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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feStyle 명문대 총장의 조언

‘우리 아이 창의적인 인재로 키우기’

한국예술종합학교 황지우 총장이 들려주는~

글·송화선 기자 / 사진·박해윤 기자

입력 2007.02.09 14:03:00

한국예술종합학교가 주목받고 있다. 최근 이 학교 출신들이 각종 국제 콩쿠르에서 우수한 성적으로 입상하고, 영화 연극 소설 등 다양한 문화 영역에서 두각을 나타내고 있기 때문. 황지우 총장을 만나 어린 시절부터의 ‘예술교육’에 대해 들었다.
‘우리 아이 창의적인 인재로 키우기’

한국예술종합학교(이하 한예종) 황지우 총장(55)은 ‘새들도 세상을 뜨는구나’ 등의 시집으로 널리 알려진 시인. 평생 시작에 전념해온 그가 총장을 맡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예술인의, 예술인에 의한, 예술인을 위한’ 교육기관인 한예종의 특징을 쉽게 눈치챌 수 있다.
한예종은 지난 93년 전문 예술인 양성을 목적으로 설립된 국립교육기관. 개교 첫해 음악원을 시작으로 연극원(94), 영상원(95), 무용원(96), 미술원(97), 전통예술원(98) 등을 차례로 설립했다. 현재 6개의 원으로 구성돼 있는 이 학교의 특징은 교육부 산하에 있는 일반 대학과 달리 문화부 관할이라는 점. 그래서 학생선발이나 교육과정 편성이 상대적으로 자유롭다. 최근 이곳이 화제를 모으고 있는 이유는 한예종 출신들이 각종 문화 영역에서 두드러진 성과를 보이고 있기 때문.
음악원 피아노과 김선욱(18)은 지난해 리즈 국제 피아노 콩쿠르에서 43년 대회 역사상 처음으로 아시아 연주자로서 우승을 차지해 화제를 모았다. 오스트리아 그라츠 국제 오르간 콩쿠르에서 우승한 박준호(21), 러시아 바가노바 발레 아카데미 주최 국제 발레 경연대회에서 최우수 2인무상을 받은 신승원(19)과 윤전일(19), 20대 중반의 나이로 한국일보 문학상을 수상해 문단에서 주목받는 신예 작가로 꼽힌 김애란(27) 등도 모두 한예종 출신. 한류 열풍을 일으킨 드라마 ‘겨울연가’와 지난해 최다 관객을 동원한 영화 ‘괴물’의 시나리오 작가도 한예종 졸업생이다.
황 총장은 이런 결과에 대해 “소수정예로 선발한 학생, 최정상의 교수진, 철저한 현장중심 교육이라는 삼박자가 잘 맞은 덕분”이라고 설명했다. 현재 한예종 재학생 수는 2천7백 명. 지원자가 합격 기준에 미치지 못하면 모집정원을 채우지 못해도 뽑지 않기 때문에 입학생 수가 해마다 변한다. 이들을 가르치는 교수진은 1백40명. 이들 대부분이 현장에서 직접 활동하는 예술가라는 점도 이 학교의 강점이다. 음악원에는 지난해 차이코프스키 국제 콩쿠르 심사위원을 역임한 김남윤 원장을 비롯해 최현수(성악), 임웅균(성악), 김대진(피아노), 정명화(첼로) 등이 교수로 있다. 영상원에는 이창동 감독, 박광수 감독, ‘내 이름은 김삼순’을 연출한 김윤철 PD, 만화가 박재동씨 등이 있고, 전통예술원은 교수 대부분이 인간문화재다. 피리 인간문화재인 정재국을 비롯해 판소리의 안숙선, 해금의 정수년, 풍물놀이의 김덕수가 전임교수.
황 총장은 “우리 학생들은 이 교수들과 함께 4년을 보내며 1대 1 레슨, 그룹별 토론, 전공별 워크숍과 공동제작, 현장실습 등을 한다. 연극원 연출과의 경우 한 학생이 졸업할 때까지 적어도 8편의 작품을 직접 연출해 무대에 올릴 정도”라며 “이 과정에서 학생들의 실력과 잠재력은 비약적으로 성장한다”고 설명했다.

