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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우야 뭐하니’가 궁금하다

천방지축 노처녀로 변신한 고현정

글·송화선 기자 / 사진·홍중식 기자

입력 2006.10.18 09:48:00

우아한 고현정에 대한 기대는 버려라. 이번엔 그가 우리를 마음껏 웃길 작정이다. 천방지축 실수연발, 하지만 미워할 수 없는 사랑스런 노처녀로 브라운관에 컴백한 고현정을 만났다.
천방지축 노처녀로 변신한 고현정

고현정(35)이 달라졌다. 어깨 위에서 찰랑거리는 단발머리를 한 고현정은, 긴 생머리와 함께 오랜 기간 그를 따라다니던 청순 이미지도 싹둑 잘라버린 듯했다. 그는 인터뷰 내내 호탕하게 웃으며 분위기를 이끌었다.
“‘쎄시봉’이라는 3류 성인잡지 기자 고병희 역할을 맡았어요. 서른세 살 노처녀로, 매일 섹스 기사만 써대는 자기 처지에 고민이 많죠. ‘이 나이까지 도대체 난 뭘 하며 살았나’ 한숨짓고, 어디 가서 명함 한 번 당당히 내놓지 못하는 현실에 대해 갈등하고. 하지만 그러면서도 참 성실하고 꿋꿋해요. 드러나지 않는 일, 궂은일은 도맡아 하고요. 대본을 읽는 순간부터 이 역에 욕심이 났어요. 고병희가 참 사랑스럽다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고현정은 ‘여우야 뭐하니’에서 자신이 맡은 주인공의 캐릭터를 설명하며 활짝 웃었다. 섹스 관련 기사만 쓰는 3류 잡지사 기자라니, 철 지난 바닷가에서 만난 남자와 바로 그날 밤 ‘원 나잇 스탠드’를 나누는 30대 싱어송 라이터 문숙 역으로 출연한 영화 ‘해변의 여인’에 이어 고현정이 또 한 번 자유분방한 여인 역을 맡은 걸까. 하지만 고현정은 “고병희와 문숙은 180도 다른 인물”이라고 말했다. 고병희는 직업상 섹스에 대한 지식이 풍부할 뿐, 실은 사랑 한 번 못해본 ‘숙맥’이라는 것이다.
“주위 사람들은 다 고병희가 연애 10단, 섹스 100단쯤 될 거라고 생각해요. 하지만 실은 생물학적 처녀거든요. 진짜 사랑은 어떤 걸까 늘 상상만 하죠. 그러다 어느 날, 어린아이인 줄만 알았던, 게다가 아홉 살이나 어린, 친구의 남동생과 ‘사고’를 치죠. 그때부터 ‘아니, 쟤가 남자였나’ 다시 보게 되고, 갈팡질팡 사랑하게 되죠.”
자신이 연기한 고병희를 설명하며 고현정은 몇 번이나 ‘정말 사랑스런 사람’이라고 말했다. “솔직하고 따뜻하고, 실수를 하기는 해도 미워할 수 없는 사람, 그래서 자꾸만 애착이 가고 살갑게 느껴지는 사람”이 바로 ‘고병희’라는 것이다.

“망가지는 역할이지만 최대한 진지하게 연기할 거예요”
천방지축 노처녀로 변신한 고현정

‘여우야 뭐하니’에서 연상연하 커플로 호흡을 맞추고 있는 고현정·천정명.


‘여우야 뭐하니’는 ‘내 이름은 김삼순’의 김도우 작가와 ‘결혼하고 싶은 여자’의 권석장 PD가 콤비를 이뤄 방영 전부터 화제를 모은 작품. 고현정과 좌충우돌 사랑에 빠지게 되는 아홉 살 연하의 친구 동생 역은 실제 고현정보다 아홉 살 어린 탤런트 천정명(26)이 맡았다.
작가와 PD의 전작들처럼 이 드라마에서도 주인공 노처녀 고병희는 곧잘 실수하고, 상처받고, 망가지기도 한다. 고병희가 망가지는 모습을 연기하는 고현정 역시 술에 취하고 섹스 장면을 상상하고 아홉 살 연하의 배우와 ‘사고 치는’ 연기를 해내며 철저히 ‘망가진다’.
이에 대해 고병희의 어머니 역을 맡은 탤런트 윤여정은 “대중이 아는 고현정은 우아하고 CF 모델 같은 사람 아닌가. 그런 이미지가 배우로 살기에는 좋지 않다는 생각이 들어서 내가 적극적으로 현정이를 ‘꼬셨다’”고 설명했다.
그런데 고현정은 한 걸음 더 나아갔다. 드라마 속에서 망가졌을 뿐 아니라, 현장에서도 ‘고병희스러운’ 모습을 보이며 촬영장 분위기를 이끌고 있는 것. ‘여우야 뭐하니’에 고병희의 단짝 친구 역으로 등장하는 안선영은 “처음 드라마에 캐스팅될 때만 해도 권석장 PD가 ‘현장에 오면 재밌는 얘기도 좀 하고 해서 분위기를 띄워달라’고 부탁했다. 그런데 막상 현장에 가니 이미 고현정씨가 분위기를 다 띄워놓아서 난 한 마디도 할 필요가 없었다”며 “도대체 어떻게 지금까지 우아한 역할만 해왔는지 놀랄 정도로 완전 ‘물 만난 고기’”라고 말했다. 고병희의 동생 역을 맡은 탤런트 김은주도 “평소 화면에서 봤을 때는 우아하고 여성스러운 분인 줄 알았는데, 아기 같고 개구쟁이 같아 깜짝 놀랐다. 어떨 때는 내 동생처럼 보일 정도”라고 덧붙였다.
후배들의 ‘고자질’에 깜짝 놀라는 시늉을 하며 “아직 나를 살짝밖에 몰라서 그렇다. 좀 더 깊이 알게 되면 실은 굉장히 우아한 사람이라는 걸 깨닫게 될 것”이라고 농담을 던지는 고현정은 아닌 게 아니라 촬영장의 분위기 메이커 같았다.
그러나 고현정은 이 드라마에서 자신이 코믹한 이미지로만 비치는 것은 원치 않는다고 한다. 그가 ‘여우야 뭐하니’를 찍으며 가장 신경 쓰고 있는 부분은 의외로 진지함이라고.
“살다보면 난 참 진지한데, 그게 주위 사람들에게는 우습게 느껴지는 상황이 있잖아요. 그런 순간을 떠올리며 연기하고 있어요. 고병희라는 친구가 서른세 살에 느끼는 고민과 아픔이, 다른 사람들에게는 우습게 보일지라도 실은 참 무겁고 어려운 거니까요. 오버하지 않고 진지하게 고병희를 보여드리면서, 그게 재미있게 보이도록 하려고 해요.”
고현정은 고병희를 이해하고 사랑하면서 연기하고 있는 요즘이 무척 행복한 듯 보였다. 그는 특유의 수줍은 미소를 짓는 대신 ‘하하하’ 소리가 날 만큼 크게 웃었고, “이번 작품을 통해 비로소 땅에 발을 딛게 된 것 같다”고 말하기도 했다.
우아하고 박제화된 이미지에서 벗어나 스스로 세상 밖으로 걸어나온 고현정. 그의 변신이 기대된다.

여성동아 2006년 10월 51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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