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학교 영어수업’ 하면 보통 빽빽한 지문을 지루하게 읽어 내려가는 교사와 졸거나 딴짓하는 아이들이 떠오른다. 교사가 질문하면 학생들은 눈 맞춤을 피하고, 교사 역시 문제를 풀고 답 맞추기에 여념이 없다. 하지만 염광고 박용호 교사(31)의 수업시간에는 이런 풍경을 찾아볼 수가 없다.
‘수업은 연극이다’라고 생각하는 박 교사는 배우가 무대에 오르기 전 피나는 연습을 하듯이, 수업에 들어가기 전 학생들의 시선을 사로잡을 수 있는 다양한 교수 방법을 연구한다. 먼저 옷차림부터 다르다. 딱딱한 느낌을 주는 정장 대신 캐주얼 복장으로 교단에 선다. 학생들의 호기심을 불러일으키고 효과적으로 수업내용을 전달해주는 교재와 교구 준비도 필수!
박 교사의 교구 중 특히 눈에 띄는 것은 녹색·연두색·보라색·갈색·오렌지색 등 다양한 색깔의 분필과 학생 번호 주머니다. 다채로운 색깔의 분필은 학생들의 눈길을 끌고 칠판에 집중하게 하는 데 그만이다. 또 학생들의 번호를 부를 때는 고양이 캐릭터가 달려 있는 번호 주머니에서 번호가 적힌 타일을 꺼내 흥미를 유발한다. 이 밖에도 직접 만든 게임판, 벌을 줄 때 사용하는 오뎅 꼬치, 주사위, 벌칙 사탕 등 박 교사의 수업 준비물은 양손 가득 넘친다. 때문에 학생들은 ‘이번 수업시간에는 어떤 재미있는 일이 벌어질까?’ 하며 두 눈을 반짝이며 수업에 참여한다고.
“수업은 무엇보다 학생 위주로 이뤄져야 해요. 재미있게 수업을 진행하면 학생들의 태도가 달라져요. 졸거나 딴생각하는 학생이 거의 없죠. 자연히 잔소리하는 시간도 줄고, 학생들이 열심히 참여하니 수업하는 데 힘이 납니다. 학습효과가 높아지는 것은 당연하고요.”
읽기(reading) 수업의 경우 박 교사는 반 아이들을 세 팀으로 나눠 진행한다. 먼저 교과서에 지문이 나오면 학생들이 주어진 글을 혼자 읽을 때 어려움을 느끼지 않도록 단어나 구문을 간략하게 설명한다. 그 후 한 단락에 2분 정도 학생들에게 스스로 읽을 시간을 준 뒤 세 팀이 경쟁할 수 있는 게임을 실시한다. 게임에서 이기면 이긴 팀 전체 인원에게 초콜릿을 주거나 단어시험의 커트라인을 낮출 수 있는 캐시백 포인트를 준다. 학생들은 포인트를 획득하기 위해서라도 수업에 적극적이 된다고 한다.
보물찾기·색칠하기 같은 놀이하며 영어 가르치면 효과 백 배
흥미를 유발하며 재미있게 진행되는 박 교사의 수업 방식은 어린아이가 있는 가정에서도 유용하게 사용될 수 있다. 그는 “뻔뻔(fun fun)하게 영어를 익혀야 한다”고 강조한다. 99년부터 2년간 어린이 영어 전문학원에서 5세, 6세, 초등학교 1학년 아이들에게 영어를 가르친 경험이 있는 박 교사는 아이들과 영어로 인형놀이를 하고 소꿉장난을 하면서 색깔이나 음식, 옷, 물건 사기, 인사하기 등의 영어 표현을 알려줬다. 특히 아이들이 좋아하면서도 손쉽게 할 수 있는 것이 영어 색칠놀이. 예를 들어 ‘apple’이라는 단어를 가르칠 때 10번씩 쓰면서 외우게 하기보다는 스케치북에 사과를 그려놓고 ‘apple’이라고 말하면서 동시에 색칠하게 하면 훨씬 더 강렬하게 단어를 기억할 수 있다고 한다.
