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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eleb 좌절을 딛고

교통사고로 하반신 마비, 자전적 이야기 영화로 만드는 KBS PD 김영진

글·구가인 기자 / 사진·조영철 기자

입력 2006.11.24 15:01:00

98년 인기리에 방영됐던 드라마 ‘야망의 전설’의 연출자 김영진 PD. 지난 2000년 불의의 교통사고로 하반신이 마비된 그가 자전적 이야기를 바탕으로 한 영화 제작에 나섰다. “장애를 장애로 받아들이되 행복하기 위한 꿈을 포기하진 않는다”는 김영진 PD를 만났다.
교통사고로 하반신 마비, 자전적 이야기 영화로 만드는 KBS PD 김영진

김영진 PD(47)의 삶은 그가 만들어온 드라마 못지않게 극적이다. 시청률 50%를 넘긴 인기 드라마 ‘야망의 전설’을 연출한, 잘나가는 드라마 PD이던 그의 삶은 2000년 교통사고 후 많은 게 바뀌었다. “휴가를 내서 아내와 아이들이 유학 중인 미국에 갔어요. 미국 일주를 하면서 정말 잘 놀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이었는데 집 근처 10분 거리에서 차가 전복됐어요. 고맙게도 다른 가족들은 무사했는데 저는 한동안 식물인간으로 지내야 했죠.”
4개월 뒤 극적으로 의식이 돌아왔지만 왼쪽 하반신은 마비된 상태였다. 이후 계속 재활치료에 몰두한 덕에 이제 혼자 운전을 할 수 있고, 휠체어에서 벗어나 지팡이에 의지해 걸을 정도가 됐다.
“올해부터는 7백 걸음 정도 지팡이 없이도 걸을 수 있게 됐어요. 매일 아침마다 50분씩 걷고, 사이클을 30분씩 타요. 사고가 나고 장애가 생겨서 몸이 너무나 고통스러울 때가 많은데 그런데도 감사하는 마음은 더 생긴 것 같아요. 매일 아프던 몸이 조금씩 나아서 고통이 느껴지지 않을 때 얼마나 다행스럽고 감사한지, 혼자서 한발짝 한발짝 걷는 거리를 늘려가는 게 얼마나 큰 즐거움인지 모르실 거예요.”
하지만 사진촬영을 위해 들어간 드라마 세트장에서 어두워지는 낯빛은 숨길 수 없다.
“(드라마) 세트장에 오면 아직도 가슴이 뛰어요. 원래 여기 내 자리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면, 눈물나…. ‘야망의 전설’은 눈물이 나서 다시 못 보겠더라고요. ‘저 때는 바다나 산속으로 뛰어다니는 게 가능했는데 지금은 그때처럼 못한다’ 싶으니까요. 하지만 연출이 불가능한 건 아니에요. 그건 어떤 작품이냐에 따라 다른 거잖아요. 다만 기회가 잘 오지 않네요.”
장애로 입게 된 어떤 고통도 일을 하지 못하는 것만큼 힘들지는 않았다고 한다. 입사동기 중에 가장 먼저 차장으로 승진할 정도로 회사에서 인정받았고, 자신의 연출 감각에 자신 있었던 그는 2002년 복직 후 드라마 연출이 아닌 행정업무를 맡아야 했을 때 “너무도 당혹스러웠다”고 고백한다.
“지금까지 전적이 나쁘지 않았으니 난 내가 다시 (연출)한다고 하면 시켜줄 것으로 생각했거든요(웃음). 그런데 기회를 안 주더라고요. 위에서 보기엔 PD 일이 몸 성한 사람도 하기 쉽지 않은데 이 몸으로는 제대로 해내기 어려울 거라 생각했겠죠. 그게 장애인을 보는 일반인들의 시각이라고 봐요. 물론 행정적인 일만 하면 스트레스 없고 더 편해요. 근데 전 그렇게 살고 싶지 않더라고요. 하고 싶은 일을 하지 못한다는 게 사람을 참 힘들게 해요.”
그는 87년 3수 끝에 PD가 됐다. 고등학교 때 학교에 찾아온 방송국 PD를 본 뒤 처음 꿈을 가지게 된 후, 대학방송국에서 줄곧 PD로 활동했으며, 방송국에 입사한 후 라디오국에 발령을 받자 3년간 ‘떼를 써서’ 드라마국으로 옮겼다고 한다.
“드라마 PD가 꼭 하고 싶었어요. 사람 사는 이야기를 만드는 것도 좋고, 현장에서 사람들과 의논하고 같이 만들어나가는 게 참 좋아요. PD는 작가부터 연기자까지 많은 사람들과 묘한 줄다리기를 해야 하는데 마음이 맞는 사람들을 만나면 그것만큼 재미있는 게 없어요.”

교통사고로 하반신 마비, 자전적 이야기 영화로 만드는 KBS PD 김영진

2000년 교통사고 후 4개월간 식물인간이었던 김영진 PD는 극적으로 깨어난 후 재활치료 끝에 짧은 거리는 지팡이를 잡고 걸을 수 있게 됐다.


