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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종’피아니스트 김선욱군·어머니 임미재씨가 들려줬어요!

“유학 경험 없이 세계적인 콩쿠르에서 우승하기까지…”

기획·김명희 기자 / 글·백경선‘자유기고가’ / 사진·조영철 기자

입력 2006.11.13 10:46:00

세계적인 권위를 자랑하는 ‘리즈 국제 피아노 콩쿠르’에서 아시아인으로는 처음으로 1위를 차지한 김선욱군. 그의 우승은 외국 유학 경험이 없는 순수 국내파라는 점에서 더욱 화제가 됐다. 그와 어머니 임미재씨를 만나 세계 정상에 오르기까지의 과정에 대해 들어보았다.
‘토종’피아니스트 김선욱군·어머니 임미재씨가 들려줬어요!

지난 9월 말 영국에서 기쁜 소식이 날아들었다. 쇼팽·퀸엘리자베스·차이콥스키 콩쿠르와 더불어 세계적인 권위를 자랑하는 ‘리즈 국제 피아노 콩쿠르’에서 우리나라 김선욱군(18·한국예술종합학교 음악원 3년)이 1위를 차지한 것. 지금까지 이 대회에서 정명훈·서주희·백혜선씨 등이 입상한 적이 있지만 1위는 처음이다. 43년 대회 역사상 한국인은 물론 아시아인으로서도 첫 우승. 더군다나 선욱군은 해외유학 경험이 없는 ‘순수 국내파’라는 점에서 더욱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
부부 교사 김양중씨(47)와 임미재씨(45)의 2남 중 차남인 선욱군은 예원중학교 졸업 후 곧바로 한국예술종합학교 음악원에 입학한 대학생으로, 현재 김대진 교수에게 사사하고 있다.
그가 피아노를 치기 시작한 것은 만 3세 때였다고 한다. 당시 여섯 살이던 형이 피아노 학원에 다니고 있었는데, 그는 형과 함께 피아노 학원 차를 타고 싶어 어머니를 졸랐다고.
“어머니는 한 달 레슨비를 내면서 저를 그저 형 옆에 앉아 있게만 해달라고 학원 원장님에게 부탁하셨어요. 세 살 꼬마가 피아노를 치는 건 무리라고 생각하셨던 거죠. 그런데 의외로 피아노 치는 것이 재미있더라고요. 새로운 곡을 배울 때마다 설레고 좋았어요.”
어머니 임미재씨는 아들에 대해 “어려서부터 부모가 놀랄 정도로 큰 꿈을 가졌고, 그 꿈을 이루기 전까지 절대 좌절하거나 굽히지 않았다”고 말했다.
“새 교재를 받고 돌아온 날은 밥도 안 먹고 배우지도 않은 맨 뒤에 있는 곡을 치는 거예요. 학원에서 누나나 형들이 배우는 것을 보고 오면 어떻게 해서든 그 곡을 치고야 말죠. 꽤 어려운 곡도 저 혼자 1시간 정도 건반을 두드리다 제대로 된 소리를 내더라고요.”
임씨는 아들의 음악적 재능을 발견하고는 오히려 안타까웠다고 한다. 자신과 남편이 음악에 문외한이었기에 아들의 재능을 어떻게 키워줘야 할지 몰라 막막했다는 것. 또 부부가 맞벌이를 하다보니 자식 뒷바라지에만 전념할 수 없는데다 경제적으로도 넉넉한 형편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음악 신동이라고 불리는 사람들 대부분은 부모의 헌신적인 뒷바라지가 뒷받침이 됐잖아요. 저희 부부는 도저히 그럴 형편이 못됐거든요. 그럴 바에야 차라리 음악을 즐길 수 있도록 취미로만 가르치는 게 낫겠다 싶어 아들을 설득했는데 말을 듣지 않더군요. 선욱이가 초등학교 3학년 때 인터넷을 뒤져 국제 콩쿠르 일정을 모두 확인하고는 수첩에 ‘언제 무슨 콩쿠르에 출전하겠다’는 식의 계획표를 정리해서 보여준 뒤로는 음악가의 꿈을 더 이상 막지 않았어요.”
그 뒤로 임씨는 아들이 원하는 음반과 악보를 최선을 다해 구해주었고, TV에서 방송하는 공연 영상을 비디오로 녹화해주었다고 한다. 임씨가 수집한 음반은 1천여 장, 공연 비디오 녹화 테이프는 2백여 편에 이른다. 덕분에 선욱군은 어떤 곡은 누구의 음반을 참고해야 하는지에 대해선 다른 친구들에게 조언해줄 정도로 ‘박사’가 됐다고 한다.
선욱군은 연주를 하는 것뿐 아니라 듣는 것도 좋아했다고 한다. 초등학교 4학년 때부터 혼자 지하철을 타고 예술의전당과 세종문화회관을 다니면서 적을 때는 매주 2차례, 많을 때는 5차례씩 콘서트를 관람했다는 것. 때문에 공연 관계자들 사이에서 그는 ‘음악회마다 쫓아다니는 꼬마’로 유명했다고 한다.
“저는 남들에 비해 연습을 많이 하는 것 같진 않아요. 콩쿠르 출전을 앞두고선 하루 5~6시간 연습했지만, 평소에는 연습시간이 평균 3시간 정도예요. 대신 남의 음악을 듣는 데 그만큼 시간을 더 쏟았죠. 다른 사람들의 연주를 들으면 더 큰 자극이 되거든요. 제가 하도 공연만 쫓아다니니까 언젠가는 교수님이 ‘이제 네 연습 좀 하라’고 하시더라고요(웃음).”

