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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 외도 소재로 소설 쓰고 작가 데뷔한 주부 작가 이춘해

기획·송화선 기자 / 글·오진영‘자유기고가’ / 사진·지호영 기자

입력 2006.12.22 17:49:00

남편의 외도로 큰 충격을 받아 이혼까지 결심했던 한 주부가 분노의 힘을 모아 쓴 작품으로 소설가가 돼 화제다. 곧 아침드라마로 제작될 예정인 소설 ‘나의 날개로 날고 싶다’의 작가 이춘해씨를 만났다.
남편 외도 소재로 소설 쓰고 작가 데뷔한 주부 작가 이춘해

“시집 잘 간 덕분에 소설가 명함까지 얻게 됐네요. 다 남편 덕분이에요.” 내막을 모르는 사람이 들으면 닭살 돋는 남편 자랑으로 들리기 십상이다. 하지만 실은 그게 아니다. 지난 2003년 첫 작품 ‘나의 날개로 날고 싶다’를 내놓은 지 3년 만에 최근 장편소설 ‘가슴에 핀 꽃’을 발표한 이춘해씨(52). 문학소녀 시절 막연히 작가를 꿈꾼 적은 있지만 결혼 뒤 두 아이의 엄마, 한 남자의 아내로 살면서 그런 꿈이 있었는지조차 잊었다는 이씨가 소설을 쓴 건 남편의 외도 때문이었다고 한다.
“연애 시절부터 지금까지 32년 동안 남편을 알아왔어요. 그 가운데 남편의 마음이 제게서 떠나있던 시절이 넉 달 있었죠. 사회생활하다가 가볍게 여자들하고 어울린 거야 더 있었을지 모르지만, 정말 이 남자가 다른 사람한테 빠졌구나 하는 느낌을 받은 건 97년 그때 한 번뿐이었어요.”
사범대를 졸업하고 교사로 일하다 육사 출신 장교 남편과 결혼한 이씨는 “6년의 연애기간이나, 이후 함께 사는 동안 남편은 늘 나와 아이를 최우선으로 생각하는 가정적인 사람이었다”며 “남편이 나를 배신했다는 걸 안 순간, 평생 처음 느끼는 분노와 좌절을 견딜 수 없었다”고 고백했다.
“부부 사이가 워낙 좋았기 때문에 배신감이 더 컸던 것 같아요. 그때 처음으로 사람을 죽이고 싶다는 마음이 어떤 건지 알게 됐어요. 원래 사랑하는 사람들 사이에 미움이 생기면 더 깊고 격한 상처가 남는 법이잖아요.”
한동안 집안은 전쟁터가 됐다고 한다. 더 이상 살지 않겠다고 생각하니 온갖 험한 말이 거침없이 나왔다고. 그래도 끝내 헤어지지 않고 가정을 유지할 수 있었던 건 남편이 “모두 다 내 잘못”이라며 용서를 빌고, 또 빌었기 때문이다. 이미 전역해 대기업 간부로 근무하고 있던 남편은 아내의 불안한 마음을 달래기 위해 해외영업을 지원했고, 그래서 이씨 가족은 2001년까지 4년간 캐나다에서 살았다고 한다.
“캐나다 휴런호수와 가까운 집에 살았어요. 매일 푸르고 맑은 호수와 황홀하게 하늘을 물들이는 노을을 보며 슬픔과 분노가 차츰 가라앉았죠. 그리고 상처받은 마음을 글로 써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처음에는 넋두리와 화풀이에 불과한 글이 되지 않을까 걱정했다고 한다. 하지만 자신이 겪은 일과 주위 사람들에게서 들은 이야기를 엮어 재배열하고 허구의 양념을 치니 어느새 한 편의 장편소설이 됐다고.


“남편 외도로 겪은 좌절과 분노, 소설로 풀어내 마음의 평화 얻었어요”
“2001년 초고를 마쳤어요. 그런데 ‘주제넘게 내가 무슨 소설인가’ 싶어 일년쯤 묵혀뒀죠. 그러다 들인 노력이 아까워 다시 다듬기 시작했습니다.”
한밤중에 일어나 눈 비벼가며 글을 썼고, 부엌 식탁에서 소설을 고치다 냄비를 태워먹은 일도 있다고 한다. 완성된 글을 몇몇 주위 사람들에게 읽어보라고 건넸더니 모두 “심중을 파고드는 재미있는 스토리”라며 격려해줬다고.
“무엇보다도 이 소설을 읽고 단 한 명의 남편이라도 회개하고 가정으로 돌아온다면 더 바랄 게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혼자만 고통받는 것 같아 어디 말도 못한 채 가슴앓이하는 아내들의 마음도 위로해주고 싶었고요.”

