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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은희경 남편 김상익 ‘자녀유학 체험기’

남매 미국 공립학교 보낸 아빠

글·이남희 기자 / 사진·김형우 기자

입력 2006.10.12 11:13:00

지난 2002년부터 3년간 부인 은희경씨와 함께 두 자녀를 미국 공립학교에서 교육시킨 김상익씨. 그는 “한국에 살 때는 회사 일에 쫓겨 아이들을 챙기지 못한 ‘게으른 아빠’였지만, 미국에서 난생처음 학부모 노릇을 했다”고 고백한다. 이 경험을 살려 현재 자신이 기자로 몸담고 있는 ‘시사저널’에 ‘김상익의 교육일기’를 연재하고 있는 그로부터 ‘자녀유학 체험기’를 들었다.
작가 은희경 남편 김상익 ‘자녀유학 체험기’

“미국에서 3년 동안 살면서 난생처음으로 학부모 노릇을 했다.”
부인 은희경씨(47·작가)와 함께 지난 2002년부터 3년간 두 자녀를 미국 공립학교에서 교육시킨 김상익 ‘시사저널’ 편집위원(51)의 고백이다. 한국에 있을 때는 회사 일에 쫓겨 자식교육에 대한 모든 권한을 부인에게 넘겼던 그가 미국에 머물며 아빠로서의 보람을 맛봤다고 한다. 그는 지난 6월 말부터 ‘시사저널’에 ‘김상익의 교육일기’를 연재하며 자신의 좌충우돌 유학체험담을 전하고 있다.
그가 미국행을 결심한 것은 여느 부모처럼 ‘자녀교육’의 명분이 아니었다. 지난 2002년 초 부인 은희경씨가 우연히 미국 시애틀에 있는 워싱턴주립대학(UW)으로부터 객원연구원으로 와 달라는 제안을 받았고, 그 역시 같은 대학의 연구원 자리를 얻었기 때문이다. 당시 고교 2학년이던 딸 새남양(21)과 고교 1학년이던 아들 이롭군(20)은 김씨 부부를 따라 2002년 한·일 월드컵 후 시애틀로 떠났다.
“아이들을 데리고 미국에 간다고 했을 때, 새남이 담임선생님이 ‘어중간하게 유학을 가면 힘들 것’이라며 걱정했어요. 공부를 잘했던 새남이는 한국에서 좋은 대학을 갈 수 있는데, 뒤늦게 유학을 떠나 실패할까봐 염려한 거죠. 저는‘1년간 어학연수 다녀오는 아이들도 많은데…’ 하는 생각으로 큰 고민 없이 1년간 머물기로 결정했어요. 그런데 막상 미국에서 1년을 지내고 귀국하려니, 대입수능시험 준비를 전혀 하지 못한 아이들이 걸리더라고요. 결국 아이들을 미국 공립학교에 계속 다니게 했어요(웃음).”
미국의 공립학교는 국민의 세금으로 운영돼 누구나 무료로 다닐 수 있다. 하지만 미국 공립학교의 시설과 교육의 질은 지역에 따라 천차만별이고, 전체적인 수준도 크게 떨어지는 편이어서 많은 부모가 무리해서라도 아이를 사립학교에 보내는 형편이다. “사립학교에 보낼 생각은 없었느냐”는 질문에 그는 “지인의 소개로 학군이 좋은 곳에 정착한 것이 행운이었다”고 답했다.
“저희 가족이 머문 시애틀 인근의 섬 도시 머서 아일랜드(Mercer Island)는 학군이 좋은 지역이었어요. 그곳에 사립학교가 없으니, 선택의 여지가 없었죠. 만약 자녀를 미국의 공립학교에 보내려 한다면, 학교가 어느 학군에 있고 어떤 시설을 갖췄는지부터 확인해야 합니다. 시설이나 교육의 질이 엉망인 공립학교가 훨씬 더 많거든요.”
미리 유학을 계획하고 준비하지 않은 탓에, 그는 아이들을 몇 학년으로 다니게 할지부터 고민해야 했다. 제 학년을 찾아간다면 한국의 고등학교 1·2학년에 해당하는 10학년과 11학년에 등록해야 하지만, 그럴 경우 아이들이 제대로 적응할 수 있을지 염려됐기 때문이다. 고심 끝에 그는 아이들을 9학년과 10학년에 보내기로 결정했다.
“유학 초기 아이들이 학교생활에 적응하는 데 애를 먹었어요. 일단 한국에서 영어를 집중적으로 공부하지 않았으니, 의사소통이 힘들었죠. 학용품을 준비하는 사소한 일에도 온 식구가 진땀을 빼야 했어요. 미국 학교 앞에는 문방구도 없더라고요. 한국 교민은 물론 동양인이 거의 없는 동네에 살다보니, 아이들이 친구를 사귀는 것도 쉽지 않았습니다. 학교가 끝나면 주눅 든 얼굴로 기진맥진해서 집에 돌아오는 아이들을 보고 아내의 코끝이 빨개지곤 했어요.”

