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유치원 안 갈래.” “왜?” “피곤하니까….” 어느 날 아침 태욱이가 유치원을 가지 않겠다며 고집을 피운다. 그러고 보니 요즘 태욱이가 피곤하다는 말을 부쩍 자주 하는 것 같다. 거실에 잔뜩 장난감을 어질러 놓고 놀다가는 “이제 정리해야지~” 하면, “근데 아빠~ 나~ 어~ 힘이 없어”라며 갑자기 어깨를 축 늘어뜨린다. ‘지금까지 그렇게 신나게 놀더니 뭐가 힘이 없어?’라고 따지고 싶지만 아이를 다그치기보다는 설득하는 게 좋을 것 같아 참는다. 한편으론 매일 아침마다 잠에 취해 흐느적거리는 아빠 엄마 모습을 보니 그럴 수 있겠다 싶은 생각에 미안한 마음도 든다.
그래서 이 달에는 아이에게 힘을 길러줄 수 있는 놀이를 해보기로 했다. 놀이를 지도해주는 현득규 선생은 준비물 없이도 할 수 있는 ‘맨몸놀이’를 알려줬다. 지금까지 아이들과 하던 맨몸놀이라면 ‘비행기 태우기’ ‘목마 태우기’ ‘아빠 등 타고 말놀이 하기’ 등과 움직이기 귀찮아 가만히 있고 싶을 때 즐겨 하는 ‘아빠 배 위에서 뛰어놀기’ 정도였다. 이런 놀이는 아이들의 근력을 길러주기보다는 아빠의 힘을 빼는(?) 효과가 있다. 이번에 배울 맨몸놀이들은 아빠와 스킨십을 하면서 친밀감을 높이고 아이들 근력도 향상시킬 수 있다고 하니 기대가 됐다.
소달구지 몰기 “으ㅆㅑ으ㅆㅑ~ 앞으로 쭉쭉!”
처음 시작한 ‘소달구지 몰기’는 아빠가 아이의 다리를 잡고 호흡을 맞추며 앞으로 나아가는 것으로 아이의 상체 근력을 키워주는 효과가 있다. “자, 태욱아, 소달구지 놀이를 해보자. 소달구지는 소가 끄는 밭을 가는 도구야. 우선 아빠 앞에 엎드려봐.” 도시에서만 자라 소달구지를 알 리 없는 태욱이가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바닥에 엎드린다. 태욱이의 발목을 잡고 들어 올리자 힘이 드는지 버둥거렸다. “가만히 있으면 돼. 그 상태에서 팔을 움직여서 앞으로 가는 거야.” 태욱이가 팔을 움직이지 못해 내가 팔에 힘을 줘 앞으로 밀어줬더니 태욱이가 한쪽 팔을 떼 조금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래, 그렇게 앞으로 가는 거야.” 한 두 번의 시행착오 끝에 방법을 익힌 태욱이가 슬슬 재미를 붙였다. “으ㅆㅑ으ㅆㅑ!” 하는 구령도 제법 넣어가며 앞으로 나간다. 오빠가 하는 것을 옆에서 지켜보던 태연이가 자기도 한다고 나선다. 설마 할 수 있을까 싶었는데 금세 따라 한다. 옆에 서 있던 태욱이가 태연이를 거든다. “태연아, 여기 오빠 있는 데까지 와봐. 오면 오빠랑 하이파이브 해.” 어디서 그런 말은 배웠는지…. 태연이가 힘을 내 태욱이한테까지 가자 둘은 손뼉을 마주치며 좋아한다. 아이가 다리를 쭉 펴지 못하거나 앞으로 나아갈 때 균형을 잡지 못하고 몸이 좌우로 많이 흔들리면 아빠가 발목을 힘껏 잡아줘야 한다. 어느 정도 속도가 나 동생을 쫓아가게 하는 식으로 움직이는 목표를 정하니 더욱 신나한다. 처음에 별 재미를 느끼지 못하면 목표 지점에 아이가 좋아하는 장난감이나 간식을 놓고 게임을 하는 식으로 유도해도 좋을 것 같다.
■ 놀·이·방·법
1 아이가 아빠 앞에서 양손으로 바닥을 짚고 엎드린다.
2 아빠는 양손으로 아이의 발목을 잡는다.
3 아이는 두 팔의 힘을 이용해 앞으로 나간다.
오뚝이 쓰러뜨리기 “아빠를 쓰러뜨려라!”
다음으로는 ‘오뚝이 쓰러뜨리기’ 놀이를 했다. “아빠는 이제 오뚝이야. 너희들이 아빠를 밀어서 넘어뜨리는 거야.” “좋아~.” 아빠를 넘어뜨리다니, 생각만 해도 기분이 좋은지 아이들이 금방이라도 달려들 기세다. “시작!” “끙~” 하며 아이들이 힘을 주는데, 어라, 생각보다 금방 넘어져버렸다. 두 발을 모으고 상체를 굽히고 가만히 있으니 생각보다 쉽게 중심이 흐트러진다. 아이들은 신이 났다. “자, 아빠는 오뚝이니까 금방 다시 일어나는 거야.” 바닥에 부딪혀 아픈 엉덩이를 아이들 모르게 문지르며 다시 자세를 잡았다(조심하지 않으면 상당히 아프므로 두툼한 이불을 깔아놓고 하든지, 아프지 않게 요령껏 살짝 쓰러지는 법을 익혀야 할 것 같다). 너무 쉽게 넘어지면 아이들에게 운동이 되지 않을 것 같아 중심을 유지하기 쉽도록 발을 약간 넓게 벌렸다. 아이들이 이번엔 서로 반대편에서 아빠를 밀려는 모양이다. “태욱아, 태연이랑 같은 쪽에서 밀어야 힘을 합쳐서 아빠를 쓰러뜨릴 수 있어.” 아이들이 또다시 힘을 합쳐 나를 밀었고, 이번엔 아프지 않게 요령껏 살짝(?) 넘어졌다.