“자유롭게 세상 접하고 마음껏 뛰어놀게 하는 게 창의력 교육의 기본”
‘우리 아이 창의적인 인재로 키우기’

한국예술종합학교 황지우 총장이 전통예술원 조정란양의 춤사위를 바라보고 있다.


한예종의 특징은 이런 교육을 받을 수 있는 ‘특별한’ 학생만 뽑는다는 점. 응시생의 예술적 재능과 잠재력을 판단하기 위해 독특한 전형방법을 사용한다.
“대부분의 미대가 석고 데생으로 실기시험을 볼 때, 한예종 미술원은 파란 천 위에 까만 흑염소를 놓고 그리도록 했어요. 미대 입시만 준비해온 대다수 학생이 깜짝 놀랐죠. 올해는 하얀 석고상을 아예 까맣게 칠해 내놓아보았습니다. 매년 새로운 방식으로 학생을 선발하니까, 어떤 지원자는 ‘우리가 쫓아가려 하면 한예종은 늘 도망간다’고 말하더군요(웃음). 그렇게 하는 이유는 숙련된 기술자 대신, 진짜 ‘예술가의 싹’을 갖고 있는 학생을 선발하기 위해서예요. 음대·미대 입시에 대비해 기술만 연습한 학생은 절대 한예종에 들어올 수 없죠.”
연극원에서는 네 컷 만화 가운데 한 칸을 비워둔 뒤 이야기를 지어 넣으라거나, 양변기와 빨간 고무장갑을 소재로 사건의 변화가 있는 스토리를 짜보라는 등의 문제를 출제하기도 했다고 한다.
과연 이런 문제를 창의적으로 풀 수 있는 ‘예비 예술가’가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황 총장은 “‘예술가의 싹’을 키우려면 어린 시절 자유롭게 세상을 접하고 마음껏 뛰어놀아야 한다”고 말했다.
“지난해 ‘달려라 아비’로 문단에서 큰 화제를 모은 소설가 김애란이 제 제자예요. 연극원 교수 시절 제가 직접 뽑고, 4년을 가르친 학생이죠. 김애란의 작품에 대해 다들 새롭다, 상상력이 뛰어나다고 말하는데, 그 아이는 정말 자유롭게 자랐거든요. 이발사 아버지와 바지락 장사를 하는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나, 어린 시절 내내 충남 서산 시골을 마음껏 뛰어다니며 자랐다고 하더라고요. 입학할 때만 해도 ‘촌아이’였죠. 그런데 그 때묻지 않은 상상력이 문학을 만나니 눈부시게 발전하는 겁니다. 학년이 지날 때마다 무섭게 성장하는 그런 학생을 볼 때 참 행복하죠.”
황 총장은 “많은 부모가 ‘어릴 때는 우리 아이가 천재인 줄 알았는데 키워놓고 보니 평범하더라’라는 얘기를 하는데, 그건 우리 교육이 아이에게 내재돼 있는 상상력이나 기발함을 증발시켜버리기 때문”이라며 “아이의 창의력과 상상력을 지켜주려면 학교 교육에 어울리는 ‘모범생’을 만들려 하지 말아야 한다”고 덧붙였다.
“저만 해도 우리 아이가 예닐곱 살 때는 천재인 줄 알았어요(웃음). 목포 유달산을 보고 ‘바위가 숨 쉰다’고 하지 않나, 바다를 가만히 보다가 ‘섬은 물을 품고 있는 고래 같다’고 하지를 않나, 정말 기가 막혔죠. 그런데 지금은 아주 평범해요. 사실 저도 아이를 잘못 키운 거죠(웃음).”
황 총장은 이런 문제가 일어나는 건 우리 교육이 수렴적 사고 모델에 집중돼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사람의 사고 모델은 수렴형(convergent thinking model)과 발산형(divergent thinking model)으로 나뉘는데, 수렴형은 정답이 정해져 있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사용되는 사고방식이라고.
“학교 교육에서는 모든 문제에 있어 정답을 찾아내는 훈련을 시키잖아요. 이미 갖고 있는 지식이나 논리법칙을 동원해 적합한 답을 찾아나가는 수렴형 사고 모델만 강조하는 거죠. 발산형은 답이 정해져 있지 않은 문제에 대해 다양한 해결책을 모색하는 사고방식, 독창적이고 감성적인 사고방식을 말하는 건데, 발산형으로 사고하는 아이들은 학교에서 산만하거나 엉뚱하다는 평가를 받기 일쑤죠.”
바로 그 과정에서 창의력과 상상력의 싹이 잘려나간다는 게 황 총장의 지적이다. 그래서 그는 가정에서라도 아이에게 ‘네’와 ‘아니요’, 혹은 ‘맞다’와 ‘틀리다’로 답할 수 없는 질문을 던져 아이의 생각이 끝없이 뻗어나가도록 도와줘야 한다고 강조한다. “왜 그렇게 생각했니?” “또 무엇이 있을까?” “만약에 ∼라면 어떨까?”와 같이 끝이 열려있는 질문을 던지면서 사고력이 커나갈 수 있도록 기회를 주는 것이 좋다고.

