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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미녀는 괴로워’에서 연기자로 변신해 화제 모은 ‘출산드라’ 첫 고백

글·김유림 기자 / 사진·홍중식 기자 || ■ 헤어&메이크업·살롱루즈

입력 2007.03.21 10:50:00

‘출산드라’ 김현숙이 최근 겹경사를 맞았다. 연기자로 변신해 첫 출연한 영화 ‘미녀는 괴로워’가 6백만 관객을 동원하며 흥행에 성공한 데다 20년 동안 홀로 지낸 어머니가 재혼을 한 것. 그에게서 반항아였던 사춘기 시절, 연기자로서의 꿈, 어머니의 재혼 사연을 들었다.
영화 ‘미녀는 괴로워’에서 연기자로 변신해 화제 모은 ‘출산드라’ 첫 고백

“이 세상에 날씬한 것들은 가라, 너의 시작은 삐쩍 말랐으나 끝은 비대하리라.” 2년 전 KBS ‘개그콘서트’에서 ‘출산드라’로 인기를 모은 김현숙(29)이 1년여의 공백기를 거쳐 연기자로 거듭났다. 6백만 관객을 동원한 영화 ‘미녀는 괴로워’에서 코러스 가수이자 여주인공 한나(김아중)의 ‘베스트 프렌드’ 역을 맡아 맛깔스러운 연기를 선보인 것. 그는 촬영 전 리허설을 하며 김아중과 쉽게 친해질 수 있었다고 한다.
“실제로 친해야 연기도 자연스럽게 나오잖아요. 크랭크인 들어가기 두 달 전부터 모든 배우가 리허설에 들어갔는데, 아중이와는 연습 후에 함께 식사도 하고 술도 마시면서 친해졌어요. 극중에서 아중이한테 ‘비계 떼고 처먹어. 이년아’ 하는 장면이 있는데, 그 장면을 리허설한 뒤에는 삼겹살을 먹으러 가서 ‘많이 먹어. 이년아’ 그랬어요(웃음).”
사실 그는 ‘개그콘서트’로 얼굴을 알리기 전까지 연극, 뮤지컬에 출연하며 정통 연기를 해왔다. 부산 경성대 연극영화과 재학시절부터 교내외 연극무대에 선 것. 졸업 후 서울로 올라와 개그맨 박준형의 권유로 ‘개그콘서트’에 출연, ‘출산드라’로 인기를 모으게 됐다.

영화 ‘미녀는 괴로워’에서 연기자로 변신해 화제 모은 ‘출산드라’ 첫 고백

김현숙은 지난 1월 결혼한 새아버지와 어머니에게 커플링을 선물했다.


“준형오빠와는 인연이 깊어요. 대학시절 KBS ‘캠퍼스 최강전’이란 프로그램에 출연한 적이 있는데, 그때 준형오빠가 진행을 맡았거든요. 1시간 반 동안 제가 펼친 원맨쇼를 보고는 ‘같이 일할 생각이 없냐’고 하더라고요. 그때는 개그를 할 생각이 전혀 없었기 때문에 거절했는데, 7년 뒤 김지혜씨와 같이 뮤지컬에 출연하게 되면서 준형오빠와 이어졌고 연예계에 데뷔하게 됐어요.”
그가 뚱뚱교 교주로 변신해 외모지상주의를 비판하는 풍자개그는 가히 폭발적인 인기를 얻었다. “먹다 지쳐 잠이 들면 축복을 주리니”라는 노래와 “자연분만 모유수유”라는 구호가 유행하기도 했다. 하지만 8개월 동안 하루도 쉬지 않고 아이디어를 짜내느라 몸과 마음이 많이 지쳤던 그는 뮤지컬 ‘넌센스 잼보리’에 출연하면서 ‘하나에만 집중하자’는 생각으로 ‘개그콘서트’를 그만뒀다.

