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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기사

아이와 함께 보는 명화 ①

인간의 교만과 어리석음 경계한 ‘바벨탑’

2007. 01. 13

인간의 교만과 어리석음 경계한 ‘바벨탑’

브뢰겔, 바벨탑, 1563, 나무에 유채, 114×155cm, 빈 미술사 박물관


성경에는 바벨탑 이야기가 나옵니다. 바벨탑은 사람들이 하늘에 닿도록 높이 쌓으려는 탑이었지요. 사람들은 하느님만큼 높아지고 싶었습니다. 하느님만큼 높아지면 무서운 재난도 쉽게 피하고 모든 일이 뜻대로 잘 되리라 생각했습니다. 하느님은 인간의 이런 허황된 생각이 못마땅했습니다. 그래서 하느님은 사람들의 말에 혼란을 불러일으켰습니다. 그전까지는 한 가지 말을 쓰던 사람들이 한꺼번에 여러 가지 말을 쓰게 되니 서로 알아들을 수가 없었습니다. 말이 달라져 뜻이 통하지 않자 사람들은 탑을 짓는 일을 계속할 수 없게 됐고 결국 뿔뿔이 흩어져 각자 살길을 찾아 떠나게 됐습니다.
브뢰겔은 이 바벨탑 이야기에 흥미를 느끼고 매우 공을 들여 그림을 그렸습니다. 그렇게 그려진 그림에는 성경시대의 모습뿐 아니라 브뢰겔 자신이 살던 시대의 모습도 함께 담겨 있습니다.
자, 그림을 봅시다. 화면 중앙에 엄청나게 큰 탑이 세워지고 있고 주위에는 네덜란드의 도시 풍경이 보입니다. 그러니까 탑은 바벨탑이되 이야기의 배경은 저 고대의 바빌로니아가 아니라 당대의 네덜란드인 것이지요.
브뢰겔이 보기에는 옛날 사람들만 어리석은 게 아니었습니다. 당시의 네덜란드 사람들도 어리석기는 마찬가지였습니다. 사람들은 여전히 허황된 생각을 하고 다들 자기만 잘났다고 생각했습니다. 게으르고 남을 배려할 줄 모르고 자신을 겸손하게 낮출 줄 몰랐습니다. 당시 네덜란드가 스페인의 지배를 받고 있었던 데는 이렇듯 사람들의 교만함과 어리석음이 한몫한다고 생각했습니다. 브뢰겔은 자신의 나라 네덜란드에 어울리지 않는 큰 탑을 그리며 국민들이 보다 현명해지고 성실해지기를 소망했습니다. 그의 소망처럼 오늘날 네덜란드는 세계에서 가장 현명하고 부지런하며 성실한 사람들의 나라가 됐습니다.

한 가지 더∼ 옛날에는 오늘날처럼 직업 선택이 자유롭지 못했습니다. 대부분 조상이 하던 일을 물려받았습니다. 화가의 아들은 또 화가가 됐지요. 브뢰겔의 집안도 마찬가지였습니다. 하지만 브뢰겔의 가족은 그냥 직업을 이은 정도가 아니라 모두 유명한 화가가 됐지요. 아버지 피터(大) 브뢰겔과 두 아들 피터(小)와 얀, 그리고 얀(大)의 아들 얀(小)과 암브로시우스 등 모두 명성이 자자했습니다.

피터 브뢰겔(1524?~69) 네덜란드 브라반트 지방의 한 시골 마을에서 태어난 브뢰겔은 농민을 대상으로 한 그림을 많이 그려 농민화가로 불립니다. 농민을 중심으로 다양한 사람들의 삶을 관찰하고 풍자하며 교훈을 주는 그림을 그렸습니다. 재미있는 구성, 풍자가 가득한 내용, 성실한 표현 등이 보는 이의 시선을 사로잡습니다. 안타깝게도 40대에 이른 죽음을 맞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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