“어릴 때부터 예술을 접하게 하면 감수성과 상상력 갖춘 어른으로 키울 수 있어요”
‘우리 아이 창의적인 인재로 키우기’

황 총장은 아이가 어릴 때부터 자연스럽게 예술을 접하게 하는 것도 창의력과 상상력을 길러주는 데 큰 도움이 된다고 조언했다.
“예술적 감수성은 달리 말하면 세상을 좀 더 아름답게 볼 수 있는 능력이거든요. 그 부분이 일반인보다 뛰어난 사람이 예술가가 되는 거죠. 외부 세계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는 시기인 5~7세 무렵 예술을 접한 아이들은, 예술가가 되지 않는다 해도 어른이 됐을 때 인생을 좀 더 행복하게 살아가게 됩니다.”
만약 이 무렵 예술교육을 통해 아이의 재능이 발견된다면 가능한 한 빨리 전문가에게 보여주는 것이 좋다고. 그는 리즈 국제 피아노 콩쿠르에서 우승한 음악원 피아노과 4학년 김선욱군의 사례를 들려줬다.
“선욱이에게 어떻게 피아노를 치게 됐냐고 물었더니, 네 살 때 세 살 위 형이 노란 피아노학원 버스를 타고 피아노를 배우러 다니는 게 부러워서 자기도 가르쳐달라고 졸랐다고 하더라고요. 그런데 막상 쳐보니 놀라운 재능이 드러난 거예요. 선욱이는 부모가 맞벌이를 하느라 특별한 뒷바라지를 해주지도 못했는데, 초등학교 4학년 때부터 혼자 지하철을 타고 세종문화회관, 예술의전당을 다니며 일주일에 최소한 두 번, 많으면 다섯 번씩 음악회를 관람했다고 해요. 그게 바로 어린 시절 예술교육의 힘이죠. 좀 더 큰 뒤에는 그렇게 강렬하게 예술을 빨아들이고 재능을 발전시켜나가기 어렵거든요.”
이런 영재를 교육시키기 위해 한예종 음악원·무용원·전통예술원에서는 예비학교와 영재입학제도를 운영하고 있다고 한다. 예비학교는 재능 있는 초·중·고교 학생들을 선발, 주말에 전문 실기 지도를 해주는 프로그램이며, 영재입학제도는 고교 졸업 학력이 없어도 한예종 학생으로 선발하는 제도다. 한예종의 교수들이 직접 영재를 선발하는데, 김선욱은 예비학교를 거쳐 영재입학제도를 통해 한예종에 들어왔다. 피아니스트 손열음, 오르가니스트 박준호 등 세계적으로 활동하고 있는 예술가들이 이 제도를 활용했다고.
황 총장은 “유럽이나 미국 등 선진국을 보면 학교에서 놀이의 형식을 빌려 아이들에게 춤과 그림, 노래 등 다양한 예술 영역을 접하게 해주는데, 우리나라는 일찍부터 영어, 수학만 가르친다”며 “아이를 상상력이 풍부한 사람, 창의적이고 예술적 감수성을 가진 사람으로 키우는 것이 올바른 교육이라는 공감대가 만들어지면 좋겠다”고 말했다.
황지우 총장이 들려준 부부 이야기
“비디오촬영 봉사활동하는 아내와 아름답게 늙어가기 위한 준비…”

‘우리 아이 창의적인 인재로 키우기’

아내, 딸과 함께 한 황지우 총장.

