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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좋아하는 아이로 키우기’

어린이도서관 박영숙 관장 체험 공개!

기획·송화선 기자 / 글·백경선‘자유기고가’ / 사진·박해윤 기자

입력 2006.11.13 11:13:00

모든 아이들은 행복하게 책 읽을 권리를 갖고 태어난다고 말하는 박영숙 관장. 그는 아이에게 책읽기를 강요하는 것은 책을 영영 멀리하게 하는 지름길이라고 말한다. 박 관장을 만나 책을 좋아하는 아이로 키우기 위해 엄마들이 꼭 알아야 할 것들에 대해 들었다.
‘책을 좋아하는 아이로 키우기’

경기도 용인시 풍덕천동에 있는 ‘느티나무어린이도서관’을 찾았을 때 처음 눈에 들어온 것은 40평 남짓한 공간에 빼곡히 꽂혀있는 2천5백여 권의 책들이었다. 공간을 가득 채우고 있는 책 사이로 제멋대로 드러눕거나 벽에 기대어 앉은 채 책을 읽고 있는 아이들이 보였다. 좀 더 살펴보니 ‘이제 그만 집에 가자’는 엄마 손을 뿌리치며 “이것만 마저 읽고 가자”고 조르는 아이의 모습도 눈에 띈다. 아이들이 재미있게 책을 읽는 곳, 누가 시켜서가 아니라 스스로 읽고 싶어 찾아오는 곳이 바로 느티나무어린이도서관이다.
이곳을 운영하는 박영숙 관장(40)은 “여기서는 누구도 아이에게 책을 읽으라고 강요하지 않는다. 그런데도 책을 읽는 건, 독서의 즐거움을 깨달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많은 부모가 아이에게 책 읽는 법을 ‘가르치려다’ 번번이 실패하죠. 추천 도서목록에 있는 책을 순서대로 읽히고 독후감을 쓰게 하면서 책 읽는 훈련을 시킬 수는 있지만, 그런 강요에 지친 아이들은 스스로 책읽기를 거부하거든요.”
박 관장은 “아이들은 책을 읽어야 한다는 강요에서 자유로워지는 순간 비로소 책을 읽기 시작한다”며 “아이를 책을 좋아하는 사람으로 키우고 싶다면 책을 읽으라고 강요하는 대신 스스로 책을 읽고 싶은 마음이 들도록 주위 환경을 만들어주라”고 조언했다.
두 아이를 기르는 평범한 주부이던 그가 이 도서관을 문 연 것은 지난 2000년. 98년 초 이사한 이 지역의 살풍경한 환경 때문이었다고 한다.
“그때 수지는 온통 공사장이었어요. 아이들이 마음껏 뛰놀 수 있는 공간이 전혀 없었죠. ‘우리 동네에도 아이들이 모여 쉴 수 있는 커다란 느티나무가 한 그루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런데 마침 우연한 기회에 돈이 생겼고, 그걸로 작은 공간을 마련한 뒤 차츰차츰 책을 모아 이 도서관을 열게 된 거죠.”
책을 들여놓은 건 아이들이 비록 작은 공간에서 놀더라도 넓은 세상을 보았으면 하는 마음에서였다고. 박 관장에게 느티나무어린이도서관은 처음부터 도서관이 아니라 놀이터였던 셈이다. 아이들도 그의 뜻을 알았는지 하나 둘 이 공간에 모여 뛰놀기 시작했다고 한다.
“길 건너 유치원에 다니던 남자 아이 한 명이 생각나요. 도서관이 문을 열자마자부터 매일같이 놀러와 책꽂이 꼭대기에 매달려 놀았거든요. 책꽂이를 잡고 구석구석 돌아다니는 모습이 영락없이 타잔이기에 ‘꼬마 타잔’이라는 별명을 붙여줬죠. 전 그 아이가 책에 관심이 있으리라고는 생각도 못했어요. 그런데 두 달쯤 지난 어느 날, 책꽂이 정리를 하고 있는데 갑자기 옆으로 가만히 다가오더니, 뜻밖에도 그림책 한 권을 내밀더라고요. 읽어달라고 하면서요. 책꽂이를 타고 돌아다닐 때마다 눈에 들어온 책이었던 거죠.”
그 순간 박 관장은 “책 속에서 노는 아이들은 저절로 책에 흥미를 갖게 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고 한다. 그 무렵부터 도서관에 ‘놀러’ 오던 아이들은 하나 둘 책을 펴들고 ‘책과 함께 놀기’ 시작했다고.

“책 읽는 건 의무가 아니라 권리, 아이들이 책과 친해질 수 있게 자유를 주세요”
‘책을 좋아하는 아이로 키우기’

박영숙 관장의 두 아이는 학교를 마치면 바로 도서관으로 달려와 문을 닫을 때까지 온갖 책을 읽으며 ‘논다’고 한다.


