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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침없이 하이킥’ 열풍 이끈 김병욱 PD

”거침없이 웃고 즐긴 8개월간의 촬영 뒷얘기 & 앞으로의 계획”

글·송화선 기자 / 사진·지호영 기자, MBC 제공

입력 2007.08.21 18:26:00

“창공을 향해 날려 하이킥 하이킥~” 매일 저녁 경쾌한 시그널 음악과 함께 안방극장을 찾아왔던 시트콤 ‘거침없이 하이킥’이 8개월여의 ‘거침없는’ 인기 행진을 끝내고 마침표를 찍었다. 지난 7월13일 마지막 촬영을 마친 김병욱 PD를 만났다.
‘거침없이 하이킥’ 열풍 이끈 김병욱 PD

“앞으로 더 완성도 높은 시트콤이 계속 나오겠지만, 어떤 작품도 우리만큼 열심히 찍지는 못할 겁니다. 하루가 24시간이고 1주일이 7일인 이상 누구도 우리보다 열심히 할 수는 없어요(웃음). 그거 하나는 자신 있고, 그래서 아무 후회가 없습니다.”
지난 7월13일 시트콤 ‘거침없이 하이킥’(이하 ‘…하이킥’) 종영을 앞두고 마주 앉은 김병욱 PD(46)는 뿌듯해보였다. 그는 이날 새벽 5시까지 경기도 양평에서 ‘…하이킥’ 마지막회를 촬영하고 막 올라온 길이었다.
“지난 3일간 잠을 거의 못 잤어요. 빡빡한 스케줄에 맞추느라 실시간 방송을 하다시피 했죠. 어제는 오후 4시에 촬영한 장면이 8시에 나갔어요. 촬영장에 스태프가 기다리고 있다가 한 장면이 끝날 때마다 필름을 들고 편집실로 뛰었죠. 인터넷 보면 ‘어, 저거 오늘 낮에 찍는 거 봤는데 지금 방송에 나오네’ 하는 글이 많아요. 오죽하면 오늘은 중계차를 띄울까 하는 생각까지 했다니까요. ‘현장에 있는 서민정씨~’ 하면서요(웃음). 다행히 그러기 전에 촬영이 끝났죠.”
‘…하이킥’이 첫 방송된 건 지난해 11월. 그로부터 8개월여 동안 ‘…하이킥’은 늘 이처럼 정신없이 바쁘게 달려왔다고 한다. “마지막 촬영을 마친 뒤 스태프들이 정말 뿌듯해했겠다”는 질문에 김 PD는 “솔직히 말하면 처음 스태프 가운데 끝까지 남은 사람이 조명감독 한 명뿐”이라고 말했다.
“중간에 다 그만뒀어요. 시간에 쫓길 때는 김밥만 먹으며 24시간 내리 촬영하기도 했는데, 그걸 버티기 쉽지 않았겠죠. 사실 작품이 잘되면 감독이나 배우는 힘들어도 견딜 수 있어요. 따라오는 영광이 많거든요. 하지만 스태프는 그런 것도 아니니까…. 참 미안하지만 어쩔 수 없었죠.”

장면마다 열과 성 쏟으며 찍은 ‘명품 시트콤’
‘…하이킥’ 촬영이 이렇게 힘들었던 건 연기자의 표정과 앵글 하나하나가 살아 있는 ‘웰메이드 시트콤’을 지향했기 때문이다.
“시트콤 한 회가 보통 40장면으로 구성되기 때문에 한 주에 2백 장면쯤 찍어야 해요. 그런데 한 장면 찍는 데 8시간씩 걸리니 감당이 안 된 거죠(웃음). 이전 시트콤은 대부분 세트에 카메라 놓고 저는 스튜디오 조정실에 올라가 모니터를 보며 촬영했어요. 그렇게 찍으면 시간이 단축되거든요. 하지만 섬세한 장면을 잡아내기 힘들다는 단점이 있죠. 그래서 ‘…하이킥’은 세트 안에서도 ENG 카메라를 들고 일일이 배우를 찍었어요. ‘…하이킥’ 첫 주 방영분은 원하는 만큼 ENG로 찍었는데, 뒤로 갈수록 시간에 쫓겨 처음만큼 만족스럽게는 못 했죠.”

‘거침없이 하이킥’ 열풍 이끈 김병욱 PD

‘거침없이 하이킥’이 큰 인기를 누린 건 저마다 결점을 갖고 있지만 그렇기 때문에 더 사랑스러운 개성 만점의 캐릭터 덕분이다. 사진은 ‘…하이킥’에서 풍파고 학생들로 등장한 유미·윤호·민호·범이 등.


