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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eleb 솔직한 고백

사업가로 새로운 도전 나선 개그맨 황기순 프라이버시 인터뷰

글·김명희 기자 / 사진·홍중식 기자

입력 2007.07.23 11:01:00

97년 해외 원정 도박 사건으로 물의를 빚은 개그맨 황기순. 2년 전 재혼해 새롭게 가정을 일구고 제2의 인생을 살고 있는 그가 최근 사업가로 변신했다. 새로운 도전을 시작한 그가 항상 자신에게 용기를 주는 아내에 대한 고마움을 전하며 얼마 전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던 그의 전처와 인기가수를 둘러싼 소문에 관한 입장까지 솔직하게 밝혔다.
사업가로 새로운 도전 나선 개그맨 황기순 프라이버시 인터뷰

개그맨 황기순(44)을 만나기 위해 서울 광진구 군자동 세종대 안에 위치한 그의 사무실을 찾았을 때 그는 행주, 수세미, 먼지 제거용 클리너 등에 푹 파묻혀 있었다. 그가 새로 시작한 일은 신소재 섬유를 이용해 욕실 및 주방에서 쓰는 청소용품을 개발하는 것이다. 기자를 만나자 그는 먼저 조만간 홈쇼핑을 통해서도 선보일 예정이라는 먼지 제거용 클리너에 대한 설명을 시작했다.
“구석구석 찌든 먼지까지 빨아들여요. 먼지를 빨아들인 다음 흐르는 물에 한 번 씻으면 다시 처음 상태로 되돌아가죠.”
더군다나 세제로 빨 필요도 없는 친환경 제품이라니, 그의 설명대로라면 정말 귀가 솔깃해질 만한 제품이다. “그럼 영구적으로 쓸 수 있는 거냐”고 묻자 그는 “영구적이면 안 되죠. 장사가 안되잖아요”라며 씩 웃었다. 그의 웃음은 낯선 사람에 대한 경계심이 어느 정도 누그러졌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지난 97년 도박 사건으로 물의를 빚었던 그는 그 후유증으로 한동안 심한 대인 기피증에 시달렸다고 한다. 모두가 자기를 손가락질하는 것 같아 사람들을 제대로 쳐다볼 수 없었다는 것.

사업 실패로 진 빚 만회 위해 도박에 손댄 것이 불행의 시작
82년 MBC 개그 콘테스트를 통해 데뷔한 그는 “척 보면 앱~니다” 등의 유행어를 히트시키며 인기를 모았으나 96년 사업 실패로 지게 된 빚을 만회하기 위해 도박에 손을 댔다. 도박에 빠져들수록 빚은 점점 더 불어만 갔고 급기야 그는 수천만원의 빚을 내 97년 필리핀 원정도박에까지 나섰다. 그러나 그 돈마저 모두 잃은데다 외화밀반출 혐의로 수배령까지 떨어지자 그는 1년 여 동안 도피생활을 하며 폐인처럼 지냈다.
“숨어 지내며 폐품을 수집하고 장난감 가게 동전 수거 일을 하고 살았어요. 하루 세 끼를 다 먹는다는 건 꿈도 못 꿀 일이었죠. 다른 건 다 참을 수 있었는데 고향에 대한 향수는 참을 수 없더군요. 땅바닥에 제가 살던 동네와 제집처럼 드나들던 방송국이 있는 여의도 지도를 매일 그렸다 지우기를 반복했어요.”
그렇게 비참하게 생활하는 모습이 당시 SBS 시사 프로그램 ‘문성근의 다큐세상, 그것이 알고 싶다’를 통해 세상에 알려졌고 그는 그 일을 계기로 98년 말 귀국, 자수를 하고 사법처리를 받았다.
“처음엔 필리핀까지 쫓아와 저를 찾아내 방송에 내보낸 관계자들을 많이 원망했어요.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그런 원망이 고마움으로 바뀌더군요. 그 일이 아니었더라면 지금도 어딘가에 숨어 폐인처럼 지내고 있을 테니까요. 생각만 해도 끔찍합니다.”
그가 도박을 통해 얻은 것은 단 한 가지. 도박으로 일확천금을 얻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사실이라고 한다.
“카지노에 없는 것이 세 가지라고 합니다. 시계, 유리창, 제정신인 사람…. 제정신인 사람이 시간 버리고 몸 망치고 돈 잃을 게 뻔한 카지노에 왜 가겠어요. 물론 돈을 땄다는 사람도 있죠. 하지만 그건 땄을 때만 얘길 하고 잃은 얘기는 안 해서 그런 거예요. 저도 하루 저녁에 1억3천만원을 딴 적이 있어요. 그러나 결국은 다 잃고 말았잖아요.”

