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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eleb 웃음인생

뮤지컬 연출가로 제 2의 전성기 맞은 백재현

글·송화선 기자 / 사진·지호영‘프리랜서’

입력 2006.08.24 17:41:00

인기 개그맨에서 촉망받는 뮤지컬 연출가로 성공적인 변신을 이룬 백재현. 무대 위에서나 아래서나 사람들에게 웃음을 주며 사는 삶이 행복하다고 말하는 그를 만나 남다른 인생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뮤지컬 연출가로 제 2의 전성기 맞은 백재현

극단 ‘루나틱’ 단원들과 함께한 백재현.


백재현(36)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이미지는 KBS ‘개그 콘서트’의 한 장면이다. 커다란 몸집으로 무대를 휘어잡으며 웃음 폭탄을 날리던 개그맨. 하지만 이제 그는 더 이상 무대에 서지 않는다. 대신 무대 아래서 녹슬지 않은 개그 솜씨를 선보이며 ‘개그맨 출신 코미디 연출자’라는 새 길을 개척하고 있다.
백재현이 제작, 연출을 맡아 2004년 1월 막을 올린 창작 뮤지컬 ‘루나틱’은 2년 반 동안 30만 명의 관객을 동원하며 ‘대박’을 터뜨렸다. 지난 6월 시작한 두 번째 뮤지컬 ‘페이스 오프’도 지명도 있는 배우 한 명 없는 소극장 창작 뮤지컬임에도 각종 대작 공연들 틈바구니에서 인기몰이 중이다. 요즘 백재현이 싱글벙글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가진 돈 다 털어 뮤지컬을 제작하다 실패하고 갖은 고생을 한 때가 있었어요. 그때 가난보다 더 힘들었던 게 ‘개그맨이 무슨 뮤지컬이냐’며 무시하는 사람들의 시선이었죠. 요새는 그러던 사람들이 먼저 찾아와서 ‘당신 작품에 투자하고 싶다’고 말해요. 그럴 때 ‘아, 그래도 내가 조금은 성공했구나’라는 생각을 하죠.”
사실 백재현은 지금의 자리에 서기까지 적지 않은 고생을 겪었다. 지난 2002년 전 재산을 투자해 뮤지컬 제작에 뛰어들었다가 말 그대로 ‘빈털터리’가 됐기 때문이다. 경제적인 어려움에 다이어트 후유증과 이혼까지 겹치면서, 그는 다시는 일어설 수 없을 것 같은 벼랑으로 내몰리기도 했다. 마지막 순간이라고 생각하고 용기를 내 친한 연예인에게 돈을 빌려달라고 부탁했지만 돌아온 것은 “우리 사이에 돈 거래는 하면 안 된다. 대신 몸으로 하는 거라면 뭐든지 도와주겠다”는 대답이었다고 한다. 단돈 만 원이 아쉽던 당시의 그에게는 아무 의미가 없는 제안이었다.
“진심으로 죽고 싶다는 생각을 했어요. 집으로는 차압이 들어오고…. 혼자 울다가 ‘내가 죽으면 3류 개그맨의 비참한 말로라는 기사가 나오겠구나’ 하는 상상도 했죠.”
백재현의 손목에는 아직도 그날 작업용 칼로 그었던 흉터가 남아있다. 하지만 그는 죽지 못했다. 살고 싶어서가 아니라, 이렇게 죽으면 안 되겠다는 생각 때문이었다고 한다. 빚을 갚아야 했고, 그를 믿고 모인 배우들도 책임져야 했기 때문이다.
“‘죽을 용기로 하면 뭐든지 할 수 있다’는 말이 정말 맞는 것 같아요. 갑자기 홍보 아이디어가 떠오르더라고요. 우리 공연을 다트 경품으로 거는 거였죠. 당시 제 주머니에 딱 1만3천원이 있었는데, 그걸로 다트판을 샀어요. 그러고는 연극 보러 대학로 오는 사람들이 주로 나오는 혜화역 1번 출구 앞에 서서 이벤트를 벌였죠. 다트판에 ‘루나틱 50% 세일’ ‘루나틱 30% 세일’ 같은 딱지를 붙이고 화살을 맞히는 사람들에게 공연 할인권을 경품으로 주는 거였어요. 그 전에는 ‘공짜로 보여드릴 테니 제발 오기만 해달라’고 해도 안 오던 관객들이 ‘다트 놀이’를 시작한 뒤부터 하나 둘 찾아오기 시작하데요. 일단 한 번 공연을 보고 나면 열심히 입소문을 내줬죠.”
절체절명의 위기를 ‘놀이’로 극복한 백재현이 ‘웃음의 힘’을 믿는 건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그래서 그는 스스로를 ‘코미디 아티스트’라고 부른다. 그의 인생 목표는 더 많은 이들에게 깊은 웃음을 주는, 제대로 된 코미디를 만드는 것이다.

