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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기사

책을 펴는 즐거움

‘좀머씨 이야기’

순수한 꼬마의 눈에 비친 삶을 두려워하는 기인의 이야기

기획·김동희 기자 / 글·민지일‘문화에세이스트’ || ■ 그림·장 자크 상페(‘열린책들’ 제공)

2007. 03. 15

주인공 ‘나’는 커다란 나무를 잘 타는 조그마한 소년. ‘나’의 마을엔 하루 종일 뭔가에 쫓기듯 걸어다니는‘좀머씨’라는 기이한 사람이 산다. 맑고 순수한 소년의 일상을 통해 삶과 성장의 의미를 생각하게 만드는 독특한 감성의 독일 소설 ‘좀머씨 이야기’를 만나보았다.

‘좀머씨 이야기’

책장을 덮는 순간 가슴으로 쏴~ 바람이 밀려드는 소설이 있다. 이야기가 흐르는 대로 편안히 마음을 맡겼다 덜컥 찾아온 결말에 가슴이 시리다 못해 먹먹해진다. 인상이 강렬해 마지막 문장을 두세 번 거푸 읽게 되고, 하릴없이 책상 너머를 멍하니 쳐다볼 수밖에 없게 만든다. 직업으로 책을 권하고 서평을 쓰면서도 이런 소설을 읽고 나면 머릿속이 하얘진다. 정리하고 평하며 권하는 건 미뤄두고 책에서 받은 느낌을 그대로 안고만 있고 싶어진다.
파트리크 쥐스킨트의 ‘좀머씨 이야기’도 바로 그런 작품이다. 예쁜 물감만 골라 곱게 그린 수채화처럼 동화풍 이야기를 풀어가다 느닷없이 독자의 넋을 빼앗아간다. 배경은 2차 세계대전 직후의 독일, 숲과 호수가 있는 아름다운 시골 마을이다. 이야기를 풀어가는 ‘나’는 키가 이제 1미터를 빠듯이 넘긴 소년. 몸이 가벼워 바람 부는 날 언덕 위에서 달려 내려오면 하늘을 날 수 있을 것이라고 믿을 정도로 때 묻지 않은 순수함을 지녔다. 나무타기를 좋아하고 여러 번 나무에서 떨어져 뒤통수에 커다란 혹도 생겼다.
‘나’가 사는 마을엔 ‘좀머씨’라고 알려진 기이한 사람이 산다. 그는 하루 종일 뭔가에 쫓기듯 줄기차게 걸어다닌다. 호수를 중심으로 사방 60킬로미터 이내에서는 남자든 여자든 아이든 심지어 개까지도, 늘 걸어다니기만 하는 좀머씨를 모르는 사람이 없다. 그는 폭이 넓고 길며 뻣뻣한 검은 외투에 고무장화를 신고 대머리 위로 빨간 털모자를 썼다. 거기에 배낭을 짊어진 우스꽝스런 모습으로 길쭉하고 구부러진 호두나무 지팡이를 제3의 다리처럼 쓰며 휘적휘적 걷는다. 특이한 건 정작 그가 어디를 다니는지, 도대체 목적지가 어디인지, 무엇 때문에 하루 열여섯 시간 내내 근방을 헤매고 다니는지 아무도 아는 사람이 없다는 것이다.

‘나’와 좀머씨의 인생을 대비시켜 삶과 성장의 의미를 묻는 작품
이야기가 여기에 이르면 독자들의 관심은 두 갈래로 나뉘게 된다. 어린 시절 추억을 수채화처럼 그려주는 꼬마 ‘나’이든지, 행동을 이해하기 힘든 괴짜 좀머씨든지. 바로 그런 관심을 섬세하게 섞어 풀어나가며 작가는 ‘나’와 좀머씨의 인생을 대비시켜 이야기를 풀어나간다. 아름다운 동화로 흐를 수 있는 스토리가 천진한 어린이와 말도 안 되는 어른의 삶을 짜깁기해 생과 성장의 의미를 묻는 이야기로 반전시키는 묘기를 부린다.
‘나’와 좀머씨의 첫 번째 의미 있는 만남은 어느 여름날 오후 이루어진다. 아버지가 운전하는 차를 타고 집에 가던 길, 엄청난 폭우에 이어 흰 공 크기의 우박이 쏟아지며 기온이 급강하하던 날이다. 아버지와 나의 눈에 비를 쫄딱 맞고 지팡이를 우스꽝스럽게 휘적대며 걷는 좀머씨가 들어왔다. 아버지는 빠르게 걷는 좀머씨 옆으로 차를 붙여 몰며 차창을 내리고 그를 불렀다. 물론 그는 못들은 척 걷기만 했다. “좀머씨, 좀머씨, 타세요. 날씨가 너무 안 좋아요!” “…” “집까지 모셔드릴게요!” “…” “어서 타시라니까요!” “…” “몸이 흠뻑 젖었잖아요. 그러다 죽겠어요!”
‘그러다 죽겠어요!’ 다른 말은 들은 척도 하지 않던 좀머씨가 이 한마디에 우뚝 멈춰 섰다. 그 말 때문에 몸이 빳빳하게 굳어진 듯했다. 빗물로 범벅이 된 얼굴, 반쯤 벌린 입과 공포에 질린 커다란 눈동자. 그는 오른손에 쥐었던 호두나무 지팡이를 다른 손으로 옮겨 쥐더니만 여러 번 땅에 내려치면서 크고 분명한 어조로 말했다. “그러니 나를 좀 제발 그냥 놔두시오!” 그렇다. 그는 죽음이 무서워, 운명이 두려워 그렇게 모든 것에서 도망치듯 휘적대며 걷고 있었던 것이다.

