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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OPLE

아름다운 변신

인기 드라마 ‘아줌마가 간다’에서 억척 아줌마 연기로 사랑받는 유혜리

글·송화선 기자 / 사진·조영철 기자

2007. 03. 21

80년대 영화 ‘파리애마’에서 고혹적인 섹시미를 자랑하던 유혜리가 최근 억척스런 아줌마로 브라운관에 등장해 화제다. 드라마 ‘아줌마가 간다’에서 가난하고 무식하지만 자식 일이라면 만사 제쳐놓고 나서는 엄마 역을 맡아 안방극장 팬들에게 사랑받고 있는 유혜리를 만났다.

인기 드라마 ‘아줌마가 간다’에서 억척 아줌마 연기로 사랑받는 유혜리

탤런트 유혜리(43)에게는 늘 ‘섹시 스타’라는 수식어가 따라다닌다. 지난 88년 영화 ‘파리애마’에서 170cm가 넘는 늘씬한 몸매, 매혹적인 갈색 눈동자를 선보이며 많은 이의 눈길을 사로잡았기 때문이다. 이후에도 그는 개성 있는 악역을 주로 맡아 섹시한 매력을 선보여왔다. 그런 그가 요즘 KBS 아침 드라마 ‘아줌마가 간다’에서 무식하고 욕 잘하는 데다 자식 일이라면 만사 제쳐놓고 뛰어드는 억척스런 아줌마를 연기하고 있다. 드라마에서 그의 딸로 나오는 양정아는 유혜리보다 아홉 살 적고, 또래로 설정돼 있는 사돈 역의 양희경은 그보다 열 살이 많다. 결국 유혜리는 요즘 제 나이보다 열 살 더 든 엄마 역을 맡아 ‘제대로 망가지고’ 있는 셈이다.
“처음 섭외 전화를 받고는 솔직히 좀 망설였어요. ‘50대 중반 아줌마 역’이라기에 ‘어머, 저 아직 40대예요’라고 말하기도 했죠(웃음). 그런데 감독님이 ‘알아요, 아는데 이건 시놉시스를 쓸 때부터 딱 유혜리씨 역이라고 정해놓은 것이니 한번 보기나 해요’ 하시더라고요.”
그러면서 그는 지난 90년 유혜리가 출연한 영화 ‘우묵배미의 사랑’ 얘기를 꺼냈다고 한다. “그 작품을 봤을 때부터, 언젠가 유혜리씨와 이런 작품을 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고 말했다고.

인기 드라마 ‘아줌마가 간다’에서 억척 아줌마 연기로 사랑받는 유혜리

데뷔작 ‘파리애마’의 성공 때문에 빛이 가려졌지만, 사실 유혜리는 영화 ‘우묵배미의 사랑’을 통해 그해 대종상 여우조연상을 받았을 만큼 연기력을 인정받은 배우다. 그 영화에서 유혜리가 맡은 역은 경제력 없고 노상 바람만 피우는 남편(박중훈)을 ‘잡고 사는’ 생활력 강한 새댁. 가난한 집에서 태어나 술집 작부로 일했던, 무식하고 천박하지만 새로 꾸민 가정에서만큼은 행복하기를 간절히 바라는 미워할 수 없는 여자다. 감독은 “그 새댁의 20년 뒤 모습이 바로 ‘고금화’”라며 “그렇다면 이건 당신을 위한 역이 아니냐”고 말했다고 한다.
“그렇게 말씀해주시니 마음의 부담이 사라졌어요. 그리고 나를 진짜 50대 중반의 아줌마로 만들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 고민하기 시작했죠.”
그래서 그는 원래 대본에는 없던 어눌한 사투리 말투를 집어넣고, 부스스한 파마머리와 ‘몸뻬 바지’ 차림도 직접 제안했다고 한다. 자신을 캐스팅해 놓고도 내심 걱정하는 눈치였던 PD도 그제야 마음을 놓는 것 같았다고.