사업가로 새로운 도전 나선 개그맨 황기순 프라이버시 인터뷰

묵묵히 자신을 내조하며 바른 길로 인도하는 아내에게 고마움을 전하고 싶다는 황기순.


마약, 음주운전 등으로 물의를 빚은 연예인들이 짧은 자숙기간을 거쳐 컴백하는 것이 요즘 연예계의 실상. 그런 면에서 그는 운이 없는 편이다. 그는 도박사건 이후 KBS 개그 프로그램 ‘폭소클럽’ 등에 잠깐 얼굴을 비친 것을 제외하고는 방송활동이 뜸했다. 자신에게 유난히 모질었던 방송가에 서운한 마음은 없었을까.
“방송사에서 저를 출연정지시킨 적은 없어요(웃음). PD들이 캐스팅을 못해서 안달하는 그런 대스타가 아니었던 것뿐이죠. 제 현실이 그렇다면 받아들여야죠. 자신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세상을 원망하기 시작하면 화병 나서 오래 못 살아요.”

“전처 문제로 도박에 빠졌다는 소문은 잘못된 것, 불미스러운 소문으로 아내에게 상처줘 미안해요”
그가 도박 사건을 극복하고 마음의 여유를 되찾기까지는 지난 2005년 결혼한 아내의 도움이 컸다고 한다. 그는 일곱 살 연하 교사인 아내에 대해 “나이는 어리지만 저보다 훨씬 사려가 깊고 긍정적이고 심지가 굳은 사람”이라며 아내와의 러브스토리를 들려주었다. 아내를 처음 만난 건 2003년 지인의 소개를 통해서라고.
“첫눈에 인상도 좋고 마음에 들었지만 자격지심 때문에 쉽게 다가가지 못하고 혼자 가슴앓이를 했어요. 그러다가 시간이 지나도 그 사람 얼굴이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기에 용기를 내 전화를 했어요. 싫은 눈치였지만 여러 번 전화를 계속 걸어 이런저런 얘기를 하다가 첫눈 오는 날 용기를 내서 만나자고 했더니 뜻밖에도 ‘그러자’고 하더군요. 그날 만나서 필리핀에서 있었던 부끄러운 일, 그로 인해 겪었던 고통 등 마음속에 담고 있던 것을 속속들이 다 털어놓았어요. 제가 상처를 드러내니까 그 사람이 이런저런 조언을 해주더군요. 나중에 아내가 말하기를 사실은 그날 ‘더이상 귀찮게 하지 말아달라’고 말하러 나왔대요. 그런데 제 얘기를 듣다 보니 안쓰러운 생각이 들어 차마 그 말을 꺼내지 못했다고 하더라고요(웃음).”
그렇게 두 사람은 교제를 시작했고 아내는 열심히 사는 그의 모습을 보며 조금씩 마음의 문을 열기 시작했다. 그리고 주변의 반대를 무릅쓰고 그와 결혼에 이르렀다. 하지만 결혼 2년째가 돼가는 지금까지 아내의 주변 사람들 가운데는 그가 황기순의 부인인지 모르는 사람이 많다고.
“제 과거로 인해 아내에게 부담을 주고 싶지 않았어요. 제 모습이 창피해서라기보다 현실적인 판단을 한 거죠. 사실은 형이 교사였는데 제가 도박 사건으로 물의를 빚은 뒤로는 학생들 얼굴을 제대로 볼 수 없었다고 하더라고요. 동생이 그런 짓을 하고 있는데 학생들이 잘못했다고 해서 야단을 칠 수 있었겠어요. 아내를 그런 곤란한 처지에 빠뜨리고 싶지 않아 되도록이면 주변 사람들한테 제 얘기는 하지 말아달라고 당부했어요.”
늘 고맙고 미안한 마음에 잘해주고 싶은 생각이 앞서는 아내, 그런데 그런 아내에게 그는 얼마 전 전혀 생각지 못한 일로 상처를 주게 됐다. 98년 그와 이혼한 전처 A씨와 잠적한 인기가수 B씨 간의 불미스러운 소문 때문에 그까지 세간의 구설수에 오른 것.
“전처와 B씨 관계의 사실 여부를 떠나서 저의 이름까지 거론되며 그런 말이 떠도는 것 자체가 아내한테 많이 미안해요. 그 사건이 언론에 보도되고 나서 집사람도 마음고생이 많았을 텐데 저한테 전혀 내색을 안 하더라고요.”
그는 다만 전처와 자신을 둘러싼 무수한 이야기 가운데 바로잡고 싶은 게 한 가지 있다고 말했다.
“한 언론 보도를 보니까 제가 전처와 B씨의 관계를 알고 괴로워하다가 도박에 빠졌다고 나와 있던데, 그건 사실이 아닙니다. 애정문제는 애정문제고, 도박은 도박이죠. 제가 도박에 빠졌던 책임을 다른 데로 돌리고 싶지 않습니다.”

