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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eleb 감동 성공기

‘세계의 대통령’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 남다른 어린 시절 & 성공 스토리

기획·송화선 기자 / 정리·이승민‘자유기고가’ / 사진·동아일보 사진DB파트, 명진출판사 제공

입력 2007.02.20 15:48:00

지난 1월2일 반기문 제8대 유엔 사무총장이 미국 뉴욕의 유엔 본부로 출근하면서 공식 활동을 시작했다. 충북의 한 시골 마을에서 태어난 그가 ‘세계의 대통령’이라 불리는 유엔 사무총장이 되기까지 기울인 남다른 노력과 감동적인 성공 스토리를 소개한다.
‘세계의 대통령’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 남다른 어린 시절 & 성공 스토리

1944년 충북 음성에서 태어난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62)은 어린 시절 공부에 관해서만은 둘째가라면 서러울 만한 욕심쟁이였다. 책을 손에 잡으면 밤을 새워가며 읽었고, 새로운 지식을 알아가는 재미를 알았다. 57년 충주중학교에 들어가 처음 영어를 접했을 때도 그의 이런 성격은 유감없이 발휘됐다. 당시 영어교사는 단어든 본문이든 그날 배운 것을 모두 스무 번씩 써오라는 숙제를 냈는데, 그는 이를 매번 빠짐없이 해내 나중에는 교과서를 보지 않고도 외워서 쓸 수 있을 정도가 됐다. 중학교 3학년 겨울방학 때 새로운 읽을거리를 찾다 ‘타임’지를 보게 된 것은 그의 인생에 큰 영향을 미쳤다. 소련과 미국을 축으로 벌어지는 냉전체제, 눈부신 과학기술의 발전 등 충북 시골 마을에서는 도무지 상상하기 어려웠던 일들을 하나하나 알아나가며 세계에 대해 눈을 뜨기 시작한 것이다.

영어에 미친 소년, 고등학교 때부터 외교관의 꿈 키워
그의 영어에 대한 열정은 충주고에 진학한 뒤에도 이어졌다. 영어로 된 것이라면 무엇이든 닥치는 대로 읽고 외웠을 뿐 아니라 입으로도 중얼거렸기 때문에 친구들이 “영어에 미쳤어”라며 혀를 내두를 정도였다. 반 총장의 이런 모습을 눈여겨본 한 교사가 그에게 녹음기를 주며 교과서 내용을 녹음해 듣기 교재를 만들어보자고 권유한 것이 그의 영어 실력을 한 단계 더 상승시키는 계기가 됐다. 반 총장이 학교 근처 공장에서 일하던 미국인 기술자들을 찾아가 녹음을 부탁하면서 이들과 인연을 맺게 된 것이다. 그들과 어울리며 반 총장은 미국 현지 영어를 배울 수 있었다. 반 총장은 집에서 불교를 믿었음에도 불구하고 일요일마다 성당에 나가 미국인 신부와 대화를 나누며 영어 실력을 높이기도 했다. 영어가 재미있었을뿐 아니라 마음속으로 언젠가는 이 언어가 나를 새로운 세계, 더 넓은 세계로 인도해줄 것이라는 기대를 품었기 때문이다.
‘세계의 대통령’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 남다른 어린 시절 & 성공 스토리

최고 등급의 평가로 채워져 있는 반 총장의 고교시절 성적표.


