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핑크리본 파티’에서 패션쇼를 선보인 염영숙·조영진·윤순덕·김종현씨.(왼쪽부터)
지난 10월17일 오후, 서울 강남의 한 야외무대에서는 특별한 패션쇼가 열렸다. 중년 여성들이 핑크색 천으로 만든 세계 여러 나라의 전통 복장을 입고 힘찬 워킹을 선보인 것이다. 유방암 예방 캠페인 ‘핑크리본 파티’ 무대였다. 이날 행사가 눈길을 끈 것은 무대에 선 ‘모델’ 모두가 유방암 수술을 받은 여성들이었기 때문. 인도 전통 의상을 입고 멋지게 걷다 배와 골반을 흔드는 인도 춤 ‘벨리댄스’까지 선보여 큰 박수를 받은 상계백병원 유방암환우회 ‘유미회’의 조영진 회장(52)이나 한복에 족두리까지 쓴 채 우아한 걸음을 옮겨 눈길을 끈 서울아산병원 유방암환우회 ‘핑크리본’의 김종현 회장(65) 모두 한때 투병의 고통에 시달리던 이들이다. 하늘하늘한 천사 옷을 입은 인하대병원 ‘파랑새회’의 윤순덕 회장(50), 분홍빛 털이 달린 드레스 차림으로 화사한 미모를 뽐낸 삼성제일병원 ‘라일락회’의 염영숙 회장(48) 등도 마찬가지. 그러나 건강하게 웃는 이들의 표정 어디에서도 암의 그늘은 찾아볼 수 없었다.
“유방암은 조기 발견하면 완치될 수 있어요”
이들은 지난 8월 ‘한국유방암환우연합회’를 만드는 데 앞장선 이들. 그동안 병원별로 조직돼 있던 유방암환우회를 하나로 모은 건 유방암 예방을 위한 캠페인을 벌이고, 정보 부족으로 고통받고 있는 다른 환자들을 돕기 위해서였다고 한다. 이날 패션쇼도 “유방암을 앓았어도 여성의 매력과 자신감만은 잃지 말자”는 뜻에서 기획한 것이라고.
“저희를 보세요. 유방암에 걸렸지만, 건강하고 씩씩하게 잘 살고 있잖아요. 유방암은 조기에만 발견하면 얼마든지 완치될 수 있는 병입니다. 그런데 많은 이들이 유방암에 대한 무지나 두려움 때문에 병을 키우고 있어요. 이 병에 대해 널리 알림으로써 더 이상은 고통받는 사람이 없도록 하자는 게 ‘핑크리본 캠페인’의 목표죠.”
초대 한국유방암환우연합회장을 맡은 김종현 회장은 그래서 여자고등학교의 교육과정에 ‘유방암 자가 진단법’을 넣는 것을 이 모임의 첫 번째 목표로 삼았다고 한다. 대만의 경우 여학생뿐 아니라 남학생에게까지 자가 진단법을 가르치고 있다고.
유방암 환자들의 뜻을 모아 그들이 알게 모르게 겪고 있는 고통을 하나씩 줄여나가는 것도 이들의 목표다.
“조기에 유방암을 발견하지 못하면 수술을 통해 가슴을 절제해야 하는 경우가 많아요. 사람들은 그 경우 보기 싫거나 정신적으로 충격을 받는 게 문제라고 생각하지만, 더 큰 문제는 몸 전체의 균형이 깨진다는 데 있죠. 어깨가 기울고, 골반이 틀어지거나 심한 근육통에 시달리는 이들이 많아요. 그런데도 가슴 복원수술을 하지 못하는 건 보험이 적용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한쪽 가슴을 복원하는 데만 1천2백만 원 이상의 비용이 들기 때문에 엄두를 내지 못하는 거죠. 가슴 복원수술과 미용을 위한 가슴 성형수술은 완전히 다르거든요. 유방암 환자들은 미용 목적이 아닌 가슴 수술의 경우 보험이 적용돼야 한다고 요구하고 있어요.”