다른 사람들이 모두 휴가를 떠나는 매년 8월, 황기순은 좀 더 특별한 의미를 찾아 마음의 휴가를 떠난다. 도박 사건에 대한 속죄의 의미로 지난 2000년 휠체어를 타고 두 달 동안 서울과 부산을 왕복하며 ‘휠체어 봉사체험 전국토 대행진’을 벌였던 그는 2002년부터는 매년 여름 사이클을 타고 전국을 누비며 모금활동을 계속하고 있다. 수익금은 장애인을 위한 휠체어 마련에 쓰인다.
“처음엔 솔직히 이미지 변신을 위해 시작했어요. 제가 땀 흘려 봉사하면 사람들이 알아줄 줄 알았거든요. 그런데 처음 모금행사를 시작했을 때 열흘이 지나고, 한 달이 지나도 반응이 없더라고요(웃음). 덥고 창피하고 힘들고… 제가 한심스러워 견딜 수가 없었어요. 세상이 얼마나 냉정한 곳인지 다시금 깨달았고요.”



봉사활동 계속해 훗날 태어날 아이에게 부끄러운 과거 극복한 아버지의 모습 보여주고 싶어
포기할까도 생각했다. 두 달 고생하고 모금함을 쏟았을 때 모인 돈이 6백만원. 도박할 때 만져본 돈에 비하면 보잘것없는 액수였다. 휠체어 기증식에도 가기 싫은 걸 억지로 끌려갔다. 그러나 기증식이 열리는 강당의 문을 연 순간 그는 입을 다물 수 없었다고 한다. 무려 52대의 휠체어가 주는 감동이 그를 압도했던 것.
“누구를 위해 좋은 일 한 번 한 적이 없는데, 그제야 인간이 된 기분이랄까, 아무튼 사람들이 봉사라는 걸 왜 하는지 알게 됐어요. 그 다음 해에 한 번 건너뛰었더니 마음이 불편하더라고요. 그래서 2002년부터 지난해까지는 쉬지 않고 했어요. 앞으로도 더 이상 페달을 밟을 수 없을 때까지 계속할 생각이고요.”
자전거를 타고 달리는 건 인생과도 닮았다고 한다. 땀 흘려 오르막길을 올라가면 반드시 내리막길이 나오지만 내리막길을 너무 즐기다 보면 다음 오르막을 올라갈 때 힘이 들기 때문에 다음에 어떤 길이 펼쳐질지 주변을 잘 살펴야 한다는 것이다.
내년쯤 아이를 가질 생각이라는 그는 어느 정도 자라면 자전거타기를 가르쳐 봉사활동에 동행시킬 생각이라고 한다. 아이와 함께 자전거를 탈 생각을 하면 벌써부터 가슴이 벅차오른다고.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릴 수 없듯이 어차피 아이가 태어나 자라면서 언제든 제 과거를 알게 되겠죠. 과거를 바꿀 수는 없지만 아이에게 부끄러운 과거를 잘 극복해낸, 당당한 아버지의 모습을 보여주고 싶어요. 그리고 아이에게 어떤 시련에도 맞서 싸울 수 있는 정신적 자산을 물려주고 싶어요.”
그가 언급한 ‘시련’이라는 단어에는 ‘겪기 어려운 단련이나 고비’라는 뜻도 있지만 ‘의지나 사람됨을 시험해봄’이라는 뜻도 있다. 한순간의 잘못된 선택으로 힘든 시기를 겪었던 황기순. 그는 인내와 지혜로 그 시험대를 무사히 통과하고 이제 평온하고 행복한 시기로 접어든 듯하다.

여성동아 2007년 7월 52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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