“억척 엄마 연기 모델은 바로 우리 엄마, 저를 위해 모든 것 다 해준 엄마 덕에 오늘의 제가 있어요”
‘아줌마가 간다’에서 고금화는 고등학교도 채 마치지 못한 딸이 대학원 나온 사위를 얻으니까 처음엔 ‘교수 사위’ 봤다며 자랑스러워하다 ‘그 놈’이 딸을 속 썩이고 바람까지 피우니 내놓고 구박하는 인물. 남편이 있고 자식까지 딸린 딸이 부잣집 남자와 연애하는데도 말리긴커녕 정화수 떠 놓고 ‘잘 되게 해달라’며 빌기도 한다. 무식하고 종잡을 수 없지만 ‘우리 자식한테 좋은 일이면 무조건 좋은 일’이라는 기준 하나만큼은 확실한 보통 엄마. 유혜리가 이 배역을 연기하며 늘 머릿속에 떠올리는 건 바로 자신의 어머니라고 한다. 칠순을 넘긴 나이에도 자식 일이라면 두 발 벗고 나서는, 그래서 때로는 징글징글하지만 사랑할 수밖에 없는 ‘엄마’ 말이다.
“제가 5남매 가운데 셋째인데, 딸 중에선 큰 자식이에요. 막내 여동생이 저보다 열두 살이나 어리기 때문에 어린 시절엔 거의 외동딸처럼 자랐죠. 모녀 사이엔 모자 사이와는 또 다른 끈끈한 정 같은 게 있잖아요. 그런 걸 엄마와 단둘이 살뜰하게 나누면서 자랐어요. 또 속은 얼마나 썩였게요(웃음). 심하게 반대하셨던 연예인 생활을 하지를 않나, ‘파리애마’를 찍지 않나, 그러고서는 또 이혼까지 하고…. 그런데도 엄마는 늘 제 편이에요. 제 걱정만 하시고….”
유혜리는 “엄마를 생각하면 늘 고맙고 미안한 마음뿐”이라고 말한다. 유혜리의 아버지는 경찰 공무원. 그래서 그는 어린 시절 엄격한 가정교육을 받았다고 한다. 큰딸을 끔찍이 아낀 아버지는 혹시라도 딸이 잘못될까 사사건건 감시하고 통제하곤 했다고. 수줍음 많은 딸이 연예계에 데뷔하리라고는 상상도 못했다고 한다.
“저도 사실 연예인이 될 줄은 전혀 몰랐어요. 대학 다닐 때 아는 언니가 한남동에 살았는데, 그쪽에 모델 학원이 있다고 한번 구경가지 않겠냐고 하는 거예요. 진짜 모델들은 어떻게 생겼나 하는 호기심에 놀러갔죠. 그런데 한창 여기저기 구경하고 있을 때 한 사람이 저를 보더니 ‘혹시 모델하고 싶은 생각 없냐’고 말을 걸더라고요.”
“아르바이트처럼 하면 된다. 한 번에 20만원”이라는 말에 그는 고개를 끄덕였다고 한다. 그렇게 84년 CF 모델로 연예계에 데뷔한 유혜리는 한 달에 3, 4편씩 광고를 찍으며 꽤 유명한 모델로 알려지기 시작했다. 그런데 우연히 TV에서 그를 본 아버지에게 이 사실을 들켜 한동안은 집안에 갇혀 지내기도 했다고.

인기 드라마 ‘아줌마가 간다’에서 억척 아줌마 연기로 사랑받는 유혜리

영화 ‘파리애마’에 출연해 엄격한 집안을 ‘뒤집어놓았다’는 유혜리는, 하지만 자신을 믿어주는 부모님 생각에 ‘화려하기보단 좋은 연기자가 되는 길’을 택했다.


