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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OPLE

궁금한 그녀

김미화

‘재혼 후 달라진 일상, 새롭게 느끼는 행복’

글·김명희 기자 / 사진·조영철 기자, 여성동아 사진파트

2007. 09. 22

올해 초 성균관대 윤승호 교수와 재혼한 방송인 김미화. 서로의 상처를 보듬고 네 아이의 부모로 새 출발을 한 그의 신혼집에 최근 3천 년 만에 한 번씩 핀다는 상서로운 꽃 우담바라가 피어 화제가 됐다. 집안에 좋은 기운이 넘치는 것 같다는 그가 재혼 후 달라진 생활과 소소한 행복에 대해 들려주었다.

김미화

흰색 상의에 검정색 하의. 시선이 상하로 분산돼 작아 보이기 때문에 키가 작은 사람은 일반적으로 피하는 옷차림이다. 여의도 한 카페에서 만난 김미화(43)는 용감하게도(?) 흰색 재킷에 검정색 스커트 차림이었다. 153cm, 대한민국 여성의 평균 신장을 밑도는 그는 그러나 별로 작아 보이지 않았다. 키보다 웃는 모습에 눈이 먼저 갔기 때문이다. 지난 1월 윤승호 교수(48)와 재혼한 그는 이전보다 한결 편안해 보였다. 몸무게도 다소 늘었다고 한다. “예뻐진 것 같다”고 인사를 건네자 그는 “그 얼굴이 그 얼굴이죠 뭐”라며 손사래를 치면서도 “많이 웃어서인지 좋아졌다는 말을 자주 듣는다”고 했다.
정말 그에게는 요즘 웃을 일만 있는 듯하다. 얼마 전에는 경기도 용인 산자락에 자리 잡은 그의 신혼집에 ‘전설의 꽃’ 우담바라가 피었다고 한다. 3천 년 만에 한 번씩 피는 상서로운 꽃이기에 보는 사람에게도 행운이 깃든다는 우담바라를 처음 발견한 이는 바로 윤승호 교수.
“남편이 6월 말 어느 새벽에 방충망을 열고 뒤뜰에 나가다가 발견했어요. 원래 시력이 좋지 않은 편인데다가 꽃은 먼지처럼 작아 알아보기도 쉽지 않았을 텐데 그건 눈에 띄었다고 하더라고요.”
진짜 우담바라를 본 사람이 없기에 그의 집에 핀 꽃이 진짜인지, 아닌지 여부를 확인할 길은 없다. 그리고 일반적으로 곤충학자들은 우담바라라고 알려진 꽃이 실은 꽃이 아니라 풀잠자리 알일 가능성이 높다고 말한다.
“진짜 우담바라가 아니면 어때요. 뭐가 됐든 집 앞에 그렇게 예쁜 게 있다는 게 고마운 일이죠. 사실 우리 주변엔 그런 아름다운 것들이 흔하게 널려 있는데 미처 보지 못하고 지나가는 게 아닌가 싶기도 해요. 다행히 저희 집은 산속에 푹 파묻혀 있어 자연을 가까이 느낄 기회가 많아요. 하늘을 보면 별이 집 위로 쏟아질 것 같고, 불을 끄면 반딧불이가 날아다니는 것도 보이고…(웃음). 주말에 한 번씩 집에 다녀오면 기분이 정말 좋아져요.”

처음에는 ‘아저씨’ ‘아줌마’였던 호칭이 이제는 ‘엄마’ ‘아빠’로 바뀌어
우담바라는 어쩌면 조심스럽게 행복을 만들어가는 이 부부에게 자연이 준 선물일지도 모른다. 이 부부는 재혼으로 인해 아이들이 느낄지도 모를 혼란을 줄이기 위해 주말 부부로 지내고 있다. 그는 딸들과 서울에서, 윤 교수는 어머니와 함께 용인에서 살고 있는데 그가 주말마다 용인으로 내려간다고. 김미화는 첫 결혼에서 딸 둘을, 윤 교수는 대학생 남매를 두었다.
“윤 교수와 제가 오랫동안 알고 지냈고 가족들끼리도 자주 왕래를 해왔기 때문에 아줌마, 아저씨로는 만점을 받고 출발했지만 엄마, 아빠로는 준비가 덜된 상태였어요. 어른들이야 그런 상황을 이해할 수 있지만 아이들에게는 스트레스가 될 수 있을 것 같아 번거롭더라도 저희가 오가는 게 낫겠다고 생각했어요. 비록 느슨한 형태로 시작하긴 했지만 이제 서로 자연스럽게 가족이라는 공감대가 만들어지고 있어요. 처음엔 ‘아저씨’ ‘아줌마’로 부르던 호칭도 이젠 ‘엄마’ ‘아빠’로 바뀌었고요.”