반 총장에게 처음 ‘외교관’의 꿈을 심어준 이는 고등학교 시절 영어교사였던 김성태씨. 그는 영어를 잘할 뿐 아니라 품성과 매너도 좋은 반 총장에게 외교관이 돼보라고 조언하면서 비스타(VISTA·Visit of International Student to America)라는 미국 연수 프로그램을 소개해줬다. 비스타는 당시 미국 적십자사에서 운영하고 있었는데, 세계 각국 청소년을 미국에 초대해 한 달 동안 현지인 가정에 머무르게 하면서 다양한 교육을 시켜주는 프로그램이었다. 비스타 연수생이 되려면 서울에서 열리는 영어 대회에서 입상해야 했다. 반 총장은 이 대회에서 1등을 차지했고, 고3이던 62년 여름 미국행 비행기에 올랐다. 43개국 1백17명의 학생들과 함께한 이 프로그램은 반 총장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 특히 잊을 수 없는 일은 당시 학생들을 격려하기 위해 찾아온 미국 대통령 케네디와의 만남이었다. 케네디 대통령은 참가 학생들 앞에서 짧은 연설을 한 뒤 반 총장에게 장래희망이 무엇이냐고 물었는데, 그는 그때 한 순간의 망설임도 없이 “외교관”이라고 씩씩하게 답했다.
반 총장의 이 꿈은 이듬해 서울대 외교학과에 입학하면서 더욱 구체화됐다. 전국의 수재들이 모인 서울대 외교학과에서 반 총장은 두드러지는 학생이었다. 특히 노트 필기 능력이 뛰어나 시험 때면 학생들이 모두 그의 주위로 몰려들었다. 성실한 받아쓰기 능력은 외교관의 필수 덕목 가운데 하나. 외교 관계에서는 사소한 단어 하나도 국익에 큰 영향을 미칠 수 있기 때문에 외교관들은 높은 직급일지라도 직접 대화 내용을 기록하고 정리한다. 정상회담이 열릴 때면 각국의 외교부 장관이 대통령 옆에 배석해 대화 내용을 메모할 정도다. 이 때문에 반 총장의 꼼꼼한 필기 능력은 학교에서 좋은 평가를 받았고, 교수들은 “자네는 외교관의 중요한 자질을 이미 갖췄네. 받아쓰고 정리하는 능력이 참 탁월해”라고 칭찬하곤 했다.

‘세계의 대통령’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 남다른 어린 시절 & 성공 스토리

반 총장은 비스타 프로그램 당시 홈스테이 가정의 주인이던 피터슨 아주머니(반 총장 오른쪽)와 귀국 후에도 계속 편지를 주고 받는 등 우정을 쌓아왔다.(왼쪽) 사무총장에 당선된 뒤 코피아난 전임 유엔 사무총장과 인사를 나누고 있는 반 총장.(오른쪽)


초고속 승진 거듭한 ‘외교부의 전설’
외교관을 꿈꾸고 있던 반 총장에게 이런 격려는 큰 힘이 됐다. 그는 2학년을 마치고 군대에 다녀온 뒤 복학해 바로 외무고시를 준비했고, 졸업과 동시에 외무고시 3기에 차석으로 합격했다. 그리고 이듬해인 71년 충주에서 함께 고교 시절을 보낸 유순택씨와 결혼해 가정을 꾸렸다. 외무고시에 합격한 전도유망한 청년이던 반 총장과, 충주여고 학생회장 출신으로 중앙대 도서관학과를 졸업한 뒤 도서관 사서로 근무 중이던 유순택씨에게는 당시 정·재계 여러 가문에서 혼담이 들어오기도 했는데, 둘은 모든 제안을 거절하고 지고지순하게 서로를 사랑했다. 이들은 서울 흑석동에 15만원짜리 단칸방을 얻어 새 이불 한 채와 요강, 캐비닛 하나만 들여놓은 채 신접살림을 시작했다.