김 PD가 가장 공들인 에피소드 가운데 하나로 꼽은 것은 지난 4월 방송된 ‘타짜 유미’ 편. 극중 나문희와 신지, 강유미가 함께 고스톱을 치며 생기는 해프닝을 담은 이 에피소드에서 카메라는 배우들이 들고 있는 화투패와 이마에 흐르는 땀 한 방울, 미묘한 표정 변화로 드러나는 감정의 움직임까지 생생하게 담아내며 폭소를 이끌었다.
“다행히 결과가 괜찮으니 버텼지, 시청률까지 안 나왔으면 큰일났을 거예요. 처음엔 ‘도대체 시트콤하면서 왜 저러는 건데, 감독 미친 거 아냐?’라는 소리까지 들었거든요(웃음).”
그가 이처럼 험한 길을 걸은 이유는 지상파 유일의 시트콤인 ‘…하이킥’이 작품성 논란에 휩싸이거나 조기 종영되면 안 된다는 책임감 때문이었다고 한다. 만에 하나라도 ‘…하이킥’이 문을 닫으면 우리나라에서 더 이상 시트콤이 방송되기 어려울 거라는 위기의식이 있었다고. ‘순풍산부인과’(98), ‘웬만해선 그들을 막을 수 없다’(2000), ‘똑바로 살아라’(2002) 등의 인기 시트콤을 잇달아 연출하며 ‘시트콤의 거장’이라는 찬사를 듣다가 2005년 ‘귀엽거나 미치거나’로 첫 조기 종영의 아픔을 겪은 것이 큰 영향을 미쳤다.
“원래 제 시트콤은 발동이 좀 늦게 걸려요. ‘순풍산부인과’는 6개월, ‘웬만해선 그들을 막을 수 없다’는 4개월이 지난 뒤에야 시청률이 안정권에 올라섰죠. 그런데 ‘귀엽거나 미치거나’가 두 달 만에 종영되니까 정말 어찌해야 할지 모르겠더군요. 그래서 이번엔 처음부터 ‘순재’가 ‘야동’을 보는 것 같은 강한 에피소드를 넣고, 미스터리 구조와 이야기의 연결성을 강화해 일주일만 안 봐도 내용을 따라가지 못하게 했죠.”
원래 시트콤은 각각의 에피소드가 독립된 스토리를 갖는 장르. 하지만 김 PD는 의식적으로 이야기를 이어갔고, ‘이민용’ ‘서민정’ ‘이윤호’의 3각 관계, ‘강유미’의 정체 등에 대한 에피소드를 전략적으로 배치해 시청자의 애를 태웠다. 그의 이런 노력 덕에 ‘…하이킥’은 7%대 낮은 시청률로 출발했으나 방영 한 달 만에 두 자릿수 시청률을 기록했고, 중반 이후에는 인기 드라마도 오르기 힘든 20%대 고지를 넘나들며 화제를 모았다.
‘…하이킥’이 널리 사랑받은 또 다른 이유는 ‘야동순재’ ‘사육해미’ ‘식신준하’ ‘꽈당민정’ 등 개성 있는 캐릭터들. ‘…하이킥’의 등장인물은 모두 인간적인 결함을 갖고 있고, 그래서 사랑스럽다. ‘순재’는 한의원 원장이지만 침조차 제대로 못 놓아 며느리의 눈치를 보고, 잘난 며느리 ‘해미’는 시동생 ‘민용’만 만나면 맥을 못 춘다. 학교에서 가장 잘생기고 싸움 잘하는 ‘윤호’는 공부를 못하고, 우등생인 ‘민호’는 키가 작다. 이들의 크고 작은 ‘흠’이 만들어내는 화음은 ‘…하이킥’이 웃음과 감동을 동시에 준 비결. 김 PD는 “아무리 대본이 좋아도 배우들의 열연이 없었다면 이만한 인기를 얻지 못했을 것”이라며 배우들에게 공을 돌렸다.
“나문희 선생님은 건강이 좋지 않으셔서 무리하면 안돼요. 그래서 캐스팅할 때 무슨 일이 있어도 오전 1시까지는 댁에 보내드리겠다고 약속했죠. 그런데 일을 하다 보면 그렇게 되나요. 방영 초기엔 2시, 3시에라도 끝내 드렸지만 나중엔 새벽 5시까지 촬영한 적도 있어요. 그럴 때면 저한테 원망스런 눈빛을 보내실까봐 그쪽은 아예 쳐다보지도 못했죠(웃음). 민정이는 참 여러 번 다쳤고요. 한 번은 봉을 타고 내려오는 장면을 찍다가 떨어졌는데 다리를 절면서도 괜찮다고 하는 거예요. 그래서 ‘진짜 괜찮아? 그럼 간다’ 하고 다음 장면을 진행시키려고 하니 스태프들이 ‘감독님, 민정씨 다리에서 피가 나요’ 하더군요(웃음).”
당시 서민정은 검은 스타킹을 신고 있었는데 밖으로까지 피가 배어나올 만큼 종아리 부분에 심하게 상처가 난 상태였다고 한다. 당장 병원에 가서 치료를 받으라고 했지만, 예의 생글생글한 미소를 지으며 “전 괜찮으니 촬영 계속해요”라고만 하더라고.

