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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기사

‘쌍둥이 아빠’ 조인직 기자의 육아일기 3

아빠의 도전! 이유식 먹이기

기획·강현숙 기자 / 글·조인직‘신동아 기자’ / 사진·지호영 기자

2007. 01. 18

아이에게 이유식을 먹이는 일은 생각만큼 간단치 않다. 쌍둥이 딸에게 이유식을 먹이며 터득한 조인직 기자의 이유식 먹이기 노하우.

아빠의 도전! 이유식 먹이기

육아에 관해 수치로 표현되는 공식들은 무수히 많다. 대표적인 것이 ‘생후 7개월 정도가 되면 기기 시작하고, 생후 12개월이 되면 혼자서 걸을 수 있다’는 등 ‘생후 몇 개월이 되면 무엇을 한다’는 것이다. 엄마들은 육아 관련 인터넷 카페에 “9개월밖에 안 됐는데 벌써 걸어요!” “우리 아이는 10개월인데 뛰어다녀요”라며 경쟁하듯 아이의 발달 정도를 올려놓기도 한다.
하지만 나와 주변 사람들의 경험을 듣고 정리해보면 이런 말들은 그리 정확하지 않은 사례에 근거하는 경우가 많다. 예를 들어 아이는 그저 “맘마”라고 한 번 스쳐가듯 옹알거렸을 뿐인데, 부모는 그것을 “엄마”라고 알아듣고 아이의 발달 속도를 빠르다고 판단한다.
아이들의 개인차는 생각보다 크다. 부모들은 이런 숫자를 대할 때 몇 개월이 되면 ‘~를 한다’에서 ‘~를 시작한다’로 받아들이는 게 현명할 듯하다.
생후 6개월이 되면 이유식을 먹여야 한다는 말을 듣고 나는 쌍둥이 딸도 이 시기가 되면 알아서 밥을 먹을 줄 알았다. 그러나 아이가 숟가락이나 포크 등 도구를 이용해 자기 힘으로 밥을 먹기까지는 수많은 난관이 동반된다는 사실을 아이들이 생후 18개월이 지난 지금까지 절감하고 있다.

이유식은 인내식(忍耐食)
보통 엄마들은 이유식을 시작하면 양질의 재료를 이용해 손수 이유식을 만들어주려는 의욕을 보인다. 싱싱한 등 푸른 생선, 기름기 쏙 뺀 1등급 한우 살코기, 유기농 야채와 과일 등 은연중에 내가 먹고 싶다는 생각이 들 만큼 최상의 재료가 준비된다. 이유식을 만들 때는 간을 약하게 하기 때문에 맛은 덜할지 몰라도 평소에는 언감생심 접하기 쉽지 않은 만찬이다.
문제는 아이들의 반응이 엄마의 정성에 정비례하지 않다는 데 있다. 잠깐의 초인종 소리에 방심해 한눈을 팔다보면 아이들은 어느새 밥그릇과 반찬그릇을 마룻바닥에 엎어놓고 낄낄거리며 웃고 있다. 아이용 식탁의자에 앉히고 안전벨트를 맨 뒤 아이들의 팔 길이를 계산해 그릇을 멀리 놓아도 가끔은 계산이 어긋날 때가 있다. 아이들이 최선을 다하는(?) 경우 눈대중보다 5cm 정도는 더 팔을 뻗기 때문이다.
이뿐 아니라 턱받이를 목에 둘러주고 깔끔하게 먹이려고 애를 써도 금세 옷과 얼굴 주변에 반찬과 밥풀이 엉겨붙어 지저분해지기 일쑤다. 요즘에는 컸다고 입맛에 맞지 않는 음식을 주면 일단 먹는 척 입에 넣고 돌아다니다가 방이나 거실 한구석에 슬며시 뱉어놓는 ‘지능적인 플레이’를 선보이기도 한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이유식을 먹이고 나면 집안은 그야말로 반찬냄새가 진동하는 난장판이 된다. 음식물이 덕지덕지 달라붙은 옷을 갈아입히고 입 주변과 손, 때로는 반찬을 뭉갠 발까지 시도 때도 없이 씻겨야 한다.
아빠의 도전! 이유식 먹이기

유정이에게 이유식을 먹이고 있는 조인직 기자. 아빠가 차려준 이유식을 맛있게 먹고 있는 유정이와 민정이. 유정이는 유아용 포크를 쥐고 혼자서 곧잘 먹는다. 식사를 마치고 집에서 놀고 있는 민정이.(왼쪽부터 차례로)



아빠의 도전! 이유식 먹이기

쌍둥이 딸은 엄마 아빠가 신경 써서 먹이는 이유식 덕분에 건강하게 자라고 있다.


