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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에서 배우로

‘만인의 연인’에서 ‘연기파 배우’로 거듭나고 있는 고현정

“영화·드라마 종횡무진하며 바쁘게 사는 일상 & 내가 연기에 매달리는 이유”

글·송화선 기자 / 사진·동아일보 사진DB파트, MBC 제공

2006. 09. 21

고현정이 주목받고 있다. 영화 ‘해변의 여인’과 드라마 ‘여우야 뭐하니’에서 발랄하고 개성 넘치는 배역을 맡아 새로운 모습을 보여주고 있기 때문. 트레이드마크인 긴 생머리를 짧게 자르고 ‘연기파 배우’로 변신하고 있는 고현정의 근황을 소개한다.

‘만인의 연인’에서 ‘연기파 배우’로 거듭나고 있는 고현정

9월은 고현정(35)의 달이 될 것 같다. 영화 데뷔작 ‘해변의 여인’이 오는 9월7일 개막하는 토론토 국제영화제 ‘스페셜 프리젠테이션’ 부문에 초청돼 화제를 모으고 있고, 9월20일부터는 MBC 드라마 ‘여우야 뭐하니’로 브라운관에도 복귀하기 때문이다. ‘여우야 뭐하니’는 드라마 ‘내 이름은 김삼순’의 김도우 작가와 ‘결혼하고 싶은 여자’의 권석장 PD가 함께 만드는 작품. 고현정이 회당 2천2백만원이라는 파격적인 출연료를 받는 것으로 알려져 방송 전부터 많은 화제를 뿌리고 있다.

밖으로 뻗친 단발머리, 청바지에 캔버스화 신고 섹스 ‘밝히는’ 발랄하고 자유로운 고현정의 재발견
하지만 최근 고현정이 주목받는 이유가 높은 개런티나 활발한 활동 때문만은 아니다. 많은 이들을 놀라게 한 것은 그가 두 작품에서 기존의 청순가련 이미지를 깨는 발랄하고 개성 강한 배역을 맡았다는 점.
지난해 초 SBS 드라마 ‘봄날’로 10년 만에 연예계에 복귀했을 때 고현정은 이복형제 사이에서 사랑 문제로 갈등하는 역할을 맡았었다. 해변에서 긴 생머리를 휘날리며 말없이 눈물짓는 등 시청자들의 보호 본능을 자극하는 모습이었다. 하지만 최근 고현정은 망가지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 듯 보인다. 해변에서 우연히 만난 남자와 하룻밤 사랑에 빠지는 30대 싱어 송 라이터(해변의 여인)나 엉큼한 상상이 취미이자 특기인 3류 에로 잡지 기자(여우야 뭐하니)로 자유롭게 변신하고 있는 것.
지난 8월11일 서울 홍제동의 한 재래시장에서 만난 고현정은 바깥쪽으로 자연스럽게 뻗친 단발머리와 청바지, 남색 캔버스화 차림으로 나타나 눈길을 끌었다. “‘여우야 뭐하니’ 촬영을 위해 6년 만에 처음 잘랐다”는 단발머리는 의외로 썩 잘 어울렸고, 고현정의 늘씬한 실루엣을 그대로 보여주는 캐주얼 차림은 그를 한결 어려보이게 했다.
이날은 고현정이 ‘여우야 뭐하니’ 촬영에 처음으로 참여한 날. 그는 드라마에 등장하는 휴대전화 사용법을 익히느라 다소 긴장한 모습이었다. 하지만 카메라가 돌아가자 언제 그랬냐는 듯 능숙하게 전화기를 조작해 엄마와 문자를 주고받으며 장을 보는 고병희의 모습을 천연덕스레 연기해냈다. 삼각 커피우유를 입에 물고 한손으로는 휴대전화를 만지작거리며 “아줌마, 꽁치 세 마리 주세요. 머리는 떼지 마시고요”라고 말하는 장면이 끝나자 바로 모니터 앞으로 가 연기 장면을 돌려보는 등 촬영 장면 하나하나에 집중하는 모습도 보였다.