피아노 연주를 ‘놀이’로 여기는 아들의 ‘놀이 연습’에 항상 즐거운 마음으로 참여해
‘토종’피아니스트 김선욱군·어머니 임미재씨가 들려줬어요!

김양중·임미재씨 부부는 앞장서서 아이들을 이끌기보다 본인이 택한 길을 잘 갈 수 있도록 뒷바라지하는 데 주력했다고 한다. 카이스트에 다니는 형, 부모와 함께 한 가족사진.


선욱군은 어려서부터 피아노 연주를 ‘연극’이나 ‘놀이’처럼 여겼다고 한다. 덕분에 질리지 않고 재미있게 연습을 할 수 있었다고.
“어릴 적엔 연습할 때 그냥 하지 않았어요. 꼭 무슨 연주회 혹은 무슨 콩쿠르를 연다고 가정하고 했어요. 예를 들어 ‘쇼팽 콩쿠르를 하자’고 하면서 종이에다 외국 사람 이름을 적어오는 거예요. 그러고는 저더러 사회자를 하라고 해요. 그럼 저는 종이에 적힌 순서대로 이름과 곡명을 불러주고 선욱이는 마치 그 사람인 양 연주를 했죠. 중요한 건 꼭 선욱이가 우승을 해야 한다는 거예요(웃음).”
임씨는 아들의 ‘놀이 연습’에 동참하는 것을 한 번도 귀찮거나 힘들다고 여긴 적이 없으며 오히려 함께 즐겼는데 그런 과정을 통해 선욱군은 자연스럽게 무대에 대한 긴장감을 떨쳐버릴 수 있었다고 한다.
또 하나 선욱군의 남다른 점은 자립심이 강하다는 것. 어렸을 때 국내 콩쿠르가 열리는 날 바쁜 시간을 쪼개 콩쿠르 개최장소 근처까지라도 데려다주려 했지만 선욱군은 늘 혼자 가겠다고 고집을 피웠다고 한다.
“선욱이는 초등학교 1학년 때부터 혼자 악보를 사러 다녔어요. 한국예술종합학교 예비학교 입학정보도 직접 구해왔고 레슨도 혼자 다녔고요. 이번 콩쿠르에 참가할 때도 혼자 영국행 비행기에 올랐죠.”
선욱군이 김대진 교수와 인연을 맺은 건 8년 전 한국예술종합학교 예비학교에 입학하면서부터다. 초등학교 3학년 때까지 동네 피아노 학원에 다니던 그는 4학년 때부터 개인 레슨을 받기 시작했고 5학년 때 예비학교에 입학했는데 입학 당시 지도교수 희망란에 그는 1지망부터 3지망까지 모두 김대진 교수의 이름을 써 넣었다고 한다. 유연한 테크닉과 개성 있는 작품해석으로 독자적인 연주세계를 구축한 김 교수를 마음속 깊이 존경하고 있었다는 것.
“교수님을 만난 건 행운이었어요. 제 음악적 해석을 100% 존중해주셨고 개인적인 고민도 많이 들어주셨죠. 심지어 외국에 나가서 상류층 인사를 만나러 갈 때 테이블 매너부터 영어까지 조언해주셨어요. 초등학교 때는 날짜까지 못 박아놓고 유학 보내달라고 조르기도 했지만 지금은 좋은 스승을 만난다면 어디서 공부하든 상관없다는 생각이 들어요. 이번 콩쿠르 심사위원들도 교수님을 칭찬하며 ‘다른 선생에게 가지 말라’고 충고했어요.”
‘리즈 국제 피아노 콩쿠르’는 부상으로 오케스트라와 협연할 기회를 제공한다. 그는 유럽 및 아시아 투어공연 등 1백여 차례 협연하는데 내년에 런던필하모닉과의 협연, 중국 상하이필과의 협연이 잡혀 있다고 한다.
“콩쿠르를 통해 주어지는 무대에서 인정받아야 진짜 일류가 되는 거예요. 그 무대에서 세계적인 음반사, 교향악단, 지휘자로부터 인정을 받아야 하거든요. 콩쿠르는 상대평가지만 무대는 절대평가이기 때문에 콩쿠르 1위보다 더 어려워요. 이제부터가 진짜 시작이라고 생각해요. 앞으로 제 한계에 도전하면서 더 열심히 할 겁니다. ”
어머니 임미재씨의 조언!
아이 재능을 키워주려면 이렇게~

