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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할아버지의 입담처럼 구수하게 풀어 듣는 삶의 지혜

기획·김동희 기자 / 글·민지일‘문화에세이스트’ / 그린이·최숙희

입력 2007.01.16 15:57:00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러시아의 대문호 톨스토이는 이 책에서 삶을 돌아보게 만드는 세 가지 질문을 한다. 만년의 톨스토이가 깨달은 ‘삶의 지혜’가 푸근한 이야기 속에 담겨 잔잔한 감동을 불러일으킨다.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할아버지의 입담은 참말로 구수하다. 화톳불에서 막 꺼낸 뜨거운 군밤을 이 손 저 손 옮겨가며 까먹는 맛도 일품이다. 긴 겨울 밤. 창밖엔 흰 눈이 소록소록 내려 쌓인다. 윗목의 자리끼는 꽝꽝 얼어가지만 아랫목 화톳불가 아이들 눈망울은 여전히 초롱초롱하다. 모처럼 귀염둥이 손자 손녀들 앞에서 옛이야기를 해주느라 신이 난 할아버지의 긴 수염이 하늘대는 호롱불을 따라 춤추듯 흔들린다.

지금은 보기 힘든 정경. 하지만 어린 시절 긴 겨울방학을 맞은 시골에선 흔히 보는 우리네 삶의 모습이었다. 아이들은 거기서 꿈을 꾸었다. 추억을 키웠다. 인생은 무엇인가, 우린 왜 사는가라는 거창한 데까지 이르지는 못했어도 할아버지 얘기 속엔 생각할 게 무진장 많았다. 항상 근엄했지만 얘기 보따리를 풀 땐 더없이 자상했던 할아버지. 그의 겨울밤 민담은 세월이 흘러 어른이 된 아이들에게 아련한 추억의 등불로 남았다.

러시아 문호 톨스토이의 사진을 보면 그가 얼마나 진지한 사람이었는지를 웅변하는 것 같다. 뭉뚝 붓처럼 두툼한 수염, 흰 눈썹 밑 깊이 든 눈과 눈가의 주름. 인생의 참 그림을 찾으려는 듯 고뇌하는 표정. ‘전쟁과 평화’ ‘부활’ 등 대작을 남긴 그의 이력과 진지한 사진을 조합하면 톨스토이에게서 이런 화톳불 민담을 상상하는 건 어불성설일 것같다. 하지만 착각이다. 참말 구수한 얘기, 겨울밤 아이들에게 풀기 좋은 흥미진진한 얘기들을 그는 무진장 쏟아냈다.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는 그 대표작이다.

아련한 추억의 등불 같이 가슴에서 빛나는 ‘인생의 참 그림’
어느 추운 날. 가난한 구두장이 세몬은 발가벗은 채 교회 앞에 웅크리고 있는 젊은이를 발견하고 불쌍히 여겨 집으로 데려온다. 어디서 왔는지, 왜 교회 앞에서 벌거벗고 있었는지, 그가 어떤 사람인지도 모르지만 세몬 부인은 젊은이를 받아들여 함께 생활한다. 세몬에게서 구두 깁는 법을 배운 젊은이는 금방 솜씨를 부려 인근에 소문이 자자했다. 독립해도 구두 일로 돈을 벌 수 있으련만 젊은이는 세몬의 집에서 거의 한 발짝도 밖으로 나가지 않았다. 또 꼭 필요한 말이 아니면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몇 년이 흘렀다. 그 사이 젊은이가 웃음을 보인 건 딱 두 번이었다. 처음 집에 왔을 때, 짜증을 내던 세몬의 부인이 빵과 음식을 내주며 얼굴을 마주치자 한번 웃었다. 두 번째는 중년의 졸부가 구두를 맞추러 왔을 때. 비싼 가죽을 들고 와 목이 긴 장화를 만들어 내라고 설치는 졸부를 보고 젊은이는 씩 웃더니만 장화 대신 슬리퍼를 만들었다. 놀란 세몬이 젊은이를 책망할 즈음 졸부의 집에서 전갈이 왔다. 구둣방에서 돌아온 졸부가 갑자기 쓰러져 장화는 필요 없게 됐다. 대신 죽은 이에게 신기는 슬리퍼를 만들어 달라….