“장르의 구분 없이 활동하는 희극배우 되고 싶어요”
“출산드라로 많은 사랑을 받았지만 관객들이 질리기 전에 그만둬야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뮤지컬에 출연하면서 ‘개그콘서트’ 무대를 떠났고, 그 후에 영화 ‘미녀는 괴로워’에 캐스팅되면서 자연스럽게 방송활동을 중단했죠. 제가 영화를 찍는다고 하니까 많은 분들이 미니홈피에 응원의 글을 남겨주셨는데, 촬영이 몇 차례 연기되자 부담감이 많이 들었어요. 다행히 영화가 개봉되고는 좋은 말씀을 많이 해주셔서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죠. 코미디 역시 연기의 일부분이고 영화든 뮤지컬이든 관객을 즐겁게 해줘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장르의 구분 없이 활동하는 희극배우가 되고 싶어요.”
어려서부터 부산 해운대 일대에서 ‘명물’로 통했다는 김현숙. 중·고등학교 시절 연극부 활동을 한 그는 남을 웃기는 데 일가견이 있어 항상 친구들을 몰고 다니는 왈가닥 소녀였다고 한다. 하지만 처음부터 활달한 성격의 소유자는 아니었다고. 어린 시절에는 홀어머니 밑에서 자라면서 집에 정을 붙이지 못하고 학교에서도 ‘있는 듯 없는 듯’ 조용한 아이였다는 것. 그러다 초등학교 6학년 작문시간에 자신이 쓴 에세이를 발표할 기회를 가진 그는 그제야 내면에 잠재돼 있던 유머를 표출하면서 아이들 사이에서 스타로 떠올랐다고 한다.
“그전까지는 제가 재미있는 아이라고 생각해본 적이 없었어요. 그런데 유머가 한번 터지기 시작하니까 걷잡을 수 없더라고요(웃음). 제가 무슨 말만 해도 아이들이 좋아하고 관심을 보이니까 그것 자체가 그냥 좋았어요. 주위에 친구들이 많아지면서 자신감도 생겼고요.”
하지만 유년시절 그는 넉넉지 못한 가정형편 때문에 마음의 상처를 많이 받았다고 털어놓았다. 남편과 사별 후 어머니 혼자 3남매를 키우다 보니 경제적 어려움이 적지 않았다. 그는 학창시절 용돈 한번 제대로 받아 써보지 못했고, 학교 공과금을 내지 못해 곤란했던 적이 많았다고 한다. 심지어 끼니 걱정을 해야 할 때도 있었는데, 철부지 시절이었기에 어머니에게 화를 내고 원망의 화살을 돌린 적도 많다고.

어린시절 넉넉지 못한 가정형편 때문에 마음의 상처 많이 받아
그는 경제적 어려움 때문에 대학 진학의 꿈도 잠시 접어야 했다. 입학금이 없어 고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1년 동안 악착같이 아르바이트를 해 돈을 모았고, 친구들보다 한 해 늦게 연극영화과에 입학했다. 대학 진학 후에도 등록금을 마련하기 위해 돈을 벌어야 했던 그는 자신의 생활비는 물론 의대에 다니는 오빠와 신학대에 다니는 동생 뒷바라지까지 도맡아 했다.
“그동안 안 해본 아르바이트가 없어요. 유선방송국 전화상담부터 중국집, 떡볶이집, 갈비집, 주유소 아르바이트까지 닥치는 대로 했죠. 어느 날은 버스를 타고 아르바이트 장소로 가던 중 깜빡 졸다가 똑같은 노선을 두 바퀴나 돌기도 했어요. 평소 같았으면 웃고 넘어갔을 텐데, 그날은 갑자기 주방장의 험상궂은 얼굴이 떠오르면서 눈물이 왈칵 쏟아지더라고요. 어찌나 서러웠던지 지금도 그때의 기억이 생생해요.”

영화 ‘미녀는 괴로워’에서 연기자로 변신해 화제 모은 ‘출산드라’ 첫 고백

꿈을 이루기 위해 궂은일을 마다하지 않았던 그는 대학졸업 후 단돈 3백14만원을 들고 서울에 올라와 옥탑방에서 연기자의 꿈을 키웠다. 그는 지금까지도 집안의 가장 노릇을 해오고 있는데 얼마 전에는 연예인이 돼 번 돈으로 어머니께 집도 한 채 마련해 드렸으며 그동안 어머니가 자식들 키우느라 진 빚도 다 갚았다고 한다.
지난 1월에는 시골 교회의 목사님을 새아버지로 맞았다. 사실 그는 처음에는 어머니의 재혼을 환영하지 않았다고 한다. ‘이제야 조금 편하게 지내게 된 어머니가 가시밭길로 들어가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 하지만 1년여 동안 어머니와 새아버지의 만남을 옆에서 지켜봐왔기에 그는 견고한 두 분의 관계를 더 이상 반대할 수 없다고 결론짓고 마음을 돌렸다고 한다.
어머니는 겉으로 보기에는 여성스럽고 소녀 같지만 평생 복지사업에 몸을 담아온 뚝심이 강한 분이라고 한다. 주로 편부편모 가정의 청소년을 상담해오셨는데, 집이 없는 아이들은 직접 집에 데려다 키우기까지 했다. 요즘도 어머니는 교회 봉사단체에서 활동하며 독거노인들을 비롯해 불우이웃을 돕고 있다.
“어릴 때는 봉사활동하는 엄마를 원망한 적이 많아요. 우리도 넉넉지 않은데 남의 자식을 데려다 보살핀다는 게 이해되지 않았거든요. 그 아이들과 함께 사는 동안에는 엄마의 사랑을 빼앗기는 것 같아서 불만도 많았죠. IMF 때는 독지가들의 후원이 끊겨서 더 이상 쉼터를 운영할 수 없게 됐는데도, 어머니는 포기하지 않고 시골에 있는 빈집을 돌아다니면서 여러 사람이 함께 살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하셨어요. 어떤 때는 무상으로 집을 사용하기로 하고 도배까지 다 마쳤는데 주인이 나타나 집을 비워달라고 한 적도 있고요. 현재는 경남 밀양에 있는 수양관에서 청소년 상담을 하고 계세요.”



