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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FE STYLE

글쓰기 고수의 조언

서울대 법대 문승기군의 ‘논술 잘 쓰는 비결’

부족한 수능점수 논술로 극복한~

기획·이남희 기자 / 글·이승민‘자유기고가’ / 사진·박해윤 기자

2007. 01. 11

문승기군은 2006학년도 수능에서 471점을 받았다. 0.1점으로 당락이 결정되는 대학입시에서, 그가 합격자 평균보다 10점 가량 낮은 수능점수로 서울대 법대에 합격한 이유는 바로 논술 때문이다. “치열한 독서와 신문읽기를 즐겼다”는 그로부터 논술공부 노하우에 대해 들었다.

서울대 법대 문승기군의 ‘논술 잘 쓰는 비결’

서울대 법대 06학번 문승기군(20). 그는 2006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이하 수능)에서 합격자 평균보다 10점 정도 낮은 471점을 받고도 논술시험을 잘 봐 서울대 법대에 입학해 화제를 모았다.
그가 들려주는 논술 비법은 바로 독서다. 문승기군이 처음으로 책읽기를 시작한 것은 세 살 때. 아버지가 자격증을 따기 위해 열심히 공부하는 모습을 보고 자기도 책을 읽고 싶다며 부모에게 읽어달라고 했다고. 그는 새벽 4시가 되면 어김없이 일어나 어머니에게 책을 읽어달라며 졸랐고, 한 시간 반 정도 어머니와 책을 본 후 다시 잠자리에 들었다.
“저는 잘 기억나지 않는데 어머니가 그러시더라고요. 그 당시 제가 읽었던 책들은 큰아버지 댁에서 가져온 것이었어요. 사촌형과 누나가 커가면서 더 이상 필요없게 된 책들이었죠. 제가 살던 동네에는 도서관도 없었고, 철물점을 운영하시는 부모님이 책을 사줄 여유가 안 돼, 저는 그 책을 읽고 또 읽었어요. 아마 한 권을 깊이 있게 읽는 습관이 그때부터 길러진 것 같아요.”
어머니는 낮에 철물점에 손님이 없거나 잠자리에 들 때 등 시간이 날 때마다 그에게 책을 읽어주었다. 그 덕분에 그는 다섯 살 때 한글을 떼고 혼자 책을 읽기 시작했다. 그가 초등학교에 들어가자 어머니는 어려운 형편에도 불구하고 문학전집 등을 구입해 아들의 독서 욕구를 채워줬고, 한 달에 2~3번 정도는 서점에 가서 아이가 읽고 싶은 책을 실컷 읽게 했고, 사고 싶은 책을 사줬다.

고3 때까지 독서논술 수업 받으며 생각의 폭 키워
문군의 어머니는 책을 사는 데만큼은 돈을 아끼지 않았다. 이러한 어머니의 배려로 문군은 초등학교 때 하루 평균 3~4권의 책을 읽었다고 한다. 그의 독서습관은 중학교에 올라와서도 이어졌는데 중학교 3학년 때쯤 논술 준비의 필요성을 느꼈다고 한다.
“그동안 책을 많이 읽긴 했지만 그다지 구체적으로 손에 잡히는 것이 없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책을 읽는 것과 글을 쓰는 것은 밀접한 관련이 있지만 그 사이를 이어줄 다리 같은 것이 필요했어요. 책에서 배운 것을 글로 옮길 수 있는 어떤 능력 같은 것 말이에요. 책을 많이 읽었다고 모두 글을 잘 쓸 수 있는 것은 아니니까요.”
그래서 그는 독서논술클럽에 가입했다. 4~6명의 아이들이 모여 같은 책을 읽고 토론을 하고 글쓰기를 하는 수업이 일주일에 2시간씩 이뤄졌다. 친구들과 함께 책을 읽으니 혼자 읽을 때보다 더 많은 생각을 하게 되고, 다른 친구의 의견을 들을 수 있어서 도움이 됐다. 또한 친구, 선생님과 고민도 나눌 수 있어 좋았다.
문군은 고등학교에 올라가서도 꾸준히 독서논술 수업을 들었다. 그런데 고등학교 1학년 말쯤 되자 친구들이 하나 둘씩 빠져나갔다. 공부할 시간도 모자라 책 읽을 시간을 내기 어렵다는 이유에서였다. 문군 역시 흔들렸지만 포기하지 않았다. 독서논술 수업을 포기하면 학교생활에 치여 더 이상 책을 읽을 수 없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지금에 와서 생각해보니 당시의 판단이 옳았던 것 같아요. 고3 때까지 독서논술 수업을 계속했는데 그 덕분에 논술시험을 잘 보게 됐으니까요. 논술 준비를 위해 서울에 와서 다른 아이들의 글을 보니 책 인용이 약하고 평이하더라고요. 독서를 많이 안 했기 때문이죠. 한번 파기 시작한 우물은 깊이 파야 한다는 교훈을 얻었어요.”