‘만인의 연인’에서 ‘연기파 배우’로 거듭나고 있는 고현정

제작진에 따르면 고현정이 연기하는 고병희는 엄마·여동생과 같이 살며 집안일을 도맡아 하는 ‘식순이’라고 한다. 소심하고 착해서 서른세 살이 되도록 변변한 연애 한 번 못해봤지만, 머릿속으로는 언제나 다양한 성적 판타지를 꿈꾼다고. 시놉시스로 볼 때 고병희는 밥을 먹거나, 거리를 걸으면서, 심지어 지하철에 앉아 졸 때조차 섹스 테크닉을 연구하는 인물이다. 고현정은 드라마 속에 등장하는 다양한 상상 장면들을 실제로 연기하는데, 드라마의 초반부에는 그가 차 속에서 남자와 사랑을 나누는 것을 상상하는 부분도 나온다고. 멕 라이언이 주연을 맡은 영화 ‘해리가 샐리를 만났을 때’의 한 장면처럼 혼자 묘한 신음소리를 내는 장면도 있다고 한다.
그러나 주위를 깜짝 놀라게 한 이런 ‘변화’에 대해 정작 고현정은 “예전과 크게 달라진 게 없다”는 반응이다. 그는 최근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그냥 겉옷만 갈아입은 느낌이다. 설정이 독특할 뿐 ‘두려움 없는 사랑’이나 ‘모래시계’에서도 이미 다 있었던 이미지”라며 대수롭지 않다는 반응을 보였다. ‘해변의 여인’에서도 바닷가에서 ‘눈이 맞은’ 김승우와 함께 잠자리에 들기는 하지만, 베드신이 이불을 덮어쓴 모습으로 표현돼 노출은 많지 않다고.
그래서 “고현정의 진짜 변화는 배역 자체가 아니라 배역을 대하는 배우로서의 자세”라는 말도 나오고 있다. 고현정은 지난 4월 여배우의 파격적인 노출신으로 유명한 홍상수 감독의 영화 ‘해변의 여인’에 캐스팅된 뒤 가진 제작발표회에서 “내 이미지를 크게 벗어나고 싶지 않기는 하지만, 영화에 필요하다면 (노출신도) 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말해 화제를 모았다. 그는 이번 작품에서 여러 버전의 베드신을 찍었다고. 고현정은 “김승우씨는 ‘공사’(주요 부위를 살색 테이프로 가리는 일)를 하고, 나는 등이 나오는 정도로 찍은 ‘쎈’ 버전도 있는데 영화에는 나오지 않을 것 같다”고 말했다. ‘여우야 뭐하니’를 촬영할 때도 예쁜 것보다는 사실적인 것, 인기를 모을 만한 것보다는 공감을 얻을 만한 것에 더 신경 쓰는 모습을 보여 스태프들 사이에서 좋은 평가를 받고 있다고.
‘여우야 뭐하니’의 한 스태프는 “요즘 우리들끼리 ‘고현정이 달라졌다’는 이야기를 자주 한다. ‘봄날’을 할 때만 해도 화면에 예쁘게 나오는지 여부에 민감하게 반응해 때때로 스태프들과 갈등을 빚기도 했다고 들었는데, 여기서는 전혀 그런 모습을 보이지 않기 때문”이라고 귀띔했다. 고현정은 최근 ‘여우야 뭐하니’ 상대역 천정명과 베드신을 찍었는데, 만취한 상태에서 아홉 살이나 어린 친구 동생에게 키스를 퍼붓는 장면이었음에도 몸을 사리지 않는 연기로 1시간 만에 ‘OK’ 사인을 받아냈다고 한다. 두 사람이 모텔 침대 위에서 얽히고설키며 감정을 표현하는 장면이라 스태프들은 쉽지 않을 것이라고 걱정했는데 두 사람의 호흡이 척척 맞아 의외로 간단히 끝났다고. 그래서 ‘여우야 뭐하니’ 권석장 PD는 요즘 “고현정의 연기는 더 이상 좋을 수 없을 정도로 마음에 든다”며 싱글벙글이라고 한다.

담당 PD에게 먼저 “술 한 잔 하자” 할 만큼 스태프, 동료 배우들과 소탈하게 어울려
고현정의 또 다른 변화는 세상과 벽을 쌓는 듯하던 연예계 복귀 초기와 달리 요즘엔 동료 배우나 스태프들과 격의 없이 지내며 소탈하고 인간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다는 점이다.
‘여우야 뭐하니’ 첫 촬영날 모든 스태프들에게 음료수를 돌리며 ‘잘해보자’고 인사를 건넨 고현정은 오후 촬영장소인 포장마차에 가서는 PD에게 “서로 좀 더 친해질 수 있게 소주 한 잔 하는 게 어떻겠느냐”고 먼저 제안해 주위 사람들을 놀라게 했다고. PD도 “좋은 생각”이라고 맞장구를 쳐 두 사람은 오후 촬영을 마친 뒤 다른 스태프들과 함께 밤 10시 넘어서까지 술잔을 기울였다고 한다.

