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영어 발음이 나쁜 건 외국에 한 번도 못 나가봤기 때문이야’라고 생각하는 분들이 많죠. ‘아주 어릴 때 영어를 배우지 않으면 절대 원어민처럼 발음할 수 없어’라고 생각하는 분도 많고요. 그런 분들께 저는 ‘저를 보시라’고 말합니다. 저는 외국에서 공부한 적이 없고, 어릴 때 영어를 배우지도 않았는데 영어로 미국 아이들을 가르치고 있거든요. 누구도 제 발음을 이상하다고 하지 않아요.”
경기도 평택의 한 외국인 학교에서 초등학생들에게 영어로 우리나라 역사를 가르치고 있는 최지규씨(46). 그는 영문학과 출신이 아니고 해외유학 경험도 없다. 하지만 혼자 익힌 영어 실력으로 지난 88년 외국인 학교 교사가 돼 20년째 근무하고 있다. 그의 이력이 외부에 알려진 건 최씨가 최근 인터넷 개인방송(http://afreeca.pdbox.co.kr/gkyuya)을 통해 자신만의 영어공부 노하우를 전수하고 나섰기 때문. 인터넷에 접속하면 무료로 들을 수 있는 그의 강의는 꾸준히 수강하는 이가 6천 명이 넘을 만큼 인기를 모으고 있다. 최씨는 “영어를 제대로 배운 적 없는 사람이 스스로 찾아낸 영어공부법에 많은 이들이 관심을 갖는 것 같다”며 “‘나 같은 사람도 이렇게 하면 영어가 되더라’라는 걸 솔직하게 알려줘 다른 이들도 영어 스트레스에서 벗어나게 해주고 싶다”고 말했다.
영어공부에서 가장 중요한 건 발음, 발음기호 공부하면 한국에서도 원어민 발음 익힐 수 있어
최씨가 영어공부에 있어 가장 중요하다고 강조하는 것은 발음. 그는 늘 수강생들에게 “발음이 안 되면 절대 외국인과 대화할 수 없다”고 말한다.
“냉정하게 말해서 우리가 영어라고 믿는 언어는 미국인들이 쓰는 진짜 영어가 아니에요. 미국 상점에 가서 점잖은 목소리로 ‘아주머니, 델몬트 오렌지 하나 주세요’라고 말해보십시오. 그들은 절대 못 알아들어요. 호들갑스럽게 느껴질지라도 ‘아주머니, 델만트 어렌지 하나 줄 수 있어요?’라고 해야 비로소 알아듣죠. 그게 영어예요. 영어를 제대로 공부하려면 ‘한국식 영어’의 틀을 깨야 합니다.”
최씨는 서울시립대 조경학과를 졸업한 자신이 외국인 학교 취업시험에서 명문대 영문학과 출신들을 제치고 채용된 것도 발음 덕분이었다고 말했다.
“저는 영문학을 전공하지 않았기 때문에 원래 채용 대상도 못 됐어요. 그런데 꼭 그 학교에서 일하고 싶어 미국인 교장에게 직접 전화를 걸었죠. 그가 제 얘기를 듣더니 ‘혹시 미국에서 살다 왔느냐’고 묻더군요. 발음이 원어민 같다고요. 그러고는 일단 서류를 한 번 내보라고 했어요. 그때만 해도 ‘과연 내가 될까’ 했는데 몇 차례 시험을 치른 뒤 합격 통보를 받았죠.”
최씨는 “나중에 알고 보니 지원자를 대상으로 한 강의 테스트에서 내가 압도적으로 좋은 성적을 받았더라”며 “모든 지원자 가운데 내 발음이 가장 자연스럽고 정확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제가 처음부터 영어를 잘한 건 아니에요. 대학에 입학할 때까지만 해도 영어에 거의 관심이 없었죠. 그런데 어느 날 미국 컨트리 음악에 흠뻑 빠진 거예요. 존 덴버, 케니 로저스 같은 미국 가수들의 음악을 듣기 위해 AFKN을 보기 시작했고, 그때 처음으로 영어를 공부해야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그래서 그의 영어공부 첫 단계는 팝송 가사를 들리는 대로 우리말로 받아 적은 뒤 똑같이 흉내 내는 것이었다고 한다. 미국 방송을 보다가 컨트리 음악 관련 뉴스가 나오면 앵커들의 억양이나 몸짓 등도 그대로 따라했다. 무슨 뜻인지는 잘 몰라도 자신이 좋아하는 음악에 대한 얘기라는 사실이 그저 좋았다고.