“그때 엄마가 많이 도와주셨어요. 저렇게 하고 싶어하는데, 나쁜 길로 빠지지 않게 잘 돌봐주며 하도록 하는 게 좋지 않겠느냐고요. 아버지가 오래 버티지를 못하셨죠. 결국 ‘절대 탈선하지 않는다’는 조건을 걸고 다시 일을 시작했어요.”
그런데 유혜리는 한 번 더 ‘사고를 쳤다’. 영화 데뷔 작품으로 ‘파리애마’를 선택한 것이다.
‘파리애마’는 당시로서는 드물게 프랑스 파리에서 올로케이션으로 제작된 영화. 당시 주역을 선발하기 위한 오디션에 1백 명 이상이 응시했을 만큼 화제를 모았고, 완성된 뒤에도 이 영화는 베를린영화제와 칸영화제에 출품됐을 만큼 작품성을 인정받았다. 하지만 유혜리의 노출이 적지 않았던 게 사실이다.
“제가 오빠들 사이에서 자라 좀 대담하고 겁이 없거든요. 이왕 영화를 한다면, 화제를 모을 수 있는 작품을 하고 싶었어요. 지금도 그때의 선택에 대해 후회하지 않고요. 다만 많이 놀라신 부모님께는 죄송한 마음이 있죠. 파리로 떠나려면 부모님 동의가 필요해서 거의 떠나기 직전 제 출연 사실을 말씀드렸는데, 한동안 집안이 뒤집어질 정도로 심하게 반대하셨어요.”
그러나 결국 부모는 유혜리의 뜻을 꺾지 못했고, 그는 이 작품으로 80년대의 대표적인 섹시 스타가 됐다. ‘파리애마’의 인기가 얼마나 뜨거웠던지, 영화가 개봉되고 몇 달 만에 그에게 비슷한 영화 대본만 28개가 들어올 정도였다고 한다.
“정말 순식간에 스포트라이트를 받은 거죠. 그 많은 대본을 앞에 놓고 고민했어요. 이걸 왕창 다 해서 부자가 될 것인가(웃음), 아니면 진짜 배우가 될 것인가. 그때 제가 선택한 건 제대로 된 배우가 되자는 거였죠. 저를 계속 믿어주시는 부모님을 위해서라도 좋은 연기자가 되고 싶었어요.”

“우리의 삶이 오롯이 배어나는 엄마 역할, 아줌마 역할 하며 좋은 배우로 늙어가고 싶어요”
유혜리는 화려한 스크린을 떠나 대학로 연극무대에 뛰어들었다. 그리고 그곳에서 5, 6편의 작품을 연달아 올리며 ‘연기에 목숨 건’ 배우들과 함께 땀 흘리고 뒹굴며 새로운 세상을 봤다고 한다.
“어떻게 보면 그때가 제 인생의 갈림길이었던 것 같아요. 저와 비슷한 배역으로 화제를 모았던 한 후배는 제게 ‘언니 그때 들어온 영화를 몇 개 하니까 순식간에 수억원이 들어오더라’고 말하더군요. 그 아이는 그렇게 몇 년간 활동한 뒤 연예계를 떠나 지금은 완전히 다른 삶을 살고 있어요. 하지만 저는 큰돈을 벌거나 스타로 사는 것 말고, 진짜 연기자가 되고 싶었거든요.”
그는 자신이 가장 화려하던 시절 연극배우로 활동했기 때문에 부침 많은 연예계에서 상처받지 않고 산 것 같다고 했다. 마침 그를 만난 날은 촉망받던 연예인이 자살로 세상을 떠난 날. 유혜리는 자신도 뉴스를 통해 소식을 들었다며 안타까워했다.
“연예인의 삶은 정말 굴곡이 심해요. 어느 날 갑자기 모든 사람이 나를 바라보다가, 다음 날이면 누구도 거들떠보지 않죠. 하루아침에 스타가 된 어린 연예인일수록 그 변화의 폭에 당황하기 마련이에요. 우울과 고독에 빠질 수도 있고요. 그런데 저는 그런 아픔을 느끼기 전에 연극무대에 섰잖아요. 거기서 당장 먹고사는 문제로 고통스러워하면서도 연기에 모든 것을 바치는 선후배들을 보며, 정신적인 고통이나 잊힐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같은 게 얼마나 사치스러운 감정인지를 알았어요. 다시 브라운관으로 돌아와 조역을 맡았을 때도 ‘주역인지 조역인지보다 중요한 건 내가 연기할 수 있다는 사실’이라는 생각을 할 수 있었죠.”
하지만 연극무대는 그에게 아픔을 주기도 했다. 94년, 바로 그 연극무대에서 만난 배우와 6개월 열애 끝에 결혼했다가 1년 8개월 뒤 이혼한 것이다. 그는 자신이 남편과 사랑에 빠진 건 열정적이고 세상 때가 묻지 않은 연극배우의 모습이 좋아보였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래서 주위 사람의 반대를 무릅쓰고 결혼식을 올렸지만 두 사람은 얼마 되지 않아 남남이 되고 말았다.