눈치 빠른 독자들은 이쯤에서 알아챘을 것이다. 젊은이는 천사였다. 어느 날 하나님이 갓 낳은 쌍둥이 딸을 둔 여인의 영혼을 거둬 오라고 명령했다. 그 여인의 남편은 며칠 전 벌목장에서 나무에 깔려 숨졌다. 사고무친인 여인마저 죽는다면 쌍둥이 아기들이 뒤따르는 건 시간문제였다. 천사는 불복했다. 그러자 하나님은 여인의 목숨을 거두고 천사를 인간세계로 내려 보냈다. “인간세계에서 세 가지를 알게 되는 날, 너는 다시 하늘나라로 돌아올 것이다. 세 가지는 인간의 내면에는 무엇이 있는가? 인간에게 허락되지 않는 것은 무엇인가?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이다.”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인간의 안에 있는 것은 사랑이다.”
천사는 세몬과 부인이 자신을 불쌍히 여겨 받아들였을 때 첫 문제의 답을 알았다. 인간의 안에 있는 것은 ‘사랑’이었다. 그리고 두 번째, 졸부가 왔을 때 또 답을 깨달았다. 졸부의 뒤에는 영혼을 데려가는 천사가 있었기 때문이다. 즉 인간에게 허락되지 않는 것은 ‘자기 육체에 무엇이 필요한가를 아는 지식’이었다. 곧 죽어 아무 쓸모가 없어지는 것도 모르고 인간은 제 몸치레에 정신이 팔린 허약한 존재였다.

그리고 마지막 세 번째. 여인의 목숨을 거두면 결국 따라 죽을 것이라 생각했던 쌍둥이 딸들이 그네를 불쌍히 여긴 이웃의 사랑으로 예쁘게 큰 모습을 보고 천사는 깨달았다. 모든 인간은 자신만을 생각하고 걱정한다고 살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사람은 사람에 의해, 사랑에 의해 살아가는 것이다. 인간세계에 내려와 세 번째 웃음을 쌍둥이 딸들에게 보이며 빛 가운데 선 천사는 이렇게 외친다.

“아이들을 낳고 죽어가던 어머니에게는 자기 아이들의 생명을 위해 무엇이 필요한지를 아는 것이 허락되지 않았다. 부자 손님은 자기에게 무엇이 필요한지를 알지 못했다. 사실 어떤 사람에게도 자기에게 필요한 것이 산 사람이 신을 장화인지, 죽은 자에게 신기는 슬리퍼인지를 아는 것이 허락되지 않았다. 내가 인간이었을 때 살아갈 수 있었던 것은 나 스스로의 염려 때문이 아니라 길을 가던 한 사람과 그 아내에게 사랑이 있어서 나를 불쌍히 생각했기 때문이다. 모든 인간이 살아가고 있는 것은 각기 자신의 일을 염려하기 때문이 아니라 그들 가운데 사랑이 있기 때문이다.”

얘기는 끝났다. 천사는 하늘로 올라갔다. 할아버지들의 얘기는 이쯤되면 남겨진 구두장이 부부, 쌍둥이 딸이 복 받아 오래오래 잘 살았다는 걸로 마무리되지만 톨스토이는 그렇지 않았다. “세몬이 정신을 차리고 나서 보니 집은 전과 다름없었고, 집안에는 가족 이외에는 아무도 없었다”로 끝을 맺었다. 그렇다. 인간에게 정말 필요한 것, 인간이 무엇으로 사는가를 깨달은 사람에겐 금은보화니 부귀영화는 사족일 뿐인 것이다. 아이들이 얘기를 더해달라고 조를 수도 없게 끝을 지었다.

해 바뀜 때 사람들은 대개 삶의 목표와 방향을 어느 정도 수정하고 그걸 지켜 나가기로 다짐한다. 비록 자기와의 작은 약속일지라도 그것들은 하나하나가 좀 더 사람답게 살겠다는 의지의 표현에 다름 아니다. 할아버지가 아이들에게 풀어주는 구수한 민담을 통해 톨스토이는 그런 다짐의 제일 윗자리를 군더더기 없이 제시했다. “인간의 안에 있는 것은 사랑이다.”
두레 간. 김은정 옮김.
알아두면 좋아요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글쓴이 레프 니콜라예비치 톨스토이(1828~1910)

러시아에서 명문 백작가의 4남으로 태어났다. 어려서 부모를 잃고 고모를 후견인으로 성장해 1851년 사관후보생으로 입대했고, 이듬해 ‘브레멘니크(현대인)’지에 ‘유년시절’을 발표했다. 1862년 궁정 의사의 딸인 소피아 안드레예브나 베르스와 결혼 후 문학에 전념, ‘전쟁과 평화’ ‘안나 카레리나’ ‘부활’ 등의 역작을 남겼다. 톨스토이는 50대 이후 초기 기독교 사상에 몰두, 예술가 톨스토이에서 도덕가 톨스토이로 변모했다. 1910년 10월28일 가족들 몰래 가출해 11월7일 라잔 우랄 철도의 작은 간이역 역장 관사에서 숨을 거뒀다.

그린이 최숙희

서울대학교 산업미술학과를 졸업하고 어린이책에 삽화를 그리고 있다. 볼로냐 국제아동도서전 올해의 일러스트레이션상을 수상했으며 ‘팥죽 할머니와 호랑이’ ‘열두 띠 동물 둘이서 까꿍’ ‘누구 그림자일까?’ 등에 삽화를 그렸다.



여성동아 2007년 1월 517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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