아무리 흘러도 그의 이름 앞에는 ‘엄석대’ ‘전태일’이라는 수식어가 붙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불리는 게 싫었어요. ‘그 영화 이후 내가 한 것은 무엇일까. 연기에 아무런 발전이 없었나’ 싶은 생각에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죠. 두 작품이 제 배우 인생에서 없어서는 안 될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지만 제 배우 인생의 전부가 될 순 없으니까요.”
그는 대학 입학 후 연기변신을 위해 한 청춘시트콤에 출연했지만 그 작품은 그에게 많은 숙제를 남겼다고 한다. 가볍고 코믹스런 캐릭터를 3년 이상 하다 보니 어느 순간 “내가 지금 뭐 하고 있지? 연기하는 거 맞나” 하는 의문이 든 것이다.
“한 중학생으로부터 ‘저도 형처럼 훌륭한 개그맨이 되고 싶어요’라고 적힌 팬레터를 받은 적이 있어요. 그때 생각했죠. ‘계속 이 연기를 하다가는 나를 오래전부터 봐온 분들에게는 배우로 기억될지 몰라도 지금부터 지켜보는 사람들에게는 개그맨으로 남겠구나’라고요. 그래서 시트콤을 그만뒀는데 점차 연기에 대한 재미와 자신감을 잃으면서 방송까지 쉬게 됐죠.”
연기자로서 방황하다가 20대 후반이 된 그는 뮤지컬 ‘소나기’를 끝으로 군에 입대했고 군 생활을 하면서 30대를 맞았다고 한다.
“많은 분이 늦은 나이에 군대에 가 마음고생했을 거라고 짐작하시는데 안 그랬어요. 군대 다녀온 친구들이 ‘네 나이와 연예인이라는 점을 잊으면 재미있게 군 생활을 할 수 있다’고 말해줬거든요. 그렇게 생각하니까 마치 보이스카웃 캠프에 온 것 같더라고요.”
훈련소에서 만난 동기들과 ‘형, 동생’ 하면서 잘 어울렸고 전방으로 자대배치를 받은 뒤 자신보다 어린 선임병들을 깍듯하게 모시며 ‘배우’라는 것을 잊은 그는 뒤늦게 연예사병으로 차출돼 이민우·지성·박광현 등 동료 연기자들과 남은 군 생활을 했다.
TV를 보거나 라디오를 들으면서 바깥생활을 그리워하게 된 때는 그즈음부터라고. 그는 “그런 마음은 그때그때 수다로 풀었다”고 말했다.
“드라마를 보다 보면 연기 잘하네, 못하네 하면서 특정 연예인을 나쁘게 말할 때가 있잖아요. 한번은 한참을 얘기하다가 ‘야, 근데 혹시 쟤랑 친한 사람 있어?’ 하고 물었는데 후임병 하나가 ‘저… 걔랑 무지 친한데요’ 하면서 손 드는 거예요. 어찌나 민망하던지… 그다음부터는 그런 말을 하기 전에 내무반 눈치부터 살폈죠(웃음). 그런 게 다 즐거운 추억으로 남아 있어요.”
그는 “연기에 대한 아쉬움과 전역 후에 대한 고민 등을 동료들과 함께 나누다 보니 제대할 때가 돼 있더라”고 말했다. 요즘도 군 생활을 함께한 동료 연예인과 자주 만난다는 그는 “몇몇 사람들과 따로 만나면 연예계 데뷔 순서대로 선·후배가 되고 떼를 지어 모이면 입대 순서대로 선·후임병 사이가 된다”며 웃었다.

군 입대 전 조그만 음식점을 차렸던 그는 제대 후 포장마차를 운영하면서 본격적인 사업가의 길도 걷고 있다고 한다. “하고 싶은 배역이 주어질 때까지 기다리려면 다른 돈벌이 수단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또 다른 인생 경험을 하고 있어요. 연기할 때는 몇 천 만원씩 통장에 입금되는 걸 보면서 돈 버는 게 참 쉽다고 생각했는데 포장마차를 운영하면서 비로소 돈 버는 게 얼마나 힘든 일인지 깨달았죠. 한동안 영업이 잘되지 않아 경제적 어려움을 겪기도 했는데 다행히도 지금은 어느 정도 수익을 내고 있어요.”

여섯 살 연상 여자친구와 4년째 교제 중, 결혼은 좀 더 여유 생긴 뒤 하고 싶어
그는 4년째 교제 중인 여섯 살 연상의 여자친구와 함께 포장마차를 운영하고 있다. “여자친구와의 사생활이 공개되는 걸 바라지 않는다”며 구체적인 언급은 피했지만 “가족 같은 여자친구와 결혼을 전제로 교제 중이다. 다른 연인들처럼 평범하게 길거리 데이트를 즐기며 사랑을 키우고 있다”고 말했다.
결혼은 경제적으로나 심적으로 좀 더 여유가 생긴 뒤 할 예정. 그때까지는 자신을 좀 더 개발하는 데 노력할 계획이라고 한다. 지난해부터 평택대학교에서 ‘대우교수’ 자격으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는 그는 올해부터 군 입대로 휴학했던 대학원에 복학, 학업을 마칠 예정이다. 더 나이가 들기 전에 자신만의 연기론을 갖는 게 목표라고.
“나이에 대한 개념이 별로 없었는데 지난해부터 ‘아, 내가 나이를 먹었구나’ 하는 생각이 자주 들어요. 얼굴에 주름살이 늘고 작품이나 배역을 선택할 폭도 좁아졌으니까요. 솔직히 20대 중반 이후 연기자로서 하향곡선을 그리고 있거든요. 주인공에서 점점 조연급으로 배역 비중도 떨어졌고…. 예전에는 그런 거에 신경을 많이 썼지만 이제는 ‘톱스타가 된다거나 상을 받아야만 연기자로서 인정받는 게 아니다’라는 생각이 들어요.”
그는 앞으로 화려한 주연보다 빛나는 조연이 되고 싶다고 말했다. 자기 나이에 맞는 캐릭터를 연기하면서 자연스럽게 늙어가는 게 꿈이라고.
“몇 살 때는 이런 일을 겪으면 좋겠고 몇 살 때는 이런 연기를 하면 좋겠다는 인생 계획을 갖고 있어요. 큰 욕심 부리지 않고 그 계획에 맞춰 계단을 밟듯 살아가고 싶어요. 새해부터는 연기자로 열심히 활동할 계획을 세웠어요. 오랜 기간 쉰 만큼 ‘불한당’ 이후부터는 많은 작품에서 제 모습을 보이도록 노력할 거예요.”
그의 또 다른 바람은 홀어머니에게 효도하는 것. 2004년 아버지가 갑작스레 세상을 떠나신 뒤 외롭게 살고 있는 어머니를 적적하지 않게 해드리고 싶다는 그는 “더 이상 방황하는 모습을 보여드리지 않을 것이다. TV에 자주 모습을 드러내고 아버지 몫까지 사랑 표현하는 아들이 되는 게 새해 목표 중 하나”라며 미소지었다.

여성동아 2008년 1월 529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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