“평생 봉사하며 산 어머니와 새아버지는 영혼이 통하는 사이예요”
밀양 서부교회 목사로 있는 새아버지 역시 평생 봉사활동을 실천해온 사람이다. 주말마다 시골 장터를 방문해 노인들에게 식사를 대접하고 주위 독거노인들에게 생필품을 지원하고 있다. 어머니와는 봉사활동을 하면서 오래전부터 알고 지냈는데, 몇 년 전 부인과 사별하면서 어머니와 함께 새로운 인생을 출발하게 됐다. 그는 어머니와 새아버지를 “영혼이 통하는 사이”라고 표현했다. 또한 그는 “인생의 목표가 같고, 서로를 존중의 대상으로 여기는 모습이 아름답다”고 말하며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사실 저희 엄마가 한 미모 하셔서 그동안 접근한 남자들이 꽤 많았어요. 하지만 그때마다 엄마는 꿈쩍도 안 하셨어요(웃음). 돈과 명예보다는 봉사하는 자세와 신앙심을 가장 중요하게 여기셨던 것 같아요. 저희 남매가 어려운 환경 속에서 이만큼 성장할 수 있었던 것도 어머니의 기도 덕분이죠.”
김현숙과의 인터뷰를 마치고 서울 강남의 한 주얼리 숍에서 그의 어머니와 새아버지를 만났다. 그가 부모를 서울로 모셔 결혼 선물로 커플링을 맞춰드린 것. 푸근한 인상이 서로 닮은 그의 부모는 딸을 기특한 눈빛으로 바라보며 기자에게 딸 자랑을 늘어놓았다.
“항상 가족을 먼저 생각하는 마음이 고마워요. 이번에 신혼여행도 남편과 저는 기도원에 들어가 기도를 하며 보낼 생각이었는데, 현숙이 덕분에 해외로 다녀왔어요. 예전부터 엄마와 여행을 같이 가고 싶어하고, 뭐든 좋은 게 있으면 다 엄마에게 주려고 하는 착한 딸이에요. 어려서부터 주관이 뚜렷한 아이였는데, 결국 자기가 원하는 분야에서 열심히 활동하며 꿈을 이뤄가는 모습이 자랑스러워요. 새아버지한테도 살갑게 대해줘 더없이 고맙고요.”
“이렇게 예쁘고 착한 딸을 얻어서 기분 좋습니다. 평소 아이가 바쁘게 생활하지만 그로 인해 많은 사람에게 기쁨을 줄 수 있으니 아버지로서 뿌듯할 따름이죠. 앞으로 더욱 행복한 가정이 되리라 믿습니다.”
김현숙은 어머니의 재혼으로 동생 둘을 더 얻었다. 결혼식 축가도 다섯 남매가 직접 불렀다고. 그는 “오랫동안 3남매 키우며 고생만 하신 어머니가 이제야 여자로서의 행복을 만끽하게 돼 기쁘다”고 말했다.
“어린 시절 엄마한테 못되게 군 걸 생각하면 죄송하고 부끄러워요. 가끔 절 보고 ‘너 같은 딸 낳아서 키워보라’며 엄포를 놓으시는데, 그때마다 저는 ‘어떻게 딸한테 그런 저주를 퍼붓냐’며 정색을 해요(웃음). 제가 생각해도 참 못되게 굴었거든요.”
그동안의 고생을 밑거름으로 삼아 “진정한 눈물을 아는 희극배우가 되고 싶다”고 말하는 김현숙. 이어 그는 “조금 늦게 찾아온 가족의 행복이 영원히 깨지지 않길 바란다”며 환하게 웃었다.

여성동아 2007년 3월 519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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