‘만인의 연인’에서 ‘연기파 배우’로 거듭나고 있는 고현정

영화 ‘해변의 여인’과 드라마 ‘여우야 뭐하니’를 통해 이미지 변신을 시도하고 있는 고현정.


영화 ‘해변의 여인’을 찍을 때도 고현정은 촬영 중간 쉬는 시간에 스태프들과 어울려 간식을 사러 다니거나, 자기 촬영분이 없는 날도 현장에 나가 다른 배우들과 호흡을 맞춰주는 등 ‘팀워크’를 생각한 배려를 많이 했다고 한다. ‘해변의 여인’에는 주인공들이 술 마시는 장면이 많이 등장하는데, 홍상수 감독이 영화의 리얼리티를 위해 배우들에게 직접 술을 마시며 연기하도록 해 이와 관련한 에피소드도 많다고. 김형구 촬영감독은 “고현정씨가 촬영 도중 쉬는 시간에 갑자기 스태프들에게 다가오더니 배시시 웃으며 ‘너 예쁘다’ ‘자긴 왜 그래?’ 하며 안 하던 행동을 하더라. ‘취했나’ 싶었는데 다시 카메라가 돌아가니 멀쩡하게 연기를 하는 거다. 다음 날 물어보니 자신의 행동을 전혀 기억 못했다”며 그가 스태프들 앞에서 귀여운 주사를 부릴 정도로 격의 없이 행동했다고 말하기도 했다.
고현정은 최근 한 인터뷰에서 그동안 언급을 꺼리던 결혼생활에 대해서도 이야기했다. 지난 95년 정용진 신세계 부사장과 결혼했다가 2003년 이혼한 그는 “결혼 당시에는 내가 연예인이고 그 사람은 돈 많은 사람이어서 문제가 될 수 있다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 그런데 막상 결혼생활을 하니 두 사람만으로 모든 것이 해결되는 게 아니더라. 처음 제대로 해보는 연애가 정말 좋았는데, 결혼생활에선 두 가문이 서로 연결되는 과정에서 쉽지 않은 일들이 계속 생겼다”며 속내를 처음으로 털어놓았다.
고현정은 이제 지난 시간 그를 괴롭히던 마음의 상처를 다 극복한 걸까. 주위 사람들은 여전히 그에게 적지 않은 아픔이 있다고 말한다. 특히 이혼할 당시 “성인이 될 때까지는 아이들을 만나지 않겠다”고 약속했기 때문에 벌써 3년째 보지 못하고 있는 두 자녀에 대한 그리움은 늘 그를 힘들게 한다고. 고현정은 동아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이 세상을 떠날 때 가져가고 싶은 단 한 가지 기억이 뭐냐는 질문에 “당연히 아이들과 함께 지내던 때”라고 답하며 눈물을 비쳤다. “연기를 안 해도 충분히 잘 살 수 있을 것 같은데 왜 구설수에 시달리면서까지 굳이 연기를 하느냐”고 묻자 “내게 소중했던 부분을 대체할 것이 없는 상태에서 연기는 큰 위로가 되기 때문”이라고 답했다. “다른 사람들 눈에 풍족해 보인다고 해서 꼭 행복한 것은 아니다”라고 말하는 고현정은 “인생을 다시 살 수 있다면 미스코리아 대회에 나가기 전으로 돌아가고 싶다”고 한다. “한 번 이런 인생을 살아봤으니 다른 삶을 살아보는 것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서”라고.



“이 세상 떠날 때 가져가고 싶은 단 한가지 기억은 아이들과 함께 지내던 때”
하지만 그는 지금 여기 있다. 고현정은 각종 오보와 헛소문 때문에 힘들어하면서도 “비 맞기 싫으면 비 오는 날 밖으로 나오지 말았어야 했다”고 말할 만큼 당당해졌다. 이제는 아이들을 위해서라도 좀 더 멋지고 씩씩하게 살아야 할 때라고 말한다.
최근 인터넷 팬 카페에 올린 글을 통해 “내가 벌써 서른하고도 여섯(한국 나이)이다. 잘 살고 있는 건지 걱정이 많이 된다”고 털어놓기도 했던 고현정은 요즘 시간의 흐름과 나이듦에 대해 생각하고 있는 듯하다. ‘스타’에서 ‘배우’로 변신하고 있는 고현정의 내일이 어떤 모습일지 따뜻한 시선으로 지켜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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