남편 외도 소재로 소설 쓰고 작가 데뷔한 주부 작가 이춘해

주부 소설가 이춘해씨는 ”소설 창작을 통해 남편의 외도로 인한 아픔을 이겨낼 수 있었다”고 말했다.


그래서 그는 2003년 그간의 사연을 담은 소설 ‘나의 날개로 날고 싶다’를 펴냈다.
“막상 소설이 나오니 참 쑥스럽데요. 출판사에서 ‘작가 이춘해’라고 새겨진 명함을 만들어줬는데, 굵은 펜으로 ‘작가’ 글씨만 지우고 다녔어요.(웃음)”
소설이다보니 상황을 좀 더 드라마틱하게 만들기 위해 ‘단 것은 더 달게, 쓴 것은 더 쓰게’ 부풀린 것도 민망했다고 한다. 그러고 나니 소설 속 등장인물인 남편이 정말 못된 철면피가 돼 그만 주위의 넘치는 ‘동정’을 받게 됐기 때문이다.
“이건 소설일 뿐 내가 겪은 사실이 아니라고 아무리 말해도 사람들이 ‘그런 세월을 어떻게 견뎠느냐’며 딱하다는 시선을 보내는 거예요. 여든이 넘은 어머니는 제 책을 세 번이나 읽으셨다면서 ‘네가 그렇게 마음고생했는지 몰랐다’고 눈물까지 비치셨죠.”
그는 아마추어가 쓴 소설인데도 참 많은 사람이 공감하는 것을 보며 “세상에는 혼자만의 아픔을 품고 사는 주부들이 정말 많구나”라는 걸 새삼 깨달았다고 한다. 책을 읽은 사람들마다 “드라마나 영화로 만들면 딱 좋겠다”고 얘기하더니, 결국 한 드라마 제작사에서 아침 드라마로 만들겠다며 판권을 구입했다고.
“이 소설을 쓰며 가장 고마웠던 건 남편이에요. 자신이 바람피우다 아내에게 들켜 된통 혼난 얘기가 소설로 만천하에 드러나게 되는 게 좋지만은 않을 텐데 단 한 번도 불만을 얘기하지 않더라고요. 오히려 ‘내가 죄를 지었는데, 소설로 당신 상처가 치유될 수만 있다면 나는 아무래도 좋다’고 하더군요.”
지난해 말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고 잠시 바깥일을 쉬었던 남편은 “소설가 소리까지 들었는데 책 한 권으로 끝낼 거냐. 내가 밥을 지을 테니 당신은 글을 쓰라”며 압력솥 사용법을 익혔을 정도로 그를 격려해줬다고 한다. 그가 두 번째 소설 ‘가슴에 핀 꽃’을 쓸 수 있었던 건 이런 남편의 이해와 도움 덕분이었다.
‘가슴에 핀 꽃’은 엄마에게 버림받은 딸과 딸을 버린 엄마의 한을 다룬 이야기. 이씨는 가족끼리 사랑을 주고받지 못해 방황하는 이들의 이야기를 통해 가정의 소중함을 말하고 싶었다고 한다.
“저는 해남의 땅 많은 집에서 육남매의 넷째 딸로 태어나 부모님의 큰 사랑을 받으며 자랐어요. 어머니는 딸 넷을 내리 낳고 마음고생을 심하게 하시면서도 ‘내가 내 자식을 천하게 대하면 밖에서도 천한 대접을 받는다’며 딸, 아들 구별 없이 귀하게 키워주셨죠.”
그는 ‘가족의 사랑’이 세상을 사는 데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말한다. 이씨는 “부모와 자식이 서로 사랑할 때를 놓쳐 긴 세월 방황하는 일이 없었으면 하는 바람”을 담았다며 “이 소설을 통해 사람들이 삶에서 겪는 시련이 아무리 가혹할지라도 눈물겨운 노력으로 극복하면 한도 한 송이 아름다운 꽃을 피울 수 있다는 희망을 느끼면 좋겠다”고 말했다.
두 번째 책을 내고 나니 벌써부터 주위에서 “다음에는 뭘 쓸 거냐”고 묻는 사람들이 생겼다는 이씨는 “아직 뭘 쓸지 정하지는 못했지만, 예순이 되기 전에 책을 한 권 더 써서 세 권을 채우고 싶다”며 웃었다.

여성동아 2006년 12월 516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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