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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친정엄마’ 주연 맡은 성병숙 가슴 아픈 고백

기획·김명희 기자 / 글·김순희‘자유기고가’ / 사진·지호영 기자 || ■ 의상협찬·손석화 ■ 액세서리협찬·로엔크레쎄 ■ 스타일리스트·김은아

입력 2007.04.23 11:46:00

모녀 간 눈물겨운 사랑을 담은 연극 ‘친정엄마’ 주연을 맡은 성병숙. 두 번의 이혼과 파산, 아버지의 투병 등으로 파란만장한 삶을 살아온 그가 이제는 치매에 걸린 친정어머니를 지켜보며 느끼는 애틋한 마음을 들려주었다.
연극 ‘친정엄마’ 주연 맡은 성병숙 가슴 아픈 고백

만화 주인공 ‘뽀빠이’의 연인 ‘올리브’ 목소리로 유명한 성우이자 배우 성병숙(52)은 요즘 몸이 두 개라도 모자랄 만큼 바쁘다. MBC 주말드라마 ‘문희’를 통해 연기생활 30여 년 만에 처음으로 드라마에서 비중 있는 역할을 맡은 데다 오는 4월12일부터 5월6일까지 대학로 예술마당에서 공연되는 연극 ‘친정엄마’에 고두심과 더블캐스팅됐기 때문.
“오랫동안 연극무대에 섰어요. 연극은 생방송이지만 드라마는 녹화라 늘 ‘생방송이 우선이다’라는 생각으로 무대를 우선순위에 뒀죠. 연극은 수십 년 동안 해도 알아보는 사람이 별로 없었는데 드라마는 4회분이 방영되고 나니까 즉각 반응이 나타나더라고요(웃음).”
당분간 드라마에만 몰두할 생각이던 그가 계획을 바꿔 연극에 출연하기로 결심한 이유는 딸과 엄마의 진솔한 이야기를 담은 ‘친정엄마’가 바로 자신의 이야기로 와 닿았기 때문이라고 한다. 동명의 자전적 수필을 무대로 옮긴 ‘친정엄마’는 친정 엄마와 딸의 관계를 웃음과 눈물로 버무려 풀어낸 작품. 연극은 돌아가신 친정엄마가 옆집 아주머니에게 죽기 전 부탁해 딸에게 보낸 ‘김치’로부터 시작한다. 딸은 죽는 순간까지 자신에게 익은 김치를 먹게 하려고 한 친정엄마 생각에 회한의 눈물을 펑펑 쏟으며 어머니의 흔적이 남아 있는 고향으로 가기 위해 기차에 올라 과거를 회상한다. 그는 딸을 위한 헌신을 기쁨으로 알고 자신의 모든 것을 내주지만 딸의 무관심 속에 쓸쓸히 죽음을 맞이하는 친정엄마 역을 맡았다.
“나이가 들어도 ‘엄마’ 하고 부르면 가슴이 먹먹해져요. 마음 한구석이 아리기도 하고 때론 눈에 이슬이 고이기도 하죠. 이번 연극은 저희 어머니께 바치는 ‘사모곡’이에요. 그동안 어머니께 말로 표현하지 못한 사랑을 연기로나마 보여드리고 싶어 출연 제의를 받았을 때 두말할 것도 없이 ‘OK’했죠.”

