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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OPLE

희망을 말한다!

이소영·어머니 고경애씨 감동 사연

시각장애, 자살위기 극복하고 한국예술종합학교 지휘과에 수석합격~

기획·김명희 기자 / 글·오진영‘자유기고가’ / 사진·홍중식 기자

2007. 05. 18

선천성 백내장으로 2년 전 오른쪽 눈 실명, 장애가 있는 딸 둘을 남기고 세상을 떠난 아버지, 엄마의 사업 실패와 대학 진학 실패로 인한 방황. 한때는 동반자살을 생각할 정도로 힘들었던 세월을 이기고 한국예술종합학교에 입학, 피아노와 성악으로 희망을 노래하는 이소영씨와 어머니 고경애씨를 만났다.

이소영·어머니 고경애씨 감동 사연

거듭된 불운, 불행을 극복하고 훌륭한 음악인으로 성장, 더 큰 미래를 설계하고 있는 이소영씨와 그에게 가장 큰 힘이 되고 있는 어머니 고경애씨.


2005년 한국예술종합학교 지휘과에 수석 입학한 이소영씨(24)에게는 사람들을 깜짝 놀라게 하는 재주가 있다. 영화 ‘아마데우스’에서 모차르트가 피아노를 거꾸로 치는 장면처럼 피아노를 등지고 서서 뒤로 손을 뻗어 연주를 하는 것이다. 악보에서 오른손과 왼손을 바꾸고 손가락 번호도 완전히 뒤바꾸어 능숙하게 피아노를 칠 만큼 천부적인 음악적 재능을 타고난 그는 시각장애인이다. 선천성 백내장으로 인해 어려서부터 약한 시력으로 세상을 만나며 살아온 것. 어머니 고경애씨(59)는 둘째 딸이 태어난 지 얼마 안 됐을 때 아기 눈에 문제가 있음을 알게 됐다고 한다.
“갓난아기가 어느 정도 지나면 젖을 먹일 때 엄마랑 눈을 맞추는데 소영이는 눈을 맞추지 않는 거예요. 불빛 아래서 자세히 보니 동공 안에 뭔가 뿌옇게 낀 거 같았어요.”
생후 6개월이 됐을 때 엄마 품에 안겨 병원을 찾았던 소영씨는 선천성 백내장 진단을 받았다. 병원에서는 그나마 빨리 발견해서 다행이라고 했다. 소영씨는 그때부터 초등학교 1학년까지 네 번의 수술을 받았다.
“어른이면 부분 마취만 해도 되지만 아이는 혹시라도 움직일까봐 전신마취를 해야 했던 게 힘들었죠. 갓난아기가 24시간 굶고 피검사, 간 기능 검사를 할 때 혈관 찾느라 바늘로 몇 번씩 찌르면 자지러지게 우는데, 가슴이 미어질 것 같았어요.”
소영씨는 네 차례 수술에도 불구하고 겨우 약시를 유지하다 2001년에는 시각장애 3급 판정을 받았다. 2년 전엔 오른쪽 눈에 녹내장이 오더니 결국 완전히 실명이 됐다. 소안구증(안구가 비정상적으로 작은 증상)이 겹쳐 안구 이식도 받을 수 없었다고.

이소영·어머니 고경애씨 감동 사연

신체 감각 중 일부에 장애가 있는 사람 중에는 다른 감각이 탁월하게 발달한 경우가 많은데 소영씨는 남다르게 음감이 뛰어났다고 한다. 세 살 때 장난감 실로폰을 사줬더니 바로 동요를 치더라는 것. 다섯 살에 피아노를 사주자 그때부터는 다른 장난감은 거들떠도 안 보고 피아노만 가지고 놀았다고 한다 .
“피아노를 누워서 치고 뒤로 치고 88개 건반을 팔 뻗어서 끝에서 끝까지 치면서 온갖 장난을 했어요. 왜 피아노를 갖고 장난을 치냐며 때려주기도 했답니다.”
당시 엄마의 꾸지람에도 불구하고 어린 시절부터 약한 시력 때문에 친구들과 어울리기 힘들었던 소영씨에게 피아노는 더없이 소중한 친구였다고 한다.
“유리로 된 두꺼운 안경을 쓰고 다녔어요. 친구들이 안경 없으면 안 보여 쩔쩔 매는 게 재미있다고 장난으로 안경을 휙 낚아채기도 하고 사시가 있는 눈으로 사람을 쳐다보면 왜 째려보냐며 오해도 많이 받았죠. 그런 일이 자꾸 반복되니 다른 사람과 어울리지 못하고 음악만 파고들었고 초등학생 때부터 작곡을 했어요.”