서울대 법대 문승기군의 ‘논술 잘 쓰는 비결’

역시 고3에 가까워질수록 책 읽을 시간이 부족했다. 하루에 30분도 시간을 내기 힘들어 평일에는 거의 못 읽고 주말에 1~2권 정도 읽었다. 그래도 두 달에 한 번 정도는 서점에 들러 책을 살펴봤다. 다 읽지는 못해도 제목과 목차 등을 훑어보며 관심이 가는 책은 구입했다.
논술 준비에 있어 신문을 읽는 것도 빼놓을 수 없는 일이었다. 고등학교에 들어가면서부터 매일 신문을 읽었는데 아침에 일어나 씻고 밥 먹기 전까지 몇 분을 활용했다. 먼저 신문의 첫 면을 훑어보고 한 장 한 장 넘기면서 제목만 읽었다. 문군이 학교에 가 있는 동안, 어머니가 아들이 읽을 만한 자료와 잘라달라고 부탁한 자료를 모아놓았다. 그는 학교에서 돌아와 10~20분 정도 잘려져 있는 신문을 보았다.
“단지 공부 때문에 신문을 보았던 것은 아니에요. 세상 돌아가는 일이 궁금해서 본 것이죠. 어머니도 꼭 공부와 관련된 것이 아니어도 제가 알아두면 좋을 것 같은 자료들을 모아주셨어요. 지금 와서 보면 호기심 차원에서 읽은 신문 자료들이 시사상식을 넓히는 데 도움이 된 것 같아요.”
이렇게 책을 열심히 읽고 공부도 열심히 했지만 수능점수는 만족스럽지 못했다. 판사가 되겠다는 꿈을 안고 서울대 법대를 목표로 공부했는데, 합격을 안심할 수 있는 점수는 아니었다. 문군이 다니던 고등학교에서는 서울대 다른 과에 원서를 넣으라고 권유했지만 그는 자신의 인생을 결정하는 것인 만큼 법대 지원을 포기하지 않았다. ‘서울대 법대에 떨어지면 다른 학교 법대에 장학금을 받고 가겠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었다.
남아있는 것은 논술. 문승기군은 논술에 모든 것을 걸었다. 부산에서 논술 준비에 한계를 느낀 그는 논술시험을 한 달 앞두고 서울로 올라와 대치동 학원가에 자리를 잡았다. 학원에 등록한 날부터 바로 수업이 시작됐다. 아침 일찍 학원에 가서 전날 밤에 내준 숙제를 검사받고 다시 그날 과제를 받았다. 그리고 낮 동안 계속 논술을 썼다. 저녁이 되면 선생님이 첨삭을 해주었는데 매일 깨졌다. 10일이 지나고 20일쯤 지나자 조금씩 자신감이 생기기 시작했다.

