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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eleb 시련을 딛고

교통사고로 전신마비 판정, 장애 극복하고 무대 서는 가수 윤희상·이인혜 부부

글·김수정 기자 / 사진·지호영 기자

입력 2007.08.21 17:14:00

지난 2004년 교통사고로 전신마비 판정을 받았던 ‘카스바의 여인’ 가수 윤희상이 다시 무대에 서고 있다. 비록 휠체어 신세를 지고 있지만 자신보다 어려운 처지에 있는 사람들에게 희망의 메시지를 전하고 싶다는 그가 사고 후 힘겨웠던 투병과정, 자신의 곁을 묵묵히 지켜준 아내에 대한 고마움을 털어놓았다.
교통사고로 전신마비 판정, 장애 극복하고 무대 서는 가수 윤희상·이인혜 부부

지난 2002년 성인가요 ‘카스바의 여인’으로 이름을 알린 트로트 가수 윤희상(52). 그는 한창 인기를 모으던 2004년 10월, 갑작스런 교통사고를 당하며 무대를 떠나야 했다. 네 차례의 수술을 받았지만 의료진은 그에게 전신마비 판정을 내렸고, 그는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잊혀갔다.
그런 윤희상이 오랜 재활치료 끝에 최근 새 앨범을 발표하고 가수활동을 재개했다. 휠체어를 탄 모습으로 무대에 올라 노래를 부르는 것.
“재활훈련을 꾸준히 한 덕분에 지금은 혼자 수저를 들어 밥을 먹고 담뱃불도 붙일 수 있게 됐어요. 다시는 못 부를 줄로만 알았던 노래도 부를 수 있고요(웃음). 물론 아내가 없으면 여전히 꼼짝 못하는 신세지만요.”
사고 당시 그는 척추가 손상되고, 부러진 갈비뼈가 폐를 뚫어 숨쉬는 것조차 불가능했다고 한다. 또한 콧대와 광대뼈가 함몰되고 오른쪽 눈은 적출해야한다는 말을 들을 만큼 큰 부상을 당했다고. 그러나 아내 이인혜씨(51)는 의안 이식 수술을 강권한 의료진의 말을 거부했다고 한다.
“다행히 상처가 잘 아물었고 시력도 회복했어요. 눈을 적출했다면 아마 다시 가수활동을 할 생각은 꿈에도 못했을 거예요. 처음엔 온몸이 마비된 줄도 모르고 ‘누가 내 팔다리를 침대에 묶어놓았느냐’고 묻기도 했어요. ‘이가 다 빠졌으니 치과부터 가자’고 조르기도 했죠. 나중에야 제 상태가 심각하다는 걸 깨닫고 이렇게 사느니 죽겠다고 울부짖었어요.”
하지만 아내 이씨는 남편이 어떤 폭언을 퍼부어도 묵묵히 곁을 지켰고, 그는 자신을 간병하느라 밤잠을 설치고 재활운동기구에 한번이라도 더 앉히려 애쓰는 아내를 보면서 재활의지를 불태우게 됐다. “다시 노래를 불러달라”는 아내의 격려를 받으며 악착같이 운동한 그는 재활치료 3개월 만에 손발을 움직이게 됐다.
사고가 난 지 1년째 되던 날, 그는 한 방송사로부터 출연 제의를 받고 무대에 올랐다. 음역이 고르진 않았지만 ‘리허설만이라도 한번 해보자’라는 마음으로 올랐던 그는 방청객과 스태프들로부터 박수 갈채를 받았고, 가슴 졸이며 상황을 지켜보던 이씨는 그 모습을 보고 참았던 눈물을 쏟았다고.
“스케줄에 쫓겨 급하게 지방에 내려가다가 사고를 당했어요. 벌써 3년이란 시간이 흘렀지만 지금도 여전히 제 모습이 낯설게 느껴질 때가 있어요. 휠체어를 탄 저를 보고 어떤 PD는 방송 출연이 곤란하다고 말하기도 했는데 그래도 어린 시절부터 가수만 꿈꿔온 터라 이 길을 포기할 수가 없네요.”

가수의 꿈 안고 무작정 상경, 유명세 얻을 무렵 교통사고 당해
교통사고로 전신마비 판정, 장애 극복하고 무대 서는 가수 윤희상·이인혜 부부

요즘엔 다리 힘만으로도 페달을 움직일 수 있게 됐다는 윤희상. 그는 재활에 성공하게 된 모든 공로를 아내 이인혜씨에게 돌렸다.


