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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듣기부터 쓰기까지 단계별 학습법’

자신만의 학습법 개발해 딸‘영어영재’로 키운 엄마 이남수

기획·송화선 기자 / 글·이자화‘자유기고가’ / 사진·조영철 기자

입력 2007.03.13 17:34:00

비싼 영어학원에 다닌 적 없고 외국 연수를 다녀오지 않았는데도 CNN 뉴스를 듣고 영어로 된 책을 술술 읽는 박솔잎양. 집에서 혼자 영어를 익힌 솔잎이 곁에는 자신만의 학습법으로 공부를 도운 엄마 이남수씨가 있었다. 이씨를 만나 그가 개발한 ‘엄마표 영어지도’에 대해 들었다.
‘듣기부터 쓰기까지 단계별 학습법’

박솔잎양(19)은 영어를 잘한다. 발음이 정확할 뿐 아니라 말하는 태도도 자연스러워 그가 영어로 말하는 것을 보면 누구나 외국에 오래 살다온 사람인 걸로 착각할 정도다. 초등학교 6학년 때 울산시 교육청이 주최한 영어 말하기 대회에서 대상을 받은 그는, 15세 때인 2003년엔 서울에서 열린 ‘국제 애니메이션 페스티벌’에서 일주일 동안 영어 방송을 담당했고, 2005년 7월 그린피스가 펴낸 ‘고래야 돌아와-2005 IWC 보고서’의 번역을 담당하기도 했다. 말하기와 쓰기, 읽기 모든 영역에서 탁월하게 뛰어난 영어 실력을 갖춘 셈이다.
하지만 솔잎양은 물론 아버지 박경열씨(48)와 어머니 이남수씨(44)도 여행할 때를 제외하고는 한국을 떠나본 적 없는 토종 한국인. 그의 영어 실력은 엄마 이씨가 키워준 것이라고 한다.
“제가 직접 영어를 가르친 적은 없어요. 전 영어를 잘 못하거든요(웃음). 다만 미대 재학 시절에 2급 정교사 자격증을 따서 결혼 전부터 미술학원에서 아이들을 가르쳐온 만큼 교육에 대한 철학은 있었죠. 아이들은 스스로 공부한다는 것, 환경만 조성해주면 영어뿐 아니라 세상 무엇도 혼자 배울 수 있다는 믿음을 갖고 있었거든요.”
이씨는 그 믿음을 바탕으로 솔잎이가 초등학교 4학년 때부터 ‘엄마표 영어연수’를 시작했다고 한다. 아이가 영어를 배울 수 있도록 주변 환경을 꾸며준 것이다. 그가 처음 시작한 것은 영어 비디오 보여주기였다. 우리가 국어를 ‘듣기-말하기-읽기-쓰기’의 단계로 익히듯, 영어도 같은 순서를 밟아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 그는 이 순서를 충실히 따라가게 하기 위해 TV 화면 아랫부분에 레이스로 만든 천을 덧대 영어 비디오의 자막을 가렸다고 한다.
“저는 아이가 너무 어릴 때부터 영어공부를 시키는 건 좋지 않다고 생각해요. 초등학교 3학년 정도까지는 한글로 된 책을 많이 읽게 하고 음악도 많이 들려줘서 생각하는 능력과 풍부한 감성을 기르는 게 중요하죠. 기본적으로 스스로 생각하는 방법을 익히고 우리말을 자유자재로 구사할 수 있는 4학년 때가 영어공부를 시작하기 좋은 때 같아요.”
그래서 이씨는 이 무렵부터 하루에 3시간씩 일주일에 여섯 번 이상 영상물을 보게 했다고 한다. 비디오는 종류를 정하지 않고 무엇이든 자유롭게 틀어줬다. 아이는 처음에는 자막을 읽지 못하는 것을 답답해했지만 이씨와 ‘저 사람이 지금 뭘 하는 중일까’ 하는 식으로 대화를 나누며 내용을 유추하면서 사고력이 깊어지는 효과까지 얻었다고 한다.

아이가 영어를 자연스럽게 배우도록 ‘듣기-말하기-읽기-쓰기’ 단계 밟아
“영어를 시작할 때 아이가 그걸 ‘귀찮은 공부’로 여기게 하면 안 돼요. 저는 아이가 스트레스를 받지 않도록 시끄럽다고 하거나 영어가 듣기 싫다고 말하면 그 순간 그만 보게 했죠.”
아이가 편안하게 비디오를 보게 되면, 어느 순간 그 안의 영어를 따라 말하는 단계에 이른다고 한다. 솔잎양의 경우는 당시 보던 비디오 가운데 ‘매직스쿨버스’를 좋아했는데, 여러 번 되풀이해 보더니 대사를 따라하기 시작했다고.

‘듣기부터 쓰기까지 단계별 학습법’

말하기와 쓰기, 읽기 등 모든 영역에서 뛰어난 영어실력을 자랑하는 솔잎양(가운데)과 엄마 이남수씨, 아빠 박경열씨 가족.