아버지의 죽음, 엄마의 사업 실패, 언니의 실직, 대학 진학 실패… 거듭된 불운
소영씨의 언니는 정신지체를 앓고 있다. 여기에 소영씨까지 시각장애 판정을 받았지만 꿋꿋함을 잃지 않았던 이들 가족에게 또 하나의 시련이 닥쳤다. 소영씨가 초등학교 2학년이던 91년 교통사고로 아버지가 돌아가신 것.
“갑자기 닥친 일이었기에 어찌할 바를 몰랐어요. 건강하던 남편이 마흔다섯 나이에 갑자기 떠나버리고 몸도 성치 않은 어린 두 딸과 남겨지니 거의 정신을 잃을 것 같았어요. 한동안 아무것도 못하고 우울증에 빠져 있었죠. 남편이 살아 있을 때는 소영이의 음악적 재능을 키워주려고 노력했는데 저 혼자 남겨지고 나니 전혀 그런 생각들이 나지 않았어요. 음악은 특히 초등학교 때부터 부모가 신경을 많이 써줘야 하는데….”
그렇게 5년을 보내고 어느 정도 마음이 수습된 고씨는 수중에 있는 돈을 밑천으로 사업을 시작했지만 하는 일마다 잘 풀리지 않았다. 실패를 거듭하며 집안 형편은 점점 기울어갔고 98년 IMF를 맞았다. 예고에 다니던 소영씨는 학교 측의 배려로 수업료 면제 혜택을 받고 간신히 고등학교를 마칠 수 있었다.
어려운 형편에도 삶의 유일한 희망인 음악에 대한 열정을 잃지 않았던 소영씨는 2001년 한국예술종합학교에 응시해 합격했다. 하지만 면접에서 고배를 마셨다. 자신의 장애 때문에 불합격했다는 생각을 떨쳐버릴 수 없었던 그는 그로 인해 더 심한 나락으로 떨어지는 것 같았다고. 이후 그는 마음의 평안을 찾고자 신학대 종교음악과에 진학했지만 적성에 맞지 않아 1년 만에 휴학했다. 그 후 2년은 소영씨 모녀에게 가장 힘든 시간이었다고.
“방에 틀어박혀 인터넷 채팅만 하고 있으면 엄마가 막 야단쳐요. 그럼 저는 “엄마는 뭐하다가 집안 돈 다 써버렸느냐”고 반항했죠.”
학습 능력은 낮지만 사회생활에는 지장이 없는 언니 지영씨도 직장 생활에 적응하지 못하고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는 일이 거듭됐다. 게다가 2003년 여름, 고씨가 하던 사업이 완전히 실패해 살던 집이 경매에 넘어가고 고씨는 신용불량자가 됐다.
“더 이상 살아갈 희망이 없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나 혼자 죽어버리고 정상도 아닌 아이 둘만 남겨놓을 순 없으니 같이 죽어버리는 수밖에 없을 것 같았어요.”

“대학 합격 후 장애가 걸림돌이 되지 않는다는 걸 실감하고 희망 갖게 됐어요”
이소영·어머니 고경애씨 감동 사연

이소영씨가 자신의 체험을 바탕으로 희망을 나누고자 최근 발간한 ‘그래요, 눈이 없는데 귀가 있더라고요’.


고씨는 평소 두 딸이 좋아하는 햄버거와 치킨을 사들고 딸들을 차에 태워 공원으로 갔다. 죽기 전에 좋아하는 음식을 마지막으로 먹이고 음료수에 살충제를 타서 같이 마실 작정이었다. 살충제를 탄 음료를 마시려는데 냄새가 역겨워 입에 갖다 댈 수가 없었다. 그때 소영씨가 “엄마, 안 죽으면 안 돼? 우리 이제 엄마 말 잘 듣고 열심히 할게, 다시 한 번 생각해보자, 응?” 하며 울음을 터뜨렸다. 그제야 정신이 번쩍 든 고씨는 두 딸을 부둥켜안고 한참을 울었다고.
“그런 일이 있고 나서 희망을 갖고 살아보자고 셋이서 약속했어요. 교회에 나가 사람들과도 어울리고 소영이는 공부를 다시 시작했죠.”
마음을 다잡고 열심히 공부한 결과, 소영씨는 2005년 한국예술종합학교 지휘과에 수석으로 합격, 4년 전액 장학금을 받게 됐다. 4년 전 불합격의 기억이 떠올라 불안한 심정으로 면접에 응했는데 담당 교수가 “재능이 있는 것 같으니 계속해보라”는 격려를 해줬다. 면접에 참여한 독일인 베어만 교수가 “저렇게 뛰어난 음악성을 가진 학생을 안 뽑을 수 없다”고 주장했다는 사실도 알게 되면서 소영씨는 장애가 걸림돌이 되지 않은 것에 큰 힘을 얻었다고 한다. 또 지난해에는 완전히 잃어버린 오른쪽 눈 대신, 왼쪽 눈의 시력이 희미하게 살아났다. 희망을 향한 걸음걸이를 옮기기에 큰 동력이 아닐 수 없었다.
음악 전반에 대한 이해의 폭을 넓히기 위해 지휘를 선택했던 소영씨는 현재 성악으로 전공을 바꾸었다. 고등학교 졸업 이후 지인의 도움으로 성악 레슨을 받았는데 대학에 입학해 공부하면서 성악에 더 큰 매력을 갖게 됐고 지도 교수도 성악을 추천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힘든 일도 많았지만 지금은 저를 크게 쓰이는 일꾼이 되게 하려고 주신 시련이라고 생각하게 됐어요. 지금은 월셋집에서 언니가 간병인 보조를 하며 버는 돈으로 빠듯하게 살고 있지만 언젠가는 저희 가족에게 좋은 날이 오리라 믿어요. 그리고 저는 앞으로 훌륭한 제자들을 많이 키워내는 음악교수가 되고 싶습니다.”
최근 소영씨는 ‘그래요, 눈이 없는데 귀가 있더라고요’라는 책을 펴냈다. 자신이 그랬듯이 어려움 속에서 울고 있을 어느 누군가에게 희망은 먼 곳에 있지 않다고, 눈을 돌려 희망을 찾는다면 당신의 손이 닿는 가까운 곳에 있다는 이야기를 전해주고 싶어서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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