‘거침없이 하이킥’ 열풍 이끈 김병욱 PD

“다음 장면이 하필이면 물속에 들어가는 거였어요. 어떻게든 병원에 다녀오게 해야 했지만, 막상 연기자가 괜찮다니까 감독 욕심에 ‘그럼 그냥 할까’ 싶은 마음이 들더라고요. 그래서 결국은 피를 흘리는 상태로 물속 장면을 찍었죠.”
‘…하이킥’ 촬영 당시 배우들 사이에서는 “‘하이킥 가족’의 가훈은 ‘쓰러지면 죽는다’”라는 우스개가 돌았다고 한다. 일주일 내내 촬영이 이어지는 강행군 도중 한 명에게라도 문제가 생기면 모든 제작 일정이 틀어질 수 있었기 때문. 그 과정에서 배우들 사이에는 절박한 동료애가 싹텄고, 때로는 PD가 나서서 말려야 할 만큼 열정이 넘친 경우도 있었다고 한다.
김 PD는 “되돌아 생각하면 하나하나 소중하지 않은 장면이 없고, 고맙지 않은 순간이 없다”며 “‘…하이킥’은 내 인생 최고의 시트콤”이라고 말했다.
이처럼 작품이 큰 인기를 모으고 스태프와 배우 사이의 팀워크도 좋았던 만큼 ‘‘…하이킥’ 시즌2’ 제작이나 영화화 등에 대한 기대가 높아지고 있다. 이에 대해 김 PD는 “일단 시즌2는 전혀 계획하고 있지 않다”고 밝혔다. 캐릭터가 작품을 이끌어가는 시트콤의 특성상 2편이 만들어지려면 1편의 등장인물이 모두 다시 출연해야 하는데 그건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는 판단에서다. 완전히 새로운 캐릭터를 등장시키고 ‘…하이킥’ 제목만 붙이는 방식의 시즌2에 대해서는 “이 작품을 소중하게 생각하는 이들의 기대를 깨는 일이기에 반대한다”고.
“영화화에 대해서는 생각해보려고 해요. 사실 처음 제안을 받은 건 지난 1월이었어요. 그때는 ‘…하이킥’이 4월에 종영될 예정이었기 때문에 저와 배우들 모두 하고 싶다는 생각이 강했죠. 그런데 3개월 연장 방송되면서 다소 마음이 변한 게 사실이에요. 막상 연장을 하고 보니 우리가 잃은 게 너무 많더라고요. 만약 영화화하는 과정에서 우리가 쌓아온 좋은 추억까지 잃게 된다면 굳이 영화를 할 필요가 없지 않겠어요? 일단은 당분간 쉬면서 생각해보려 합니다.”

“‘…하이킥’ 영화화는 아직 고민 중, 일단 쉬며 천천히 다음 작품 구상할 겁니다”
사실 김 PD는 ‘…하이킥’ 시작 전 ‘…하이킥’ 대본을 맡은 송재정 작가와 함께 영화를 준비하고 있었다고 한다. 황우석 사태를 모티프로 한 작품으로 대략적인 줄거리까지 써놓은 상태였는데 MBC로부터 시트콤 제의를 받았다고.
“MBC의 제안을 받고 명예회복이랄까, 복수랄까…. 그런 오기가 생겼던 게 사실이에요. ‘귀엽거나 미치거나’가 조기 종영된 뒤 처음으로 방송가의 냉혹한 생리를 깨달았거든요. 그로 인해 갑자기 등진 사람도 많았고요. 그전까지는 솔직히 실패한 적이 없어서 그런 현실이 굉장히 뼈아팠죠.”
하지만 막상 성공한 지금은 오히려 담담하다고 한다. 지금 자신이 누리고 있는 영광 역시 거품에 불과하다는 걸 알기 때문이다.