또 아이들은 활동적이므로 장시간 앉아서 공부하기보다는 움직이면서 영어를 익히게 하는 것이 좋다. 영어로 숫자를 가르칠 때 1부터 10까지 세는 법을 알려준 뒤, 엄마가 이야기하는 숫자만큼 걸음을 떼게 한다거나 점프를 시키는 식. 여러 가지 영어 단어가 적힌 종이를 집 안에 숨기고 그 단어를 보물찾기 하듯이 찾도록 하는 것도 효과적이다.
“영어는 수학이나 과학처럼 법칙을 찾거나 이론을 탐구하는 과목이 아니에요. 오히려 음악이나 미술처럼 오랜 연습을 통해 익혀가는 실기과목이라고 할 수 있어요. 실기과목은 재미가 우선시돼야 해요. 영어를 처음 접하는 아이들의 경우 재미에 중점을 두면 영어에 대한 흥미와 자신감을 심어줄 수 있어요.”
생활영어 표현들을 가르칠 때는 반 아이들의 얼굴 사진을 붙인 종이인형을 사용한다(위). 박용호 교사가 직접 만든 블루마블 게임. 읽기나 듣기 등의 문제를 풀면 그 학생이 속한 팀은 주사위를 굴려 그 팀의 말을 움직일 수 있다. 수업이 끝나면 각 팀이 번 돈만큼 캐시백 포인트를 획득할 수 있다(아래).
한국외국어대 영어과를 졸업한 박 교사는 2001년 호주에 어학연수를 갔던 것이 첫 해외 연수 경험이었을 만큼 한국에서 대부분의 영어 실력을 키웠다. 호주 시드니에서 교사 연수 프로그램을 이수한 그는 지난 2002년부터 염광고에서 교편을 잡고 있다.
“어린이 영어 전문학원에서 일할 때 보면 3, 4세 정도 되는 어린아이들이 엄마 손에 이끌려 오는 경우가 많더라고요. 몇 살부터 학원에 보내는 것이 좋다는 원칙은 없지만 최소한 수업을 받을 수 있는 능력이 생기는 나이부터 학원 공부를 시작하는 것이 효과적일 것 같아요.”
오랜 시간 학원이나 학습지에 의존하면 스스로 공부하는 능력 키우지 못해
학원이나 학습지로 영어공부를 시작할 때는 정확한 의사 파악을 위해서라도 한국인 교사의 도움을 받는 것이 좋다고 한다. 무턱대고 원어민 교사에게 아이를 맡기면 입만 살아 있고 뜻은 모르게 될 가능성이 크다고. 또한 그는 오랜 시간 학원이나 학습지에 의존하면 스스로 공부할 수 있는 능력을 키우기 힘들므로 학원이나 학습지 수업은 2개월을 넘지 않도록 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박 교사는 특히 엄마의 역할을 강조했다. 엄마는 아이의 ‘영어 성장’이 어떻게 이뤄지고 있는지 파악해야 한다고. 이를 위해서는 엄마들도 아이가 배우는 영어 수준 정도는 알 만큼 영어에 대한 지식을 갖고 있어야 한다. 아이가 학교나 학원에서 배우는 교재를 함께 보거나 예전에 공부했던 중학교 문법책 등을 꺼내 공부해야 한다고.
“아이에게 영어를 직접 가르치라고 하면 대부분의 엄마들은 발음이 안 좋다며 걱정하세요. 하지만 영어를 공부할 때 발음은 크게 중요하지 않아요. 그보다는 하고 싶은 말을 영어로 정확하게 전달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박 교사는 중학교나 고등학교 학생들은 영어학원에 보낼 필요가 없다고 말한다. 기본기만 있으면 응용을 통해 영어 실력을 키울 수 있기 때문이다. 단 기본기가 없는 아이들은 한두 달 정도 영어기초반을 다닌 뒤 영자신문이나 영어원서 등을 읽으며 실력을 키우라고 조언했다. 이때 영어 학원은 대형 학원보다는 교사 한 명당 학생들의 숫자가 적고 영어를 전문으로 하는 학원을 선택하는 것이 좋다고 한다.
교편을 잡는 순간부터 현재 교육과정에 맞는 재미있는 영어교육 방법을 연구했던 박 교사는 지난해 영어교사 수업 경진대회에서 대상을 수상했고 최근 자신이 실천했던 교수법들을 정리해 ‘라이언 쌤, 이렇게 가르쳐서 영어수업 대박내다’(성우)라는 책을 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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