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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기사

‘쌍둥이 아빠’ 조인직 기자의 육아일기 9

‘삐뚤빼뚤’ 서툴지만 개성미 만점~ 새로 문 연 아빠표 미장원

기획·권소희 기자 / 글·조인직‘신동아 기자’ / 사진·문형일 기자

2007. 07. 18

‘삐뚤빼뚤’ 서툴지만 개성미 만점~ 새로 문 연 아빠표 미장원

아빠가 가위를 잡는 날이면 엄마는 분위기를 잘 얼러 의자에 앉히고 애들의 짜증을 받아줘야 한다.(우)


‘○○○가 자란다’에서 ○○○에 해당되는 말. 쌍둥이가 태어난 뒤 처음 실감했던 것은 ‘키가 자란다’였다. 한 2주일쯤 바쁜 회사일로 인해 아침저녁에만 잠시 아이들을 알현하다가 어느 휴일날 보면, 과장을 좀 보태서 키가 한 뼘쯤 커져 있다. 그러더니 첫 돌이 지나면서부터는 조금씩 상승세가 주춤해졌다.
두 번째는 손톱·발톱이다. 바둥거리는 두 아이를 달래가며 이리 자르고 저리 다듬다보면 어느새 ‘5 곱하기 8(손발 두 개씩)=40개 폐기물’의 등식이 성립한다. 일주일만 지나도 어찌 그리 뾰족뾰족 자라는지….
그 다음으로는 머리카락이다. 1년 전만 해도 몇 달에 한 번씩, 그것도 별 힘 안들이고 잘라준 것 같은데, 이제는 한 달 반만 지나도 머리털이 뒷목과 귀를 덮고, 두 달이면 아예 볏집처럼 길어진다. 머리카락 사이로 삐질삐질 땀방울들이 송송 맺힌 모습을 보면 얼른 잘라줘야지 하는 일념이 가득 생긴다.

하루가 다르게 자라는 머리카락, 미용실은 소용이 없다!
예전에는 애들 머리가 다 비슷한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아니다. 어른들보다 더 ‘신경 안 쓴 머리’ 티가 난다. 푸석푸석 삐죽삐죽 머리카락이 제멋대로 자라 있으면 제아무리 비싸고 예쁘다는 셜리템플이나 미키하우스 옷을 입혀도 제대로 분위기가 살지 않는다.
처음엔 ‘어린이 전용’이라는 미장원에 가봤지만, 아내와 나는 그다지 마음에 들지 않았다. 미용의자 대신 장난감 차 같은 데 앉힌다는 점, 언니들이 조금 더 상냥하게 얼러준다는 점이 차별적이기는 하지만 결과는 늘 가지런히 커트한, 동일한 스타일의 바가지 머리였다.
미장원 데려가서 기다리면서 어르고 머리를 자를 때도 함께 달래주다보면 특별히 부모의 체력이 덜 소모되는 것 같지도 않다. 공연한 걱정은 꼬리에 꼬리를 물어, ‘저 수많은 아이들에게 사용되는 바리캉, 저 속의 땀띠균이 우리 애들 머리로 옮겨 오는 건 아닐까’ ‘민정이는 유난히 예민한데 혹시나 고개를 흔들다가 귀가 베이지 않을까’ 하는 기우가 점점 늘어났다.

드디어 쌍둥이의 머리카락을 직접 자르기로 결심했다!
이쯤 되자 의상 디자인을 전공해 ‘가위’에 대한 감각이 남다른 아내가 “저 정도면 나도 할 수 있지 않을까” 하며 전의를 불태우기에 이르렀고, 급기야는 미용도구 몇 개를 구입하게 됐다. 지금은 아이들이 어려 완성된 헤어스타일에 대해 불평을 늘어놓지 못한다는 것도 우리 부부에게 용기를 주었다. 몇 년만 더 지나도 머리가 맘에 드네 마네 할 텐데, 지금은 좀 못 잘라도 애들이 알게 뭐람, 하며 실습에 나설 수 있었다.
인터넷을 뒤져 이발 도구를 여러 개 사놓기는 했지만 막상 깎아보니 전자 바리캉과 일명 ‘숱 치는 가위’ 두 개만 있으면 충분할 것 같다. 미용실에서 쓰는 전문가용 가위도 있긴 한데 끝이 날카롭고 번쩍거려 사용하기가 불안하다.

