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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eleb 명문대 총장의 조언

카이스트 서남표 총장이 들려주는 ‘아이에게 창의성 키우는 교육’

글·이남희 기자 / 사진·김성남 기자

입력 2006.12.23 12:43:00

‘한국의 최고 과학 두뇌 집단’ 카이스트가 변하고 있다. 지난 7월 미국 MIT 석좌교수이던 서남표 총장이 취임하면서부터다. “카이스트를 MIT와 같은 세계적 공대로 키우겠다”고 선언한 그를 만나 아이에게 창의적 마인드를 길러주는 교육법에 대해 들었다.
카이스트 서남표 총장이 들려주는 ‘아이에게 창의성 키우는 교육’

스타 과학자 윤송이 SK텔레콤 상무, 미국 최고 명문대 출신들과 치열한 경쟁을 벌인 끝에 하버드대 의대 교수로 임용된 윤석현 박사, 서울대 최연소 교수인 김현진 기계공학과 교수…. 이들의 공통점은 바로 카이스트(KAIST·한국과학기술원) 출신이라는 것이다. 70년 산업화를 뒷받침할 고급 기술인력을 양성하기 위해 설립된 카이스트는 36년의 짧은 역사에도 불구하고 한국 과학기술의 산실로 자리매김했다.
한국의 대표적인 이공계 대학인 카이스트가 최근 개혁바람에 휩싸였다. 지난 7월 미국 매사추세츠공대(MIT) 기계공학과 석좌교수이던 서남표 총장(70)이 취임하면서부터다. 그는 공짜로 공부하는 카이스트 학생들이 낮은 학점을 받을 경우 내년부터 수업료를 돌려받기로 하는 등 학교의 경쟁력 강화에 주력하고 있다.
지난 11월 초 단풍이 우거진 대전시 구성동 카이스트 캠퍼스에서 서남표 총장을 만났다. 카이스트 총장을 맡아, 52년의 미국 생활을 접고 귀국한 그는 고국에 기여할 수 있다는 기쁨으로 바쁜 나날을 보내는 중이다. “최근 한 일간지가 실시한 2006년 전국 대학평가에서 카이스트가 종합 1위를 차지해 기쁘겠다”는 인사에 그는 “세계 1위가 되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입을 열었다.
“세 달간 지켜보면서, 카이스트 학생과 교수들이 세계 어디 내놔도 손색없는 수준이라는 것을 확인했습니다. 문제는 돈이 없어 뒷받침을 못하고 있는 것이죠. 그래서 먼저 1조원의 대학 발전기금을 마련하는데 주력할 겁니다. 카이스트 출신들이 발전에 이바지한 국내 기업들, 성공한 해외교포 등을 대상으로 기부금을 모금하고 있습니다. 이를 바탕으로 현재 교수 대 학생의 비율을 1대 12에서 1대 6으로 만들고, 정보기술(Information Technology), 바이오융합(Biocentury), 복합시스템설계(Design for Complex Systems), 엔터테인먼트공학(Entertainment Engineering), 나노(Nano Century) 등 유망한 5개 핵심 분야를 선택, 집중 육성할 계획입니다. 향후 에너지, 환경 등으로 연구분야를 확대할 생각이고요.”

부모가 짜준 계획표대로 생활한 아이는 훗날 어려움 닥치면 혼자 해결 못해
카이스트 서남표 총장이 들려주는 ‘아이에게 창의성 키우는 교육’

학생들과 교정에서 대화를 나누는 서남표 총장.