외교가에서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을 부르는 별명은 ‘황희 정승’. 촉망받는 외교관으로 활동하면서도 차관 시절까지 서울 흑석동 산동네에서 전세로 살았을 만큼 청렴함을 잃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는 2000년 사당동에 아파트를 분양받은 뒤 “드디어 내 아파트가 생겼구나”라며 아이처럼 기뻐했다.
외무부(1998년부터 외교통상부로 바뀜) 근무를 시작한 뒤 반 총장은 인도 근무를 자원했다. 지금도 그렇지만 당시 외교관들이 가장 선호하던 해외 근무지는 미국. 미국과 관련된 일이 외무부에서는 최우선으로 여겨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가난한 가정에서 자란 반 총장은 물가가 비싼 미국에 가면 월급만으로 부모님과 동생의 살림까지 돌보기 힘들다는 판단을 하고, 영어권 나라 가운데 생활비가 비교적 적게 드는 인도를 선택했다.
그런데 이 선택은 반 총장에게 오히려 기회가 됐다. 인도에서 평생의 멘토가 된 노신영 당시 인도 총영사를 만난 것이다. 이후 외무부 장관과 국무총리를 지내는 노신영 총영사는 반 총장을 각별히 아꼈고, 늘 자신의 곁에 두려 했다. 그래서 방글라데시와 아프가니스탄 등 해외 각국과 외교 관계를 수립할 때마다 반 총장을 데리고 다녔고, 반 총장은 이 덕분에 굵직한 세계 외교의 현장에서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었다.
반 총장을 높이 평가한 사람은 노신영 총리만이 아니다. 반 총장은 근면성실할 뿐 아니라 일이 주어지기 전에 찾아서 하는 솔선수범 스타일이었기 때문에 상사들에게 두루 인정받으며 초고속 승진을 거듭했다.
이범석 외무부 장관(1982~83 재임)은 장관 취임 뒤 반 총장을 자기 곁에 두기 위해 4급 서기관이던 그를 3급 부이사관으로 승진시켰다. 동기들 가운데 가장 빠른 승진이었기 때문에 일부에서 “무리한 승진”이라는 비판이 일기도 했지만 “그럼 반기문만큼 일할 수 있는 인물을 데려오라”는 이 장관의 말에 누구도 반박하지 못했다.
노신영 총리도 85년 국무총리로 취임한 뒤 반 총장을 의전비서관으로 불렀다. 의전비서관은 국무총리의 일정이나 접견 등을 준비하고 총괄하는 자리로, 2급 이사관의 몫이었기 때문에 당시 3급이던 반 총장이 맡기엔 직급이 높았다. 이 인사로 외무고시 3기 동기들뿐 아니라 1, 2기 선배들보다도 앞서 승진하게 된 반 총장은 꼬박 일주일 동안 선배와 동료 외교관 1백여 명에게 ‘먼저 승진하게 돼 미안하고 송구하다’는 내용의 자필 편지를 보냈다. 선배나 동료들이 그를 질시하지 않고 오히려 빠른 성장을 칭찬하며 격려해줄 수 있었던 건 이런 반 총장의 인품 덕분이었다.
그 뒤에도 반 총장의 초고속 승진은 이어졌다. 이상옥 외무부 장관(1990~93 재임)은 반 총장을 주미공사에 임명한 뒤 일주일 만에 1급으로 승진시켰고, 공로명 외무부 장관이 재임하고 있던 96년에는 1월에 외무부 제1차관보, 2월에 차관급인 대통령 의전 수석비서관, 11월에 대통령 외교안보 수석비서관으로 임명되는 등 한 해에 세 차례나 승진을 거듭했다. 외무부에서 초고속 승진의 전설이 된 것이다.