‘삐뚤빼뚤’ 서툴지만 개성미 만점~ 새로 문 연 아빠표 미장원

<b>1</b> 머리를 자른 후에는 넓은 브러시로 목과 얼굴부분을 잘 털어주어야 한다.<br><b>2</b> 머리 자르는 도구는 4만~5만원 정도면 구입할 수 있다. <br><b>3</b> 평소에 잘 주지 않는 초콜렛도 머리 깎는 날만은 예외다.


숱 치는 가위는 끝이 뭉툭해 안심되고, 전자 바리캉 역시 머리카락을 충분히 허공으로 잡아 뺀 다음 잘라내게 돼 있는데다 머리카락이 닿을 때만 모터가 돌기 때문에 조금만 신경 쓰면 아이 머리를 쉽게 자를 수 있다. 집에 있는 문구용 가위도 생각보다는 그런대로 쓸 만해 남자 아이 부모라면 따로 이발 도구를 구입하지 않아도 될 것 같긴 하다.
안전하다고 아이 머리 자르는 게 끝난 것은 아니다. 결대로 자른다고 했는데 깎고 나면 앞머리 라인이 완전 비대칭이 되기 일쑤다. 다듬고 다듬으면서 올라가다보면 결국 스포츠 머리가 되는 시행착오를 한두 번은 겪어봐야 할 듯싶다.

시간이 지나면서 터득한 노하우로 멋진 헤어스타일링을~
시 여성회관에서 주최하는 ‘미용교실’을 몇 번 청강한 아내가 ‘비법’을 알아온 게 있어 요즘은 그래도 어느 정도 헤어디자이너 흉내는 내게 됐다. 머리카락을 전부 도깨비뿔처럼 위로 올려 모아 삐져나온 부분 위주로 가위질을 하면 결과적으로 머리카락이 얼추 평행선을 그린다는 법칙인데, 초보자라면 요긴하게 참고할 만하다.
만족스러운 헤어스타일이 나오려면 기능적인 측면 말고도 엄마아빠의 2인 1조 콤비 플레이가 잘 이루어져야 하고, 유정이와 민정이의 당일 컨디션도 중요하다. 어찌 보면 가족 전체가 함께 호흡을 맞춰 일궈내는 종합예술 같기도 하다. 엄마가 가위를 잡는 날이면 아빠는 분위기를 잘 얼러 아이들을 의자에 앉히고 짜증도 받아줘야 한다.
애들의 10분은 마치 어른들이 한두 시간 묶여 있는 속박감과 비슷한가보다. 건포도 몇 개, 유기농 과자 몇 개, 두유, 요구르트 등 주전부리들이 금세 소진되고 나면 그 다음은 토머스 기차그림카드 안겨주고, 다음은 동화책 읽어주는 시간, 그래도 완성이 덜 됐으면 다시 건포도부터 시작….
마음 비울 일도 있다. 귀밑과 목선을 드러내는 가지런한 머리는 쉽게 만들 수 있어도 ‘예쁜 머리 욕심’은 언감생심이다. 우리 애들도 머리 자르고 백화점 데려가는 날이면 꼭 “아들이 아빠를 꼭 닮았네” “아들내미들이 참 귀엽네요”라는 찬사 아닌 찬사를 듣게 되어 한편으로는 섭섭했던 적도 있다.
이발 도구를 구입할 때도 각종 최신형 상품목록을 보고 흥분하면 안 된다. 유명 외제 B사 제품 중 삼십몇 만원 하는 바리캉은 외관이 수려해 보고 혹하기 쉬운데 보통 4만~5만원이면 준수한 상품을 구입할 수 있다. 미장원 비용 몇 만원 아끼자고 그렇게 비싼 거 사면 남는 게 없지 않은가.



조인직 기자는…
동아일보 정치부·경제부 등에서 7년여간 일했으며, 지난해 7월부터 시사월간지 ‘신동아’ 기자로 일하고 있다. 2002년 10월 결혼해 2005년 5월 쌍둥이 딸인 유정·민정이를 낳았다. 쌍둥이다보니 손이 많이 가고 그만큼 육아에 적극 참여할 수밖에 없다는 그는 이제 ‘육아의 달인’이라는 애칭을 달고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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