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림피아드에 대비해 과외를 받지는 않았어요. 원래 책 보고 혼자 공부하는 데 익숙하거든요. 난해한 문제를 고민하다 풀었을 때가 가장 기뻐요.”
지난 7월 초 열린 제38회 국제화학올림피아드에서 개인종합 1위를 차지한 배환군(18·민족사관고등학교 3학년). 소감을 묻자 그는 “1등을 했다는 사실보다 부모님이 기뻐하시는 모습을 보고 더 좋았다”고 말했다.
유네스코의 후원으로 매년 세계 각국을 순회하며 열리는 국제화학올림피아드는 전 세계 고교생들의 명실상부한 ‘두뇌 올림픽’. 영남대에서 열린 올해 대회에는 68개국에서 2백70여 명의 학생이 참가했다. 대회는 9박10일간 합숙하면서 5시간의 실험시험, 5시간의 이론시험을 거쳐 수상자를 가리는데 특히 올해는 사상 처음으로 실험기기와 노트북을 연결시켜 실험을 하면 노트북에 값이 뜨는 새로운 형식을 채택, 참가학생들이 적잖이 당황했다고 한다.
“일단 실험실에 노트북이 있어 놀랐고 시험이 시작되고 문제를 쭉 살펴보는데, 예년보다 하나 더 많은 세 문제가 나와 놀랐어요. 자주 출제됐던 예상문제도 나오지 않았고요(웃음). 그리고 문제 팁으로 1번 문제에 1시간, 2·3번 문제에 각각 2시간씩 배분하라고 나온 걸 보고는 더 당황했죠. 문제 파악을 하는 데만 30분 이상을 써버렸거든요. 세 문제 실험을 마치고 나니 겨우 3분이 남았더라고요.”
올해는‘세 문제 실험을 다 끝낸 학생이 많지 않다’는 소문이 나돌 정도로 문제가 어려웠다고 한다. 배군은 실험 38.75점(40점 만점), 이론 54.68(60점 만점)점 등 총 93.43점을 받아 89.77점을 받은 대만 학생을 여유 있게 따돌리고 우승을 차지했다.
어린 시절 곤충 채집, 식물 관찰하며 과학에 대한 흥미 키워
아버지 배대용씨(50)는 아들의 어릴 적 별명이 ‘꼬마 선생님’이었다고 귀띔한다.
“초등학교 때 담임선생님이 자리를 비우면 환이가 선생님을 대신해 친구들을 가르쳤대요. 그래서 별명이‘꼬마 선생님’이었어요. 어렸을 때부터 차분하게 제 할 일을 잘해 늘 믿음이 가는 아들이었죠. 과학에 관심을 갖게 된 건‘자연 공부법’ 덕분이었던 것 같고요.”
배군은 어린 시절 부모, 형, 친구들과 함께 집 뒤에서 곤충을 잡고 냇가에서 놀며 자연을 가까이 한 것이 과학공부에 큰 도움이 됐다고 말한다. 낮에는 자연 속에서 신나게 뛰놀고 저녁에는 부모가 사다준 과학도서를 책장이 너덜너덜해질 때까지 읽었다는 것.
“중학교 때 과학경시대회를 준비하면서부터 화학에 관심을 가지게 됐지만 제 원래 꿈은 곤충학자였어요. 아버지가 전근을 많이 다니셔서 지방에서 오래 살았는데 저희가 사는 동네 근처에는 늘 개천이나 숲이 있어 거기서 곤충 채집도 하고 식물도 관찰하면서 놀았거든요. 집에 돌아와서는 동물도감에서 낮에 봤던 것들을 다시 찾아보곤 했는데 큰 사진과 함께 생물들에 대한 설명이 곁들여져 있어 자연스럽게 자연과 생물에 대한 흥미를 키울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좀 더 깊은 지식은 ‘생명의 신비’ 같은 과학책을 찾아 읽으면서 알게 됐고요.”
배대용씨 부부는 과학을 좋아하는 아들이 균형감각을 잃지 않도록 하기 위해 문학이나 인문서적도 읽을 것을 조언했다고 한다. 특히 짤막한 글에 함축된 의미를 해석하고 긴 문학작품들을 재미있게 읽어나갈 수 있는 능력을 키워주기 위해 시집을 많이 권했다고 .
국제화학올림피아드에서 1위를 차지한 배환군과 아버지 배대용씨. 어릴 적 자연과 벗하며 자란 배군은 부모의 권유로 시 등 문학작품을 많이 읽은 게 모든 학과공부를 잘하는 데 도움이 됐다고 한다.
“부모님이 여러 분야에서 읽어야 할 책 목록을 뽑아 사다주었는데 그중에 특히 시집이 많았어요. 시를 읽으며 또래 친구들보다 이해력과 어휘력이 늘었고 국어 실력이 늘다보니 도미노식으로 주변 지식이 많아져 결국 모든 학과공부를 잘하는 데도 큰 도움이 됐죠.”
자신의 수준에서 조금 어려운 책이라도 인내심을 가지고 끝까지 읽으며 이해하는 것이 배군의 독서법. 책을 잡았다 하면 끝까지 읽고 나서야 자리에서 일어나는 스타일이라는 그는 운동도 했다 하면 지쳐서 나가떨어질 때까지 해야 직성이 풀린다고 한다.
“초등학교 4학년 여름방학 때 축구공을 사달라고 해서 사줬는데 여름방학 내내 밥 먹고 나면 공을 가지고 나가더군요. 나중에 알아봤더니 공을 못 차서 친구들이 축구팀에 넣어주지 않았대요. 그것을 만회하기 위해 한 달 내내 공을 가지고 놀았던 거고요. 방학이 끝나자 실력이 확 늘어 친구들이 너도 나도 서로 데려가려고 했답니다(웃음).”
지금도 공 하나만 있으면 언제 어디서든지 한 시간 이상 즐겁게 놀 수 있다는 배군은 앞으로 생물과 물리 등 다른 기초과학분야도 열심히 공부해 화학과 접목시키는 새로운 시도를 해보고 싶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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