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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그사람

활동 중단 14년 만에 콘서트 무대 오르는 가수 이지연

글·송화선 기자 / 사진·동아일보 사진DB파트, 이지연 제공

2006. 11. 23

이지연이 돌아온다. ‘그 이유가 내겐 아픔이었네’ ‘바람아 멈추어다오’ 등의 노래로 80년대 말 최고의 인기를 누렸던 그가 오는 12월 초 활동 중단 14년 만에 고국 무대에 선다. 현재 미국 애틀랜타에 살고 있는 이지연은 귀국에 앞서 근황과 인기 절정의 순간에 활동을 중단하고 미국으로 떠난 이유 등을 들려줬다.

활동 중단 14년 만에 콘서트 무대 오르는 가수 이지연

80년대 말 청순한 모습으로 최고의 인기를 누리던 시절의 이지연.(위) 무대를 떠난 뒤 14년이 흘렀지만 이지연은 지금도 아름다움을 잘 가꾸고 있다.(아래)


이지연(36). 80, 90년대에 학창 시절을 보낸 이들이라면 누구나 이 이름을 기억할 것이다. 그는 87년 ‘그 이유가 내겐 아픔이었네’를 부르며 가수로 데뷔한 뒤 ‘난 아직 사랑을 몰라’ ‘바람아 멈추어다오’ ‘러브 포 나이트’ 등을 연달아 히트시키며 단숨에 스타덤에 올랐다.
그는 90년 갓 스물의 나이에 돌연 결혼과 함께 무대를 떠나 92년 4집 활동을 위해 잠시 모습을 비친 때를 제외하곤 한 번도 대중 앞에 서지 않았다.
그런데 지난 세월 동안 언론 인터뷰까지 피할 만큼 소리 없이 살아온 이지연이 오는 12월 초, 원준희 박성신 등 다른 80년대 스타들과 함께 ‘추억의 동창회:프렌즈 80’ 콘서트 무대에 선다고 한다. 그를 기억하는 많은 이들의 관심이 쏠릴 수밖에 없다. 현재 미국 애틀랜타에 살고 있는 이지연과 이메일을 통해 인터뷰했다.
“그동안은 그저 평범한 주부로 살았어요. 집안일하고, 시간 나면 책 읽고 음악도 들으면서요. 이번 무대에 서기로 한 건 저의 가정생활에 큰 지장을 주지 않으면서도 음악에 대한 욕구를 채울 수 있는 방법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에요.”
이지연은 결혼과 함께 미국으로 떠난 뒤 주부로서 평탄한 삶을 살았다고 한다. 하지만 그동안 한국에서는 그에 관한 소문이 끊이지 않았던 게 사실이다. 인기가 높은 만큼 질시어린 시선도 많이 받았던 그는 활동 당시부터 남자 관계를 비롯한 각종 소문에 휩싸이곤 했다. 미국으로 간 뒤에는 그가 가정이 있는 남자와 도망갔다거나, LA의 한 슈퍼마켓에서 일하며 고생하고 있다거나, 혹은 뉴욕의 업소에서 노래하고 있다는 등의 이야기가 떠돌았다.
이런 소문에 대해 이지연은 “어린 시절부터 사실이 아닌 악소문에 큰 상처를 받았다”며 “그 때문에 언론을 피하고, 나중엔 사람까지 피했던 것 같다”고 털어놓았다. 그가 갑자기 한국을 떠난 것도 실은 자신을 둘러싸고 퍼져나가는 갖가지 루머를 견딜 수 없었기 때문이라고.
“그때 전 겨우 2년 반 정도 활동했지만, 스케줄로 보면 5년 이상 활동한 사람과 비슷할 만큼 바빴어요. 그런 와중에 근거 없는 소문은 계속 터져나왔죠. 그때 만난 남편은 제게 큰 위안과 편안함을 줬어요.(그 사람과 결혼하고 싶었지만) 부모님의 반대가 무척 심해서 미국으로 떠날 수밖에 없었죠.”

이혼남이었던 남편과의 결혼 반대한 부모 피해 미국으로 떠나
이지연에게 모든 것을 포기하게 만든 그 사람은 당시 ‘히파이브’라는 그룹의 보컬이던 정국진씨(47). 이지연은 지난 90년, 클럽에서 함께 공연을 하며 그를 처음 만났다고 한다. 정씨는 무대공포증과 대인공포증을 앓으며 우울증 증세까지 보일 만큼 피폐해져 있던 이지연을 진심으로 이해하고 따뜻하게 감싸줬다고.
이지연은 2005년 인터넷 팬 카페에 ‘전 가수로 성공하면서 내가 최고인 줄 알았고, 그 인기가 영원하리라 믿었어요. 하지만 가족들과의 사이도 멀어졌고, 아주 이기적인 아이로 변해갈 무렵 (여러 루머들이 퍼지기 시작했습니다). 나는 루머들로 인해 철저하게 파괴되었죠. … 수년이 지난 후에도 피해의식은 늘 나를 괴롭혔습니다’라는 글을 올린 적이 있다. 최고의 인기를 누리면서도 말 못할 고통으로 힘겨워하고 있던 바로 그 무렵 정씨를 만난 것이다.