염영숙 회장의 말이 끝나자 윤순덕 회장도 말을 이었다. 유방암 수술을 받은 뒤 필수적으로 받아야 하는 정기검진 역시 보험 대상이 아니라는 것이다. 이 때문에 경제적으로 어려운 이들은 병이 언제 재발할지 모른다는 두려움에 시달리면서도 검진을 받지 못한다고 한다.
“우리나라 여성 암 가운데 발병률 1위를 기록하고 있는 게 유방암이에요. 그런데 아직도 유방암에 대한 사회적 인식은 매우 낮은 상태죠. 나 자신뿐 아니라 우리 엄마, 아내, 딸, 자매에게 일어날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하고 관심을 기울인다면 유방암으로 고통받는 환자의 수는 크게 줄어들 수 있을 겁니다.”
염영숙 회장은 유방암에 대해 막연히 두려워하는 이들을 위해 병을 건강하게 이겨낸 환자들을 소개해주었다.
▼ 30대 말 갑자기 찾아온 유방암 이겨낸 김은경씨
“젊을 때부터 꾸준히 자가검진하는 게 유방암 조기 발견을 위한 최선이에요”
유방암은 조기 검진하면 완치가 가능하다. 유방암 검진 모습.
김은경씨(48)는 96년 30대의 나이로 유방암 수술을 받은 환자다. 당시 결혼도 하지 않은 상태였던 그는 목욕탕에 갔다가 목욕관리사 아주머니가 가슴에 멍울이 잡힌다고 해 처음 이상이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고 한다.
“깜짝 놀라서 병원으로 달려갔죠. 검진 결과는 다행히 ‘양성 종양’으로 나왔어요. 의사가 신경 쓰지 말고 정기검진만 받으라기에 그때부터 6개월 간격으로 검진을 받았죠. 1년 반이 지날 때까지 계속 아무 문제없다는 이야기만 들었어요.”
그런데 한 친구가 “양성도 오래 두면 악성이 될 수 있다더라. 그냥 수술받지 그러냐”고 권했다고. 그러는 게 마음 편하겠다 싶어 회사에 휴가를 내고 수술대에 누운 게 96년 가을이었다. 그런데 수술실에 들어가 수술을 위한 그림을 그릴 때 한 의사가 “어? 여기 유두 밑에도 또 멍울이 있네” 하고 말했다고 한다. 하지만 담당의사가 “한숨 자고 일어나면 그것도 빼드릴 테니 걱정 마시라”고 해 마음을 놓았다고.
“수술을 하고는 병원에서 하루 잤어요. 다음 날 ‘왜 퇴원하라고 안 하지?’ 생각하고 있는데, 간호사가 들어와서는 수술 준비를 하자는 거예요. 깜짝 놀라서 ‘어제 수술했는데 무슨 수술을 또 하느냐’고 했더니 아직 몰랐냐면서, 어제 제 가슴에서 떼어낸 종양이 암이었다고 하더군요. 바로 유두 아래라 가슴 전부를 잘라내야 한다고요.”
알고 보니 유두 쪽에 있던 종양이 심상치 않아 조직검사를 해본 결과 암으로 밝혀진 것이었다. 의사는 김씨 가족에게 그 사실을 알리고 다음 날 다시 수술을 하기로 결정했지만, 가족이 차마 그에게 사실을 전하지 못했던 것.
“수술 한 시간 전에 암 선고를 받은 거예요. 놀라 어쩔 줄 모르는 제게 의사는 ‘미혼이라 가슴을 잘라내는 게 꺼려지면, 암 수술과 동시에 가슴 복원수술도 하면 된다’고 하더군요.”
그러나 가슴 복원수술은 결코 간단하지 않았다고 한다. 가슴 안에 있는 조직들을 모두 긁어내 평평해진 피부를 늘리기 위해 너덧 달에 걸쳐 보름에 한 번씩 식염수 7~8팩씩을 주입해야 했다고.
“항암치료라도 끝나고 시작했으면 좀 나았을지 모르겠어요. 전 수술의 아픔도 채 가시지 않은 몸에 항암제와 식염수를 동시에 맞느라 정말 고통스러웠죠. 맨가슴에 8팩 분량의 식염수를 채워 넣으면 어깨까지 담이 결려 혼자 일어나지도 못해요. 그게 빠져나가면 또 새로 맞고, 또 새로 맞고, 그러다 가슴 피부가 어느 정도 늘어난 뒤 보형물을 넣었죠.”