“연극은 제 어머니께 바치는 사모곡이에요”
연극 ‘친정엄마’ 주연 맡은 성병숙 가슴 아픈 고백

‘어머니와의 만남’은 시작부터 각별했다. 그는 무남독녀 외동딸인데 어머니는 거듭된 유산 끝에 어렵게 그를 낳았다고 한다.
“야무진 분이세요. 음식 솜씨나 집안을 꾸미는 솜씨가 웬만한 전문가보다 나았으니까요. 감수성도 풍부해서 공연을 마치고 관객이 선물한 꽃을 들고 집에 가면 ‘그대로 두었더라면 오래갔을걸, 괜히 꺾어서 빨리 시들겠다’며 가슴 아파하셨죠. 그래서 전 언젠가부터 꽃다발은 집에 안 갖고 들어가요.”
엄한 아버지로부터 바람막이가 돼준 것도 늘 어머니였다. 아버지는 ‘남자 형제가 없으니 대학을 졸업하고 선산이나 지키라’며 고려대 임학과에 보낸 딸이 입학 첫날부터 연극 동아리에 가입해 4년 내내 연기에 푹 빠져 살았다는 사실을 까맣게 몰랐다고 한다. 딸의 귀가가 늦을 때마다 불같이 화를 내는 아버지에게 이런저런 핑계를 둘러대며 그가 배우의 꿈을 키울 수 있도록 지원해준 어머니 덕분이었다.
“비밀이 오래 가진 못했어요(웃음). 성우 시험을 봤는데 집으로 날아온 합격통지서를 아버지가 보셨거든요. 방송 일은 무조건 ‘딴따라’로 여기던 아버지는 ‘가문의 수치’라며 통지서를 찢으려 했는데 어머니가 그걸 빼앗아 제 손에 쥐어주셨죠. 다행히 그 뒤로 일이 잘 풀려 각종 프로그램 MC와 리포터로 활동하게 됐고 아버지도 그때부터는 저를 인정해주셨어요.”
일에 파묻혀 지내던 그는 스물일곱 살 때 지인의 소개로 선을 봐 결혼을 했다.
“만난 지 3개월 만에 결혼했는데 연애기간이 짧아서인지 사사건건 부딪혔어요. 인연이 아니라고 판단하고 3년 만에 딸을 제가 키우는 조건으로 헤어졌죠.”
자신이 외동딸이라 친정 부모를 모시고 사는 게 도리라 여겨 부모와 함께 살았는데 결과적으로 결혼생활의 험한 모습을 다 보이게 된 그는 다시는 결혼을 하지 않으리라 다짐했다고 한다. 그런데 딸을 키우면서 6년간 정신없이 지내던 그에게 또 다른 사랑이 찾아왔다. 친구의 소개로 알게 된 남자가 30대 중반에 접어든 그의 가슴속 깊이 파고들기 시작했다는 것. 자신과 같은 아픔을 간직한 남자는 그가 기댈 수 있는 기둥이 돼주었고 그는 1년여 동안 고민한 끝에 서른일곱 살에 재혼을 했다.
“두 번째 결혼이라 신중하게 결정했어요. 같은 실수를 반복하고 싶지 않았으니까요. 저희 부모를 기꺼이 모시겠다는 게 더없이 고마웠고 그 사람이 하는 사업도 날로 번창해 한동안은 행복했어요. 그런데 사업 규모가 커지면서 점점 가정과는 멀어지더군요. 그러더니 IMF 때 1백억원대의 부도가 났어요. 사업이 어려워지자 친정아버지 명의로 된 집을 담보로 제공했는데 그것까지 남의 손에 넘어가버렸죠. 평생 공무원으로 재직하며 일군 전 재산을 잃은 아버지는 그 충격으로 중풍에 걸리셨어요.”
“몇 달만 견디면 다 해결이 될 것”이라며 서류상으로 그와 이혼하고 외국으로 도피한 남편은 이후 소식도 없이 한국으로 돌아오지 않았고 그들 부부는 영영 남남이 되고 말았다고 한다.

두 번째 남편의 부도로 집 잃은 뒤 아버지는 중풍에, 어머니는 치매에 걸려
“빚 독촉이 굉장히 심했어요. 집이나 방송국에서나 늘 채무자들에게 시달리며 살았죠. 김대중 대통령 취임식 때 2부 행사를 제가 진행했는데 그때도 채무자들이 행사장 밖에서 저를 기다리고 있었어요. 아버지는 중풍으로 쓰러져 생과 사의 경계를 헤매고 계시고, 집은 이미 다른 사람 손에 넘어가고, 어떻게 살아야 할지 정말 눈앞이 캄캄하더군요. 게다가 중학교 3학년이던 딸은 우울증 증세로 집 밖을 한 발짝도 나가려 하지 않았어요. 학교도 가기 싫어하고, 집에서 비디오만 빌려다 보는 딸을 지켜보며 억장이 무너지는 것 같았습니다.”