어떤 상황도 사회문제와 연관시켜 생각하고, 또래 친구들의 잘 쓴 글 베끼며 공부
“학원에서 논술공부를 하면서 어떤 행동이나 생각을 해도 모든 것을 논술과 관련시키는 버릇이 생겼어요. 비빔밥을 먹을 때 밥을 비비며, ‘여러 반찬이 잘 섞여야 맛있는 비빔밥이 되듯이 우리 사회가 나아지려면 여러 집단의 요구가 중요하겠구나’ 하는 식이죠. 어떤 상황이든 사회문제와 연관시켜 생각해보고, 제가 쓸 글까지 고민해보았어요.”
한 달이 하루처럼 흘러 드디어 논술고사 날이 됐다. 문제는 ‘현실사회의 경쟁의 양상’. 문군은 트리나 폴러스의 ‘꽃들에게 희망을’에 나오는 애벌레의 치열한 상승경쟁과 그 허무한 결말을 모티프로 해서 답안을 작성했다. 결론은 ‘목표가 분명하고 정당한 경쟁이 우리 사회를 발전시킨다’는 것이었다. 구술시험까지 마무리짓고 차분히 합격자 발표를 기다렸다. 결과는 합격. 이렇게 해서 문승기군은 자신의 꿈에 한 발짝 더 다가가게 됐다.
논술로 서울대에 합격한 문승기군이 말하는 논술 잘 쓰는 비법은 딱 세 가지다. 첫 번째는 자신의 경험을 이용해 논술문을 쓰는 연습을 하는 것이고, 두 번째는 잘 쓴 친구의 논술문을 베껴 써보는 것이다. 세 번째는 아이디어가 떠오를 때마다 기록하는 것이다.
논술문은 ‘나의 생각’을 쓰는 것이기에 나의 직간접 경험들은 논술 답안지에 쏟아부어야 한다. 문제를 파악할 때도 ‘현재의 나’의 관점으로 인식해야 ‘나의 생각’을 잘 쓸 수 있다. 사람마다 삶의 궤적이 다르고, 한 핏줄, 쌍둥이라고 해도 같은 삶을 살지 않는다. 그래서 나의 이야기보다 더 독창적인 소재는 없다.
친구의 글을 베껴 쓰는 것은 의외로 좋은 점이 많다. 모범 답안의 수준은 너무 높고, 선생님들의 글 역시 따라갈 수 없을 것 같은 생각이 드는 경우가 많은데 친구들이 쓴 글은 다르다. 나와 코드가 잘 맞는 친구들의 글 중에서 잘 쓴 글을 고른다. 꼼꼼히 친구의 글을 읽어보고 원고지에 옮겨 써보면 그 글의 장점과 단점을 파악할 수 있다.

서울대 법대 문승기군의 ‘논술 잘 쓰는 비결’

문승기군은 책, 신문은 물론 여기저기서 보게 되는 작은 글 등에서 인상적인 글귀를 보면 기록하는 습관을 갖고 있다. 이러한 기록의 습관은 논술문을 잘 쓰는데 큰 도움이 됐다고 한다.


아무리 좋은 아이디어라고 해도 기록의 습관이 없으면 안개 속으로 사라진다. 좋은 글감들이 있으면 모으고 기록하는 습관을 들이는 것이 좋다. 따로 노트를 마련해 모든 책, 신문은 물론 여기저기에서 보게 되는 작은 글 등 다양한 것들에서 인상적이거나 남기고 싶은 것들을 모두 기록한다.
문승기군이 서울대 법대생이 되기까지 부모의 숨은 노력도 빼놓을 수 없다. 특히 책을 좋아했던 어머니는 그에게 책 읽는 습관을 물려주었다. 철물점 뒤에 딸린 방에서 네 식구가 생활했는데 곳곳에 책들이 꽂혀 있었다. 문군의 어머니는 액세서리나 화장품에는 관심이 없었지만 유독 책만은 어떻게든 구하고 싶어했다고. 어린 문군의 손을 잡고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팬 사인회에 가서 몇 시간 동안 줄을 서서 사인을 받을 정도였다.



