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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eleb 이 부부가 사는 법

남편 외도로 12년간 별거하다 재결합한 부부 김희라·김은정

글·김유림 기자 / 사진·조영철 기자

입력 2007.09.22 13:04:00

지난 2001년 한 TV 프로그램에 가산을 모두 탕진하고 홀로 병마와 싸우는 모습이 공개돼 안타까움을 샀던 중견배우 김희라. 당시 방송이 끝나고 아내와 재결합한 그는 현재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영화에도 출연할 정도로 건강을 되찾아가는 중이다. 김희라·김은정 부부에게서 다시 행복을 되찾기까지 고된 여정을 들었다.
남편 외도로 12년간 별거하다 재결합한 부부 김희라·김은정

5년 전 12년간의 별거생활을 끝내고 재결합해 화제를 모은 김희라(60)·김은정(55) 부부. 두 사람은 지난 2001년 모든 가산을 탕진하고 고혈압과 당뇨병으로 투병생활을 하는 김희라의 모습이 TV에 방영되면서 극적으로 다시 만날 수 있었다. 당시 김희라는 집도 없이 여관방을 전전하며 참담한 생활을 하고 있었는데, 이런 남편의 소식을 접하고 미국에서 돌아온 김은정씨가 한동안 친구 집에 머물며 남편과의 관계를 고민하다 이듬해 세상을 뜬 친정아버지의 유언을 따라 남편을 용서하고 받아들인 것이다.
오랜 별거생활을 청산하고 지인들의 도움을 받아 마련한 작은 집에서 제2의 인생을 시작한 두 사람은 그 무렵 둘째 아들 기주씨가 미국 시민권을 포기하고 한국에 들어와 군에 입대하면서 12년 만에 다시금 가정을 꾸리게 됐다. 딸 나리씨는 현재 미국에 머물며 디자인 공부를 하고 있다고 한다.
서울 서초동에 자리한 김희라·김은정씨의 집에 들어서자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건 고풍스런 느낌의 가구들이었다. 집 안에 있는 모든 살림살이는 31년 전 김씨가 결혼할 때 장만한 것으로 90년 아이들과 함께 유학길에 오를 때 미국으로 가져갔다가 5년 전 한국으로 돌아오면서 다시 가져온 것들이라고 한다. 가족의 부유했던 지난날을 떠올리게 하는 고급스러운 가구들은 오랜 세월 흠집 하나 없이 깨끗하게 보존돼 있었다.

대학 강단에 서고 영화에도 출연할 정도로 건강해진 남편
거실 평상에 앉아 담배를 피우고 있던 김희라는 예전에 비해 한결 건강해진 모습이었다. 현재 고혈압과 당뇨 약을 복용 중이지만 하루에 다섯 개비는 피워도 좋다고 아내에게 허락을 받았다고 한다. 술도 한자리에서 석 잔까지는 마실 수 있다고. 2001년 지병이 악화돼 재기가 불가능해 보였던 그가 현재 영화에 출연할 정도로 건강이 호전된 것은 아내 김씨의 보살핌 덕분이다. 김희라는 지난 5월부터 석 달 동안 영화 ‘묘도야화’를 촬영했고, 2년 전부터는 전북과학대에서 ‘영화연기론’을 가르치고 있다.
“예전에는 촬영장에 얼씬도 못하게 했는데, 이제는 제가 운전하는 차만 타려고 해 어디든 붙어 다녀요(웃음). 약도 시간에 맞춰 먹어야 하기 때문에 항상 옆에서 챙겨주는 사람이 있어야 하죠. 강의는 일주일에 한 번 나가는데 학교까지 거리가 꽤 멀어요. 차로 편도 3시간 반이 걸리는데, 막힐 때면 왕복 10시간이 걸리기도 하죠. 그래도 남편이 워낙 의욕을 갖고 하는 일이라 함께 가는 길이 즐거워요.”
두 사람의 별거생활은 아내 김씨가 90년 유학 중이던 두 아이를 돌보기 위해 미국으로 떠나면서 자연스럽게 시작됐다고 한다. 아이들 교육 때문에 미국행을 결정한 것인데, 그 사이 남편이 다른 데 눈을 돌리면서 가정의 행복이 깨지기 시작했다고.
“처음에는 아이들만 보내놓고 저와 남편은 두 달에 한 번꼴로 미국을 다녀왔어요. 자주 왔다갔다 하다 보니 이럴 바에는 여행사를 차리는 게 낫겠다 싶어서 당시 미주전문 여행사를 운영하기도 했죠. 그러고 1년 정도 지났을까. 갑자기 남편이 아이들끼리만 두는 게 안 좋다며 미국에서 숍 하나를 차릴 정도의 돈을 줄 테니 저도 미국으로 가라고 하더군요. 그렇게 반 강제적으로 한국을 떠났는데, 그 뒤로 남편의 발길이 뜸해지기 시작했어요. 나중에야 여자 때문이란 걸 알게 됐죠.”
남편은 그가 미국에 있는 동안 총 3명의 여자를 만나 동거를 했다고 한다. 물론 김씨도 미국에 있으면서 남편과 관련된 소식을 모두 들었는데, 어느 날은 한국에 있는 친구가 미국으로 전화를 걸어와 그에게 남편의 불륜 행적을 낱낱이 알려주기도 했다고. 하지만 직접 눈으로 확인할 수 없었던 김씨는 매번 애타는 심정으로 남편에게 전화를 걸어 진짜인지 아닌지 확인하려고 했고, 그럴 때마다 남편은 그에게 “사실이 아니다”라는 말만 늘어놓았다고 한다. 결국 김씨는 정확한 증거물을 확보해 수차례 남편에게 제시했지만 남편은 매번 잘못을 시인하면서도 비슷한 일을 끊임없이 되풀이했다고. 그는 “살림을 차린 여자는 셋이지만 나머지 여자들까지 다 세려면 손가락에 발가락까지 꼽아도 모자라다”고 털어놓았다.

