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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OPLE

김동희 기자의 비디오 줌~업

‘투스카니의 태양’

이혼의 상처 딛고 낯선 곳에서 새로운 행복을 발견한 여자의 이야기

사진·동아일보 사진DB파트, ⓒ REX

2006. 12. 19

주인공 프랜시스는 남편의 불륜으로 이혼하고 기분전환을 위해 이탈리아 투스카니로 여행을 떠난다. 여행지에서 충동적으로 전원주택을 구입한 그는 상냥한 이웃들의 도움을 받으며 새로운 삶을 시작한다. 이탈리아의 아름다운 풍광 속에서 여주인공이 상실감을 극복하고 행복을 찾아가는 과정이 따뜻하게 그려진다.

‘투스카니의 태양’

“이혼을 하면서 가장 놀랐던 게 뭔지 아세요? 죽지 않는다는 거예요. 심장에 총알이 박히고 자동차 사고로 머리가 깨진 것 같은 기분인데도 말이죠. 영원히 사랑하겠다고 서약한 사람이 ‘당신을 사랑한 적 없어’라고 말했을 때, 그 말을 듣는 즉시 죽었어야 했어요. 아침에 눈이 떠지면 눈앞에 펼쳐진 낯선 세상을 이해하려고 하지 말았어야 했어요. 절대 이해할 수 없으니까.”
나지막하지만 괴로움이 절절히 배어나오는 목소리의 주인공은 프랜시스. 불과 얼마 전까지 그는 베스트셀러 작가이며 저명한 문학평론가이자 교수로 사회적 성공을 만끽하고 있었다. 그러나 갑작스러운 남편의 불륜과 이혼 요구는 그를 고통 속에 몰아넣는다. 잘못을 저지른 배우자도 재산 절반을 요구할 수 있는 캘리포니아주 법 때문에 작가 지망생이던 백수 남편에게 살던 집마저 빼앗긴다.
미국의 심리학자 홈즈는 스트레스를 수치로 환산하는 방법을 고안했다. 자녀나 배우자의 죽음으로 인한 스트레스를 100이라고 했을 때 이혼으로 인한 스트레스는 그다음으로 높은 73이 된다. 자신이 사고를 당하거나 병에 걸리는 경우는 50이니 육체의 고통보다 더 큰 게 이혼의 고통인 셈이다. 그 고통을 안으로 삭이고 애써 태연한 체하는 프랜시스를 보다 못한 친구 패티는 이탈리아 투스카니행 티켓을 내밀며 여행을 강권한다.
“요즘 너 글을 전혀 못 쓰고 있지. 이탈리아에서 새로운 소설을 구상할 수도 있잖아. 네가 위험한 상태인 거 알아? 다신 회복되지 않을지도 몰라. 가끔 속이 텅 비고 껍데기만 남은 사람들을 보면 어쩌다 그렇게 됐나 묻고 싶어져. 살다보면 갈림길에 서게 될 때가 있어. 어느 길로 갈지 결정해야만 해. 겁내고 물러서면 안돼.”

상처를 치유하는 방법은 ‘삶이 보내는 신호에 열린 마음으로 응답하기’
‘투스카니의 태양’

인생엔 다양한 돌발적 상황이 발생한다. 성실한 노력만으로는 피할 수 없는 고통의 순간도 그중 하나. 남은 것은 그 다음의 선택이다. 고통과 상처를 떨치고 새로운 삶을 시작하든지 움츠러들어 스스로 갇혀버리든지. 작가 프랜시스 메이스가 자신의 이야기를 소재로 쓴 수필을 각색한 이 작품은 그 상처를 치유하는 방법으로 ‘낯선 곳으로 떠나기’ ‘삶이 보내는 신호에 열린 마음으로 응답하기’를 제안한다.
투스카니 지방의 아름다운 마을 코르토나에 들렀을 때 프랜시스는 그 ‘신호’를 목격한다. 챙 넓은 모자와 세련된 원피스 정장을 차려입은 금발 여성이 솜털 보송보송한 어린 새를 자신의 뺨에 부비며 환희에 넘치는 표정을 짓고 있는 모습이 그의 시선을 사로잡는다. 호기심이 생긴 프랜시스는 그 여자를 따라가지만 놓쳐버리고 낯선 길에서 전원주택 판매 광고를 발견한다. 그 전원주택의 이름 알파벳을 더듬거리며 읽어나가는데 어느 샌가 그 멋쟁이 여자가 다가와 말을 건다. 그녀의 이름은 캐서린. ‘길’ ‘달콤한 인생’으로 세계적 명성을 얻은 페데리코 펠리니 감독에게 염감을 불어넣는 뮤즈였던 자신의 과거를 훈장처럼 간직하고 사는 여자다. 캐서린은 노감독의 예술혼에 불을 지폈듯 상실감에 지친 프랜시스에게 새로운 삶의 영감을 불어넣는다.
“브라마솔레. 솔레는 태양. 브라마는 그리워한다는 뜻이에요. 내가 이 집을 아는데 정말 멋진 집이에요. 많이 낡았지만 수리하면 되고요. 살 생각 있어요?”
“저는 그냥 관광하러 왔어요. 투스카니의 전원주택을 사다니 지금 형편으로는 망상일 뿐이에요.”
“망상이라. 그것도 좋지 않아요?”