‘세계의 대통령’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 남다른 어린 시절 & 성공 스토리

서울대 졸업식에서 부인 유순택씨와 함께 선 반 총장.(왼쪽) 72년 사무관 임용 후 외교부 동기생들과 함께 한 반 총장(오른쪽 위사진 왼쪽에서 두번째), 비스타 프로그램 당시 케네디 대통령을 만나고 있는 모습(오른쪽 아래사진 원 안),


하지만 그에게도 시련은 있었다. 외교통상부 차관을 맡고 있던 2001년 2월 한·러 정상회담이 열렸는데, 실무진의 실수로 합의문에 우리 정부가 미국이 추진 중이던 미사일 방어체제에 반대한다는 내용이 포함된 것. 미국은 우리 정부에 강력히 항의했고, 반 총장은 이에 대한 책임을 지고 퇴임해야 했다.
기회는 4개월 뒤 다시 찾아왔다. 한승수 전 외교통상부 장관(2001~2002 재임)이 제56차 유엔 총회 의장이 되면서 그를 비서실장(유엔본부 부대사)으로 부른 것이다. 유엔 총회 의장 비서실장은 보통 외교통상부 국장급이 맡는 자리로, 차관까지 지낸 그로서는 격이 맞지 않은 일이었다. 하지만 반 총장은 “국가의 부름을 저버릴 수 없다”며 이런저런 사람들의 뒷말에 신경 쓰지 않고 그 자리를 받아들였다. 그리고 특유의 성실함과 열정으로 점점 불운을 행운으로 바꿔나갔다.
유엔 총회 의장의 중요 임무 가운데 하나는 회원국들의 의견을 수렴하는 것. 반 총장은 국제 사회의 폭넓은 인맥을 활용해 능력을 인정받았고, 유엔에서의 활동을 마친 뒤 2004년 외교통상부 장관으로 다시 외교통상부에 복귀할 수 있었다. 이때 쌓은 경험과 국제 사회의 호평은 반 총장이 유엔 사무총장이 되는 데 유용한 자산이 됐다.
반 총장의 남다른 청렴함도 그의 성공을 도왔다. 그는 공직자의 윤리와 양심에 거스르는 일을 하지 않기 위해 자식들의 결혼식을 매번 비밀 작전 수행하듯 치렀다. 첫딸이 결혼할 당시 외교통상부 장관이던 반 총장은 비서관 외에는 아무도 모르게 결혼식을 치렀고 축의금도 받지 않았다. 청와대조차 결혼 사실을 몰라 예식 30분 전에 부랴부랴 축하 화환을 보냈을 정도다. 2006년 8월 막내딸이 결혼할 때는 더했다. 국제연합아동기금(유니세프·United Nations Children’s Fund)에서 일하는 막내딸은 케냐에서 결혼식을 올렸는데, 반 총장은 비서관 한 명에게만 이 사실을 알리고, 직원들에게는 케냐 출장을 다녀오겠다고 말한 뒤 금요일 밤 가족과 함께 케냐행 비행기에 올랐다. 주말에 결혼식을 치르고, 월요일부터는 실제 케냐 외무장관과 회담을 하는 등 공식 업무를 처리했다. 오스트리아 대사로 부임했을 때 공관에 전화기를 한 대 더 설치한 일화도 유명하다. 재외공관은 국민 세금으로 운영되는 곳이므로 개인적인 통화를 할 때 쓰는 요금은 스스로 부담해야 한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대한민국 외교통상부 장관을 거쳐, 유엔 사무총장으로
2005년부터 외교가에서는 차기 유엔 사무총장을 우리나라에서 내자는 얘기가 흘러나왔다. 유엔 사무총장을 한국인이 맡으면 국제정치적으로 민감한 한반도 문제를 유리하게 끌고 갈 수 있을 것이라는 판단에서였다. 가장 적합한 인물은 30년 이상 외교관 생활을 했을 뿐 아니라 유엔에서의 실무 경험 덕분에 국제 사회 입지까지 탄탄한 반 총장이라는 의견이 모였고, 반 총장은 우리나라의 공식 후보가 됐다.
유엔 사무총장 선출 권리를 가진 나라는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안보리) 회원국. 상임이사국 5개 나라(미국 러시아 영국 중국 프랑스)와 비상임이사국 10개 나라(가나 그리스 덴마크 슬로바키아 아르헨티나 일본 카타르 콩고 탄자니아 페루)가 비밀 투표를 실시한 뒤 가장 표를 많이 얻은 후보를 총회해 추천, 총회 인준을 거쳐 사무총장으로 임명하는 방식이다.
지난해 10월2일(현지 시각) 유엔 사무총장 선출을 위한 마지막 예비투표에서 찬성 14표, 기권 1표를 얻은 반 총장은 10월9일 안보리가 실시한 공식투표에서 단독 후보로 확정됐고, 이어 13일 192개 유엔 회원국의 만장일치로 제8대 유엔 사무총장이 됐다. 그는 감격한 목소리로 소감을 밝혔다.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상임이사국들의 신뢰와 지지에 크게 감사하며 개인적으로 영광으로 생각합니다. 앞으로 유엔 개혁문제를 포함해 국제사회의 평화와 인권보호에 많은 기여를 해야 하는 역할을 맡아 큰 책임감을 느낍니다. 변함없는 지지를 보내주신 국민에게 다시 한 번 감사드립니다.”
‘세계의 대통령’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 남다른 어린 시절 & 성공 스토리

반 총장은 유엔 사무총장에 당선된 뒤 축하연을 열 때도 평소 성격을 그대로 보여줬다. 고급 호텔이나 화려한 장소를 빌리는 대신 외교통상부 장관 공관에서 정부 관계자와 외교통상부 직원, 출입기자단 등에게 조촐한 식사를 대접한 것. 반 총장은 공식 축하연 외에 가족 및 친지들과 함께 한 자리 비용은 개인적으로 지불했다.
※ 이 기사의 내용은 최근 발간된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의 전기 ‘바보처럼 공부하고 천재처럼 꿈꿔라’(신웅진 저, 명진출판사)에서 발췌한 것입니다.

여성동아 2007년 2월 518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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