남편 외도로 12년간 별거하다 재결합한 부부 김희라·김은정

2001년 고혈압과 당뇨로 재기가 불가능해 보였던 김희라가 다시 건강을 되찾을 수 있었던 건 아내 김은정씨의 보살핌 덕분이다.


급기야 김희라는 95년 국회의원 선거에서 낙선한 뒤 미국에 완전히 발길을 끊었다고 한다. 그때부터 김씨는 물론 아이들도 아버지의 얼굴을 볼 수 없게 됐다. 김씨는 도저히 당시의 상황을 납득할 수 없어 여러 번 한국에 들어왔지만, 의도적으로 그를 피하는 남편을 만나기가 쉽지 않았다. ‘생일에는 만나주지 않을까’ 하는 마음으로 자신의 생일에 맞춰 한국에 들어오기도 했지만 끝까지 연락이 닿지 않아 쓸쓸히 미국으로 돌아간 적도 있다고.
김희라가 가지고 있던 모든 재산을 탕진한 것도 여자문제 때문이었다. 지금까지 은행 업무를 한 번도 본 적이 없을 정도로 돈에 대한 개념이 부족했던 그는 아내가 아닌 다른 여자들과 만나면서 네 채나 있던 집을 다 날리고 무일푼의 신세가 됐다고 한다. 미국에 있는 동안 남편에게 생활비를 받지 못했던 부인 김씨는 지인이 운영하는 보석가게에서 일을 도와주기도 하고 노래교실을 운영하면서 생계를 꾸려나갔다고 한다. 그는 “가정의 행복을 짓밟아버린 남편과 여자들을 생각하면 지금도 불끈불끈 화가 치민다”고 말했다.
“다시 합치기로 한 이상 남편을 다 용서했지만 저도 여자이고, 사람이기 때문에 지금도 문득문득 화가 나요. 특히 마지막 여자는 지난해까지 남편한테 연락을 해왔어요. 제가 ‘다시 한 번 연락하면 당신이 아니라 당신 남편을 찾아가겠다’고 했더니 그 뒤로 연락을 안 하더라고요.”
그는 남편의 건강이 악화된 것도 함께 지냈던 여자가 무리하게 일을 시켰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는 “남편은 평생 ‘No’라는 말을 해본 적이 없을 정도로 마음이 약한 사람”이라며 “나중에 한국에 와서 얘기를 들어보니까 남편이 일해서 번 돈이 모두 그 여자의 주머니로 들어갔더라”며 떨리는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제 인생에 40대는 없어요. 다시는 기억하고 싶지 않은 시간들뿐이죠. 당시 갱년기도 모르고 지나갔어요. 남들은 얼굴이 화끈거린다, 우울증에 걸렸다고 할 때 저는 남편에 대한 분노로 밤을 지새워야했고, 아이들과 하루 하루를 살아가느라 정신이 없었죠. 어느 날은 꿈을 꿨는데 남편이 저를 데리러 올 테니 어디까지 나와 있으라고 하더라고요. 멀리서 남편 차가 보여 다가갔더니 뒷 좌석에는 2명의 여자가 앉아 있었고, 조수석에도 1명의 여자가 앉아 있어서 결국 제가 탈 자리가 없더라고요. 당시의 제 상황을 그대로 보여준 그 꿈이 지금도 잊히지 않아요.”