이제 내가 할 일은 아침 머리맡에 떨어진 그대의 머리카락을/ 침 묻힌 손으로 짚어내는 일이 아니라/ 그대와 더불어, 최선을 다해 늙는 일이리라/ 우리가 그렇게 잘 늙은 다음/ 힘없는 소리로, 임자, 우리 괜찮았지?/ 라고 말 할 수 있을 때, 그때나 가서/ 그대를 사랑한다는 말은 그때나 가서/ 할 수 있는 말일 거야

황지우 총장의 시 ‘늙어가는 아내에게’의 일부분이다. 황 총장은 우리 시대의 대표적인 저항시인 가운데 한 사람. 젊은 시절 수배, 구속 등을 당하며 힘겹게 살았던 그의 곁에는 늘 아내 김소연씨(53)가 있었다. 이 시는 바로 그 아내에 대한 따뜻한 사랑을 담아 쓴 것이다.
황 총장이 김씨와 결혼한 것은 25세 때인 77년. 두 사람은 그해 아들 찬(30), 2년 뒤 딸 정(28)을 낳고 단란한 가정을 꾸렸다. 하지만 80년 중앙일보 신춘문예에 입선하며 시인으로 등단한 황 총장이 5·18민주화운동 가담 혐의로 구속되고, 서울대 대학원에서도 제적 당하면서 여러 어려움을 겪어야 했다. 황 총장은 “내 원고료만으로는 도저히 생계를 이어갈 수 없어 목수가 되자는 생각으로 목공일을 하기도 했다”며 “피아노를 전공한 아내가 학생들을 가르친 돈으로 살림을 꾸렸다”고 회고했다.
김씨는 황 총장 고등학교 선배의 동생. 두 사람은 고등학교 때부터 서로를 알아왔다고 한다. 하지만 본격적으로 사랑을 시작한 건 황 총장이 유신반대 시위 때문에 강제 입영당한 70년대 중반. 그는 군대에서 결핵에 걸렸는데, 면회 왔다가 그 모습을 본 김씨가 “저도 같이 그 병에 걸리고 싶어요”라고 말했다고 한다. 황 총장은 그때의 감동을 “너무나 벅차 그 말을 사용할 수조차 없게 하는 그 사랑은/ 아픔을 낫게 하기보다는, 정신없이,/ 아픔을 함께 앓고 싶어하는 것임을/ 한밤, 약병을 쥐고 울어버린 나는 알았지”(‘늙어가는 아내에게’ 중에서)라고 적었다. 아내는 결혼 뒤에도 늘 그렇게 황 총장의 아픔을 함께 앓으며, 그에게 가장 큰 힘이 돼줬다고 한다.
이제 힘겹지만 따뜻했던 황 총장 부부의 젊은 시절은 지나갔다. 각각 한예종 영상원, 이화여대 대학원에서 공부하며 새로운 젊음을 살아가고 있는 자식들을 보며 황 총장 부부는 아름답게 늙어가기 위한 준비를 시작했다고. 아내 김씨는 비디오 촬영을 배워 얼마 전부터 양로원과 장애인 보호시설 등을 다니며 촬영 봉사활동을 하고 있다.
“나이 들수록 어떻게 하면 천박하지 않게 늙어갈 수 있을까에 대한 고민이 많아지는 것 같아요. 취미로 즐길 수 있는 예술을 하나쯤 갖는 것은 가정을 유지하고, 아름답게 늙어가는 데 큰 도움이 되죠. 아내가 먼저 시작했지만, 이제는 저도 함께 잘 늙어가기 위한 준비를 해나갈 겁니다.”


여성동아 2007년 2월 518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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