전남 목포에서 어린 시절을 보낸 그는 가수가 되기 위해 스물이 갓 넘었을 무렵 무작정 서울로 올라와 유흥업소에 발을 들여놓았다. 이후 작곡가들에게 몇 차례 돈만 떼이는 사기를 당한 그는 조직폭력배의 길로 들어섰다.
“그게 나쁜 일인지도 모를 만큼 어렸어요. 몇 년간 조직생활을 하면서 한시도 마음 편할 날이 없었죠. 조직을 빠져나오려고 애썼지만 쉽지 않았어요. 죽을 고비를 몇 차례 넘긴 뒤 때마침 지인으로부터 가수 데뷔 제의가 들어왔고, 앨범이 나오기 열흘 전 조직에서 나왔습니다. 하지만 이후에도 조직원들이 찾아와 낙향과 상경을 수차례 반복해야 했어요. 부끄러운 기억이라 지금은 잊고 살아요.”
가수생활 역시 쉽지 않았다. 조폭 출신이라는 소문이 나 활동에 제약을 받았기 때문. 수입도 일정치 않아 경제적인 어려움까지 겪었다. 유흥업소에서 일해 번 돈으로 곡을 받아 녹음했지만 후속 앨범 제작은 번번이 무산됐다고. 이후 아내를 만나 가정을 꾸린 그는 안정된 생활을 갖고자 리메이크 음반 제작자로 전향했다. 하지만 가수에 대한 미련을 버리진 못했다.
“박수소리와 화려한 조명… 이미 가수라는 직업에 중독돼버린 거죠. ‘마지막이다’라는 심정으로 발표한 곡이 ‘카스바의 여인’이에요. 제작도 하고 홍보도 하고 노래도 부르고… 그래도 그땐 힘든 줄 모르겠더라고요.”
‘카스바의 여인’은 큰 인기를 끌었다. 그는 2002년 성인가요 순위 프로그램에서 1위를 차지했고 이듬해 ‘텍사스룸바’로 다시 정상에 올랐다. 성공 가도를 달리던 그때의 순간들은 거실 한편에 고스란히 남아 있다.
“세 번째 음반인 ‘포옹’으로 활동하다가 사고가 났어요. ‘포옹’ 이후에 단란한 시간을 갖자고 아내와 약속했는데 물거품이 돼 버렸죠.”
그는 바보스러울 만큼 착한 아내가 자신 때문에 겪은 고통을 생각하면 가슴이 미어진다고 말한다.
“부부란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좋을 때나 나쁠 때나 함께하는 사이잖아요. 남편이 ‘나 때문에 이렇게 힘들게 살지 마라’고 말할 때 참 야속했어요. 부부끼리 미안해할 이유가 있나요? 희생이라는 말도 어울리지 않아요. 제 머릿속에는 어떻게 하면 남편의 마음을 조금이나마 편히 해줄 수 있을까 하는 고민만 들어있어요.”
윤희상은 아내 이씨와 함께 교도소 재소자들을 위한 위문공연을 다닌다. “건강하다면 뭐든 못할 게 없다. 포기하지 말라. 다시 일어설 수 있다”는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해서다. 또한 위문공연은 아내에게 보내는 애정표현이라고 한다. 많은 이들에게 희망을 주면서 자신 역시 열심히 살겠다는 무언의 약속이라고.
그는 지난해 직접 작사한 신곡 ‘파티’를 발표했다. “좋아해서 만났다. 사랑해서 만났다. 세월이 흘러갈수록 더 좋아지는 그 사람”으로 시작하는 ‘파티’는 아내에게 바치는 곡이다.
“‘파티’는 ‘잔치’란 의미죠. 제게도 좋은 날이 올 것이라는 바람이랄까, 기대랄까… 그 순간을 아내와 함께한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겠다는 심정으로 썼어요. 저는 아내 없이는 하루도 살 수 없어요. 제가 어디로 가서 이런 여자를 만나겠습니까….”
“남편이나 저나 분위기 잡을 줄을 몰라요. 17년간 아들 딸 낳고 살아오면서 지금껏 사랑한다는 말도 안 해봤죠. 한번은 큰맘먹고 제가 ‘나 사랑해?’하고 물었더니 남편이 ‘뜬금없이 무슨…’이라고 말하더군요(웃음). 그게 저희들만의 사랑표현방식이죠. ‘식사하실래요?’보다는 ‘밥 먹자’가 좋대요. 조금 투박해보일지 모르지만 남편의 마음 씀씀이는 그 속에 다 들어 있어요.”
그는 인터뷰 말미에 ‘장애인’이라는 수식어 없이 ‘가수’로 불리고 싶다고 말했다. 그에게 있어 장애는 더 이상 특별한 시련이 아니기 때문이다. 많은 사람이 격려해줘 힘이 난다는 그는 “나 혼자만의 ‘나’가 아닌 많은 사람들의 ‘나’라는 생각이 들어 열심히 살아야겠다는 책임감을 느낀다”고 말했다.
“저는 지금 세 번째 삶을 살고 있습니다. 조직폭력배로 지냈던 철부지 시기와 가수가 되기 위해 동분서주했던 시절, 그리고 교통사고 후 장애인으로 살게 된 지금, 이렇게요. 그리 평범한 인생은 아니었지만 후회는 없어요(웃음). 다시 시작한 인생이니, 이참에 히트곡도 다시 한 번 내봐야죠.”
인터뷰가 끝난후 그는 재활훈련기구에 몸을 맡겼다. 단단히 벨트를 채워주는 이씨와 이를 물끄러미 바라보는 그에게서 ‘사랑’이라는 단어가 자연스럽게 떠올랐다.

여성동아 2007년 8월 52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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