수업시간에 떠들던 아들이 미국에 간 뒤 늦은 밤까지 공부하는 모범생 돼
작가 은희경 남편 김상익 ‘자녀유학 체험기’

2003년 워싱턴 D.C.를 찾은 김상익씨 가족. 왼쪽부터 아들 이롭군, 작가 은희경씨, 딸 새남양, 김상익씨.


그러나 새로운 환경에 적응한 아이들은 점차 변화된 모습을 보여주기 시작했다. 중3 때 “인문계 고교에 진학하기 어렵다”는 말을 들었던 아들은 미국에서 학교에 갔다 돌아오면 숙제부터 하는 모범생이 됐다. 그 좋아하던 컴퓨터 게임도 끊었다. 미국 학교에서 공부의 재미를 알게 된 것이다.
“아들이 중3일 때 연합고사를 한 달 앞두고 아들의 담임교사로부터 ‘지금 이대로 가면 인문계 고교에 진학하기 어렵다’는 말을 들었어요(결국 그가 4주 동안 집중적으로 공부를 시켜서 무난히 인문계 고교에 입학했다.) 그런데 그 말보다 더 충격적인 것은 ‘아들이 수업시간에 교사보다 더 말을 많이 한다’는 이야기였습니다. 그런 아들이 미국에서는 에세이를 쓰느라 늦은 밤까지 공부하는 ‘범생이’가 된 겁니다.
알고 보니 미국 학교에서는 수업시간에 교사의 강의를 방해하는 모든 행위를 용서하지 못한다고 합니다. 수업시간에 떠들면 가차 없이 추방할 만큼 교사의 권위가 서 있는 거죠. 아들이 변화하는 모습을 보며 저는 미국 교사들에게 고마움을 느꼈지만, 한편으론 무질서한 교실에서 혼자 50분 동안 떠들다가 교단을 내려오는 한국 교사들의 딱한 처지를 떠올리게 됐어요.”
미국 학교 입학 첫날 아이들이 집에 가져온 수많은 유인물은 김상익씨를 감탄하게 만들었다. 특히 자녀의 장점과 단점을 쓰는 일종의 ‘가정환경 조사서’ 같은 유인물은 학부모에게 내주는 어려운 숙제였다고. 한 번도 진지하게 그 문제를 생각해본 적이 없던 그는 “한 시간 정도 머리를 쥐어짜면서 내가 아이들을 얼마나 알고 있는지 깨달았다”고 털어놓았다. 여러 유인물 중에서도 가장 그의 인상에 남는 것은 학과목 교사들이 작성한 강의 계획표였다.
“유인물에는 수업목표와 강의 진행방법, 학기 중에 읽어야 할 독서 목록, 숙제 작성 및 제출 요령, 숙제를 안 하거나 늦게 냈을 때의 감점 기준, 지각 또는 결석에 따른 벌칙, 수업시간에 갖추어야 할 예절 등이 깐깐하게 적혀 있었습니다. 저는 내심 교사들이 강의 계획표에 명시한 대로 얼마나 약속을 잘 지킬지 의문을 가졌는데, 중간 성적표가 집으로 배달된 것을 보고 혀를 내둘렀어요. 성적표에는 각 과목의 숙제 성적과 수업시간에 치른 퀴즈 및 시험 성적 등 그 기간의 모든 평가 항목점수가 빠짐없이 기록돼 있었기 때문입니다. 어지간해서는 이의를 제기할 수 없는 엄정한 평가자료라고 생각했어요.”
처음 미국에 왔을 때 김상익씨 부부가 자녀교육에 있어 가장 신경을 곤두세운 것은 아이들의 출결 상황과 숙제 점검이었다. 미국 이민 1.5세인 후배가 그에게 “미국 고등학교에서는 수업을 빼먹지 않고 숙제를 꼬박꼬박 하면 A학점이 나온다”고 경험담을 들려줬기 때문이다.
미국 고등학교에서 집중적으로 가르치는 과목은 국어(우리에겐 영어), 수학, 역사(미국사·세계사·문화사), 그리고 과학(물리·화학·생물)이다. 학년이 높아지면 경제나 정치 과목도 선택해 들을 수 있다. 수학이나 과학의 경우, 한국보다 진도가 느린 편이어서 아이들이 숙제를 쉽게 해치울 수 있었다고. 하지만 다른 과목 교사들은 마치 경쟁하듯 아이들에게 골치 아픈 숙제를 안겨줬다고 한다.
“영어선생님은 물론 역사선생님도 아이들에게 책을 엄청나게 읽혔어요. 예를 들어 인류 문명을 처음 배울 때의 필독서는 ‘길가메시 신화’이고, 셰익스피어 시대쯤 오면 ‘리어왕’을 읽어야 했어요. 책을 읽어가지 않으면 토론에도 참여할 수 없고 시험도 망쳐요. 말하기 숙제도 있습니다. 수업시간에 연구과제를 발표하는 일종의 프레젠테이션 훈련이에요. 이 숙제는 요약문을 작성하고 관련 사진 등 준비할 자료가 많습니다. 게다가 여러 친구 앞에서 발표해야 하니 아이들은 잔뜩 긴장해서 밤새 뜬눈으로 자료를 준비했어요. 이렇게 열심히 노력하니까, 처음 6개월 동안 학교 공부를 따라가느라 죽을 고생을 하던 아이들도 결국 영어과목만 빼고는 A학점으로 도배하더군요.”
그는 특히 미국 학교의 ‘글쓰기 교육’에 대해 높은 점수를 줬다. 미국 학교에서는 학기 초부터 교사가 글쓰기 과제를 끊임없이 내주는데, 아이들은 자신이 쓰고자 하는 글의 주제와 개요를 미리 제출해야 한다. 그러면 교사는 개요를 검토해 아이들이 낸 창의적인 아이디어는 격려하고 취약한 부분은 보완해준다. 글의 얼개가 완성되면 본격적인 작문에 들어가는데, A4 한 장 안팎의 짧은 글도 있지만 세 장이 넘는 장문의 에세이도 있다. 교사는 학생들이 쓴 글을 꼼꼼히 읽고, 전체 내용과 어울리지 않는 어휘를 고치는 등 빨간색 펜으로 첨삭지도를 한다. 글쓰기를 업으로 삼아온 김상익씨와 은희경씨 부부는 아이들이 좋은 에세이를 쓸 수 있도록 어떻게 조언했을까.

