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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기사

‘쌍둥이 아빠’ 조인직 기자의 육아일기 11

‘쌍둥이들의 영어공부’

기획·권소희 기자 / 글·조인직‘신동아 기자’ / 사진·문형일 기자

2007. 09. 10

‘쌍둥이들의 영어공부’

“영어 유치원 POO 알죠? 한 달에 1백20만원인데 아이들이 차고 넘친데요.”
“두 돌 지났으면 이제 다 컸네, 이제 슬슬 영어 공부를 시작할 때예요.”
우리 쌍둥이들이 27개월을 넘어설 이즈음, 슬슬 귀에 들리는 말들이다. 유치원을 다니려면 아직 멀었지만 놀이방 같은 데가 없나 하고 알아보면 영어, 영어, 영어 하는 말들을 먼저 꺼낸다. 요즘은 심지어 아파트 단지 안에 있는 간이 놀이방 3세반(만 24개월 이상)에서도 영어를 가르친다고 한다.

‘현실의 문제’로 다가온 영어 교육
아이들이 초등학교 들어갈 때쯤 되어 영어 공부를 시켜야겠다고 마음먹고 있었는데, 요즘들어 갑자기 영어가 ‘현실의 문제’라도 된 듯 다가왔다.
하지만 집에 와서 아이들을 둘러보면, 아직 우리말도 첫걸음 수준이 될까 말까 한데, 영어까지 엄두 내기는 힘들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공연히 유난 떠는 것 같기도 하고, 실제로도 9살, 10살 넘어 영어를 배워도 잘하는 애들이 수두룩한 반면, 3, 4살 때부터 해서 싫증만 늘었다는 애들 이야기도 심심찮게 들을 수 있으니까 말이다.
만 3살도 안 됐는데 영어 학습, 영어 유치원은 ‘오버’임에 분명하다는 판단을 내려가고 있을 즈음, 새로운 발견을 했다. 민정이가 어느 날 ‘텔레토비’ DVD를 보다가 “워언, 투우, 뚜리이, 포오, 화이부, 씩쑤…” 하며 영어로 카운트다운을 따라 하는 것이다. 누가 가르쳐주지도 않았고, 하라고 시키지도 않았는데 입에서 맴돌았던 모양이다. 다른 집 아이들이 영어 단어 몇 마디 하면 ‘그려려니’ 대수롭지 않게 넘겨왔지만 막상 내 아이의 모습을 보니 잔잔한 감동마저 북받쳐왔다. 물론 ‘씩쑤’까지가 한계이긴 했지만….
민정이가 본 ‘텔레토비’ DVD의 내용은 단순하기 짝이 없다. 주인공 4명이 계속 숫자만 센다. 한 번은 빵을 가지고 세고, 또 한 번은 인형을 가지고 세고, 중간에 노래와 율동이 이어지는 식이다. 문득 최근 광고업계 트렌드라는 ‘테크노 트랜스 기법’이 떠올랐다. 단순한 음률의 테크노나 트랜스 장르 음악 속에 같은 단어를 반복해 브랜드를 각인시키는 방법이다. 요즘 어린이들이 따라 부른다는, 샹송을 개사한 대부업체 광고 같은 게 이런 장르라고 볼 수 있다.
문득 기자 초년병 시절 ‘유아 교육’에 관한 시리즈를 준비하며 영어 조기 교육 전문가들을 만나 들었던 게 기억난다. 그때 영어강사인 이보영씨는 영어를 자연스럽게 접하게 하고, 함께 영어 동화책 읽어주기로 자신의 자녀들에게 어느 정도 효과를 보았다는 말을 했었다.
그날 민정이를 보고 나서 영어 유치원은 못보내더라도 영어만큼은 가능하면 노출을 많이 시켜주리라 마음먹었다.