‘투스카니의 태양’

포시타노에 있는 경찰관의 도움을 받아 애인의 집을 찾아가는 프랜시스.(왼쪽) 프랜시스는 저택을 수리하러온 폴란드 인부들과 친구처럼 가까워진다.(오른쪽)


다음 날 프랜시스가 탄 투어버스는 길을 막은 양떼들 때문에 언덕배기에 멈춰 선다. 그때 무심히 밖을 내다보던 프랜시스의 눈에 ‘브라마솔레’라는 명패가 들어온다. 또 다른 ‘신호’. 그는 충동적으로 버스에서 내려 그 저택을 사고 만다. 저택 수리비와 생활비 약간을 뺀 재산 전부를 들여서.
낯선 곳에서의 삶은 생각보다 순조롭게 시작된다.
브라마솔레 저택을 계약하며 친해진 부동산업자 마티니는 저택 수리를 할 폴란드인 노동자들을 구해주고, 이웃집 플라시도 가족은 올리브 수확하는 법을 알려준다. 프랜시스를 브라마솔레로 이끈 캐서린과도 친구가 된다. 화려한 옷을 입고 젊은 애인을 사귀며 자신의 욕망에 충실한 삶을 사는 캐서린은 프랜시스에게 충고한다.
“답답한 사람. 그렇게 축 처져 있어서 행복해질 수 있겠어? 펠리니 감독님은 ‘후회란 시간낭비다. 현재의 발목을 잡는 과거일 뿐이다’라고 했어. 다 흘려보내고 집수리나 열심히 해.”
그의 말대로 집수리를 위해 낡은 샹들리에 부품을 사러 나간 프랜시스는 잘생긴 이탈리아 남자를 만나 멋진 밤을 보낸다. 그 뒤 애인에게 버림받고 배가 남산만해져 찾아온 친구 패티를 돌보느라 남자를 놓치긴 하지만 그 경험은 프랜시스에게 생기를 불어넣는다. 집을 수리해준 고아 폴란드 청년의 결혼을 돕기 위해 가족이 돼주고 피로연을 열어준 프랜시스는 문득 깨닫는다. 이 저택을 사면서 간절하게 품었던 소망이 이루어졌음을. 그녀는 자신이 마티니에게 했던 이야기를 떠올린다.
“침실이 세 개나 있는 데 잘 사람이 없으면 어쩌죠? 다른 사람을 위해 요리를 만들게 될까요? 이 집에서 하고 싶은 게 많아요. 여기서 결혼식을 올리고, 가족을 만들고 싶어요.”
친구에게서 아이가 태어났고 아들 같은 폴란드 청년은 그의 축복 속에 결혼식을 올렸다. 예상하던 것과는 달랐지만 소원은 이루어졌고 자신은 더 이상 불행한 이혼녀가 아니라 새로운 가족의 가장으로 존경과 사랑을 받는 존재임을 깨닫는다. 프랜시스의 내레이션이 여유롭고 행복해 보이는 프랜시스와 그의 ‘가족들’의 모습 위로 흐른다.
“뜻밖의 일은 항상 생긴다. 그로 인해 다른 길을 가게 되고 내가 달라진다. 다 끝났다고 생각했을 때도 생각지 못한 좋은 일이 일어난다. 그래서 더 놀랍다.”

중년의 나이에 재기에 성공한 다이안 레인의 인생 경험이 녹아든 연기
‘투스카니의 태양’

다이안 레인은 차분하면서도 마음 안쪽에 정열을 품고 있는 프랜시스를 자연스럽게 그려냈다. 그는 ‘투스카니의 태양’의 프랜시스에게 자신이 실제로 겪은 이혼의 고통을 깊이 투영했고 프랜시스 역에 대해 “(현실과 닮아있어) 연기를 할 필요가 없었다”고 말하기도 했다. 그는 10대 시절 ‘스트리트 오브 파이어’에서 로커, ‘코튼클럽’에서 갱의 정부 등 화려한 역을 맡으며 이름을 날렸지만 배우 크리스토퍼 램버트와 결혼 후 이렇다 할 작품을 선보이지 못하고 잊혀가는 듯했다. 이혼 후 작은 영화, 작은 배역을 마다하지 않고 새롭게 커리어를 쌓아간 그는 서른일곱 살 되는 해 리처드 기어와 공연한 ‘언페이스풀’로 호평을 받으며 재기에 성공했고 아카데미 여우주연상 후보에도 올랐다. 이듬해 출연한 ‘투스카니의 태양’으로는 골든글로브 여우주연상 후보에 올랐다.

겨울에 우울증에 빠지기 쉬운 이유는 일조량이 부족해서라고 한다. 정신의 일조량이 부족할 때, 황량한 겨울바람에 마음이 시릴 때 ‘투스카니의 태양’을 쬐볼 것을 추천한다. 여행지에서 마음에 드는 집을 덜컥 사버리는 건 아무나 할 수 없지만 붉은 꽃으로 덮인 코르토나 들판의 아름다운 풍광, 해안 절벽에 예쁜 집들이 올망졸망 올라앉은 이탈리아 남부 휴양지 포시타노의 그림 같은 경치는 비교적 저렴하게 우리 것으로 만들 수 있으니.
오드리 웰스(46) 감독은…
‘투스카니의 태양’
96년 로맨틱 코미디 영화 ‘개와 고양이에 관한 진실’ 각본을 써 널리 알려졌다. UCLA에서 영화학 석사학위를 땄다. 99년 직접 각본을 쓰고 감독한 인디 영화 ‘기네비어’로 선댄스영화제 최우수 각본상을 수상했다. 프랜시스 메이스의 수필 ‘투스카니의 태양’을 각색하고 감독을 맡아 호평을 받았다. 각본을 쓴 다른 작품으로는 ‘조지 오브 정글’ ‘키드’, 미국판 ‘쉘 위 댄스’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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