그런데 유두를 만들기 위한 수술을 채 받기도 전, 다른 쪽 가슴에서 또 암이 발견됐다고 한다. 첫 수술을 받은 지 3년 만이었다.
“두 번째 치료는 더 힘들었어요. 몸에 항암제 내성이 생겨서 처음보다 더 강한 약을 써야 했거든요. 마음고생도 심했고요. 제가 외동딸인데, 직장생활한다고 결혼도 안 하고 살다가 이런 모습까지 보이는 게 부모님께 죄송스러웠죠. 엄마 앞에서는 눈물 한 번 못 보이다 혼자 있을 때는 소리 내 울곤 했어요.”
그는 부모를 위해서라도 병을 이겨야겠다고 생각하고 마음을 다잡았다고 한다. 머리카락이 다 빠져서 가발을 써야 하는 상황에서도 회사에 알리지 않은 채 직장생활과 항암치료를 병행했다고.
이제는 유방암 환자들을 만나 “암 수술을 두 번 받고 양쪽 가슴을 다 절제하고도 이렇게 건강하다. 힘 내라”는 충고를 해줄 만큼 건강을 되찾았다는 그는 “초음파를 맹신하지 말라”고 강조했다. 주위를 보면 자신처럼 초음파 검사 결과만 믿고 있다가 병을 키우는 경우가 적지 않기 때문이라고. 김씨는 “자가검진법을 배워 스스로 계속 살펴보다가 조금이라도 이상이 있으면 정밀검진을 받는 게 유방암을 조기에 발견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이라고 강조했다.
▼ 갱년기 치료받다 유방암 발견한 이은희씨
“암은 누구에게나 찾아올 수 있는 병, 두려워하지 말고 당당히 맞서세요”
이은희씨(65)는 예순이 넘은 나이에 암 선고를 받은 경우다. 간호학을 전공하고, 고등학교 보건 교사로 30년 넘게 근무한 이씨는 자신의 건강에 대해 자신하고 있었다고 한다. 그런데 지난 2000년 건강 관리를 위해 다니던 한 갱년기 클리닉에서 가슴 사진을 찍었다가 “정밀검사를 받아보라”는 이야기를 들었다고.
“유방암 전문병원에 갔는데 의사가 촉진을 해보더니 바로 암이라며 수술하자고 하는 거예요. 그럴 리 없다고 펄쩍 뛰었죠. 부모·친척 가운데 암에 걸린 사람이 아무도 없었고, 평생 음식이나 생활방식에 주의하며 살았거든요. 제가 알고 있던 지식에 비춰 보면 전 암에 걸릴 사람이 아니었어요. 그런데 알고 보니 많은 암 환자들이 아무 이유 없이 암에 걸리더군요.”
그는 “누구나 암에 걸릴 수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기까지 참 힘이 들었다”고 털어놓았다.
자신이 암이라는 걸 받아들인 뒤 찾아온 감정은 “이제 죽겠구나” 하는 것이었다고. 그런데 병원 의자에 멍하니 앉아있는 그에게 용기를 준 사람은 다른 유방암 환자였다고 한다. 넋이 나간 듯한 그를 보고 “무슨 일이냐”고 묻더니 “나도 3년 전에 암 수술을 받았는데 이렇게 멀쩡하다”고 말해준 것이다.
“그 말에 힘을 얻어 수술을 받았어요. 그 뒤부터는 재발 방지를 위해 요가를 시작했죠. 지금은 집 주변 초등학교에서 다른 노인들을 가르치고 있을 만큼 실력이 늘었습니다. 매일 열 분쯤 되는 이들이 와서 요가를 배우는데, 수업을 마치면 그분들과 함께 운동장 주변을 돌며 걷기 운동도 해요.”
여러 사람과 함께 운동을 하면 피곤하거나 날씨가 좋지 않아도 빠질 수 없기 때문에 효과적이라고 한다. 이씨는 누구든 자신의 건강을 장담하면 안 된다고 충고했다.