“아이에게 책을 읽히고 싶다면 아이 주변을 책으로 채워주세요. 책을 책꽂이에 얌전히 꽂아두기만 하는 건 별 의미가 없어요. 눈에 안 띄면 호기심이 생기지 않거든요. 아이의 시선이 잘 닿는 곳에, 아이가 흥미를 느낄 만한 책 속의 그림이 보이도록 펼쳐놓는 게 좋죠. 엄마는 TV만 보면서 아이더러 책을 읽으라고 하는 것도 효과가 없어요. 엄마가 책을 읽으며 자꾸 ‘재밌다’고 해야 호기심이 커지니까요. 아이에게 자주 책을 읽어주는 것도 좋아요. 그러다보면 어느 순간 아이가 스스로 책을 읽고 싶다며 달려드는 날이 옵니다.”
박 관장은 아이에게 책으로 둘러싸인 환경을 만들어줄 때는 꼼꼼히 따져보고 좋은 책만 선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모든 책을 부모가 미리 읽어보고, 내용을 판단해야 한다는 것이다.
“흔히들 ‘만화책은 나쁘고 그림책은 좋다’처럼 단순하게 생각하잖아요. 하지만 사실 좋은 책을 고르는 건 그렇게 간단하지 않아요. 만화라도 아이의 상상력을 북돋워줄 수 있다면 좋은 책인 거고, 그림책이라도 내용이 바르지 못한 건 읽히지 말아야죠. 요즘 역사 만화가 인기를 끌고 있는데, 제가 보기엔 그 가운데 문제가 있는 책도 적지 않아요. 책을 꼼꼼히 읽어보지 않으면 정확한 판단을 내릴 수 없죠. 아이 옆에 놓아주는 책이니까, 좀 귀찮더라도 전부 다 읽어보고 좋다는 판단이 든 책만 골라야 해요.”
만약 책으로 둘러싸인 환경을 만들어줬는데도 아이가 책에 흥미를 보이지 않는다면 ‘꼬마 타잔’의 경우처럼 책을 가지고 놀도록 하는 것도 좋다고 한다. 놀이를 통해 책과 친해지면 언젠가는 읽고 싶어하는 날도 오기 때문이라고.
“아이들은 무엇이든 놀이로 만드는 재주를 타고났어요. 책 한 권을 갖고도 어쩌면 저런 생각을 다 하나 싶을 만큼 다양한 놀이를 생각해내죠. 그럴 때 ‘책은 갖고 노는 게 아니라 읽는 거란다’ 하며 막는 건 좋지 않아요. 아이들이 책을 어렵게 생각하게 되니까요. 아이와 함께 책으로 ‘집짓기 놀이’를 하거나 ‘책 찾기 놀이’, ‘책 꽂기 놀이’를 한번 해보세요. 사실 ‘책 꽂기 놀이’는 도서관 정리를 할 때 일손을 줄이려고 제가 한 번 제안해본 건데, 아이들이 굉장히 좋아하더라고요. 바닥에 널려있는 책을 서가에 꽂는 놀이죠(웃음). 아이들은 이런 놀이를 하면서 어디에 무슨 책이 꽂혀 있는지를 눈과 가슴에 새겨놓아요. 그리고 어느 순간 때가 돼서 그 씨앗이 싹을 틔우면 스스로 책을 향해 다가가죠.”
박 관장에게는 초등학교 5학년생인 아들 승철이와 2학년생 딸 승진이가 있다. 어릴 때부터 책과 함께 자란 두 아이는 학교를 마치면 바로 도서관에 달려와 문을 닫을 때까지 온갖 책을 읽으며 논다고. 마룻바닥에 누워 편안히 책을 읽다 졸리면 그대로 잠이 들기도 한다고 한다.
“프랑스 작가 다니엘 페나크가 쓴 ‘소설처럼’이라는 책을 보면 ‘책읽기에 대한 열 가지 권리’라는 내용이 나와요. 우리에겐 ‘책을 읽지 않을 권리, 건너뛰며 읽을 권리, 끝까지 읽지 않을 권리, 다시 읽을 권리, 아무 책이나 읽을 권리, 마음대로 상상하며 빠져들 권리, 아무데서나 읽을 권리, 군데군데 골라 읽을 권리, 소리 내서 읽을 권리, 읽고 나서 아무 말도 하지 않을 권리’가 있다는 거죠. 전 우리 아이들이 책을 읽으며 이런 권리를 다 누렸으면 좋겠어요. 어른이 정해준 책을 받아 처음부터 끝까지 단정하게 앉은 자세로 읽은 뒤 모범 답안 같은 독후감을 적어내는 건 참된 독서가 아니거든요. 그런 교육이 아이들에게 책을 ‘권리’가 아닌 ‘의무’로 여기게 하고, 점점 더 책에서 멀어지게 하는 것 같아 마음 아파요.”
박 관장은 아이들이 책을 좋아하게 만들려면 서점이나 도서관처럼 여럿이 모여 함께 책을 읽는 장소에 자주 데려 가는 것도 좋다고 충고했다. 특히 어린이도서관 등에서 또래끼리 어울려 책을 읽으면 같은 내용도 훨씬 흥미롭게 느껴져 독서 습관을 들이기에 좋다고.
“전 부모들이 왜 아이에게 책을 읽히려고 하는지 스스로 깨달았으면 좋겠어요. 아이가 책 속에서 뛰놀며 행복하게 자라기를 바라는 마음을 느낀다면, 분명 아이도 책을 사랑하게 될 겁니다.”
아이가 책과 친해지게 만들기 위한 생활 속 실천법
▼ 절대 책을 읽으라고 강요하지 않는다.
▼ 아이 손이 닿는 곳에 자연스럽게 책을 펼쳐둔다.
▼ 아이 앞에서 늘 책 읽는 모습을 보여준다.
▼ 책을 갖고 할 수 있는 다양한 놀이를 개발한다.
▼ 동네 어린이도서관이나 서점 등에 자주 데리고 다닌다.


여성동아 2006년 11월 515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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