활동 중단 14년 만에 콘서트 무대 오르는 가수 이지연

하지만 이지연의 부모는 두 사람 사이를 용납하지 않았다고 한다. 정씨는 그때 이미 한 차례 결혼에 실패한 이혼남이었기 때문이다.
“만난 지 6개월 만에 남편과 함께 미국행 비행기에 올랐어요. 어린 마음에 몇 달만 지나면 문제가 해결될 거라고 생각했죠. 결국 부모님도 저희를 받아들이셨고, 1년 뒤 한국으로 돌아와 결혼식을 올릴 수 있었지만, 그때 부모님을 힘들게 한 건 지금 생각해도 마음 아파요.”
하지만 남편을 만난 것에 대해서는 후회하지 않는다고 한다. 이지연은 “남편은 처음 만난 순간부터 지금까지 내게 큰 나무와 같은 존재”라고 말했다. 이지연은 활동기간 겪은 마음고생 때문에 결혼 뒤에도 꽤 오랫동안 우울증을 앓았다고 한다. 결혼 초에는 남편과의 다툼이 잦았는데, 자신이 세상 모든 것에 예민하게 반응하며 공격적으로 대했기 때문이라고. 하지만 남편의 변함없는 사랑 덕에 이젠 그 상처까지도 감사하게 받아들일 수 있을 만큼 여유로운 상태가 됐다고 한다.
이지연은 “알고 보면 지난 상처가 파괴한 건 나 자신이 아니라 오만한 내 겉껍질이었던 것 같다. 그 과정을 거치며 난 15년 동안 다듬어진 예쁜 돌이 됐고, 이젠 상처까지 사랑할 수 있게 됐다”며 “지금까지 버텨준(?) 남편을 사랑한다”고 말했다.
이지연의 남편 정씨의 직업은 융자전문가. 사람들이 집이나 땅을 살 때 은행 대출을 받을 수 있게 도와주는 직업이라 한다. 부업으로 퓨전스타일 스시바를 운영하며, 비즈니스 컨설팅도 겸하고 있다고.
지난 10월15일은 이들이 결혼 16주년을 맞은 날. 이지연은 이날 미니홈피 첫 페이지에 ‘오늘은 16주년 결혼기념일입니다. 너무 오래 살았군요.ㅎㅎㅎㅎ 축하해주세요’라는 글을 올렸다. 정씨와 다정한 모습으로 찍은 사진과 함께였다. 이지연의 미니홈피에는 ‘The boy is mine’이라는 이름이 붙은, 정씨의 사진만 모아 올려놓은 코너도 있다. 분홍빛 하트 무늬가 크게 그려져 있는 홈페이지 곳곳에서 이지연은 행복한 모습으로 활짝 웃고 있다.
이지연은 결혼 16주년을 맞은 소감에 대해 “결혼생활을 10년 이상 지속하는 부부들에겐 그들만의 끈끈함이 있다. 함께 한 시간 속에 녹아든 행복과 불행, 기쁨과 아픔, 슬픔이 만들어낸 친밀감”이라며 “지난 세월 동안 남편과 다툰 적도 있지만, 우린 단 한 번도 서로를 떠난 적 없이 늘 함께 했다. 지금 나는 그 누구보다도 행복하다”고 답했다. 이제는 이지연의 부모도 사위 정씨를 자식처럼 믿고 아낀다고 한다.
하지만 이지연에게 아픔이 없는 것은 아니다. 신혼 초 첫아이를 유산했던 그는 또다시 지난 8월 오랫동안 기다려온 아이를 임신했지만, 특별한 이유 없이 유산했다. 아이를 기다리다 ‘이젠 늦었나보다’ 하며 포기하려던 때 임신 사실을 알게 돼 크게 기뻤다는 이지연은 건강 관리와 태교를 위해 각별한 노력을 기울였지만 6주 만에 아이가 뱃속에서 더 이상 자라지 않는다는 진단을 받았고 그 후 아이는 저절로 유산됐다고.
“의사선생님 말로는 산모 4명 가운데 1명이 이런 유산을 경험한다고 해요. 이 일을 겪으며 생명의 소중함을 새삼 깨달았죠. 전에는 아이들을 보면 참 예쁘구나, 귀엽구나 하는 생각만 했는데, 이젠 아이들의 존재가 참 귀하게 느껴져요.”
이지연은 유산 후 미국에서 가깝게 지내는 지인들이 미역국과 곰국, 반찬들을 잔뜩 해다 준 덕분에 산후조리하듯 푹 잘 쉬었다고 한다. 그는 “의사선생님이 몸도 좋고, 곧 아이도 가질 수 있을 거라고 했다. 앞으로 건강관리 잘해서 건강한 아이를 꼭 낳을 것”이라고 말했다.
“유산하고 나면 임신이 더 잘된다고 해서 희망을 갖고 있어요. 운동도 다시 시작하고, 종합비타민제도 꼬박꼬박 챙겨먹고 있죠. 이번 일을 겪으며 남편의 고마움을 새삼 느꼈습니다. 그 사람은 아이 때문에 슬퍼하기보다 제가 상심하지 않을까 더 많이 걱정하더라고요. 물론 마음이 아프지만, 이겨낼 거예요. 아이는 한 셋 정도 낳으려고 합니다.”
이지연은 좋은 식성과 꾸준한 운동이 건강 유지 비결이라고 소개했다. 평소 한식 위주의 음식을 골고루 먹으며, 회와 초밥 종류도 좋아한다고. 즐겨 하는 운동은 걷기와 훌라후프 돌리기. 그는 이런 운동으로 지금도 162cm, 48kg의 체격을 유지하고 있다고 한다.