‘쌍둥이들의 영어공부’

영어 동화책과 DVD, 장난감 등으로 자연스럽게 영어를 접하는 민정이와 유정이. 펜으로 누르면 영어단어와 노래가 나오는 장난감 겸용 책을 좋아하는 유정이. 아빠와 함께 영어카드 놀이에 열중하는 유정이.(왼쪽부터 차례로)


생활 속에서 실천하는 쌍둥이들의 영어교육
아이마다 개인 차가 있기는 하지만, 우리 아이들은 영어 오디오북과 동화책에 생각만큼 흥미를 보이지 않았다. 그렇지만 영어 DVD의 경우 가끔 아이들에게 반응이 오는 작품들이 있다. 주로 영상과 스토리라인이 단순한 것들로, 그림을 보고 흥미를 느끼는 게 있으면 소리로도 흥미를 느낀다.
요즘 가끔씩 ‘실험’해보는 영어 단어 카드도 마찬가지다. A4지 반만 한 크기의 두꺼운 종이에 한쪽에는 영어와 그림이 그려져 있고, 한쪽에는 우리말 뜻이 써 있는데, 손으로 그림을 가리키며 입으로는 영어 발음을 해준다.
“따라 읽어보라”며 ‘카’(자동차) ‘플라워’(꽃) ‘벌룬’(풍선)을 연방 이야기해보지만 아이들은 잘 따라 하지 않는다. 그 단어를 말할 때 내가 우스꽝스런 표정을 짓거나 액센트를 과장해 말하거나 단어의 소리 자체가 리드미컬하고 재미있을 때, 그럴 때 아이들은 잘 따라 하고 기억도 쉽게 한다.
‘세서미 스트리트’나 ‘바니’처럼 미국 유아들이 본다는 DVD는 내가 봐도 숨이 차고 어려워 보인다. 심지어 자막을 보면 “미국은 애들도 저런 어려운 단어를 쓰나” 하면서 나 스스로 위축되기도 한다. 근데 유독 어느 일정 부분, ‘바니’를 예로 들어보면 등장인물로 나오는 커다란 공룡과 아이들이 영어로 노래하며 뛰노는 모습이 나오면 우리 애들도 함께 분위기를 타고 싶어한다.
어린 여자아이가 탐험을 떠나는 내용인 ‘도라’ DVD는 한글과 영어를 함께 쓰기 때문인지 아이들의 집중도가 높다. 여자 주인공 도라의 친구인 원숭이가 도라에게 “길을 찾고 싶을 땐 어떻게 외치죠?”라고 우리말로 물으면 도라는 영어로 “맵(map)!”이라고 대답하는 식인데, 내가 기다렸다가 “맵!” 하고 같이 외쳐주면 아이들이 흥미있어한다.
‘쌍둥이들의 영어공부’

아이들이 보는 영어책은 글자가 크고 색이 알록달록한 것이 좋다.


아이들이 좋아하는 ‘토마스 기차’는 한글 더빙으로 틀어주건, 영어 음성으로 틀어주건 계속 쳐다보고 있는 편이다. 그럼에도 아이들은 기대했던 영어문장이나 중요한 단어를 줄줄 외우지는 못 했다. 고유명사인 기차 이름, 즉 토마스·퍼시·제임스 등등 이런 이름들만 기억해 외쳐대는 걸 보면 역시 부모 맘대로 애들이 움직이는 건 아닌가 보다.
하긴 외국에서 10년 넘게 살다 온 친구들도 집에서 아이들에게 영어를 가르치기가 어렵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일단은 마음 비우고 이런 식으로 조금씩 조금씩 흥미만 붙여주자는 다짐을 해본다.
그래도 왠지 크면 애들이 알아서 잘 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이래서 아빠는 자녀에 대해 논할 때 객관적이기 힘든 존재인가 보다.

조인직 기자는…
동아일보 경제부·사회부·신동아 등에서 8년여간 일했으며 현재는 동아일보 정치부 기자로 일하고 있다. 2002년 10월 결혼해 2005년 5월 딸쌍둥이 유정·민정이를 낳았다. 무의식 중에 엄마보다 아빠를 먼저 찾는 아이들로 키우는 것을 목표로 육아에 적극 동참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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