김미화

김미화는 지난 1월 성균관대 윤승호 교수와 서울의 한 식당에서 조촐하게 결혼식을 올렸다. 키가 170cm를 훌쩍 넘는 김미화의 큰딸 유림양은 지난 3월 디자이너 이영주씨의 패션쇼 무대에 서기도 했다. ‘내가 행복한 사람인지, 다른 사람에게 도움이 되는 사람인지’ 스스로에게 되묻고 긍정적 방향으로 나아가려 노력한다는 김미화,(왼쪽부터 차례로)


요즘 그의 서울집에는 반가운 가족이 한 명 늘었다. 한국재활복지대학 음악과에 재학 중인 아들이 드럼을 배우기 위해 그의 집에 머물고 있는 것. 그는 정신지체라는 장애를 가지고 있지만 성격이 밝은데다 음악에 대한 열정으로 똘똘 뭉친 아들과의 하늘이 맺어 준 인연에 감사하다고 말한다.
“굉장히 맑아요. 배고프면 혼자 밥도 차려 먹고 라면도 끓여 먹고… 생활하는 데 전혀 불편이 없어요. 평소엔 기숙사 생활을 하는데 요즘은 방학이라 저희 집에 머물면서 드럼 학원에 다니고 있어요. 음악을 좋아할 뿐 아니라 재능도 있어 내심 훌륭한 음악가가 되지 않을까라는 기대를 하고 있어요. 유림이, 예림이도 열심히 노력하는 오빠를 보면서 배우는 바가 많고요.”
웃는 눈매와 입 모양 등 키를 제외하고는 엄마를 쏙 빼닮은 그의 큰딸 유림양(15)은 얼마 전 디자이너 이영주씨의 패션쇼에서 모델로 서 화제가 됐다. 또래보다 큰 키(172cm)가 콤플렉스였던 유림양은 자세 교정을 위해 워킹 연습을 시작했는데 무대에 선 다음부터는 모델 꿈을 갖게 됐다고 한다.
“어릴 때부터 크게 났어요. 친구들이랑 키를 맞추려고 자꾸 움츠리다 보니 어느 날부터인가 자세가 굽더라고요. 주변에서 모델 워킹이 자세 교정에 도움이 된다고 해서 모델센터에 등록해 4개월 정도 워킹을 하게 했죠. 그 뒤로는 재미가 있었는지 ‘엄마! 나 모델 되면 어떨까’라고 묻더라고요. 때마침 디자이너가 유림이를 쇼에 세워보자고 해서 한번 시켜봤어요. 김미화 딸이라는 걸 내세우지 않고 그냥 경험 삼아 해보자는 거였는데, 마치 모델 데뷔한 것처럼 알려져 조금 쑥스럽네요.”

“아이들에게 악역은 엄마, 웃음을 주는 사람은 아빠”
유림이는 요즘 “영어와 미술 공부를 끝내주게 열심히 하는 중”이라고 한다. 여기에는 자신이 꿈꾸는 세계적인 모델이 되려면 영어와 미적 감각이 필수라는 윤 교수의 조언이 큰 몫을 했다고 한다. 또 어려서부터 읽고 쓰기를 좋아하던 예림이(13)는 언어 방면에 소질이 있는데 다행히 윤 교수의 큰딸이 대학에서 스페인어를 전공하고 있는 터라 예림이 공부에 도움이 될 수 있을 것 같다고.
“아이들이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못하게 될 수도 있고 그 일을 한다 해도 성공하지 못할 수도 있어요. 그렇게 된다 해도 좌절하지 않고 즐겁게 해봤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행복하다는 걸 일깨워주고 싶어요. 무엇이 되느냐보다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즐겁게 하는 게 인생에 더 도움이 되거든요. 인생은 자기가 주인공이니까. 저도 어머니 반대를 무릅쓰고 개그맨이 됐고 재혼도 제가 행복해지려고 했어요. 그런데 만족하면서 잘 살고 있잖아요(웃음).”