그가 내민 또 다른 비장의 카드는 바로 카이스트 글로벌화 전략이다. 내년 신입생부터 모든 과목을 영어로 가르치고, 학부 과정에 외국인 학생을 최소 50명 정도 데려오기로 했다. 또 외국 대학과 손잡고 양쪽에서 학위를 받도록 할 계획이다. “한국 교수들이 진행하는 영어수업이 ‘콩글리시(한국식 영어표현)’를 양산하지 않겠느냐”는 우려에 대해 서 총장은 “어려움은 있겠지만 꼭 필요한 변화”라고 설명했다.
“저는 무엇을 결정할 때 ‘이것이 학교에 좋은가, 학생들에게 좋은가, 교수들에게 좋은가’를 고려합니다. 그 결과 영어 강의는 카이스트가 경쟁력을 갖는 필수 조건이라는 판단을 내렸죠. 영어를 못하면 과학 기술·경영 계통에 있는 사람들이 국제 무대에서 일을 할 수 없습니다. 많은 교수가 외국에서 학위를 받았기 때문에 영어 구사에 큰 어려움은 없으리라 판단합니다. 이·공학뿐 아니라 역사, 미술 등 카이스트가 개설한 모든 과목을 영어로 가르칠 생각입니다. 이는 외국인 학생을 유치하는 데도 도움이 될 거예요.”
서 총장이 제시하는 청사진이 설득력을 얻는 것은, 그가 1백30년 전통의 MIT 기계공학과를 개혁한 장본인이기 때문. 36년간 MIT 교수로 재직한 그는 학과장 시절 융합기술을 선도하기 위해 기계공학과, IT, 생명공학의 융합을 추진했다.
“저는 MIT 기계공학과 학과장으로 재직하던 지난 91년부터 10년간 학과 교수 75명 중 40명을 생명공학, IT 등 다른 전공교수로 교체했습니다. 처음에는 ‘MIT 기계공학과가 명실상부한 1등인데 왜 바꾸냐’는 내부 반발도 많았죠. 하지만 저는 ‘현재 MIT가 가르치는 지식을 갖고 졸업생들이 20년 뒤 지도자가 될 수 없다’며 사람들을 설득했습니다. 결국 융합기술 도입으로 기계공학과의 활로를 찾은 제 선택이 성공적이었다는 평가를 받았어요.”
그는 MIT 학생들과 카이스트 학생들을 비교하며 한국교육의 한계를 지적하기도 했다. ‘두 학교 학생 모두 똑똑하지만, 한국 학생들은 남이 시키는 것만 잘하는 경향이 있다’는 게 서 총장의 분석이다.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찾아 적극적으로 추진하는 미국 학생과 달리 한국 학생은 남이 시킨 것을 받아들이는 데 익숙해보였습니다. 그건 한국 학생의 문제라기보단 일방적인 주입식 수업을 해온 한국교육이 갖는 문제가 아닌가 싶어요. 배운다는 것은 어떤 주제를 스스로 이해해가는 과정인 만큼, 자기주도적인 학습이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그래서 저는 창의력을 더 키워주기 위해 학생들이 스스로 추진하는 프로젝트에 많이 지원하려고 합니다. 또한 개별연구, 창의적 디자인 프로젝트 등의 과목을 강화할 생각이고요. 한국의 학부모는 초등학생 자녀들을 여러 학원에 보내기 바쁜데, 부모가 짜준 계획표대로 생활하면 아이들은 훗날 어려움이 닥쳤을 때 스스로 해결하는 법을 찾지 못할 겁니다.”
카이스트가 원하는 인재상을 묻자 서 총장은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창의적 인간”이라고 답했다. 21세기가 원하는 인재는 세계가 어떻게 흘러가는지 예측하고 변화에 대비하는 사람이라는 것.
“창의적 사고는 내가 무엇을 필요로 하는지 생각하는 데서 출발합니다. 예를 들어, 컵을 그저 컵이라고 생각하면 이것을 물 뜨는 용도로만 사용하겠지만, 관점을 바꾸어 종이가 날아가는 것을 막는 용도로도 컵을 사용할 수 있잖아요? 기능 중심으로 생각하면, 훨씬 더 창의적인 아이디어가 많이 나올 수 있어요.”
카이스트는 교육인적자원부가 아닌 과학기술부 소속의 이공계 종합대학이다. 지난 92년부터 학력고사나 수능을 거치지 않는 무시험 전형을 통해 과학과 수학에 우수한 재능이 있는 학생을 선발해왔다. 과학고를 2년 만에 마치고 입학한 학생들이 카이스트 신입생 중 3분의 2를 차지한다고.
카이스트 학사과정의 1차 모집은 타 대학 수시2학기 모집과 비슷하지만, 모집정원 7백 명 중 90%에 해당하는 6백40명 내외를 선발한다는 것이 큰 차이점이다. 1차 모집 지원자 중 서류 심사를 통과한 상위 70%는 인성면접을, 나머지는 수학·과학에 대한 전문성 면접을 치러야 한다. 공인 영어성적(토익, 토플, 텝스 중 택일)을 필수적으로 제출해야 하는 것도 특징이다. 한편 11월 치르는 수능시험 성적으로 총 정원의 10%에 해당하는 학생을 선발한다. 카이스트 입학을 꿈꾸는 학생들은 어린 시절 어떻게 준비해야 할까.

부모의 지나친 간섭은 아이들의 잠재력을 제한해
카이스트 서남표 총장이 들려주는 ‘아이에게 창의성 키우는 교육’

서남표 총장은 카이스트가 원하는 인재상에 대해 “관심분야가 뚜렷하고, 무엇인가를 하고 싶은 열정이 많은 사람”이라고 답했다.