작가 은희경 남편 김상익 ‘자녀유학 체험기’

2003년 뉴욕 맨해튼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을 방문한 김상익씨 가족.


“아이들은 환경, 역사 등 다양한 분야에 대한 에세이를 써야 했습니다. 수업시간에 본 영화를 각색하거나 세상을 놀라게 한 노인을 만나 인터뷰하는 숙제도 있었죠. 저는 아이들이 ‘어떤 시각으로 접근하면 좋을까’ ‘어떻게 글의 첫머리를 시작할까’ 하고 물어올 때마다, 그 나이에 알 수 없는 잡다한 배경지식을 들려주거나 다른 관점의 시각을 제시했어요.”
김상익씨는 “한국에서 학교와 학원만 오가는 입시지옥을 경험했을 아이들에게 ‘균형 잡힌 삶’을 선물한 것은 유학의 큰 소득이었다”고 말한다. 유달리 호기심이 많은 새남양은 스키, 스노보드, 스킨스쿠버 등 다양한 레포츠를 배우는 데 재미를 붙였고, 이롭군은 베이스 기타를 배우고 다양한 스포츠도 즐긴다. 그는 아이들이 다니는 학교의 실내 농구장과 잔디구장에 반해서, 아들에게 “축구반에 들라”고 적극 권할 정도였다.
“‘미국에서는 특기가 눈곱만큼만 있어도 남이 물어보면 할 수 있다고 대답하라’는 이야길 들었어요. 그러나 ‘겸양이 미덕’인 한국 문화에 익숙한 우리 아이들은 입학 첫날 ‘특별히 할 줄 아는 것이 있느냐’는 상담교사의 질문에 ‘없다’고 답해버렸죠. 학교에 예체능 소질 개발 프로그램이 있는데, 아이들이 그 기회를 단 한마디로 걷어차버린 거예요. 미국 사람들은 아이가 미술과 음악, 스포츠 등을 조금만 잘 해도 칭찬해주는 분위기입니다. 미국 대학에서는 지원자가 어떤 전공을 선택하느냐와 상관없이 예체능 특기생에게 가산점을 줘요. 아이들이 다양한 취미생활을 즐기게 된 것 또한 기쁘게 생각합니다.”
두 자녀를 미국에서 교육시켰지만, 그는 정작 “아이들을 유학 보내야 한다”고 주장하지 않는다. 미국 교육의 장점을 자신의 칼럼에 쓰기 시작한 것도, 한국에서 제대로 교육받을 수 있는 길이 없는지 모색하기 위해서였다는 것. 그는 “한국의 공교육이 살아나려면 먼저 고등학교에 담임제도가 없어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국에서 우열반을 편성한다고 하면, ‘학생들을 차별하는 시스템’이라는 비판이 나옵니다. 그런데 공부하는 학생, 떠드는 학생, 자는 학생을 구별하지 않고 ‘평등하게’ 한교실에 몰아넣는 것이 정말 평등한 교육일까요? 미국의 고교는 담임제도가 없고, 학생들은 자신이 들을 강의를 직접 선택합니다. 필수과목은 정해진 상태에서, 아이들은 자신의 수준에 맞는 심화과목을 선택해 강의를 듣는 거죠. 이렇게 시스템이 변하면, 아이들은 자신이 ‘열등반’에 포함됐다는 상처를 느끼지 않아도 됩니다.”