장애로 위기를 맞은 그에게 다시 힘을 실어준 이들도 역시 ‘마음 맞는 사람들’이었다. 조연출 시절 알게 돼 지금까지도 친분을 유지하고 있는 성우 권희덕은 그에게 장애인을 위한 뮤지컬 ‘위드 러브’의 연출을 제의하며 기획자로 나서주었고, 배우 조재현은 그의 오랜 꿈인 영화 연출을 돕겠다고 나섰다. 조재현과는 그의 연출 데뷔작 ‘아빠는 조감독’에서 연기자와 연출자로 만난 이래 지금까지 절친하게 지내오는 사이다.
“준비하고 있는 시놉시스 몇 개를 이야기하면서 기회가 주어지면 이런 드라마를 하고 싶다고 했더니 재현이가 ‘차라리 영화를 하라’고 권하더라고요. 그래서 3년간 한 영화사와 준비를 했는데 최근에 어떤 사정으로 무산 됐어요. 그때 다시 도와준 게 재현이죠. 자신이 아는 투자자를 소개해주고 무조건적인 출연을 약속해줬어요. 거기에 회사(KBS)도 지원을 나섰고요.”
계획대로라면 내년 봄 크랭크인을 하게 될 영화는 김영진 PD 자신의 이야기를 바탕으로 하고 있다. 능력은 있지만 오만한 PD가 갑작스런 사고 후 장애를 갖게 되면서 변해가는 과정을 그릴 예정이라고. 이 영화를 통해 그는 ‘장애를 극복한다기보다는 장애라는 사실에 자유롭고, 장애를 계기로 새 삶을 살게 되는 인물’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다고 한다.
“사실 기준을 어디에 두냐에 따라 누구나 다 장애인이라고 할 수 있어요. 사랑하는 사람과 헤어져서 상처받는 것도 다 장애예요. 하지만 그걸 어떻게 받아들이냐에 따라 상황은 달라져요. 내가 장애인이라고 의식하지 않는 것. 장애를 인정하지만 그냥 무시하면서 사는 것. 결론은 그거더라고요.”

장애라는 사실에 자유롭고 장애 계기로 새 삶을 사는 인물 그리고 싶어
그는 더불어 “장애가 때로 축복일 수도 있다”는 말을 덧붙였다.
“장애인을 다룬 많은 영화에서 장애는 그저 힘든 걸로만 표현되는데, 때로 장애는 새롭게 태어나는 계기가 된다고도 생각해요. 제 경우만 해도 사고 안 났으면 그저 진급에만 신경 쓰는 평범한 직장인이 됐을 거예요. 그런데 이젠 그렇지 않잖아요. 뭔가를 해보려고 하고, 하고 싶고… 그전까진 드라마할 때 원고가 재밌으면 그냥 하는 거였지, 딱히 이런 드라마를 해야겠다 싶은 건 없었어요. 지금은 내가 만든 극이 고통받는 사람에게 위로의 손길을 내밀어줬으면 좋겠고 앞으로는 그런 이야기만 해야지 싶어요. 그게 장애를 통해 얻은 가장 큰 소득이죠.”
현재 영어학 박사 과정을 밟고 있는 아내와 고등학교와 초등학교에 다니는 세 아이들이 미국에 머물고 있는 탓에 김영진 PD는 가족과 떨어져 살고 있다. “하루 종일 메신저를 끼고 산다”며 웃는 그의 얼굴에 가족에 대한 그리움이 묻어나온다. 불편한 몸에 가족과 헤어져 있는 게 힘들진 않을까.
“실은 아내도 2년 전 유방암으로 가슴을 잘라내는 수술까지 받을 정도로 힘들었어요. 저야 생명에 위협을 느낄 정도는 아니지만 아내는 정말 고생이 많죠. 아내가 98년부터 미국에서 박사 과정을 시작했는데 제 사고로 인해 잠깐 한국에 들어왔다가 다시 나갔어요. 제가 나가라고 했어요. 저는 아내가 공부를 마쳐서 어떤 자부심을 갖고 살았으면 하는 바람이 있어요. 제가 해줄 수 있는 게 그것밖에 없으니까 더 안타까워요. 사랑을 주지 못해 더 미안하고 가슴 아픈 거죠.”
마흔을 넘기고 쉰을 바라보고 있는 나이에도 그는 늘 새로운 것, 젊은 것에 관심이 많다. 요즘 한창 관심을 갖고 있는 것은 브레이크댄스를 추는 비보이(b-boy)들.
“장애인 단체에서 비보이 초청공연을 했어요. 처음에는 이 사람들이 ‘누굴 놀리나’ 하면서 화가 났는데, 공연이 끝날 때 되니까 비보이들처럼 저도 날아다닐 수 있을 거 같더라고요. 엄청난 에너지가 느껴지는 게 그렇게 좋을 수 없어요. 그래서 제 영화에도 비보이가 들어가는 장면은 꼭 넣으려고 해요.”
불편한 몸에도 뮤지컬 연출에, 오랫동안 고대하던 영화제작까지 하게 된 김영진 PD. 비장애인에게도 벅차보이는 일들을 그토록 계속해서 갈구하는 이유에 대해 물었다.
“저는 인생이 줄타기라고 생각해요. 줄 위에서 걷기만 하면 안전하겠지만 희열도 없고 관중의 갈채도 없을 거예요. 뛰어야 줄타기가 되죠. 뛰면 떨어질 위험이 크지만 사실 걸어도 떨어질 수 있는 건 마찮가지잖아요. 기회가 주어지면 뛰고, 혹시 뛰다가 줄에서 떨어지면 다시 올라가면 되죠. 뛰는 동안 박수 받는 과정 자체가 행복이에요.”

여성동아 2006년 11월 515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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