“무엇보다 꿈이 있어야 합니다. 관심분야가 뚜렷하고, 무언가를 정말 하고 싶다는 열정이 가득해야 하죠. 어린 자녀에게 다양한 것들을 보여주면서 꿈을 키울 수 있도록 돕는 게 부모의 역할이라고 생각해요. 또한 시켜서 하는 게 아니라 스스로 흥미를 갖고 공부하는 사람이 카이스트에 입학할 수 있어요. 자신감을 갖고 공부하는 것도 중요합니다. 과학고에서 몇 차례 강의할 기회가 있었는데, 뛰어난 인재가 모인 그곳에서 학생들이 떨어진 성적 때문에 고민하는 것을 보고 안타까웠어요. 순위가 학생들의 마음을 위축시키고, 자신감을 잃게 만들었기 때문입니다. 아이들이 자신감을 잃고 방황할 때, 부모가 ‘너는 잘할 수 있다’고 용기를 북돋워주는 것이 중요합니다.”
아이가 과학에 관심을 갖게 하려면 어떤 교육환경을 만들어주는 것이 좋을까. 서 총장은 “아이들이 좋아하는 것을 신나게 할 수 있도록 내버려두라”고 강조했다.
“저는 어렸을 때부터 두들겨 부수고 만드는 것을 좋아했어요. 또 고모부가 조선소에서 일하셔서 자연스럽게 배를 보러 다니다 기계에 관심을 갖게 됐습니다. 중학교 2학년 때는 호기심에 깡통을 자른 뒤 약품을 뿌려 불을 붙였다가 펑 터져서 얼굴에 상처를 입기도 했죠. 제가 과학자가 될 수 있었던 것은, 부모님께서 제가 좋아하는 것을 할 수 있도록 그냥 지켜봐주셨기 때문일 거예요. 한국의 많은 부모들이 자녀에게 ‘이거 해라’ ‘저거 해라’ 하며 지나치게 많은 것을 지시하는데, 그것이 오히려 아이들의 잠재력을 제한할 수 있습니다.”
한국의 이공계 위기에 대해서 그는 “걱정이 없다”는 낙관론을 펼친다. 이과생 상당수가 의대로 몰리고 있지만, 의사가 과잉 공급되면 의대 인기는 자연스럽게 가라앉기 마련이라는 것. 인재도 ‘시장의 원리’로 움직인다는 것이 서 총장의 지론이다.
“선진국일수록 이공계 기피현상이 심합니다. 반면 가난한 나라의 경우, 기술을 발전시켜 잘사는 게 가장 큰 화두지요. 이공계 기피현상은 곧 한국이 잘산다는 증거입니다. 훗날 의사가 지나치게 많아져 일자리를 잃게 되면, 다시 이공계로 고개를 돌리게 될 겁니다. 카이스트를 졸업한 학생들이 다시 의대에 진학하거나 고시를 보는 일도 많아졌는데, 크게 염려할 필요가 없습니다. 우리의 교육 목적은 학생들에게 생각하는 방법을 가르치는 것이니까요. 카이스트에서 수학과 과학을 공부한 사람들은 논리적 사고력을 갖춰 어느 분야에 가서나 성공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는 ‘글 잘 쓰는 노하우’를 ‘기계를 잘 만드는 과정’에 비유하기도 했다. 글쓰기나 기계를 만드는 과정이 모두 디자인하는 작업이라는 것.
“누군가가 작문에 관한 책의 서문에 ‘서남표가 쓴 기계설계이론과 글 잘 쓰는 노하우는 일맥상통한다’고 썼다는군요. 이는 기계를 만들 때도, 글을 쓸 때도 조직을 잘해야 한다는 의미입니다. 설계를 잘하는 사람이 자신의 메시지를 논리적으로 표현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카이스트의 변혁을 주도하는 서남표 총장은 에너지가 넘친다. ‘과감한 도전’을 격려하는 그의 메시지는 많은 학생이 귀 기울일 만하다.
“자전거를 배울 때 넘어지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아야 하듯, 연구를 할 때도 실패를 무서워하지 말아야 합니다. 과감한 창의적 마인드야말로 발전을 이끄는 가장 큰 원동력입니다.”

서남표 총장 부부가 공개하는 ‘우리 부부 러브스토리 & 가족이야기’
“고학 하면서도 늘 택시 타고 달려가 만났던 아내, 네 딸에게 말보다 행동으로 모범 보여”

카이스트 서남표 총장이 들려주는 ‘아이에게 창의성 키우는 교육’

카이스트 교정에서 데이트를 즐기는 서남표·서영자 총장 부부. 서 총장은 “아내와 결혼한 것이 지금까지 가장 잘한 일”이라고 말했다(왼쪽). 미국에서 네 딸과 사위, 손자·손녀들과 함께 한 서 총장 부부.