김미화

인터뷰 중 그의 집에서 전화가 왔다. 유림이가 MP3플레이어를 사러 갔다가 시간을 지체하는 바람에 영어과외에 늦었다는 것. 유림이가 “선생님이 기다리다가 그냥 갔는데 어떡하면 좋겠느냐”고 솔직하게 털어놓자 그는 “빨리 선생님께 전화를 걸어 사과하라”며 야단을 쳤다.
“‘엄마가 웃기는 사람이라 아이들도 웃기네’라는 소리를 듣지 않으려고 아이들을 엄하게 키웠어요. 때문에 우리 아이들은 어디 가서 버릇없이 굴지 않을 거라는 믿음이 있었는데 요즘엔 아이들이 사춘기에 접어들어서인지 조금씩 제 믿음에서 벗어날 때가 있어요. 친구 만나 노는 거 좋아하고, 학교에 지각도 하고…. 그럴 때마다 무엇을 잘못했는지 확실하게 짚고 넘어가요. 아이들에게 악역은 제 담당이죠. 남편은 아이들을 웃기고 풀어 주는 역할을 주로 하고요(웃음).”
결혼 후 가장 좋은 점은 아이들 문제든 또는 살면서 부딪히는 문제든, 의논할 누군가가 있다는 점이다. 자상하고 배려가 많은 남편은 그의 든든한 의논 상대다.
“그동안 혼자서 모든 일을 결정해오다 보니 이젠 제게도 의논할 상대가 있다는 것을 잊고 있었어요. 그런데 어느 날 아이들 교육문제에 관해 ‘어. 그건 이렇게 하기로 했어’라고 무심코 남편에게 말을 꺼냈더니 ‘왜? 나도 있는데…’라며 아쉬워하더라고요. 남편은 항상 제 이야기를 들어주려고 귀를 열고 있었는데 제가 무심했던 거죠. 그다음부터는 어떤 일이든 남편이 참여할 수 있도록 여백을 남겨둬요.”



“내가 다른 사람에게 도움이 되는 사람인지 끊임없이 돌아보고 반성해요”
현재 SBS 정보 프로그램 ‘김미화의 U’, MBC 라디오 ‘김미화의 세계는 그리고 우리는’의 진행을 맡아 방송인으로 자리매김한 그는 최근에는 과거 ‘쓰리랑 부부’ 시절 캐릭터인 ‘순악질 여사’의 모습으로 분해 오락 프로그램에 출연하는 등 활동 영역에 제한을 두지 않고 있다.
“주변에서는 방송인으로 이미지를 굳혀가는데 굳이 망가지는 모습을 다시 꺼내보일 필요가 있느냐고 만류하는 사람도 있지만 저는 별로 상관하지 않아요. 찰리 채플린, 배삼룡·서영춘 선생님을 존경해서 어렸을 적부터 꼭 개그맨이 되고 싶었고 저 자신이 망가지는 모습으로 사람들을 웃기고 인기를 얻었는데 이제 와서 폼 나게 행동한다고 달라질 게 뭐가 있겠어요.”
그의 꿈은 오랫동안 현장에서 뛰는 것이라고 한다. 매니저나 코디네이터 없이 스스로 스케줄을 관리하고 동대문에서 옷을 사 입는 건 사람들과 함께 호흡하며 현장 감각을 잃지 않기 위한 노력의 일부분이다.
“세상이 빠르게 변해간다고 하지만 저는 사람들 사이의 정, 끈끈함, 그런 아날로그적인 것이 좋더라고요. 현장에 오래 있으려면 후배들한테 잘 보여야 하는데 그러려면 아무래도 제가 직접 부대끼는 게 낫지 않겠어요(웃음).”
가난했던 어린 시절, 전남편의 폭행으로 얼룩졌던 매끄럽지 못한 결혼생활… 그에게는 작은 키만큼이나 감출 수 없는 몇 가지 아픈 상처가 있다. 시간이 지나 희미해질 수도 있는 일이지만 그는 오히려 솔직하게 내보이고 당당하게 극복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얼마 전 MBC ‘황금어장’ ‘무릎팍 도사’에 출연했던 그는 과거 ‘쓰리랑 부부’ 시절 과로로 임신 6개월 만에 유산을 했던 아픔도 털어놓았다. 이러한 그의 솔직함은 비슷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사람들에게 때로는 용기가 되고 때로는 위로가 된다.
“저 자신은 그렇게 굴곡 많은 삶이었다고는 생각지 않아요. 남들이 못해 본 여러 가지 경험을 했지만 좋은 일은 오래 기억하고 나쁜 일은 빨리 잊어버리려 노력하거든요. 옛날에 썼던 일기를 보면 ‘그때는 내가 견딜 수 없을 만큼 아팠구나, 이렇게 견딜 수 없을 만큼 힘든 적도 있었는데 지금 이런 문제 정도야 아무것도 아니지’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내가 행복한지’, ‘내가 다른 사람에게 도움이 되는 사람인지’ 끊임없이 돌아보고 긍정적인 방향으로 나아가기 위해 노력한다는 김미화. 그는 여러 면에서 미국 인기 토크쇼 진행자 오프라 원프리와 닮았다. 오프라 윈프리는 미국 주류 사회에서 환영받지 못하는 흑인인데다가 예쁘지 않은 외모, 미혼모 등의 핸디캡을 안고 있었지만 솔직함, 따듯함을 무기로 최고의 토크쇼 진행자로 성공했고 선행을 많이 하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당당함, 그리고 언행일치하는 점에서 오프라 윈프리는 정말 존경할 만해요. 저는 그만큼은 못하죠. 그만큼 많이 벌지는 못하니까(웃음). 하지만 버는 만큼, 그리고 얻는 만큼 나누면서 살 생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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