“심지어 어머니가 ‘너 미쳤냐’고 하실 정도였어요(웃음). 군 제대 뒤부터 본격적으로 영어공부를 시작했는데, 토플 같은 영어 점수를 받으려는 게 아니었기 때문에 학원엔 안 다녔어요. 혼자 하루에 3~4시간씩 미국 방송을 보며 공책에 받아쓰기를 했죠. 처음에는 빠른 원어민의 발음을 다 받아 적을 수 없어 들리는 대로 한글로 쓰기도 했는데, 두세 달 동안 계속하니 차츰 영어 받아쓰기가 익숙해지더군요.”
그는 듣기를 연습하면서 동시에 발음도 공부했다. 홀로 영어를 익힌 그의 발음 공부법은 사전에 나오는 발음기호를 정확히 익히는 것. 최씨는 “우리나라 사람들이 영어를 공부할 때 가장 잘못하고 있는 것 가운데 하나는 발음기호를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것”이라며 “실제로는 발음기호가 영어공부에 있어 가장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예를 들어 영어단어 ‘bad’와 ‘bed’를 우리나라 사람은 거의 똑같이 발음하잖아요. 하지만 전혀 달라요. ‘bad’는 입을 좌우로 찢듯이 강하게 ‘뻬에드’라고 해야 하고, ‘bed’는 입을 벌리지 않은 상태에서 자연스럽게 ‘베드’라는 느낌으로 해야죠. 이런 차이점이 다 발음기호에 나와 있어요.”
영어할 때만큼은 그 나라 사람처럼 행동하는 ‘영어적 성격’ 가져야
최씨는 “‘b는 ㅂ, e는 ㅔ’ 하는 식으로 우리말을 바탕에 두고 영어를 하려고 하면 절대 외국인과 대화를 나눌 수 없다”고도 했다. 우리말과 영어는 같은 발음이 단 하나도 없는 전혀 다른 언어이기 때문이라고.
“미국 사람들이 밥 먹을 때 한번 가만히 살펴보세요. 그들은 얘기를 많이 나누는데도 음식이 거의 입 밖으로 튀어나오지 않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조금만 얘기해도 서로 밥알이 튀죠. 왜 그럴까요? 우리와 미국인들은 호흡법이 다르기 때문이에요. 영어를 할 때는 소리를 밖으로 뿜어내지 말고 입 안에서 단속해야 합니다. 저는 가끔 ‘영어 발음을 잘하려면 죽을 때까지 숨을 멈추라’고 말하기도 하는데, 입 안의 모든 근육에 힘을 줘서 소리를 잡아주라는 뜻이에요. 그걸 철저하게 훈련하고 나면 한국어를 발음할 때와는 전혀 다른 구조와 호흡으로 영어를 말할 수 있게 되죠.”
그래서 최씨는 “영어는 절대 머릿속으로 읽으면 안 된다”고 강조한다. “일단 발음기호를 정확히 익힌 뒤 단어 하나하나를 그에 맞게 말하는 훈련을 계속해야 비로소 진짜 영어가 시작된다”는 것이다.
최씨가 또 하나 강조하는 것은 ‘영어적 성격’을 갖는 것. 그는 영어권 사람처럼 말하고 행동하는 것을 ‘영어적 성격’이라고 불렀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모델’을 ‘마들’이라고 발음하는 사람을 보면 수군거리고 비아냥대는 경향이 있죠. 영어를 쓸 때 외국 사람처럼 몸을 크게 움직이는 걸 이상하게 생각하고요. 하지만 영어를 영어대로 쓰는 건 사대주의나 문화 추종이 아니에요. 오히려 외국인과 소통하겠다고 영어를 배우면서, 그걸 그들이 알아듣지도 못하는 방식으로 얘기하는 게 잘못된 거 아닐까요?”
최씨는 영어는 시험 과목이 아니라 의사 소통을 위한 도구라고 말한다. 따라서 필요를 느낄 때 필요한 만큼만 익히면 된다는 게 그의 지론. 발음을 강조하는 것도 영어가 필요할 때 사용하려면 반드시 필요한 요소가 바로 발음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는 두 자녀인 중학교 3학년생 윤경(15), 초등학교 6학년생 종원(12)에게도 이 같은 철학을 그대로 적용하고 있다고 한다. 영어를 공부하라고 하는 대신 종종 자신이 근무하는 외국인 학교에 데리고 가 자연스럽게 영어의 필요성을 느끼게 해주고 있는 것이다.
“아이를 일반 영어학원에 보내면 아마 수준을 테스트한다며 문법 문제를 풀게 할 거예요. 그러고 나서 ‘관계대명사를 모르고 부정사 사용법도 엉망이구나. 이런 식으로 하다가는 원하는 대학에 못 가겠다’ 하겠죠. 전 그렇게 공부하는 아이는 영어를 잘할 수 없다고 생각해요. 스스로 영어의 필요성을 느끼고 철저하게 언어로서 접근해야만 외국인과 대화하는 ‘진짜’ 영어를 배울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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