‘좀머씨 이야기’

조금씩 나이를 먹어가며 ‘나’는 풋사랑에 눈을 뜬다. ‘웃을 때 목을 쭉 뽑아 올리고 머리를 뒤로 젖힌 채 까르르’ 소리를 내는 윗마을 소녀가 어느 날 다가와 “얘, 너 아랫마을 살지. 있잖아, 월요일에 너랑 같이 갈게…”라는 말을 건네자 ‘나’는 며칠 밤을 뜬눈으로 새운다. 그 날 무슨 말을 할지 수십 번 되뇌어보고 헤어질 때 어떻게 뽀뽀할지도 생각해본다. 그러나 막상 월요일이 되자 소녀는 약속을 어긴다. 낭패감에 젖어 숲길 따라 혼자 집으로 가며 몇 번이고 뒤돌아보곤 하는 ‘나’의 눈에 좀머씨가 지팡이로 땅을 찍으며 몸을 밀며 걷는 모습이 들어온다.

우리 삶은 아름다운 수채화일까, 아니면 마냥 걷기만 하는 고단함일까
어린아이가 성장한다는 건 무엇을 의미하는가. 세상과 자신이 싫어지고 원망스러우며 그런 것들로부터 떠나고 싶어질 때 성장통을 앓는 게 아닐까. 어느새 자전거로 통학하고 개인 피아노 교습도 받게 된 ‘나’는 어느 날 피아노선생의 히스테리와 그녀가 건반에 묻혀놓은 코딱지(!)에 환멸을 느껴 자살을 결심한다. ‘좋아하는 곳-호수가 훤히 보이는 나무, 좋아하는 습관-나무오르기’인지라 ‘나’는 나무 위에 목매 죽으려 올라간다. 몇 차례 망설임 끝에 드디어 실행하려는 순간 ‘나’는 나무 아래서 하늘이 꺼지는 듯한 좀머씨의 신음을 듣는다. 그리고 깨닫는다. “세상에 내가 무슨 짓을 하려는 거지. 일생 동안 죽음으로부터 도망치려 걷는 사람도 있는데…”
이제 이야기는 결말로 치닫는다. 자살미수 사건이 있은 지 5, 6년 후 밤 호숫가를 자전거로 달리던 ‘나’는 좀머씨가 달빛 가득한 호수 한가운데로 지팡이를 꾹꾹 찍으며 휘적휘적 걸어 들어가는 것을 본다. 그날 이후 마을에서 좀머씨를 본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의 최후는 바로 ‘나’만 본 것이다. ‘나’는 그 목격담을 철저히 침묵 속에 감췄다. 폭우 쏟아지던 날 좀머씨가 떨리는 입술로 간청하던 그 말을 기억하기 때문이었다. “그러니 나를 좀 제발 그냥 놔두시오!”
작가의 의도가 무엇이든 ‘나’와 좀머란 캐릭터를 어떻게 대비해보느냐는 순전히 독자의 몫이다. 인생을 즐겁게만 보고 나무를 오르듯 희망 속에 사는 어린이와 생의 패배자, 낙오자, 삶으로부터의 도피에 모든 것을 걸고 사는 좀머씨는 다른 사람일까. 무수한 발자국을 남기고 떠나는 우리 삶은 아름다운 수채화일까, 아니면 마냥 걷기만 하는 고단함일까. 장 자크 상페의, 허우적대는 좀머씨의 삽화가 머릿속에서 지워지지 않는다. 열린책들 간. 유혜자 옮김.

지은이 파트리크 쥐스킨트(1949~) 독일 암바흐에서 태어나 뮌헨 대학에서 역사학을 전공했다. 34세 되던 해 예술가의 고뇌를 그린 ‘콘트라베이스’로 “희곡이자 문학작품으로서 우리 시대 최고의 작품”이라는 극찬을 받았다. 놀라운 후각을 지닌 주인공의 악마적 행각을 그려낸 ‘향수’는 30개 언어로 번역, 소개돼 전 세계 독자들을 사로잡았다. 이외에도 ‘비둘기’ ‘깊이에의 강요’ ‘로시니 혹은 누가 누구와 잤는가 하는 잔인한 문제’ 등을 발표했다.



그린이 장 자크 상페(1932~) 프랑스 보르도에서 태어났다. 열일곱 살 때 포도주 중개인 사무소에 일자리를 얻었지만, 틈만 나면 동료들을 모아놓고 그림을 그리다가 해고된 뒤 파리로 가 삽화가의 길에 들어섰다. 작가 르네 고시니와 함께 벨기에의 지방 주간지에 연재한 ‘꼬마 니콜라’로 성공을 거두며 명성을 얻었다. 주요 작품집으로 ‘쉬운 것은 아무것도 없다’ ‘뉴욕 스케치’ ‘속 깊은 이성 친구’ ‘자전거를 못 타는 아이’ ‘거창한 꿈’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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