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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OPLE

학교 밖 세상 배우기

아홉 살 아들과 함께 분쟁지역으로 평화여행 다녀온 주부 임영신

기획·구가인 기자 / 글·백경선‘자유기고가’ / 사진·조영철 기자

2007. 02. 20

지난해 11월 아홉 살배기 아들과 평화수업을 가르쳤던 대안학교 학생들을 이끌고 분쟁지역인 필리핀 민다나오 섬을 다녀온 평화여행가 임영신씨. 그를 만나 평화여행을 다녀온 뒤 나타난 아이들의 변화에 대해 들었다.

아홉 살 아들과 함께 분쟁지역으로 평화여행 다녀온 주부 임영신

“사진이 남는 여행이 아니라, 관계가 남는 여행이 바로 평화여행이에요. 그리고 그 관계를 통해 세상이 조금씩 변해간다고 믿죠.”
평화여행가 임영신씨(38)는 지난해 11월 아들 늘봄이(10)와 함께 필리핀 민다나오 섬에 평화여행을 다녀왔다. 3주 일정으로 진행된 이 여행에는 그가 일주일에 1번씩 평화를 테마로 수업을 진행했던 충북 제천 간디학교 학생들과 교사들도 동행했다.
지난 97년, 2000년, 2003년에 전쟁이 일어나기도 했던 민다나오 섬은 가톨릭과 모슬렘의 갈등으로 분쟁이 끊이지 않는 곳. 때문에 아이들이 민다나오 섬에 여행을 가기로 결정하는 데는 용기가 필요했다. 하지만 민다나오 섬에 도착한 후 아이들은 무서운 분쟁지역이라기보다는 그곳 역시 희로애락이 교차하는 ‘사람 사는 곳’임을 깨달았다고 한다.
“민다나오에 도착해 하루를 지낸 늘봄이가 그러는 거예요. 민다나오 사람들은 나쁘다고요. 이렇게 좋은데, 위험하다면서 사람들을 못 오게 했다는 거예요. 분쟁지역이라고 해서 위험한 것만은 아니라는 것을, 그런 곳도 아름다울 수 있다는 것을 직접 보고 느낀 거죠.”
이는 세 아이의 엄마인 임씨가 일반인에겐 용어 자체도 생소한 ‘평화여행가’가 된 이유이기도 하다. 성공회대 NGO 대학원을 다니던 그는 함께 평화수업을 들은 동료들과 함께 이라크반전 평화팀의 일원으로 2003년 이라크를 찾았다. 그는 그곳에서 미국의 이라크 침공을 반대하기 위해 이라크에 찾아온 사람들 대부분이 예전에 이라크로 여행을 다녀왔던 평범한 여행객들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면서 “여행으로 맺게 된 관계를 통해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다”고 믿게 됐다고. 그 후 평화여행가로 활동하며 세계 20개국을 40여 차례 방문했고 지난해 가을에는 여행길에서 만난 사람들, 그리고 그들과 나눈 평화에 대한 이야기 등을 담아 ‘평화는 나의 여행’이란 책을 펴내기도 했다.
“만나는 이들마다 제게 세 아이를 둔 엄마가 어떻게 이런 여행을 하냐고 물어요. 그러면 저는 엄마가 아니면 용기를 낼 수 없었을 거라고 답하죠. 어쩌면 저는 우리 아이들을 위해 평화여행을 하는 것인지도 몰라요. 평화를 어떻게 지키는지 가르쳐주지 않으면 우리 아이들 또한 평화로운 땅에서 살 수 없으니까요.”
어린 아들 늘봄이를 평화여행에 데려간 것도 평화의 중요성에 대해 조금이라도 일찍 가르쳐주기 위해서였다고 한다. 그러나 정작 여행을 떠나서는 아이에게 여행의 의미를 자세하게 설명하거나 강조하지 않았다고.
“아홉 살짜리 아이가 평화와 평화여행을 과연 얼마나 잘 이해할 수 있겠어요. 어린 아이들은 그냥 감각으로 배우는 게 최고죠. 사람들은 흔히 ‘평화여행=봉사여행’이라고 생각하지만, 사실 평화여행은 그저 사람들을 만나서 웃고 떠들고 즐기다 오는 거예요. 3주 동안 늘봄이는 저하고 떨어져서 민다나오 사람들 속에서 먹고 자고 놀았어요. 평화여행에서 중요한 것은 현지인의 삶 속에 들어가 친구가 되는 거예요.”
그냥 놀다 온 것 같지만, 아이는 분명히 변했다고 한다. 돌아와서 인터넷 검색창에 민다나오를 치고, 뉴스에서 필리핀 소식이 나오면 귀 기울이며, 혹시나 친구들이 다치지 않았을까 걱정한다고. 그리고 푸른 색깔의 음료를 마시다가도 “엄마, 필리핀 바다가 이보다 더 파랗지?” 하고 물어보면서 필리핀을 그리워한다는 것이다.