책 읽는 습관 물려준 ‘독서광’ 어머니, 축구 가르치며 입시 스트레스 풀어준 아버지
“제가 공부할 때 어머니는 항상 옆에 앉아 계셨어요. 다른 어머니들은 TV 보시거나 다른 일을 하면서 아이들에게 공부하라고 하시는데 저희 엄마는 그렇지 않으셨어요. 옆에 앉아 신문이나 책을 보셨어요. 그렇다고 해서 제 공부에 간섭하신 것은 아니에요. 그냥 제가 하는 대로 지켜봐주셨어요.”
아버지는 문승기군에게 축구를 가르쳤다. 하루 종일 책만 보고 있는 문군을 밖으로 끌어내기 위해 시작한 것이다. 덕분에 아빠와 추억도 쌓고 고등학교 때는 입시 스트레스를 해소하는 데도 큰 도움이 됐다. 문승기군은 지금도 축구를 즐기고 있다. 공부할 때는 공부하고, 놀 때는 노는 습관이 길러졌던 것이다.
문승기군은 자식을 믿고 묵묵히 지켜보며 자식이 필요로 하는 것은 언제든지 채워주신 부모님 덕에 자신의 오늘이 있었던 것이라고 이야기한다. 더불어 아이를 키우는 부모님들에게 당부의 말을 전했다.
“아이들에 대해 너무 조바심 내지 마시고, 느긋하게 기다려주셨으면 해요. 아이들이 좋아하지도 않는데 이것저것 시키며 아이들 시간을 빼앗지 말고 스스로 시간을 활용할 수 있도록 옆에 가만히 있어주셨으면 해요. 그렇게 하면 아이들은 스스로 자신의 길을 찾아가거든요.”
문승기군은 최근 자신의 논술 비법을 담은 책 ‘난, 논술로 갔다’를 펴내 자신의 공부 노하우를 전하고 있다.
문승기군이 논술에 도움을 많이 받은 책
논술 준비를 위해 부산에서 서울로 올라온 문승기군은 그동안 자신이 읽었던 책 중에서 논술에 도움이 될 만한 것만 엄선해 가지고 왔다. 논술을 공부하는 틈틈이 가져온 책들을 읽으며 그는 자신의 생각을 정리하고, 논술 주제와 연관시키는 연습을 했다고 한다. 다음은 그 책들이다.

어린왕자
정독과 속독을 병행하여 5번 정도 읽은 책. 어린왕자가 지구에 오기까지의 과정에서 만난 사람들의 특성이 다양한데 이는 훌륭한 논술 소재가 된다. 각 등장인물을 사회의 특정 계층과 연관지을 수도 있고, 사회제도, 사랑, 우정, 경쟁 등의 가치와 연결지을 수도 있다.

과학동아
시사상식을 넓히기 위해 읽었다. 법대 지원생에게 직접적인 도움이 되지는 않았으나 각종 발견 사례들과 전문지식을 읽어 호기심을 충족시키는 동시에 논리적 사고력을 키우는 데 도움이 됐다.

우리 문화의 수수께끼
‘개고기 문화’에 대한 일부 공격적인 주장에 반박하기 위해 읽은 책. ‘기르기는 개인이 기르되 먹기는 공동체 차원에서 먹었고, 그나마 고기량도 모자라 장국으로 끓여서 집단 시식하는 나눔의 공동체를 이루었다’는 내용에 체크를 해놓았다.

틴뉴스
논술과 구술 분야에서 유명한 강사들의 이야기와 비슷한 또래의 글이 있는 책으로 시사상식을 넓히고 논술 소재를 찾는 데 도움이 됐다.

손도끼
논술을 준비하면서 기분전환과 마음을 다잡을 필요가 있을 때 읽었다. 홀로 어려움을 이겨내는 어린 소년의 이야기에 감동을 받아 보물로 간직하는 책이 됐다.

침묵의 봄
환경오염 사례를 들면서 자신의 생각을 논리적으로 전개해가는 작가의 필력에 매료된 책. ‘북동부 지역에서 시행된 매미나방 퇴치사업’ ‘남부에서 시행된 불개미 퇴치사업’ 등 각종 환경오염 사례를 형광펜으로 표시해놓고 종종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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