“암은 뭔가 문제 있는 사람만 걸리는 게 아니에요. 평소 꾸준히 운동하고, 좋은 음식만 먹고, 유전력이 없는 사람도 암에 걸릴 수 있어요. 중요한 건 암이 찾아왔을 때 그걸 받아들이고 최선을 다해 치료하는 겁니다. 예순이 넘은 나이에 수술을 받은 저도 이렇게 건강히 살고 있잖아요. 암을 두려워하지 말고 당당하게 맞서세요.”
▼ 동생과 동시에 암 걸렸지만, 둘 다 깨끗이 이겨낸 김미영씨
“샤워할 때 가슴 살펴보는 일 잊지 마세요”
김미영씨(52)는 지금도 지난 98년을 생각하면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다고 한다. 자신과 여동생이 동시에 암 선고를 받은 해이기 때문이다.
“그때 저는 유방암에 대해 아무것도 몰랐어요. 제 주위에 암에 걸린 사람이 아무도 없었거든요. 암 선고를 받기 얼마 전부터 샤워를 하다 가슴을 짜보면 맑은 액체가 조금씩 흘러나오곤 했는데, 전 모유로 아이를 키웠기 때문에 ‘아직 유선이 안 막혔나보다’ 하는 정도로만 생각했어요. 언제부턴가는 가슴에 멍울이 잡히고 좀 뻐근하게 아픈 느낌이 들었는데, 그것도 제가 무리하게 팔을 써서 생긴 근육통인 줄만 알았죠. 약국에 가서 파스를 사다 붙이고 잊어버렸어요.”
그런데 8개월쯤 지난 후 지방에 살던 동생이 전화를 걸어와 “나, 유방암 진단을 받았어”라고 말하더라는 것. 부랴부랴 동생에게 달려갔는데, 그의 증상이 김씨와 놀랄 만큼 똑같았다고. 수술을 앞둔 상태에서도 언니 몸을 걱정하던 동생은 수술실에서 나와 의식을 찾자마자 담당 의사에게 ‘우리 언니도 나와 비슷하다는데 상태를 좀 봐달라’고 부탁했다고 한다. 검진 결과는 유방암이었다.
“여든이 넘은 엄마도 건강히 살아계신데 딸 둘이 한꺼번에 암에 걸리다니, 어떻게 이런 일이 있나 싶었죠. 의사가 ‘이건 가족력 때문도 아니고, 당신이 몸 관리를 잘못해서 생긴 것도 아니다. 암은 그냥 암이다’라고 말하더군요.”
그래서 김씨는 동생이 수술받은 뒤 13일 만에 유방 절제수술을 받았다고 한다. 이미 암이 상당히 진행돼 있는 상태여서 겨드랑이 쪽 림프절까지 다 제거했다고. 키 167cm의 당당한 체격을 자랑하던 그는 항암치료 후유증으로 체중이 13kg이나 빠졌다고 한다.
“병원 창문을 통해 아래를 내려다보며 ‘내가 다시 저 사람들처럼 걸을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을 했어요. 1년 반 정도는 우울증을 앓았죠. 하지만 ‘죽고 사는 건 다 하늘의 뜻’이라고 마음을 비우고 나니 오히려 극복이 되더라고요.”
그는 같은 고통을 겪고 있는 동생과 서로 위로하며 힘을 얻은 것도 큰 도움이 됐다고 털어놓았다. 내가 겪는 아픔이 혼자만의 것이 아니라는 걸 깨달으며 마음이 편해졌다고.
“유방암 수술을 받고 난 뒤의 몸이 수술 전과 같아질 수는 없어요. 수술로 조직을 많이 제거하기 때문이죠. 특히 가슴 근육과 겨드랑이 부분의 통증은 잘 사라지지 않습니다. 수술받은 쪽 팔에는 부종이 쉽게 오고, 힘도 실리지 않기 때문에 골프나 배드민턴, 볼링같이 공을 던지는 운동도 할 수 없어요.”