육아 관련 서적을 보면 ‘아이가 처음엔 잘 적응하지 못하더라도 포크와 숟가락을 주고 최대한 직접 집어먹게 하세요’ 같은 내용이 담겨 있다. 아이가 한 명인 가정이라면 참고 인내하고 치우면서 해볼 만하지만, 동시다발적으로 사고를 치는 쌍둥이 가정의 경우에는 실현불가능한 방법이다.

이유식 먹이는 엄마 옆에서 아빠가 지원 투수로 나서야 성공
엄마가 땀을 흘리며 밥을 먹이는 동안 아빠는 아예 뒤치다꺼리에 나서는 편이 낫다. 가재수건이나 화장지를 들고 다니며 아이 입가에 묻은 음식물을 떼어주고 바닥에 흘린 음식물을 닦고, 간혹 바닥에 떨어진 음식물의 상태가 괜찮으면 주워 먹는 것도 좋다.
다음으로 아빠가 도전할 만한 일은 아이를 먹는 행위에 집중시키는 것이다. 아이 입에 숟가락을 갖다대고 “아~ 착하지~”를 외친다고 해서 아이가 조건반사적으로 입을 벌리지는 않는다. 어떤 아이라도 고구마나 바나나, 플레인 요구르트 등 일찍 맛을 들인 음식이 있는데, 이런 음식들이 훌륭한 미끼상품이 된다. 아빠가 미끼상품을 아이에게 내놓으면 십중팔구 아이들은 입을 열고 달려든다. 엄마는 때를 놓치지 말고 이유식이 담긴 숟가락을 벌어진 아이 입에 넣으면 성공! 물론 두세 숟가락을 반복하면 아이들은 눈치를 챈다. 이때는 전술을 바꿔 박수와 노래, “우와 진짜 맛있다!” 등의 추임새를 넣으면 효과적이다.
아이들이 밥을 먹지 않겠다고 떼를 쓰면 잽싸게 음식을 치우고 엄마아빠가 따로 밥상을 차려 맛있게 밥 먹는 시범을 보이는 것도 방법. 아이들은 식탁 의자 사이로 다가와 “뭐가 그렇게 맛있어요? 한 입만 줘요”라는 표정으로 엄마아빠를 바라본다. 그렇게 아이들이 매달리면 때를 놓치지 말고 한 숟가락씩 먹이면 된다.
모든 방법을 동원해도 아이가 안 먹는다면 ‘배가 고프면 자기가 먼저 달라고 보채겠지’라고 생각하며 숟가락을 거두는 게 내 경험상 상책이다. 단 아이가 체하거나 아파서 밥을 안 먹는 경우도 있으므로 아이의 상태를 꼼꼼하게 살펴봐야 한다.
간혹 엄마가 마트에 가거나 외출을 해서 아빠 혼자 아이들 이유식을 챙길 때가 있다. 전자레인지에 30초 정도 데워야 하는데 미지근하다고 또 데우면 이유식이 팔팔 끓게 된다. 분유를 먹이거나 목욕할 때와 마찬가지로 너무 뜨거우면 서늘함만 못하다. 한 번 뜨거워진 이유식은 아무리 입으로 김을 불어도 원하는 시간에 식지 않는다. 설상가상으로 빨리 먹인다며 뜨거운 이유식을 아이에게 주면 첫 숟가락이 뜨겁다고 느낀 아이들은 두 번째 숟가락부터는 거부할 가능성이 크다. 아내에게 “다 해놓은 음식, 전자레인지에 데워 먹이는 것도 그렇게 어려운 일이냐?”는 타박을 듣지 않으려면 온도조절에 항상 주의해야 한다.
생후 6개월 무렵에는 소금도 안 탄 밍밍한 맛의 밥과 반찬을 먹던 쌍둥이 딸이 생후 18개월이 넘은 요즘은 얼추 어른들이 먹는 갖가지 음식에 도전하고 있다. 젓가락까지는 ‘오버’여도 유아용 포크는 혼자서 곧잘 쥐고 먹는다. 이런 아이들을 보면 인간의 능력은 참 대단하다는 걸 새삼 실감하게 된다.
아빠의 도전! 이유식 먹이기

아빠에게 음식을 먹여주고 있는 기특한 유정이.(마지막 사진)


조인직 기자는…
동아일보 정치부 경제부 등에서 7년여간 일했으며, 지난해 7월부터 시사월간지 ‘신동아’ 기자로 일하고 있다. 그는 2002년 10월 결혼해 2005년 5월 쌍둥이 딸인 유정·민정을 낳았다. 쌍둥이다 보니 손이 많이 가고 그만큼 열심히 육아에 동참할 수밖에 없었다는 그는 “이제 한 자녀 가정의 엄마 역할은 흉내낼 수 있을 만큼의 경지에 올랐다”고 너스레를 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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