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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FE STYLE

양성평등 글짓기 대회 최우수상 받은 김신우양 가족

“딸이 행복한 세상 만들기 위해 집안일 도우면서 가족간의 사랑도 훨씬 더 커졌어요”

기획·송화선 기자 / 글·안소희‘자유기고가’ / 사진·도영탁‘프리랜서’

2007. 08. 13

사회적으로는 ‘남녀평등’에 대한 인식이 높아지고 있지만, 가정 안을 들여다보면 여전히‘집안일은 여자 몫’이라는 편견이 자리하고 있는 경우가 많다. 최근 ‘아빠의 앞치마’라는 글로 전국 양성평등 글짓기 대회에서 최우수상을 받은 김신우양 가족을 찾아가 ‘아빠는 요리하고 엄마는 청소하는’ 화목한 가정의 모습을 만났다.

양성평등 글짓기 대회 최우수상 받은 김신우양 가족

“아빠가 설거지하시면 좀 그렇지 않냐? 아직 우리나라는 좀….”
“뭐 어때, 일이 있으면 일찍 들어오시는 분이 하는 게 더 합리적인 거 아냐?”

최근 교육부 주최 ‘전국 초겵?고 양성평등 글짓기 대회’에서 최우수상을 받은 경북 포항시 항구초등학교 6학년 김신우양(12)의 글에는 이런 대목이 나온다. 신우네 집에 놀러온 친구가 앞치마를 두르고 설거지하는 아빠의 모습을 보고 놀라자 자연스레 대꾸하는 부분이다.
‘집안일을 누가 할지 미리 정해두지 않고 시간 있는 사람이 하는 것’. 신우네 집에서는 이미 익숙한 풍경이다. 신우양의 아빠 김종래씨(40)는 설거지뿐 아니라 청소, 요리까지 척척 해낸다.
“집안일을 두 사람이 나눠서 하는 거죠. 요즘 신세대처럼 역할 분담을 분명히 해둔 건 아니지만, 청소겭》죦집정리 같이 매일 반복되는 일은 누구든 시간 되는 사람이 먼저 해요. 물론 아직은 남편이 하는 게 눈에 차지 않아 제 손이 다시 가는 경우가 많지만, 그래도 알아서 ‘자기 일’이라고 생각하고 하는 모습이 고마워요.”
신우양 엄마 권정아씨(39)의 말에 김씨는 “썩 잘하는 것도 아닌데 이런 얘기를 들으니 정말 멋쩍다”고 손사래를 치면서도 “아직 서투르지만 집안일을 하면서 가족간의 진정한 행복을 느끼게 됐다”며 활짝 웃었다.
요즘은 우리나라에서도 남편이 아내와 함께 장을 보거나 외출할 때 아이를 안는 일이 흔하지만, 아직 보수적인 문화가 강한 경상도에서는 남녀의 역할 구분이 여전하다고 한다. 특히 40대인 김씨 또래에서는 남편이 집안일을 거드는 게 생소하게 느껴지는 분위기라고. ‘경상도 사나이’였던 김씨 역시 처음엔 가사를 ‘아내의 일’로 생각하는 보통 남자였다고 한다.
“결혼 초엔 정말 많이 싸웠어요. 특히 명절 때면 다툼이 끊이질 않았죠. 저희 시집은 남녀가 겸상을 안 할 정도로 보수적인 분위기거든요. 그런 가정에서 3남1녀의 장남으로 자란 사람이라 정말 ‘임금님’이 따로 없었어요(웃음). 태어나서 집안일은 단 한 번도 한 적이 없다고 하더라고요.”
결혼 뒤 권씨가 가사분담을 요구하자 김씨는 “하늘 같은 남편한테 무슨 소리냐”고 펄쩍 뛰었고 퇴근 뒤엔 주로 거실에 누워 TV를 봤다고 한다.
그런 그에게 변화가 생긴 건 첫딸 신우양이 태어나면서부터. 결혼 뒤 바로 아이가 생기지 않아 3년 만에 낳은 신우양을 김씨는 각별히 아꼈다고 한다. 하지만 육아를 거들 생각은 하지 못했다고. 그런데 어느 날 학원강사로 일하며 갓난아이를 돌보고 집안일까지 하는 데 지친 권씨가 “나중에 신우도 이렇게 살까? 신우도 직장생활하고 집안일하고 혼자 다 하면서 힘들게 살아야 할까” 하며 혼잣말하는 것을 들은 것이다.