아빠가 계속 넘어지는 게 안쓰러웠던지 태욱이가 “이번엔 아빠가 나를 쓰러뜨려봐요!” 하고 몸을 숙인다. “정말?” 툭 하고 살짝 손만 댔을 뿐인데 자기가 알아서 쓰러지면서 뭐가 좋은지 까르르 웃는다. 아이들의 웃음은 정말 연구 대상이다. 오뚝이 성능이 부실(?)하다거나, 아이들이 힘이 좋아 놀이가 싱겁다면 이를 응용해 ‘피라미드 쓰러뜨리기’를 해도 좋다고 한다. 아빠가 손바닥과 무릎을 바닥에 대고 엎드리면 아이가 밀어 넘어뜨리는 놀이로 오뚝이 쓰러뜨리기보다는 안정감 있게 아빠가 자세를 취할 수 있다.
■ 놀·이·방·법
1 아빠는 허리를 숙여 양손으로 발목을 잡는다.
2 아이는 아빠 옆에 서고 시작신호에 맞춰 아빠를 힘껏 밀어 넘어뜨린다.
발바닥 씨름 “누구 힘이 더 셀까?”
‘발바닥 씨름’도 재미있는 놀이였다. “태욱아, 아빠랑 누구 힘이 더 센지 씨름 한번 해볼까?” TV에서 씨름하는 모습을 본 적이 있는 태욱이가 얼른 일어나 나에게 다가왔다. “이번 씨름은 발바닥으로 하는 거야. 뒤로 밀리는 사람이 지는 거고.” 시작을 외치며 함께 발바닥에 힘을 줬더니 태욱이가 뒤로 쭉 밀려났다. “태욱아, 팔을 몸 뒤로 짚고 팔에 힘을 주면서 엉덩이와 다리를 앞으로 밀어봐.” 힘을 주는 요령을 알려줬더니 태욱이가 곧잘 힘을 낸다. 이 놀이는 힘을 조절하면서 슬쩍 뒤로 밀리는 척(?) 해주는 아빠의 연기력이 필요하다. 힘을 줬다 뺐다를 반복하면서 밀고 당기기를 했더니 태욱이가 끙끙대며 열심이다. 태욱이가 힘을 세게 줄 때에 맞춰 엉덩이를 뒤로 살짝 빼며 밀리면 아이가 웃으며 좋아한다. “아빠 내가 이겼어요!”
1 아빠와 아이가 두 다리를 쭉 펴고 앉아 발바닥을 서로 마주 댄다.
2 시작 신호에 맞춰 다리에 힘을 주면서 발바닥을 이용해 서로의 몸을 뒤로 밀어낸다.
감자 캐기 “두 팔로 힘껏 감자를 캐요~”
마지막 놀이는 ‘감자 캐기’다. “태욱아, 전에 유치원에서 감자를 심었잖아. 이제 감자가 다 자라서 캐는 거야. 감자를 캘 때는 두 손으로 꽉 잡고 세게 잡아당겨야 해.” 태욱이와 태연이가 아빠 발 하나씩을 차지하고 맞은편에 앉았다. 다리는 완전히 펴지 않고 살짝 오므리고 있다가 아이들이 잡아당기는 걸 지켜보면서 조금씩 들어올린다. 끙끙대며 감자를 캐는(다리를 들어올리는) 모습이 귀엽다. “아빠, 감자 아직 안 나왔어요?” “어, 조금만 더 힘을 내봐~.” 놀이를 할 때 아이들이 아빠 발을 놓치면 뒤로 넘어질 수도 있으니 아이들 뒤쪽으로 이불이나 베개를 깔아놓으면 좋을 것 같다.
■ 놀·이·방·법
■ 놀·이·방·법
1 아빠는 바닥에 앉아 두 다리를 뻗는다.
2 아이는 아빠의 발목을 잡고 시작 신호에 맞춰 잡아당긴다.
놀이를 마치고…
태욱이가 이 달부터 유치원에서 축구를 배우고 있다. 미술과 축구 중 선택하는 것이었는데 태욱이가 축구를 하겠다고 했다. 나와 아내도 아이의 자신감을 키워주자는 생각에 선뜻 동의했다. 그런데 체구가 큰 형이나 친구들 틈에서 태욱이가 힘들지 않을까 살짝 걱정이 되는 것도 사실이다. 이번에 아빠와 함께한 맨몸놀이가 도움이 되면 좋겠다. 튼튼해진 다리로 골을 넣고 기뻐하며 달려올 태욱이의 모습을 조만간 볼 수 있게 되기를 기대해본다.
|
||||
-
추천 0
-
댓글 0
- 목차
- 공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