“‘귀엽거나 미치거나’의 경험이 없었다면 지금 더 들떠 있을지도 모르겠어요. 생각해보면 ‘순풍산부인과’ 이후엔 으스대기도 하고…, 뭐랄까 제가 좀 변질된 면이 있었거든요. 그런데 우울한 시절을 겪으며 많은 이들의 찬사와 인기라는 게 얼마나 부질없는 것인지를 안 거예요. 방송이라는 공간이 그래요. ‘무상’을 깨닫기에 가장 좋은 곳이죠.”
김 PD는 그래서 ‘…하이킥’ 종영과 동시에 제작사 ‘초록뱀 미디어’와의 계약이 끝났지만 여기저기서 쏟아지는 좋은 제안을 뒤로하고 다시 ‘초록뱀 미디어’와 일하기로 결정했다고 한다. 주위의 반응에 휩쓸리지 않고 묵묵히 제 길을 걷기 위해서다.
“계약을 결정하는 자리에서 사장님께 그랬어요. 제가 요즘 좀 바쁘고 찾는 사람이 많기는 하지만, ‘귀엽거나 미치거나’ 종영 때와 똑같은 사람이라고요(웃음). 그때나 지금이나 저는 기본적으로 ‘마이너(minor·소수)’예요. ‘메이저(major·다수)’가 될 수 없고, 되고 싶지도 않죠.”
그는 사람들이 자신의 시트콤을 사랑하는 것도 늘 밝고 환한 듯 보이는 세상 속에서 드러나는 상처와 아픔, 허무의 가치관 때문인 것 같다고 말했다. ‘…하이킥’에서 김 PD가 ‘사랑하는 장면’이라고 소개한 에피소드 가운데 하나는 지난 1월 방송된 ‘눈물의 취직 파티’. 오랜 백수생활 끝에 간신히 취직한 ‘준하’가 첫 출근을 마치고 돌아오자 가족들은 잔칫상을 차려놓고 파티를 연다. 그런데 온 집안의 불을 끄고 케이크에 촛불을 켠 순간 갑자기 회사의 인수합병 때문에 준하가 해고됐다는 내용의 전화가 걸려오는 것. 식구들은 케이크 불조차 꺼진 어둠 속에서 저마다 눈물을 흘리고, 카메라는 소리조차 크게 내지 못한 채 흐느끼는 가족들의 모습을 오랫동안 묵묵히 담아낸다.
“저는 슬픔이 좋아요. 가슴 찡한 눈물에서 카타르시스를 느끼죠. 매일 사고만 치던 ‘윤호’가 어버이날 엄마 ‘해미’에게 LP를 선물하고 ‘원더풀 투나잇’에 맞춰 함께 블루스를 추던 장면, ‘윤호’가 ‘유미’가 떠난 뒤 슬픔에 빠진 ‘민호’를 오토바이에 태우고 전국을 돌며 여행시켜주던 장면도 좋아요.”
“세상 모든 사람의 사랑을 받으며 ‘입신양명’하는 것보다 내가 잘할 수 있는 걸 소리 소문 없이 하는 게 더 좋다”는 김 PD는 ‘…하이킥’ 식구들과 함께 방송국이 제공한 일본 포상 휴가를 다녀온 뒤 당분간은 푹 쉴 것이라고 한다. 피자를 시켜놓고 하루 종일 뒹굴며 마음껏 비디오를 보는 일상 속으로 돌아갈 것이라고.
“내 학창시절의 보금자리였던 동작구 흑석동 73-1, 안녕…”
‘…하이킥’에서 ‘범’이가 미국으로 떠나며 마지막으로 남긴 이 말은 어쩌면 하이킥에 작별 인사를 건네야 하는 시청자들에게도 꼭 맞는 말인 듯싶다. 지난 8개월 동안 대한민국을 ‘거침없이’ 웃기고 울렸던 ‘동작구 흑석동 73-1’에 안녕을 고하며, 김 PD가 그만의 감수성과 개성을 듬뿍 담은 또 다른 이야기로 우리에게 말을 걸어올 날을 기다린다.

여성동아 2007년 8월 52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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