“이제 와서 뭐가 힘들었다, 어떤 게 안 맞았다 얘기하고 싶지는 않아요. 분명한 건 결혼하자마자 ‘내가 너무 어렸구나, 상대에 대해 잘 몰랐구나’ 하는 후회를 했다는 거죠. 제 마음고생을 보신 부모님도 이혼 결정을 했을 때 ‘이제부터 행복하면 된다’며 따뜻하게 위로해주셨어요.”
이혼이 남긴 마음의 상처는 컸다. 특히 세간의 관심은 그를 도망치고 싶게 만들었다고 한다. 쏟아지는 취재 요청 때문에 전화번호를 바꾸고 이사까지 하며 3년 정도 두문불출했다고. 연기활동도 중단할 수밖에 없었다.
“그때 저를 다시 일으켜준 사람이 바로 우리 엄마예요. 엄마는 제가 힘들어지자마자 바로 우리집으로 오셨어요. ‘그렇게 속 끓이면 몸 축난다’며 엄마가 차려주는 밥을 먹어야 힘이 난다고 묵묵히 밥을 해주셨죠. 그런데 그 뒤로도 영 안 가시는 거예요(웃음). 경기도 안성에 아버지와 함께 사시는 집이 있는데, 그 뒤로는 가끔만 내려가시고 거의 저와 같이 살아요. 엄마가 종종 ‘시집 좀 가라’ 그러시면 제가 그러죠. 엄마가 이렇게 붙어 있어서 내가 시집을 못 가는 거라고요(웃음). 하지만 실은 엄마가 안 계시면 외로워서 못 살 거예요. 엄마도 그런 제 마음을 아시니까 못 떠나고 제 옆에 계시는 거 같고요.”
그렇게 엄마와 애인처럼, 친구처럼 사는 그는 이혼 이후 아직까지 새로운 사랑을 만나지 못했다고 한다. “어떻게 그럴 수 있느냐”고 묻자 자유로워 보이는 겉모습과 달리 사랑에는 완전 숙맥이라고 털어놓는다. 도도하고 냉정한 첫인상 때문에 스스럼없이 다가오는 사람도 거의 없다고.
“예전에 결혼은 말고, 그냥 사랑만 하면서 살면 좋겠다고 생각한 적은 있어요(웃음). 하지만 그게 본 마음은 아니었던 것 같아요. 지금은 누구를 만나 사랑하는 것보다 엄마와 맛있는 거 해 먹고 산에 다니며, 또 이렇게 연기하며 사는 게 훨씬 좋아요.”
힘들던 시절 어머니가 ‘마음을 편안히 하는 데 도움이 된다’며 권해 강아지를 키우기 시작한 그는 지금 철수·샐리·땅콩이라고 이름 지은 세 ‘자식’을 기르고 있다. 쉬는 날이면 그 녀석들과 함께 산책하고 뛰어노는 것이 몸매를 유지하는 비결이라고. 하지만 젊은 시절 아무 노력 없이도 가볍던 몸 구석구석에 요즘은 조금씩 군살이 붙는 게 느껴진다고 한다.
“듣기 좋은 소리로 ‘유혜리씨는 여전하다’고 말씀해주시는 분들이 있지만, 사실 더 이상 제가 젊지 않다는 걸 잘 알아요. ‘고금화’ 역을 맡은 것도 어쩌면 이제는 연기 변신이 필요한 때라는 생각이 들어서였죠. 우리 삶을 진솔하게 표현하는, 연륜 있는 연기자가 되고 싶어요. 개인적으로 좀 더 성숙해지고 싶고요.”
유혜리는 언젠가 입양을 통해 가정을 꾸리고 싶다는 바람도 내비쳤다. 그의 아버지가 “지금은 강아지가 귀엽지만, 조금 더 나이가 들면 자식이 주는 따뜻함과 위로가 필요할 것”이라고 한 말이 잊어지지 않는다고.
“아버지 친구 따님이 40대 중반에 아이를 입양했는데, 귀하게 잘 키우며 살고 있대요. 저도 조카가 여섯 명이나 되기 때문에 아이가 얼마나 모두를 행복하게 만들어주는지 잘 알죠. 요즘 국회에서 독신자도 아이를 입양할 수 있도록 입양법을 개정하자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는데, 기회가 되면 저도 입양을 통해 소중한 가정을 꾸리고 싶어요. 그리고 우리의 삶이 오롯이 배어나는 엄마 역할, 아줌마 역할을 하며 좋은 배우로 늙어가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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