“지금도 6·25전쟁 때 피란 갔던 기억이 가끔 떠오릅니다. 경북 경주에서 2남4녀 중 셋째로 태어난 저는 형이 전쟁 중 실종되고 부친은 49년부터 미국에서 공부하시느라 당시 집안의 유일한 남자 노릇을 했거든요. 전쟁에 나가긴 어렸기에, 대신 온갖 작업에 동원돼 공사판 인부로 일했습니다. 그 시절 겪은 어려움은 인생의 고비를 헤쳐나가는 토대가 돼주었어요.”
서남표 총장에게 50년대는 격동의 세월이었다. 전쟁을 겪었고, 54년에는 서울사대부고 재학 중 하버드대 첫 한국학과 교수였던 부친(고 서두수)을 따라 미국으로 건너갔다. 서 총장은 낯선 미국 땅에서 영어를 정복하기 위해 힘겨운 싸움을 벌였다.
“가자마자 미국 사립고에 입학했는데 처음엔 한마디도 못 알아들었습니다. 고3 때 에세이 숙제를 냈는데 심지어 빵점을 맞았어요. 하지만 빵점을 준 선생님은 제가 한 주에 몇 편씩 셰익스피어 작품이나 ‘모비딕’ 같은 장편소설을 읽게 했어요. 고생하며 매달렸더니 어느 순간 영어가 익숙해지기 시작하더군요. MIT에 입학한 뒤에는 인문, 사회 수업이 별로 어렵지 않게 느껴졌어요.”
대학 2학년 때부터 그는 모친의 병환으로 고학을 하며 공부했다. 청소부, 전화교환수, 도서관 사서 등 세 가지 일을 동시에 하면서 학비를 벌었는데, 서 총장은 “이 시기만큼 폭넓은 인생 경험을 한 적이 없었다”고 회상했다.
59년 MIT에서 석사과정을 공부하던 그는 한국인 유학생들과 어울리다가 보스턴 터프스대 약대에서 박사학위를 밟던 부인 서영자씨(70)를 만났다. 서 총장은 “지금까지 한 일 중 가장 잘했다고 생각하는 일이 바로 집사람과 결혼한 것”이라며 아내 사랑을 드러냈다. 서영자씨는 서 총장과 데이트하던 시절을 떠올리며 빙그레 미소를 지었다.
“당시 남편은 MIT가 있는 케임브리지에서 꽤 먼 거리에 있는 저를 만나러 올 때마다 늘 택시를 타고 왔어요. 하루는 제 룸메이트가 그 모습을 보고 ‘네 남자친구는 돈이 많나봐’ 하는 거예요. 당시 저는 남편이 고학을 하며 대학을 다니는 사실조차 몰랐어요. 제게 최선을 다하기 위해 항상 택시를 타고 온 것을 알고 얼마나 고맙고 미안했는지 몰라요.”
서영자씨는 서 총장과 결혼하며 공부를 포기했지만, 큰 아쉬움은 남지 않는다고 한다. 남편을 내조하고 자녀를 키우면서 얻은 행복이 크기 때문이다.
서 총장 부부는 자식농사를 잘 지은 것으로도 유명하다. 장녀 서미경씨(44)는 미국 ‘뉴욕타임스’ 오피니언 섹션의 에디터로 근무하고 있으며, 2녀 혜경씨(42)는 하버드대 환경과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3녀 진경씨(40)는 글로벌 기업 IBM 재단에서 사회공헌 업무를 맡고 있으며, 4녀 유경씨(36)는 사회 이슈를 다루는 다큐멘터리 프로듀서로 활동하고 있다.
자녀교육에 성공한 비결을 묻자 서 총장 부부는 “말보다 행동으로 보여주었다”고 답했다. 부모의 모습을 보며 자녀는 그대로 닮아가기 마련이라는 것. 서영자씨는 아이들과 함께 봉사활동을 다녔던 경험을 털어놨다.
“추수감사절을 앞두고 시장에 가서 음식을 산 뒤 어린 네 딸과 함께 가난한 동네를 찾아간 적이 있어요. 집집마다 문을 두드려 인사를 하고 햄, 소시지 같은 음식을 선물했죠. 그런데 한 집에 가니까, 어떤 남자분이 나타나 ‘너희가 뭔데 우리한테 음식을 주냐’고 화를 내더군요. 그때 저는 ‘내가 남보다 우월해서 베푸는 게 아니다’라는 깨달음을 얻었습니다. 그 일이 있은 후 저는 아이들에게 ‘우리가 잘못했다’며 ‘봉사는 남을 존중하는 데서 출발해야 한다’고 설명했죠.”
서 총장 부부는 네 딸을 키우며 이성교제에 대해 엄격하게 지도했다고 한다. 아이들이 성인이 되기 전까지 남자친구와 단둘이 데이트 가는 것을 금지했다고.
52년 만에 고국에 돌아온 서남표 총장이 유일하게 아쉬워하는 일은 미국에 살고 있는 손자·손녀들과 자주 만날 수 없는 것이다. “올 겨울 둘째 딸과 손녀가 한국에 온다”며 환하게 웃음 띤 서 총장의 모습은 여느 자애로운 할아버지와 다르지 않았다.


여성동아 2006년 12월 516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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