뮤지컬 연출가로 제 2의 전성기 맞은 백재현

부부 사이의 갈등과 배신을 통해 인간 본성을 돌아보게 하는 뮤지컬 ‘페이스 오프’.


“사람들을 더 많이 웃게 하는 게 인생 목표”
백재현의 이런 꿈을 생각하면 지금 공연되고 있는 뮤지컬 ‘페이스 오프’는 일면 목표에서 빗나간 듯 보이기도 한다. 이 작품은 음모와 배신, 살인이 뒤섞인 스릴러물이기 때문. 아내의 재산을 노리고 결혼한 남편과 그와 이혼하기 위해 연극을 꾸미는 아내의 거짓말이 얽히고설킨 이 뮤지컬에는 숱한 반전이 숨겨져 있다. 백재현이 “스토리를 다 알고 있는 나도 매번 범인이 누구인지 헷갈린다”고 너스레를 떨 만큼 탄탄한 구성 덕분에 작품이 끝날 때까지 극장 안에는 팽팽한 긴장감이 감돈다.
하지만 그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작품은 코미디”라고 말한다. 백재현이 생각하는 코미디는 사람들에게 웃음과 함께 삶의 철학을 전달해주는 예술. 그는 인생에서 진실이 얼마나 중요한 가치인가라는 ‘철학’이 이 작품의 주제이며, 이를 관객들에게 좀 더 쉽게 전하기 위해 긴장감 있는 줄거리 사이사이에 다양한 웃음장치들을 배치했다고 말했다. 사실 ‘페이스 오프’가 공연되는 동안 극장 안에는 수시로 폭소가 터진다. 어쩌면 폭력과 살인이 펼쳐지는 무대를 보며 관객들이 폭소를 터뜨리게 만드는 것이야말로 개그맨 출신 연출가 ‘백재현의 힘’인지도 모른다.
“한번은 어느 신문에 ‘정치하라고 뽑았더니 코미디하고 있네’라는 제목의 기사가 실린 적이 있어요. 제가 그 기자에게 항의 메일을 보냈죠. ‘정치하라고 뽑았는데, 코미디하고 있으면 잘하고 있는 겁니다. 왜 언론이 코미디에 대한 그릇된 편견을 유포하는 겁니까’ 하고요. 제 편지를 받은 기자가 자기 실수라며 사과하더군요.”
이렇게 코미디에 흠뻑 빠져있는 그가 가장 멋진 작품으로 꼽는 것은 나치의 유대인 학살을 페이소스 짙은 유머로 승화시킨 로베르토 베니니의 영화 ‘인생은 아름다워’다. 언젠가는 그런 작품을 만들고 싶다는 꿈 때문에, 그는 지금도 월세 40만원짜리 단칸방에서 살며 공연 수익금을 모두 작품 제작에 투자하고 있다고 한다.
“사실 지금까지는 그동안 진 빚 갚고 고생한 스태프들 월급 주느라 바빴어요. ‘페이스 오프’가 성공을 거두면 조금은 여유가 생기겠죠. 그러면 정말 좋은 작품 만드는 데 쓰고 싶어요.”
언젠가는 전유성, 김미화 등 ‘존경하는 선배들’과 함께 많은 이들을 웃기고 울릴 수 있는 코미디를 만들어 다시 무대에도 서고 싶다고 말하는 백재현. 브라운관을 통해 그의 모습을 볼 기회는 줄어들었지만 ‘코미디 아티스트’로서의 그의 삶은 이제 막 시작되고 있는 듯 보였다.

여성동아 2006년 8월 51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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