억지로 시키는 것은 한계가 있다
아들에게 “연습하라”는 소리를 지금까지 한 번도 해본 적이 없다. 간혹 아들이 피아노 연습을 안 한다 싶으면, “피아노를 쳐라”하고 잔소리하는 대신 스스로 피아노 앞에 앉도록 자연스럽게 유도했다. 내가 일부러 피아노를 엉터리로 치면 듣다 못한 아들이 “너무 못 쳐 답답하다. 내가 시범을 보이겠다”며 피아노 앞에 앉는다.

칭찬을 많이 하라
아들은 가족들에게 자신의 연주를 듣고 느낌을 말해달라는 부탁을 자주 했는데 그럴 때마다 칭찬을 했다. 잘한다고 북돋워주면 아이는 힘이 생겨 더 열심히 하게 된다.

체력을 기르게 하라
선욱이는 어릴 때부터 축구와 야구를 좋아했다. 초등학교 1~2학년 때는 지금은 은퇴한 왼손 투수 이상훈 선수를 좋아해 왼손으로 벽에 공을 던져 맞히는 연습을 수도 없이 되풀이했다. 덕분에 왼팔이 강한데 장시간 연주를 할 때 큰 도움이 된다.

아이가 먼저, 집안일은 천천히
퇴근 후 집에 돌아오면 아이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기 위해 노력했다. 특히 선욱이는 누군가가 늘 옆에서 자신을 지켜봐주기를 바랐기 때문에 빨래, 청소, 설거지 같은 집안일은 아이들이 잠든 밤 10시 이후로 미뤘다.



아이를 존중하라
부모들은 흔히 어른인 자신들이 아이보다 위에 있다고 생각하지만 어떤 면에서는 아이들이 부모보다 낫다는 점을 인정해야 한다. 피아노에 관한 한 아들이 한 수 위며 음악에 무지했던 우리 부부가 클래식에 관심을 가지게 된 것도 아들 덕분이다. 부모가 할 일은 앞장서서 아이를 끌고 가기보다는 본인이 스스로 택한 길을 따라가며 뒷바라지해주는 것이다.


여성동아 2006년 11월 515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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