“저는 그걸 ‘연속 따라 말하기’라고 불러요. 의식적인 말하기가 아니라 자기가 하고 있는 말이 무슨 뜻인지도 모르고 그냥 따라하는, 유행가를 많이 듣다 보면 저절로 흥얼거리는 것 같은 자연스러운 말하기죠. 이 단계에서 아이는 문장 사이의 연음을 익히고, 자연스러운 영어 말하기를 배우게 됩니다.”
이씨는 보통 미국 사람들이 알파벳이나 단어를 발음할 때 연음 현상이 일어나듯 문장 사이에도 연음이 있다고 설명했다. 원어민이 말할 때 느껴지는 리듬이 바로 그 연음 때문에 나타나는 것이라고. 그래서 이 단계가 되면 아이의 혀나 성대가 이 연음을 기억하도록 익숙한 비디오 소리를 녹음해 들려주는 것이 좋다고 한다.
“‘지금 네가 말하고 있는 게 바로 이거야’라며 문장을 정확히 일러주는 것보다는, 아이가 자연스레 말하는 문장을 녹음해서 자주 들려주는 게 훨씬 좋아요. 하루에 한 30분쯤요. 그 과정을 반복하면 아이는 듣기에 익숙해지고, 미숙하나마 영어로 말하기를 시작하죠.”
솔잎양의 경우는 ‘연속 따라 말하기’를 6개월쯤 한 뒤부터 ‘정확하게 따라 말하기’를 시작했다고 한다. 책이나 글자를 보지 않고 듣는 것만으로 문장을 또박또박 따라 말하기 시작한 것이다. 이때부터 이씨는 솔잎양이 말하는 내용을 녹음해 들어보도록 하면서 발음을 교정해줬다고 한다. 이것 역시 하루 30분 정도씩 6개월쯤 계속했다고. 그러고 나니 영어권의 5, 6세 아이들과는 일반적인 대화를 나눌 수 있을 정도의 실력이 됐다고 한다.
듣기와 말하기에 익숙해지자 아이는 자연스레 읽기와 쓰기를 시작했다. 이씨는 “읽고 쓰는 것은 소리를 문자로 변환하는 작업이므로, 듣고 말하는 게 어느 정도 수준에 오르면 철자법이나 맞춤법 등의 문제는 금세 해결된다”고 말했다. 또 요즘은 초등학교에서도 영어를 가르치기 때문에 이 부분까지 집에서 가르치려고 애쓸 필요가 없다고.
“솔잎이가 처음 영어로 뭔가를 쓴 건 초등학교 5학년 때예요. 일기를 썼는데, 딱 봐도 문장이 거칠고 문법적으로 틀린 곳이 많더라고요. 하지만 저는 고쳐줄 실력이 안 되는데다(웃음), 자연스럽게 표현하도록 두는 것도 괜찮을 것 같아 그냥 두고 보기만 했죠. 그런데 정말 조금씩 실력이 나아지더군요.”
이씨는 그때 자신이 아이의 일기를 펼쳐놓고 새빨갛게 고쳐줬다면 아이는 겁이 나서 더 이상 영어로 뭔가 써보려 하지 않았을 테고, 그럼 지금처럼 영어로 자신 있게 자기 생각을 표현하는 사람이 되지 못했을 거라고 말했다.
“우리나라 사람이 책을 써도 전문가의 교열작업을 거치잖아요. 영어도 마찬가지죠. 어릴 때부터 문법적으로 완벽한 것을 고집할 필요는 없어요. 자신의 생각을 다른 사람이 이해할 수 있게 표현한다면, 아이가 이미 쓰기를 익힌 것으로 봐야 합니다. 문법은 글을 계속 읽고 써나가다 보면 자연스럽게 좋아져요.”
이씨가 자녀에게 이처럼 영어를 가르친 것은 어린 시절 영어에 대한 콤플렉스가 있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학창 시절 무슨 과목이든 공부하는 대로 성적이 나왔는데 영어만큼은 뜻대로 되지 않았던 것. 중학교 때부터 10여 년간 영어를 배웠음에도 외국인 앞에만 서면 꿀 먹은 벙어리가 되는 스스로의 모습도 부끄러웠다고 한다. 이씨는 최근 자신처럼 영어에 콤플렉스를 느끼는 다른 엄마들을 위해 그동안의 영어교육 노하우를 담은 책 ‘솔빛이네 엄마표 영어 연수’를 펴냈다. ‘솔빛’은 딸아이의 이름을 그대로 사용하는 게 왠지 불편해 새로 지은 이름이라고.
“제가 책을 내고 여기저기서 영어교육법에 대해 강연도 하니까 많은 분이 ‘그럼 이제 딸아이가 영어를 완벽하게 하느냐’고 물어봐요. 그럴 때마다 전 ‘언어를 익히는 데 있어 완벽한 경지는 없다’고 말하죠. 우리말을 30년 이상 써온 사람도 어느 자리에서 불쑥 ‘한 말씀 해주세요’ 하면 쩔쩔 매며 잘 못하잖아요. 능숙하게 에세이를 쓰지도 못하고요. 그 부분에 대한 훈련이 부족하기 때문이죠. 영어도 마찬가지라고 봐요. 아나운서가 계속 우리말을 연습하듯이, 자기가 필요한 부분을 계속 갈고닦는 게 필요합니다. 영어를 ‘정복하겠다’는 마음을 버리고 일상에서 사용하는 또 하나의 언어로 편하게 접근하면 훨씬 쉽게 영어를 배울 수 있을 거예요.”

여성동아 2007년 3월 519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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