아홉 살 아들과 함께 분쟁지역으로 평화여행 다녀온 주부 임영신

임영신씨와 아들 늘봄이는 지난해 11월 분쟁지역인 필리핀 만다나오 섬으로 평화여행을 다녀왔다.


“일상에서는 이성이 많은 부분을 지배하지만 여행에서는 감성이 중요해요. 아이들은 감성을 통해 저절로 배우고요. 그렇게 배운 것은 쉽게 잊히지도 않아요.”
늘봄이를 비롯한 아이들은 여행을 통해 ‘관심’이 생긴 것뿐만 아니라 ‘도전 정신’도 생겼다고 한다. 간디학교 아이들의 경우, 필리핀 여행을 다녀온 후 다른 여행을 계획하면서 영어학원에 다니는 아이도 생겼고, 더 나아가 어학연수를 떠난 아이도 있다고 한다.
“대안학교 학생들은 ‘난 좀 세상을 안다’고 생각했는데 필리핀 여행을 하면서 그런 생각이 깨졌다고 해요. 아이들은 자신들이 좁은 세계에서 살고 있었다는 것을 깨달았죠. 그리고 더 넓은 세상을 향해 발돋움하기 시작했어요.”
이뿐만이 아니다. 평화여행은 아이들 가슴속에 있던 상처도 치유하는 계기가 됐다고 한다.
“여행을 함께 다녀온 한 아이가 제게 와서 ‘내 마음속 얼음이 녹기 시작했다’는 말을 했어요. 가난하지만 사랑이 가득하고, 처참한 곳에 살지만 평화를 이야기하는 민다나오 사람들을 보며 아이의 마음이 열린 거예요. 그렇게 아이들은 학교에서 배울 수 없는 것들을 직접 몸으로 부딪치면서 깨친 거죠.”
여행을 끝내고 돌아오는 길, “필리핀에서 무엇이 가장 좋았느냐”고 묻는 그의 질문에 아이들은 하나같이 ‘사람’이라고 대답했다고 한다.
“그런 사람들은 필리핀에만 있는 것이 아니에요. 그 ‘보석’을 찾기 위해 우리는 여행을 하는 거죠. 여행을 하지 않으면 그 보석은 단지 거기에 있을 뿐이에요. 여행을 가서 그것을 발견해야 하는 거죠.”

마음에 항상 ‘물음표’를 가지고 빛과 그늘을 함께 체험할 수 있는 여행 떠나야
그는 “우리나라도 여행문화가 바뀌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여행을 통해 관광이나 휴식뿐 아니라 교육도 함께 이루어질 수 있어야 한다는 것. 그는 평화여행이 그 몫을 어느 정도 감당해낼 수 있을 거라고 믿는다. 평화여행을 통해 사람들은 사람을 어떻게 대하고, 세계를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를 배울 수 있기 때문.
“보통 평화여행이라고 하면 위험한 지역 혹은 가난한 지역을 찾아가는 것만을 생각해요. 실은 ‘희망을 만드는’ 곳을 찾아가는 거죠. 위험하고 가난하지만 그런 그늘진 곳에도 빛은 존재하거든요. 그런 곳에 가서 함께 웃어주고 울어주는 거예요. 그런 걸 보면 평화운동은 어렵지만 평화여행은 쉽죠.”
임영신씨에 의하면, 평화여행은 ‘보이는 곳’과 ‘보이지 않는 곳’, ‘빛’과 ‘그늘’을 함께 여행하는 것이라고 한다. 즉 그것들 사이의 경계를 넘어서는 것이 중요하다고. 예를 들어 인도네시아 발리만 다녀오면 관광여행이지만 그 주변에서 인도네시아로부터 분리주의 운동을 벌이고 있는 분쟁지역인 아체를 함께 다녀오면 평화여행이라고 한다. 또한 독일에 가서 옥토버 페스티벌에만 참여하고 오면 관광여행이지만, 이와 더불어 나치의 유태인 강제 수용소였던 뮌헨수용소에도 들르면 그것은 평화여행이라고. 이 외에도 프랑스와 모나코, 영국과 아일랜드, 중국과 티베트 등 분리독립과 관련해 갈등을 겪고 있는 국가들을 함께 여행하면 그것은 경계를 넘어서는 평화여행이 될 수 있다고 덧붙인다.
그는 평화여행을 하기 위해 무엇보다 아이가 ‘물음’을 가질 수 있도록 하고, 부모는 그 물음에 최선을 다해 답해주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물론 그러기 위해서는 여행 전 철저한 공부와 준비가 필수다. 아이와 함께 인터넷 검색을 하고 책을 뒤지면서 하는 것도 좋지만 그런 곳에 나와 있지 않은 생생한 정보를 얻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때문에 그는 아무래도 혼자 준비하는 것보다 평화여행 단체와 같은 전문가의 도움을 받으면서 여럿이 함께 준비하는 것이 낫다고 조언한다.