연극 ‘친정엄마’ 주연 맡은 성병숙 가슴 아픈 고백

하지만 마냥 손놓고 있을 수만은 없었다. 자신마저 정신을 놓아버리면 부모도 자식도, 수렁 속에서 헤어나올 수 없다는 걸 누구보다 잘 알았던 그는 수중에 남아 있던 돈을 모두 모아 딸을 캐나다로 유학 보냈다. 그리고 자신은 닥치는 대로 일을 해 월세 값과 아버지 병원비, 딸의 학비를 마련했다.
“살아도 사는 게 아니었어요. 절망 가운데 빠져 있는데 어느 날 어머니가 제 손을 꼭 잡고 ‘넌 아직 젊잖니. 우리가 함께 헤쳐 나가보자’고 격려해주셨어요. 그 말이 그 어떤 위로보다 제게 큰 힘이 됐어요.”
그러나 불행은 거기서 그치지 않았다. 2005년 8년째 중풍에 시달리던 아버지가 세상을 떠났고 그에 앞서 어머니가 알츠하이머 진단을 받은 것.
“아버지가 세상을 떠나기 5개월 전, 어머니가 그 병에 걸린 사실을 알게 됐어요. 하루는 엄마가 외출을 했다가 집에 돌아오려고 택시를 탔는데, 아무리 생각해도 집이 어딘지 기억이 안 나 그냥 내렸다고 하더라고요.”
2시간 동안 거리를 헤매다 겨우 집을 찾아왔다는 엄마의 이야기를 들은 그는 하늘이 무너져내리는 것 같았다고 한다. 그의 어머니는 “왜 갑자기 아무것도 생각나지 않았는지 모르겠다”면서 대수롭지 않게 이야기했지만 그는 ‘혹시 치매에 걸린 것이 아닐까’하는 두려움 때문에 밤새 펑펑 눈물을 쏟았다고.
“다음 날 병원에 가서 정밀검사를 해보니 이미 병이 많이 진행된 상태라고 하더라고요. 달리 방법이 없었어요. 검사 결과를 받아들이는 수밖에는. 아버지가 돌아가신 이후론 상태가 더 안 좋아지셨어요.”
집에서 오랫동안 키운 개 이름이 ‘향기’인데 자꾸 ‘송이’라고 부르기도 하고 밥을 먹었는지 안 먹었는지도 잘 모른다고. 그는 어머니의 그런 모습을 볼 때마다 가슴이 찢어지는 것 같다고 한다.
“어머니가 무생채를 잘 만드세요. 그걸 좀 해달라고 했더니 무를 잘라놓고는 그 다음엔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쩔쩔매는 거예요. 엄마를 붙잡고 막 울었죠. 그래도 제가 TV에 나오면 알아보고 좋아하세요. 드라마가 무슨 내용인지, 제가 어떤 배역을 맡았는지 모르지만 그저 당신의 딸을 보는 것만으로도 좋은가봐요.”

“‘엄마’라고 부르면 대답해줄 사람이 있어 감사하고 행복해요”
요즘 그의 집에는 친정엄마, 그, 그리고 그의 딸까지 ‘모녀 3대’가 함께 살고 있다. 고등학교 3학년 때 캐나다에서 귀국, 서울예대 연극과를 졸업한 딸 서송희양(24)은 얼마전 ‘궁s’를 통해 연기자로 데뷔했다. 그는 “딸과 한길을 가게 돼 기쁘다”고 말했다. “같은 분야에서 일을 하니 대화가 잘 통하고 서로 이해할 수 있는 폭이 넓어졌어요. 어머니가 편찮으시기는 하지만 살아서 곁에 계시다는 것만으로도 큰 힘이 된데다 딸의 일이 잘 풀려서 요즘은 모든 게 감사하고 행복해요.”
그는 매일 새벽 5시에 일어나 엄마 옆에 누워 야윈 손을 가만히 잡은 채 깡마른 얼굴을 매만지면서 ‘동문서답’을 주고받는다고 한다. 제대로 된 대화가 오가지는 못하지만 “엄마” 하고 부르면 “어”라는 대답을 들을 수 있어 행복하다는 성병숙. 그는 ‘친정엄마’ 객석에 자신의 어머니를 모셔놓고 연기를 하고 싶다고 한다.
“객석에 있는 엄마를 보면 눈물이 마르지 않을 것 같아요. 치매에 걸리지 않았다면 엄마도 연극을 보며 눈물을 흘릴 텐데. 무슨 내용인지 모르고 그저 멀뚱히 객석에 앉아 딸을 쳐다보고 있을 친정엄마를 생각하니 벌써부터 가슴이 아려오네요. 딸이 웃으면 저도 웃고 그 아이가 울면 제 마음도 아픈 것처럼 어머니도 저와 똑같은 마음일 거예요. 어머니가 저를 몰라봐도 좋으니 오래오래 곁에 계시면 좋겠어요.”
인터뷰 내내 눈물을 참았던 그의 눈자위가 촉촉이 젖어들었다.

여성동아 2007년 4월 520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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