도와줄 부모가 없어 숙제를 못 해가는 ‘나홀로 유학생’
부모가 동행하지 않는 미성년자의 ‘나홀로 유학’에 대해서도 그는 우려를 드러냈다. 의사소통 조차되지 않는 낯선 공간에서 아이는 외로움을 느끼고, 부모의 통제가 이뤄지지 않는 상황에서 나쁜 길로 빠지기도 한다고. 그는 “시애틀에 ‘나홀로 유학’을 온 한국 학생 중에는 도와줄 사람이 없어 숙제를 하지 못한 경우도 있었다”고 말했다.
“학교에서 내주는 숙제 중에는 아이들이 혼자 해결하기 어려운 것도 많았어요. 예를 들어 워싱턴주 역사를 배울 때는 ‘국립공원에 가서 사진 30장을 찍어오라’는 숙제가 나옵니다. 그런데 나홀로 유학생의 경우 ‘국립공원에 함께 가자’고 홈스테이 부모에게 부탁하기가 어려워요. 타지에서 자녀가 겪는 여러 가지 어려움을 고려한다면, 부모가 자녀의 유학에 동행하는 것이 좋습니다.”
“난 게으른 아빠였다”고 고백한 김상익씨는 무엇보다 미국에서 자녀와 대화할 시간이 늘었다는 것을 가장 큰 소득으로 꼽았다.
“집사람은 미국에서 소설 ‘비밀과 거짓말’을 집필하기 위해 몇 달간 두문불출했으니, 제가 아이들과 지내는 시간이 더 많았어요. 식사도 챙기고, 아이들이 친구들을 초대하면 바비큐 파티를 열어주기도 했습니다. 미국 생활이 시작되면서 제 학부모 노릇도 본격적으로 시작된 거죠. 3~4개월이 지나 아이들이 학교생활에 적응하면서부터 우리 부부가 가슴 졸이며 우왕좌왕할 일이 줄어들었습니다. 대신 대화가 많아졌어요. 아이들에게 관심을 갖다보면 들려줄 이야기가 생겨나는 것은 당연한 일이더라고요.”
새남양과 이롭군은 현재 각각 워싱턴주립대학 2학년, 1학년에 재학 중이다. 은희경씨가 ‘새의 선물’을 쓸 때 곁에서 동화책을 읽던 새남양은 이제 엄마의 글을 맨 먼저 읽고 평해주는 ‘제1감독관’이 됐다고. 부모의 문학적 재능을 물려받은 딸은 심리학을 전공할 예정이다. 이과에 소질이 있는 아들 이롭군에게는 그가 ‘도시계획’을 공부해볼 것을 권했다고 한다. 그는 “아이들이 어느 나라에 정착하건 자신의 꿈을 맘껏 펼치는 것이 바람”이라며, 미국 유학을 꿈꾸는 부모들에 대한 조언도 잊지 않았다.
“미국의 학교는 다양한 체험을 가장 중시합니다. 아이가 운동이나 음악, 미술을 잘하지 못하더라도 자신감을 갖고 즐기도록 늘 격려해주세요. 주눅 들지 않고 다양한 클럽 활동을 하면서 아이들은 학교생활에 쉽게 적응할 수 있습니다.”

여성동아 2006년 10월 51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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