아홉 살 아들과 함께 분쟁지역으로 평화여행 다녀온 주부 임영신

그는 “세 아이를 둔 엄마가 어떻게 평화여행을 하느냐”는 질문을 받을 때마다 “엄마가 아니었다면 용기를 낼 수 없었을 것”이라고 답한다고 한다.


“준비과정이 있느냐 없느냐가 평화여행이냐 아니냐를 판가름한다고 할 만큼 중요해요. 그중 가장 중요한 것은 ‘선택’이죠. 무엇을 하고, 누구를 만나고, 무엇을 먹고, 어디서 자는가를 잘 선택해야 하거든요. 예를 들어 외국인이 운영하는 호텔에 머무는 것보다는 현지인의 집에 머무르면서 그들에게 돈을 주는 것이 더 낫잖아요.”
그는 ‘여행 전’의 준비가 중요한 만큼 ‘여행 후’의 생활도 중요하다고 이야기한다. 이를 위해 여행 전 아이들에게 ‘여행의 주인은 바로 자기 자신’이라는 사실을 일깨워주라고 권한다. 여행하면서 아이들이 여행에 관해 기록하고, 다녀온 후 그것을 사람들 앞에서 이야기하게끔 칭찬해주라고.
마지막으로 그는 여행을 다녀온 이후에도 아이가 그곳에 대한 관심을 유지할 수 있도록 만드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말한다. 관심이 그들과의 관계를 유지시켜주며, 그것이 바로 평화의 시작이라는 것이다.
“많은 이들이 ‘여행 가는 게 얼마나 세상을 바꾸겠느냐’고 해요. 그러면 저는 이렇게 이야기하죠. 친구가 아파서 병원에 있을 때, 우리가 병문안을 간다고 해서 친구의 병을 고칠 순 없지만 찾아가서 함께 웃고 울면서 친구를 위로해주면, 그것은 친구에게 큰 선물이 된다고요. 중요한 것은 관심이고, 함께 하는 거죠.”
그는 이런 사실을 딸 시원이(9)에게도 가르쳐주고 싶다고 한다. 그래서 올해는 시원이가 오빠 늘봄이의 뒤를 이어 그와 함께 민다나오 섬에 다녀올 예정이다. 아이들과 함께 하기에, 그의 평화여행이 몇 갑절 더 빛나는 것 같다.
평화여행가 임영신씨 추천!
평화여행 떠나고 싶다면 이렇게~

국내 단체

정토회 www.jungto.org
이곳에서는 가난한 이웃과 함께 노동하며 자기 내면을 성찰하는 불교 수련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활동 지역은 인도, 필리핀, 중국 등이며, 활동기간은 방학기간을 이용해 1개월 이내라고. 항공료와 체류비는 본인이 부담하며 보통 1백만 원 정도가 든다고 한다. 매년 5월·11월 중 홈페이지를 통해 모집한다.



개척자들 www.thefrontiers.org
분쟁지역에서 평화활동을 하기 위해 설립된 NGO다. 이곳에서 운영하는 평화캠프는 매년 여름마다 1개월 동안(7월·8월 두 차례) 동티모르, 아프가니스탄 등에서 진행된다. 세계 각국의 청년들이 모여 현지 사람들과 함께 생활하며 어린이와 청년들을 위한 평화학교를 진행하고 평화축제를 연다.

이 외에도 국제워크캠프기구(www.1.or.kr)와 평화지킴이들(www.peacemakers. or.kr) 등이 있다.

국외 단체

서바스 www.servas.org
2차세계대전 후 평화를 위해 여행하는 대학생들에 의해 설립된 국제 비영리 여행단체. 1백30여 나라에 지부가 있고 각국의 회원들이 서로 무료로 숙박을 제공한다. 서바스 회원이 되려면 먼저 홈페이지(www.servas.or.kr)에서 가입신청을 한 뒤 지역 지부장과 인터뷰를 거쳐야 하며 연 2만원의 회비를 내야 한다.

글로벌 익스체인지 www.globalexchange.org
미국에 본부를 두고 있는 국제 인권단체로 해마다 30개 이상의 국가에서 50개가 넘는 투어 프로그램을 진행한다. 달마다 평균 3, 4개의 여행이 아시아부터 아메리카까지 6개 대륙에 걸쳐 진행되므로 자신이 원하는 기간, 주제, 지역을 선택해 신청하면 된다.

이 외에 크리스천 평화사역자팀 CPT(www.cpt.org)와 광야의 소리(www.vitw.org), 국제연대운동 ISM(www.palsolidarity.org) 등과 같은 국외 단체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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