활동 중단 14년 만에 콘서트 무대 오르는 가수 이지연

미국에서 평범한 주부로 살아가고 있는 이지연은 “지금 내게 가장 중요한 건 가족”이라고 말했다.


“피부 미용법도 특별할 게 없어요. 세안을 열심히 하고, 마사지도 자주 합니다. 물을 의식적으로 많이 마시려고 노력해요.”
신앙 생활과 독서, 음악 감상, 그림 그리기 등을 통해 편안한 마음을 유지하는 것도 이지연이 건강을 지키는 방법.
“음악은 재즈를 좋아해요. 집에서나 차에서나 늘 라디오를 재즈 채널에 고정시켜놓죠. 샤데이, 다이애나 크롤 등을 좋아하고, 요즘엔 한국 재즈 밴드인 ‘젠틀 레인’의 음반도 즐겨 들어요. 책은 기독교 서적을 주로 읽는데, ‘목적이 이끄는 삶’은 종교인이 아니더라도 한번쯤 읽어볼 만한 좋은 책입니다.”

“팬들과의 만남 생각에 가슴 설레지만 아이를 낳아야 하기 때문에 본격적인 활동은 어려울 것 같아요”
이지연을 행복하게 해주는 또 다른 존재는 팬이라고 한다. 그는 “어느 날 우연히 예전 팬 1백여 명이 인터넷에 카페를 만들어놓고 나를 기다린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그분들의 관심과 사랑이 참 감동적이었고, 오랫동안 닫혀있던 마음이 나도 모르는 새 활짝 열렸다”고 말했다. 이들을 통해 이지연은 비로소 가수활동을 한 데 대한 보람을 느끼고 마음의 평화를 되찾았다고 한다.
“그전에는 제가 가수였다는 사실이 참 힘들고 싫었어요. 하지만 그 카페를 통해 누군가 나를 인정하고 진심으로 사랑해준다는 사실을 알게 됐죠. 그때부터 언젠가 꼭 콘서트를 해야겠다는 욕심이 생겼어요. 이번 공연을 통해 예전 팬들을 다시 만날 수 있다는 생각을 하면 참 많이 설레고 행복해요.”
이지연은 지난 2004년부터 종종 인터넷 팬 카페에 글을 올려 자신의 일상을 전하고 팬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카페에 공개된 그의 메일 주소로 “예전엔 언니를 참 싫어했다”고 고백하는 ‘안티팬’들의 메일도 오곤 하는데, “그때 참 미안했다”는 내용이 적지 않다고. 그런 편지를 읽으면서 그는 “나를 미워하는 것도 실은 관심의 표현이었을 텐데 그때는 왜 그걸 모르고 상처만 받았을까” 하는 후회를 한다고 한다. 이들과의 교감을 통해 그는 비로소 “상처를 치유하는 건 세월이 아니라 사랑”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됐다고.
하지만 그는 “팬들을 위해 연예계에 복귀할 생각이 있느냐”는 질문에는 “불가능할 것 같다”고 답했다. 지금 그의 삶에서 가장 중요한 건 가족이기 때문이라고 한다.
“이번 콘서트 같은 공연을 계속할 수 있다면 참 감사한 일이겠죠. 하지만 연예활동을 하느라 가정생활에 무리를 주지 않겠다는 저 나름의 철칙은 지키려고 해요. 아이도 가져야 하기 때문에 본격적인 활동은 어려울 것 같고요. 가끔씩 외출하는 기분으로 음악 활동을 하고 싶어요. 언젠가는 복음성가를 부르고 싶다는 생각도 갖고 있습니다.”
이지연은 지금도 김완선, 김혜림, 강수지, 조갑경, 장혜리, 신효범 등 활동 당시 인연을 맺은 가수들과 연락을 주고받는다고 한다. 어려울 때 서로 도왔던 사이라 이들에게선 친자매 같은 정이 느껴진다고. 그는 이들 선·후배, 동료의 격려와 팬들의 사랑이 자신을 다시 무대에 설 수 있게 해줬다고 말했다.
“오랜 시간 마음의 문을 닫고 살던 제게 다시 사람들 앞에 나설 수 있는 용기를 주신 데 대해 정말 감사해요. 가수로서는 충분히 여러분 앞에 설 수 없지만, 삶을 아름답게 살려고 노력하는 한 사람의 모습을 오래 보여드리는 것으로 보답할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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