그걸 들으신 아빠는 옹알이하며 누워 있는 나를 저녁 내내 들여다보셨다고 한다. 그리고 그날 이후부터 바뀌셨다. 엄마가 놀라자 “내 딸이 살기 편한 세상을 만들어야지” 하시며 쓰레기 버리기, 세탁기 돌리기, 설거지를 하셨다고 한다. 그것도 흥얼흥얼 노래를 부르시면서.

양성평등 글짓기 대회 최우수상 받은 김신우양 가족

“아빠가 집안일을 한 뒤로 한층 화목해졌다”고 입을 모으는 김신우양 가족.


그래서 권씨는 지금도 “신우가 우리 집 문화를 바꾼 일등공신”이라고 말한다. 김씨가 처음 시작한 집안일은 신우양 기저귀 빨기. 중학교 교사로 당시 매일 밤 10시 이후 퇴근하던 그는 아무리 늦어도 신우양 기저귀만큼은 하나하나 손으로 직접 빨았다고 한다. 기저귀를 개고 정리하는 일까지 하다 보면 다음날 오전 1시를 넘기기 일쑤였지만, 아이를 돌보는 과정에서 느껴지는 행복감이 더 커서 힘들지 않았다고.
“그 일부터 시작해 하나 둘 집안일을 거들기 시작했죠. 그렇게 집안일을 하다 보니 전에는 눈에도 들어오지 않던 집안 곳곳이 새롭게 느껴지고, 아이에 대한 사랑도 깊어지더군요. 만약 제가 계속 집안일을 외면하고 권위적인 모습으로 살았다면 이런 행복을 느낄 수 없었을 거예요(웃음).”

“두 딸이 아빠를 친밀하게 느끼는 것만으로도 집안일 하는 보람 느껴요”
김씨는 “아이가 자라면서 점점 멀어지는 것 같다고 느끼는 아빠들에게 집안일을 해보라고 권하고 싶다. 집안일이라는 게 참 신기해서 가족 사이에 자연스러운 공감대와 친밀감을 만들어준다”고 말했다. 자신의 경우 신우양과 둘째 경우양(10)이 아빠를 가깝게 느끼는 것만으로도 집안일을 하는 보람을 충분히 얻는 것 같다고.
김씨가 가사분담을 실천함으로써 얻은 삶의 ‘보너스’는 그뿐만이 아니다. 두 딸이 성역할에 대한 고정관념을 깨고 자유롭게 살아가는 것도 빼놓을 수 없는 성과라고 한다.
“며칠 전 신우네 학교 체육시간에 남자아이는 축구, 여자아이는 피구를 하게 됐대요. 그런데 축구를 더 하고 싶었던 신우가 선생님께 여자아이들도 축구를 시켜달라고 건의해서 아이들이 남녀 구별없이 어울려 신나게 축구를 했다고 하더라고요(웃음).”
아직도 당시의 기억이 생생한 신우양은 “축구가 그렇게 재미있는 운동인 줄 처음 알았다. 이제까지 한 번도 못해본 게 아쉬웠을 정도”라며 “앞으로 친구들과 축구를 하며 놀기로 했다”고 활짝 웃었다.
요즘 김씨의 새로운 도전과제는 요리. 웬만한 집안일은 자신 있지만, 요리는 아직 초보적인 수준이기 때문이라고.
“매년 우리 식구 생일잔치는 아빠가 준비하기 때문에, 미역국은 아빠가 엄마보다 훨씬 잘 끓이세요. 그런데 솔직히 다른 국은 별로…. 어제 끓여주신 된장국은 짜서 못 먹을 정도였거든요. 그래도 우린 아빠가 만들어주시는 음식은 다 좋아요~!(웃음)”
애교를 부리는 신우·경우 자매를 보며 더불어 웃는 엄마 아빠의 모습이 따뜻했다.



사랑한다고 말만 하는 것이 아니라 엄마의 힘든 짐을 즐거운 마음으로 나누어 지시는 아빠가 내게는 사랑과 양성평등을 가르치는 교과서다.
나는 앞치마가 잘 어울리는 아빠가 좋다.
나는 내 생일에 미역국을 맛있게 끓여주시는 아빠를 존경한다.
내 속옷을 널며 ‘와, 우리 신우 많이 컸네’ 하시는 아빠를 사랑한다.

신우양의 글 ‘아빠의 앞치마’는 “내게 교과서가 돼주시는 아빠께 스승의 날 아빠 전용 앞치마를 선물해야겠다”는 문장으로 끝을 맺는다. 사춘기 딸의 존경과 사랑을 한 몸에 받는 아빠가 된 것만으로도 김씨의 집안일 도전은 이미 성공한 게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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