“얼마 남지 않은 인생 지난날에 대한 보상으로 여기며 행복하게 살고 싶어요”
그가 남편을 용서하고 다시 받아들인 건 가정을 지키겠다는 강한 의지 때문이었다. 그는 아이들한테만큼은 엄마가 끝까지 가정을 지켰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다고 한다.
“사실 저희 친정엄마가 평생을 그렇게 참고 사셨어요. 자식이 저와 언니 말고 아버지가 다른 데서 낳아온 아이가 셋이나 더 있었죠. 그런 어머니를 보고 자랐기 때문에 참고 살았는지도 모르겠어요. 하지만 제 딸만큼은 절대 안 돼요. 늘 아이한테 해온 말이 ‘혹시 결혼해서 엄마와 같은 일을 겪으면 뒤도 돌아보지 말고 헤어져라’예요. 여자가 참고 사는 게 더 이상 미덕인 세상도 아니고, 짧은 인생 단 하루라도 행복하게 사는 게 중요하지 않겠어요.”
김씨가 장시간 가슴 아픈 기억들을 털어놓는 동안 남편 김희라는 그저 침묵을 지킬 뿐 아무런 말을 하지 않았다. 단지 그는 아내가 자신을 다시 남편으로 받아줬을 때의 심정을 묻자 “아내와 아이들에게 미안하고, 고마울 뿐 달리 할 말이 없다”며 담배 한 대를 피워 물었다.
한 번 허물어진 가정을 다시 세우기 위해 부단한 노력을 하고 있는 김희라·김은정 부부. 하지만 두 사람에게는 아직 해결하지 못한 과제가 남아 있다. 2001년 결혼시킨 큰아들 내외와 지금까지 연을 끊고 사는 것. 그는 “이런 일이 생길 줄은 꿈에도 몰랐다”며 크게 한숨을 쉬었다. 사실 큰아들은 기주·나리씨와 이복형제라고 한다. 한 번의 이혼 경험이 있는 김희라가 76년 김씨와 결혼하기 전 전처에게서 큰아들을 낳은 것. 하지만 큰아들은 고2 때까지 김씨가 자신을 낳아준 엄마가 아니라는 사실을 전혀 몰랐다고 한다.
영화배우였던 김은정씨가 결혼과 동시에 연기생활을 그만둔 것도 큰아들 때문이라고 한다. 처음부터 그를 친엄마로 철석같이 믿는 아이에게 온 마음을 다해 잘해주고 싶었던 것. 그는 “촬영장에 나와 있는데 하루 종일 아이가 전화통을 붙들고 울면서 엄마를 찾는 걸 보고 바로 연기활동을 중단했다”고 말했다.
“큰아들이 여섯 살일 때 남편과 결혼을 했어요. 그때는 아이한테 그동안 엄마가 미국에서 공부를 하다가 돌아온 거라고 했죠. 남편을 사랑해서 결혼했기에 큰아들도 친자식처럼 키웠고 아이 역시 고등학생 시절 제가 친엄마가 아니라는 사실을 알고 잠시 방황은 했지만 큰 문제는 없었어요. 그런데 6년 전 결혼과 동시에 연락이 끊어졌어요.”
김씨는 그동안 아이들이 상처를 받을까봐 남편의 외도와 큰아들이 이복형제라는 사실을 숨겨왔다고 한다. 그러다 3년 전 둘째 아들이 군복무를 마치고 돌아왔을 때 가족의 일원으로서 알아야 한다는 생각에 그동안의 일들을 숨김없이 들려줬다고. 둘째 아들은 처음 그 사실을 알고 한동안 아버지에 대한 불편한 마음을 감추지 못했지만 결국 어머니가 아버지를 용서했듯이 자신도 지난날의 일을 다시는 떠올리지 않기로 마음먹었다고 한다.
둘째 아들 기주씨는 2001년 ‘남자의 이름으로’라는 곡으로 가수 데뷔했으나 바로 군에 입대하는 바람에 활동을 활발히 하지 못했고 조만간 2집 앨범을 발표할 계획이다. 김희라는 아들 얘기가 나오자 “음악을 따로 배운 적도 없는데 작사 작곡, 프로듀싱까지 혼자서 다 했다”며 자랑을 늘어놓았다. 또한 기주씨는 앞으로 할아버지(고 김승호)와 아버지의 뒤를 이어 연기자로도 활동할 계획이다.
“처마 밑에서 소나기 피하는 것처럼 짧은 게 인생”이라고 말하는 김은정씨는 “앞으로 얼마 남지 않은 인생을 지난날에 대한 보상으로 여기며 행복하게 살고 싶다”고 말했다. 그런 아내의 손을 지그시 잡으며 멀리 창밖으로 얼굴을 돌리는 김희라. 지금 이 순간 그의 생각도 아내와 똑같다는 걸 느낄 수 있었다.

여성동아 2007년 9월 525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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