박씨는 지금 건강을 되찾았고, 수술 전 다니던 직장에도 복귀했다고 한다. 하지만 아쉬움이 없는 건 아니다. 처음 암의 징후가 나타났을 때 바로 수술을 받았다면, 이런 후유증을 줄일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그래서 전 누구에게나 샤워할 때 꼭 가슴을 살펴보라고 말해요. 첫 단계는 두 팔을 머리 위로 똑바로 올리고 양쪽의 균형을 보는 겁니다. 조금이라도 자신의 평소 가슴 모양과 달라진 부분이 있다면 이상이 있는 거예요. 병원에 가서 정밀검사를 받아야죠. 멍울이 잡히거나 분비물이 나올 때는 이미 암이 상당히 진행된 다음이기 때문에 치료할 때도 더 어려울 수밖에 없어요. 고통을 줄이는 최선의 방법은 자가검진입니다.”
▼ 유방암 3기 말 진단받았지만 건강하게 회복한 정은영씨
“자기 몸을 제일 잘 아는 건 자기 자신이에요. 자신을 믿는 게 중요합니다”
정은영씨(50)는 2004년 유방암 3기 말이라는 진단을 받았지만 지금도 자녀 학교의 어머니회장을 맡고 있을 만큼 건강하다. 그는 6개월마다 정기검진을 받고 있었는데, 2003년 11월30일 검진 결과도 ‘이상 없음’이었다고 한다. 그런데 이듬해 여름 샤워를 하다 유두 한쪽이 미세하게 함몰된 것을 발견했다고.
“한 0.1mm 정도나 됐을까, 아주 조금이지만 분명히 이상했어요. 병원에 가서 검사를 해달라고 했죠. 그런데 의사가 ‘세포검사까지 해도 아무 이상 없다’며 걱정 말라고만 하는 거예요. 왜 그랬는지 모르겠지만 제가 ‘아무래도 이상하다. 조직검사까지 해달라’고 우겼죠.”
유방암에 대한 경각심을 높이기 위해 열린 ‘핑크리본 사랑 마라톤’에서 참석자들이 힘차게 달려나가고 있다.
조직검사가 나오기까지 보름이 걸렸다고 한다. 그리고 ‘유방암 3기 말’이라는 진단이 나왔다.
“의사도 크게 당황하더니 ‘당장 수술해야겠다’고 하더군요. 한쪽 가슴을 모두 잘라냈죠. 수술 뒤 상처가 아물지 않아 40일이나 입원해 있었어요. 항암치료를 8회 받고, 방사선 치료도 28회 받았는데, 그때는 방사선 부위에 화상을 입어 몇 달 동안 고생했죠.”
화상이 아문 뒤부터는 외출할 때 가슴에 접착식으로 붙이는 실리콘 브라를 착용했다고 한다. 몸의 고통 못지않게 괴로운 건 “이제 여자도 아닌 게 아닐까” 같은 마음의 고통이었다고. 정씨가 그 어려움을 이길 수 있었던 건 아이 때문이었다. 그는 당시 중학교 2학년생이던 아이의 학급 어머니회장을 맡고 있었는데, 아프다는 이유로 책임을 저버릴 수 없어 계속 나가다보니 저절로 우울증이 사라졌다는 것이다.
“머리가 다 빠진 상태였지만 모자 쓰고 다니면서 어머니회 일을 했어요. 학교 학부모들이 저 아픈 걸 다 알았죠(웃음). 하지만 오히려 그러고 나니 마음이 편해지더라고요. 사람들 속에서 바쁘게 움직이니까 제 몸에 대한 생각도 잊을 수 있었고요.”
그는 아이가 고등학생이 된 지금도 어머니회 활동을 계속하고 있다고 한다. 다니는 병원의 유방암환우회에 참여해 자원봉사 활동도 하고, 일주일에 세 번씩은 짬을 내 걷기 운동으로 건강을 관리한다고.
“자기 몸을 제일 잘 아는 건 바로 자기 자신이에요. 의사의 말을 믿어야 할 때도 있지만, 분명히 틀렸다는 느낌이 들 때는 고집도 부려야죠. 자신의 삶을 사랑하는 것, 자신을 소중하게 여기는 것이 암을 이기는 첫걸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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